2007-05-25

질투와 계급의식

'부자들은 착하기까지 하다'는 이야기는 결국 가진 자들이 '우리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고 '진솔한' 말을 털어놓거나, 비교적 가난하게 큰 사람들이 '그게 현실이죠'라고 소소한 술회를 털어놓으며 끝나게 마련이다. 즉, 못 가진 자들의 심리가, 기껏해야 질투심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정도에서 머무르고 마는 것이다. 한국에서 좌파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이 부분을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질투와 계급의식의 차이도, 혹은, 그것들이 같은 뿌리에서 출발한다면, 그 차이를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는 것. 그리하여 질투가 계급의식으로 승화되지도 못하고, 계급의식이 질투심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솔직하게 드러나지도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계급의식을 통해 질투심을 극복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강인욱은 박예진을 정재민에게 빼앗긴 후 그람시의 옥중수고 따위를 읽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혹은 그 전에 이미 손을 댔었더라도, 출세하여 자기 손으로 인생을 개척하겠다는 그가 그 내용을 진정으로 흡수했을 리 없다. 하지만 자신의 개인적인 울분을 해결하기 위해, 혹은 설명하기 위해 자신이 아는 좌파 서적을 집어든 순간 그가 계급의식을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진 것이기도 하다. 계급의식과 가장 먼 곳에 있는 것이 바로 사회 계층에 대한 개인적인 원망이기 때문이다. 결국 강인욱은 정재민보다 부유해질 수도 없고, 그의 세계를 뛰어넘는 시각을 통해 도래하지 않을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도 없다. 계급의식은 깨달아지는 것이고, 그렇기에 제2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부러 추구하는 한 쉽사리, 어쩌면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질투를 느끼기 시작한 이상, 그 감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면서 계급 의식을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억지로 겨우 가능하기에 어떤 경우에도 미학적으로 올바르지 않다. 좌파들이 우파로서는 어림잡을 수 없는, 특정 계급에게는 해방이고 또 다른 계급에게는 묵시록에 가까울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이 우파들의 자산으로부터 파생되며 그 소유권을 박탈당했을 때에는 철저하게 파산하여버릴 가치를 배가 고프지만 체면을 버릴 수 없는 사람이 음식을 힐끔거리듯 바라보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 온당한 일이 아닐 터이다. 맑스가 확실히 말한 바와 같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일으킨다는 것이 부르주아의 도덕적 가치관을 모두 폐기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지만, 새로운 세상이 도래한다면 그것들이 제1가치로서 남아있을리가 없기에, 결국 부르주아의 도덕적인 혹은 '쿨한' 모습들은 좌파에게는 일종의 사다리로서 받아들여져야 마땅하다. 달리 말하자면, 좌파들은 자본주의적 현세에 존재하지 않는 가치를 기독교적으로 희구하고 있어야 한다.

문제는 질투를 느끼는 순간, 이렇게 부를 수 있다면 좌파 지망생은, 욕망의 게임에 한 발을 들여놓게 되고 결국 패배하도록 예정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부르주아들의 세계를 파괴하면서 노멘클라투라로 다시 태어난다. 보드카 대신 코냑을 마시고 비스킷 위에 케비어를 얹게 되면서 역사는 조악한 형태로 다시 반복되며, 대 부르주아들이 가지고 있던 귀족적인 우아함과 소 부르주아들이 담지하고 있던 지역 공동체와의 밀착은, 대체로 유착에 가까운 것일지라도, 복구될 수 없는 지경까지 파괴된다. 자본주의에 기반하고 있던 서구 문명이 구 공산권의 그것보다 미적으로 탁월했다고 함부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고목나무처럼 소련이 쓰러지고 중국이 기이하게 변태하면서 두 체제의 대립은 해결되지 않은 채로 완벽하게 해소되어버렸다.

이 과정이 개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좌파가 됨으로써 자신의 내면에 숨쉬고 있는 계급적인 갈등을 해결하려는 청년은 살롱 좌파가 될 수도 없는데, 그것은 이미 '좌파'로서 거듭나버린 그에게 또 하나의 계층적 문제가 있다는 좌절감을 안겨줌으로써 모든 문제를 원점으로 되돌려놓는다. 그러므로 논란은 끝나지 않았다. 테리 이글턴 같은 좌파가 된다면 부르주아 계급의 지적인 교양이나 우아함에 더이상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을런지 모르지만, 그러한 질투심을 이겨내기 위해 테리 이글턴이 되는 것은 가능하지도 온당하지도 않다. 그 순간, 계급의 문제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주변부와 중심부의 갈등이 악몽처럼 덮쳐올 것이며, 그 유령을 이겨내기 위한 엑소시즘을 진행할만한 어떤 신성함이나 초월적인 힘이 그에게는 남아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 결론을 내릴 수 없다.

2007-05-20

한국의 현재를 사는 사람들

한국의 현실이 이러저러하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고, 따라서 지금 당장 무엇을 하려 들기보다는, 혹은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원들을 종합적으로 활용하려 들기보다는, 앞으로 도래할 어떤 새로운 세계나 그것을 열어줄 수 있는 계기를 목놓아 기다리는데서 만족하거나 '미래를 대비'하는 쪽에 자신의 자원을 모두 쏟아붓는다는 식으로 스스로의 역할을 규정하는 그것이야말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한국적 특수성'이라고 불러온 문화적 현상의 본질 중 하나이다. 요컨대 한국적 특수성을 논하는 자들 중, 정작 한국의 현재를 사는 사람을 발견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의 여건에 대한 불만은 한국어에 대한 것으로 곧잘 치환된다. 한문 고전과의 역사적 맥락이 단절되어 우리의 정신 세계가 붕 떠버렸다는 페이퍼하우스 대표 최내현의 말을 전해들었을 때,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므로 적잖이 놀랐고 또 반갑기까지 했지만, 어제 인쇄되어 나온 드라마틱 22호에 실린 그의 칼럼은 다소 실망스럽다. 영어의 you에 해당하는 한국어 어휘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명백한 사실이고, 그것이 상대방을 특정하지 않으면 발화가 불가능하게 하는 기능을 수행하여 궁극적으로는 관계를 규정할 수 없는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을 현격하게 방해한다는 것 또한 정확한 지적이다. 하지만 그러한 기능 혹은 기능의 결여가 낳는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은, 언제라도 읽는 이를 you로 호칭할 수 있는 영어와는 달리, 한국어에서는 심지어 글을 쓸 때에도 독자와의 관계를 고려해야만 하고,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보편적'인 문어체를 만들어 낼 수도 없다는 것이다. 2인칭 호격의 부재는 술자리가 아니라 글자리에서 더욱 도드라지며, 그것이야말로 그 문제의 본질이다. 심지어는 지금 나도,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누구라고 함부로 지칭할 수가 없기 때문에, 독자를 예상하고 있으면서도 다소 기만적인 자기 독백체를 사용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현대 한국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문어체와 구어체의 완벽한 괴리이며, 그 현상의 이면에 깔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2인칭 호격의 부재인데, 그것을 단지 '상대방의 높낮이를 늘 재야만 하는 현실'로만 바라보는 것은 대단히 서글픈 일이다.

그 칼럼 하나에 담긴 내용과는 별개로 최내현 대표는, 또한 드라마틱과 판타스틱의 창간과 발행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고 또 하고 있는 박현정 편집이사는, 한국의 현실을 사는 사람 중 하나다. 판타스틱이 창간 특수 이후 과연 얼마나 안정적인 판매량을 보일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낙관하기 어렵지만, 드라마틱이 지금까지의 상업적 부진을 딛고 문화적인 영향력을 가진 매체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지만, 페이퍼하우스에서 시도하고 있는 매체들은 그 자체로서 한국의 문화적 현실 속에서 나올 수 있는 최선을 추구하고 있다. 내가 드라마틱의 에디터여서 하는 말이 아니다. 한국에서 자생력을 갖춘 문화, 그 중에서도 '작가'라는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르는 드라마가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이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드라마 작가들에게는 공통되는 하나의 분위기가 있다. 자신들이 쓰는 극본이 비평계에서 도외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어쨌건 쓰고 또 쓰는, 본의 아닌 끈질김 같은 그런 것. 언론들은 언제나 지엽말단적인 것에만 열광하고, 조금만 자신의 자의식으로 함몰되면 곧장 대중들에게 외면당하는 현실 속에서도 그들은 꾸준히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방송 매체의 특성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드라마 작가들도 결국 한국의 현재를 살고 있는 것이다.

판타스틱에는 거의 관여를 하고 있지 않으니 드라마틱에 대해서만 좀 더 얘기해보자면, 이 매체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을 관통하는 어떤 분위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조민준 편집장, 최원택 수석, 그 외 모든 사람들은 한국 드라마를 절대 만만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잡지에서 일하기 위해 그런 자세를 부러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한때 대단한 영화 키드였던 조 편집장은 '케세라세라'가 어떤 면에서는 영화가 보여줄 수 없었던 성취를 이루었다고 감탄사를 늘어놓는다. 양키들이 노는 모습을 보며 부러운 심경을 감추지 않는 취미가 최 수석 또한, 자신이 언젠가 드라마 극본을 쓴다면 '환상의 커플'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만들고 말겠다고 다짐한다. 우리는 한국 드라마의 현장에 살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의 눈에 보이는 작품 중 80%가 그저 그런 범작에 불과하고, 15%가 구제불능이며, 겨우 5% 정도만이 진지하게 탐구할만한 가치를 지닌다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직접 한국 문화의 현장 속에 뛰어들려 하지 않는 수많은 한국인들이, 아니 한국 지식인들이, 머리로는 그렇다는 사실을 다 알면서도 술자리에서 딱히 할 말이 없다는 이유로, 혹은 자기 연민을 위한 희생양으로, 드라마 뿐만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는 대부분의 장르를 싸잡아 비난하는 데 급급하다는 것이다. 요컨대 그들은 '내 이름은 김삼순'이 방영되고 있는 동안에도 한국의 모든 것이 정체되어 있다고 찌질거린다.

한윤형과 술을 마시던 금요일 밤에 이택광 교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그를 술자리에서 서너번 쯤 만났는데, 거기서 느낀 인상과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한 사람의 블로거로서 그는 한국 학계의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절대 비관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한국 학자들이 공부 안 한다는 언급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문학자들끼리 모여 자전거를 타자는 제의를 하고, 들뢰즈 독회에서 받은 신선한 인상을 긍정적이고 경쾌한 어조로 기록한다. '객관적'인 시각에서만 보자면 별 거 아닐 수 있지만, 바로 그 별 거 아닌 일상성이 그의 블로그의 탈식민성을 구성하고 있다. 탈식민주의의 궁극적인 목표가 타자와 대등한 위치에서 관계맺을 수 있는 주체로 거듭나는 것이라면, 한국의 학계가 할 수 있는 일은 탈식민주의에 대한 텍스트를 읽으며 고뇌하는 것보다는 그런 책을 읽고 사는 자신들의 모습을 일단 긍정부터 하는 것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것은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자의식을 드러내지 않을 때의 강유원을, 한 사람의 서평가로서 존중할 수밖에 없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기도 하다. 자신이 철학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려면, 결국 한국 철학의 현재 속에서 살아가는 것만이 정답이다. 이택광은 블로그를 통해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한 인문학자의 삶을 구성해내고 있다. 나는 그의 영화평을 그리 좋아하지 않고, 정신분석학에도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터라 그의 논의를 힘들여 추적하지도 않지만, 그가 웹에서 보여주는 모두스 비벤디modus vivendi만큼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현재를 추적하는 사람이라면 또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아트 인 컬쳐'의 편집장이며 '크레이지 아트 메이드 인 코리아'의 저자인 이정우(임근준) 씨. 글을 만지고 사는 사람들이 흔히 빠지곤 하는 CIS 증후군, 즉 Contemporary Is Sucks 따위 마인드를 그에게서 발견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그의 책이나 잡지를 직접 읽어본 적이 없고 다만 블로그만을 꾸준히 관찰해온 터라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 꺼려지긴 하지만, 애초에 '한국 현대 미술가들을 추적하겠다'는 발상을 내놓는 것부터가, 지금 내가 이렇게 주절거리는 테마를 그는 아주 오랜 시간동안 구체적으로 붙들어왔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미술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곳의 시장이 정상적으로 살아있으며 그로 인해 그와 같은 비평이 소비될 여지가 있는지는 모를지라도, 창작자가 아닌 비평자로서 살아가겠다고 작정하고 있으면서 그렇게 꿋꿋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것 정도는 내 수준에서도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물론 미술은 대부분 단일한 물리적 대상으로 현현되는 것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 아무리 모나리자가 위대해도 그것을 내 방에 가져다 걸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음악이나 문학 등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예술에 비해 필연적으로 훨씬 강하게 현실에 밀착한다. 음악 애호가가 바흐만 듣고 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잭슨 폴락의 그림을 한 점 소유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엄청난 재산이 필요하다. 컨템포러리에 대한 수요가 미술에서 끊일 수 없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라고 추측한다면, 창작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그쪽은 적어도 문학보다야 상황이 낫다고 볼 수 있겠지만, 비평을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지 않은가.

지금까지 나는 내가 아는 사람들만을 죽 훑었다. 그러므로 한국의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은 거의 확실하다. 경마장의 말처럼 무조건 앞을 향해 질주하기만 한다는 뜻도 아니고, 이들이 중심부의 상황을 힐끔거리며 동경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 언급된 사람들을 내가 굳이 꼽아드는 이유는, 한국의 문화가 이러저러하고 그리하여 주변부의 사람으로서 소외되어 있다고 너무 편하게 생각해버리고 안주해버리는 어설픈 지식인들, 그래왔던 나와는 너무도 다르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바로 그것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는 데 있다. 사실 이 주제를 글로 쓰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한국이 주변부라는 사실을 '제대로' 폭로하고자 절치부심 다짐만 하고 있으면, 나 또한 한국의 현실을 사는 게 아니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 말을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의 초라함을 논하되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지는 않는 것이라고,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2007-05-18

[[문화와 가치]] 비트겐슈타인, 이영철 옮김, 책세상, 2006

어떤 사람에게 그가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것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비록 우리들이 그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부언하더라도, 아무 뜻을 가지지 않는다. (이런 일은 우리들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매우 종종 일어난다.)

만일 당신이 어떤 사람들이 방에 들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열쇠로 열 수 없는 자물쇠를 걸라. 그러나 당신이 그들이 그 방을 밖에서 찬탄하는 것을 원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 방에 대해 그들과 더불어 이야기하는 것은 뜻이 없다! (39쪽)

권정생 선생 별세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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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5

낭만주의는 한국 사회를 해석하는 틀로 기능할 수 있는가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야 낭만주의에 대한 책을 읽어보니까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야 내가 말했는지 모르겠으나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칸트의 철학이 낭만주의의 시작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대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그리고 니 말은 뭔데?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아 별로 중요한거 아냐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아 그래서 난 네 블로그 포스팅을 보고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아니 뭔데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조또 궁금하게시리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인간 자율성에 대한 엄청난 믿음이 낭만주의의 오버를 가능하게 한 건데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지금 한국의 실정을 낭만주의라 부르는건 그을쎄 뭐 이러고 말았거든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왜 자율성에 대한 엄청난 믿음이 있긴 하지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칸트 이전의 낭만주의라면 모를까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업어 (전상욱 버전)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흐음 없다는 말이 나는 전혀 이해가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자율성'이란 낱말을 좀 잘못 쓰는 거고. 그 인간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전혀 없지.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글쎄 그렇다고 기계적 우주관이라던가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앞 문장은 (흔히 한국인들이)라는 주어가 생략되어 있음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운명론 같은 것이 의식 세계가 전제되어 있지도 않으니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한국인들은 결국 '안 되는게 어디 있나?' 같은 소리로 도피하잖아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나'와 '세계' 간에 연결고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타인을 완전히 도외시하고 있고 보편적인 인간을 상상도 못하고 있긴 하지만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안 되는게 어디 있나? 라는 말은 대개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권력을 가진 누군가 시킬 때 하는 소리야.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개별적인 행위자의 사고 방식은 낭만주의의 그것과 비슷한 것 같ㅇ느데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까라면 까는 거지.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타인의 자율성을 반드시 존중해야 낭만주의인 것은 아니지 않냐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응 그건 아니야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자기 자신의 자율성도 믿지 않는다는 생각인데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다만 세계를 못 보는 거고. 명령하는 자와 명령받는 나만 있는 거지.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그러면 "안 되는게 어디 있나?"라는 말이 나와.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실제론 일을 개판으로 하면서 그렇게 얘기하거든.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그러니까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낭만주의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세계를 총체적으로 이성을 통해 파악할 수 없다는 인식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그리하여 느끼는 숭고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한국인들의 세계 인식이 파편적인 것 또한 비슷한 맥락 아닌가 싶은데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이성적인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조차 두려워할 정도로 일관성을 회피하는 것도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그러나 또 어떤 맥락에선, 조야한 이성을 통해 세계를 총체적으로 파악하잖아?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낭만 막장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가령 강자지존이라든지.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근데 그런거는 일종의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예술적 세계관? ㅋㅋ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들이 빠질 수밖에 없는 보편적인 함정이고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그렇지 '예술적' 세계관에 필연적으로 내재하는 한계 아닐까 싶은데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흠 이 문제는 좀 엄밀히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겠어.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그 말이 맞을 수도 있지만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어쨌든 그렇다 하더라도 우린 독일의 방법은 차용할 수가 없게 되거든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칸트적인 총체적 파악이 없을 때 그런 요소들을 가지고 낭만주의라고 말한다면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왠만한 철학 사조 빼고 그 나머지 건 다 낭만주의라고 불러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그니까 원시적 공동체도 아니고, 이념도 없는 어떤 이상한 아노미 사회들에겐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다 낭만주의가 된다는 건데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칸트가 낭만주의의 출발점으로 여겨지는건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그가 관념론의 초석을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확고하게 다졌기 때문이다 라고 하거든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난 참 그럴듯하다고 생각해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그렇지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그래서 독일관념론과 낭만주의는 같이 가는 사조고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셸링 피히테 이런 애들이 그야말로 낭만주의 철학자들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헌데 한국에서는 선불교 전통과 기타 등등이 결합한 더러운 관념론이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애초부터 유령처럼 떠돌고 있기 때문에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말하자면 통속철학이 애초부터 관념론이고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유심론이라고 해두자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차이가 묘하게 있긴 한데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어쩄건 내 체감은 그렇다고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이렇게 되면 문제가 어떻게 되냐하면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서양철학에선 낭만주의가 반동이라고.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왜냐하면 그전엔 신 이성 론이니까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그렇지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계몽주의에 대한 반동인데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 자의적 낭만주의가 주류인 거고, 한번도 극복된 적이 없는 것이지.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내가 간간히 일제시대를 그리워하게 되는 이유가 뭔가 생각해보면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그게 있는 것 같기도 하거든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계몽주의자는 칸트니까, 칸트에 대한 반동이기도 해. 하지만 신-이성론 (중세에서 스피노자까지)이 낭만주의와 오히려 더 멀지.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제국'이 가지고 있는 그 계몽주의와 이성주의의 잔재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그것에 대한 향수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그래서 그게 더 문제인 건데.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사실 일본의 계몽주의와 이성주의는 거의 독일식 낭만주의에 오염된 거였단 말야?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칸트가 계몽주의자의 최정점이긴 한데 그가 낭만주의를 포태하고 있었던 사실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그러니까 우리가 말하는 낭만주의와 독일 낭만주의 사이엔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음 그래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같은 말로 엮을 수 없는 엄청난 간극이 있는 거지.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그건 맞는 말이다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애기 옹알이와 천주교인의 방언이 문법에 안 맞는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말하는 것과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거의 같다.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그런 비유는 좀 아니고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뭐 어쨌든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낭만주의적 경향, 이라고 일단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포섭을 한다면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독일 낭만주의의 사례를 연구함으로써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한국의 경우를 파악하기 쉽게 되지 않을까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주변부에서 정신을 차린 유일한 사례라는 건 참 맞는 말이긴 한데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잠자리채로 파리를 잡는 거지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말하자면 말야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차라리 난 주변부를 뒤지는게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물론 그쪽이 언어적으로 접근하기 힘들지만.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주변부가 어디를 말하는 거냐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미국과 유럽이 아닌 나라들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한국은 일단 일본을 근대의 아버지로써 파야 순서가 맞는 지도 모르고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뭐 그러다가 독일로 넘어갈 수도 있겠으나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난 그런 경우는 실질적으로 '연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중심부의 시각을 통하지 않고 어떤 주변부가 다른 주변부를 파악할 수가 있을까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이중의 삽질이 될 가능성이 크지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맞는 말이긴 한데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요약하자면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1) 한국의 현 사태를 낭만주의로 포섭한다면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호미 바바의 책을 읽어서 인도의 탈식민주의를 연구해봐야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자 계몽주의-(독일)낭만주의-----------------(한국)낭만주의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이런 거리가 된단 말야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저 거리는 내가 편의상 훨씬 줄인거야.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계몽주의와 독일낭만주의는 아주 가까이 있거든.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음 그 거리 설정에 동의하기 어려운 측면도 좀 있지만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그럼 낭만주의는 세상에서 가장 넓은 강역을 포함하는 사조가 돼.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아무튼 계속해봐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이렇게 되면 이걸로 이걸 분석한다는 게 애시당초 어이가 없어져 버리는 거지.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그러니까 너는 내가 포괄적인 반지성주의를 낭만주의라고 명명함으로써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낭만주의라는 언어의 의미를 희석시키고 있다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반지성주의는 세태의 단면이고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이렇게 보고 있지?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흠.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그럼 그걸 뭐라고 호칭할 거냐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사실 문제의 핵심은 그거야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주변부로서의 한국 사회의 정신적 분위기를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이를 테면 잡초 근성이라고 부르기도 하잖아. 우리는.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어떻게 호칭할 것인가 하는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잡초와 낭만주의 사이에 무슨 공통점이 있지?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낭만주의는 기본적으로 예술적 사조인데.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낭만주의자들은 잡초를 연구했거든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잡초 방언 들꽃 따위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맥락이 틀려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한국엔 잡초가 표준어야. 방언가 아니라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꽃이 없는 세계의 잡초라구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온실에서 대량생산하는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그때까지 보편성으로 포섭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집착이 낭만주의의 일면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그리고 한국에 꽃이 없다는 건 섵부른 생각이야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한국에는 그런 집착이 전혀 없잖니?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꼭 그렇지는 않지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세상에서 가장 없는 나라라고 단언할 수 있지 않을까?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국제적인 맥락을 따라가려고 노력하는 예술가나 철학자 등등이 꽤 있어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아니 절대 그렇게 단언하지 않고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자 지금 우리는 한국사회의 문제를 얘기하고 있었지. 그 예술가나 철학자들은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우리가 한국사회에 느끼는 위화감보다 더 큰 것을 느끼는 사람들이고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뭐냐 그들은 한국 사회의 일부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가령 낸시랭을 두고 낭만주의라 부를 수 있을 것이냐를 얘기해야지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낸시랭을 분석할 때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포스트모던을 운운하는 것보다 낭만주의의 돌연변이로 파악해보려고 하는게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큰 의미가 있다 이거지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어차피 서양의 담론을 그대로 대입하기 위해서는 전제해야 할 게 너무 많잖아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미학을 몰라서 그냥 지르진 못하겠는데, 그을쎄다.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그렇다면 폭력적 근대화를 겪은 직후, 한 20년 되었지만 그런 직후 상화엥서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포스트모던 운운도 낸시랭 분석틀은 아니지만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끌어들일 수 있는 담론으로 더 유용한 것은 한 200년쯤 뒤떨어진 게 아닌가 하는 거지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차라리 소크라테스 이전으로 가고 싶다.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아니 그러면 지금 우리가 철기를 마음대로 주무르면서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당시 그리스어랑 지금 한국어랑 비슷하다고 박홍규가 그랬잖우.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기차를 타고 다니는 현실과 맞아떨어지지가 않아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야 그게 얼마나 처량한 소리냐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ㅋㅋ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처량해도 어쩌냐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개념어가 없다는데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그러니까 일종의 미시적 탐색을 통해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그게 한자를 잘라내서 그렇게 되어버린 꼴이긴 하지만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다시 말해 낭만주의자들이 했던 과정과 유사한 것을 밟음으로써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한국에서의 위 낭만주의를 타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물론 의의는 있겠지만,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그것의 어려움은 서구사회에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했던 과정과 유사한 것을 밟음으로써
한국에서의 위 포스트모던을 타개하는 것과 그냥 거의 비슷한 레벨이다.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그러니까 200년 앞으로 간다고 치유책이 더 효력이 높아지지는 않아.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아니 다른게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모던과 포스트모던은 계몽과 낭만을 거친 다음 개인의 주체성이 확립된 다음의 이야기인데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늘 너와 내가 문제삼던 것 중 하나는 개인의 주체성이 희박하다는 거 아니냐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그렇게 치면 낭만주의 역시 그전에 지켜야 되는 단계가 너무 많아.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이걸 그렇게 넘기려면 진짜로 소크라테스 이전으로 가야 한다.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그러니까 내 구상을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자면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우리가 대충 살아가는 인간이면 달리기는 할 줄 알잖아?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하지만 역도는 따로 배워야하고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모던과 포스트모던 논쟁은 말하자면 역도 차원의 운동이고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낭만주의 시대 정도까지는 어느정도 문명이 형성되어 있으면 유사한 형태로 도달할 수 있는게 아닌가 하는 거지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비유가 좀 안 맞는다.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달리기는 건강한 인간이면 누구나 할 줄 알듯이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그래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왜냐하면 모던은 사실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자본주의 사회 구성원이라면 대충 체득하고 있어야 하는건데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모던이 기초체력에 해당하지.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그게 안 되어서 빌빌거리는데 그걸 문제라고 못 느끼는 거 아냐 지금.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푸코의 말대로 모던이 훈육되는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냐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그렇게 생각해.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기초체력도 어차피 훈육되어야 한다.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문제는 훈육을 시킬 정도로 체계화된 사회가 생성되어 있느냐일 수도 있는데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그러니까 그만큼의 훈육이 덜된거야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응. 훈육을 시킬 주체도 없으니까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라면 왕조가 남아 있고 뭐 그런 수준까지는 대충 도달하는 것 같거든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자연환경을 포함한 몇몇 전제 조건이 있을 대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적어도 한국 사회는 그렇지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중앙집권화된 왕조까지는 이뤄본 사회지.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난망한 것이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그러니까 그러면 여기서 뭐가 결핍되어 있나를 따져봐야 하고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근데 유교적 형이상학은 지금 또 싸그리 날려먹었잖아?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그게 존속할 수가 없고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솔직히 부활시킬 수도 없어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그러니까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지금 우리가 문화 같은 문화를 가져보려면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왕조 질서는 해봤다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이걸 기본 베이스로 잡을 수 없단 거지.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과거에 낭만주의자들이 했듯이 지금 뭔가 국제 사회의 보편 질서와는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 무언가를 탐색을 해야 한다는거야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낭만주의로 한국사회를 특징짓는 건 말도 안돼.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마치 그림 형제가 독일어를 수집하여 사전을 만들듯이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낭만주의다, 라고 못박는다기보다는 그렇게 봐야 이득을 누릴 수 있다는 거고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누릴 수 없어.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명명을 제대로 함으로써 치유의 과정을 단축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어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제대로 한 것도 아니라니까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몇 가지 요소가 꼬여 있어서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그럼 너는 뭐라고 할 거냐, 라고 하면 바로 그 치사한 대안 묻기가 되니까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그 요소 대 요소별로 치유법이 나와야 할까 말까야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시대를 규명하기 위한 어떤 슬로건 내지는 형이상학이 필요하긴 해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샤먼-인질 생존자-자본주의 쯤 된다고 생각해.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인간은 반드시 그런 걸 요구한다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그럴 때 확고한 표어가 있어야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구체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지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그럴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얼척없는 표어다.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낭만주의자들은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자신의 역량을 제어하는 것만으로 다시 계몽주의로 돌아올 수 있었어.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흠 뭐 어차피 내가 그 글로 모든 것을 규명하지는 않았으니 그게 점점 맞아들어간다는 것을 서서히 입증할 수 있곘지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그래. 원래 표어라는 건 구체적인 분석활동에서 유의미함을 증명하는 거니까.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분석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치유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한국 사회는 객관적인 분석의 대상이 아니거든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그럴 수가 없지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분석행위가 치유효과를 필함하지.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그러니까 나는 완벽한 분석을 추구하기보다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치유 과정에서 분석이 따라오기를 바라고 있고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낭만주의 정도로 포섭하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고 생각해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뭐랄까 당신의 담론 프로젝트는 당신이 철인 왕이 되었을 때에나 그렇게 돌아갈 수 있어.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그리고 적절한 연구가 따라온다면 내 설정이 그리 틀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입증은 아니어도 아무튼 그렇다는 걸 보여줄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듣지도 않는 인간들에게 슬금슬금 부어주면서, 나중에 자기가 어떤 상황에서 각성이 일어날까 말까 하는-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그게 분석행위가 할 수 있는 치유효과야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치유행위를 통해 분석한다는 건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애를 잡아놓고 정신상담을 할 수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야.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너는 많은 한국인을 애 취급하지 않냐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애 취급하는 것도 글쓰기의 한 양식이지. 하지만 내겐 잡아놓을 힘이 없잖아.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나도 마찬가지긴 한ㄷ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한데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하여간, 새로운 테마를 잡은 것을 축하하네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자기 분석의 방향이 어떻게 향할지에 대한 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게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내 가슴에 별처럼 빛나는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뭐 그런거라서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시작하는 일에 초를 칠 필요는 없겠지.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그러니까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한국 사회를 명명도 하지 않고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한국어는 독일어가 아니라서 긴 단어를 만들면 한 단어로 인식되지 않는다고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이해를 위한 초석이 필요하고 그건 어디까지나 함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명명을 먼저 하고 분석을 한다는 것이 사실 굉장히 관념론적이긴 해. ㅋㅋㅋ

우물에 빠진 호랑이 님의 말:
직관에 의존하고 있지

[윤형] 에잇 죽어보자! 님의 말:
오케이.

한국 낭만주의 - 불연속적 상념들

한국인들이 애초에 계몽주의를 거부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절대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 기정사실이라고 한다면, 정치경제적인 맥락과는 전혀 무관하게, 한국에 흐르는 문화적 정서를 일종의 낭만주의로 해석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다. 그것은 적어도 '수준이 낮다'고 치부하는 것보다 성실하고, '근대적 기획을 받아들일 수 있을만한 일관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해석보다 이성적이며 심지어는 어떤 대안을 제시하는 측면마저도 가지고 있다.

가령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과 이후 벌어진 문화적 풍경을 곱씹을 때, 그것을 일종의 유사 파시즘으로 간주하는 대신, 좀 더 큰 차원으로 포섭해주는 일은 그 자체로서 실천적인 의미를 지닌다. 한국이 파시즘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남지 않는다. 반 지성주의를 욕하며 '반 지성주의'라는 단어 외의 어휘를 배우지 않고, 술을 마시며 욕을 하는 그것이 전부일지도. 그러나 현재 한국이 낭만주의의, 변종이겠지만 아무튼 낭만주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미열에 시달리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같은 증상을 이미 겪었고 극복해낸 몇 가지의 선구적 사례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된다.

예전 몇 번의 술자리에서 '한국은 독일 낭만주의의 성공 사례를 철저하게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은 바로 그러한 맥락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독일어밖에 가진 게 없었던 '독일인'들이, 문화적인 비약을 일궈내고 그것을 발판삼아 정치적인 통일을 이루어낸 과정을 회고함으로써, 한국은 '문화적 소외'를 주체적으로 극복해낸 거의 유일한 사례를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계통론적 맥락으로 인해, 노무현의 당선이 불러온 독특한 포퓰리즘의 해독을 중화하는 기능을 수행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드라마와 영화를 제외한 대부분의 창작 장르는 자생력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이 대거 번역되는 것이 '문화저 현상'이라고 해도, 그것을 분석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인식은 매우 좁고 얕을 뿐이다. 택도 없어 보이는 '지망생'들이 영화 비평을 하겠다고 지분덕거리고 있는 현상 자체가 오히려 더욱 많은 것을 설명한다. 지금 살아있는 장르는 달랑 둘이고, 그나마 '기존 비평'이 존재하는 것은 영화에 한정되는 일이므로. 문제는, 영화와 드라마 모두 그 자체의 속성으로 인해, 낭만주의 예술가들이 벌였던 실험의 일부를 재현하는 일조차 거의 불가능한 장르라는 것이다. 형식의 파괴와 개인의 내면에 대한 천착이라는 두 방향 모두를 검토해볼 때, 영상 매체가 대중을 염두에 두고 벌일 수 있는 파격에는 엄연한 한계가 존재한다. 그 한계를 곧장, 내가 꾸준히 느껴온 어떤 벽과도 같은 그것에 대입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한국 영화를 논함에 있어서 '흥행 양극화'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의식이 확산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07-05-12

5월 12일



날이 날이니만큼 공일오비 들읍시다.

2007-05-11

Ben Folds - Bitches Ain't Shit





Bitches Ain't Shit


Bitches ain't shit
Bitches ain't shit

Bitches ain't shit but hoes and tricks
Lick on deez nutz and suck the dick
lets get the fuck out after you're done
And I hops in my ride to make a quick run...
I used to know a bitch named Eric Wright
We used to roll around and fuck the hoes at night
Tight than a mutharfucka with the gangsta beats
And we was ballin' on the muthafuckin' Compton streets
Peep, that shit got deep and it was on
Number 1 song after number 1 song
Long as my muthafuckin' pockets was fat
I didn't give a fuck where the bitch was at
But she was hangin' with a white bitch doin' the shit she do
Suckin' on his dick just to get a buck or 2
And the ends she got didn't mean nothin'
Now she's suing cuz the shit she be doin' ain't shit

Bitches can't hang with the streets, she found herself short
So now she's takin' me to court
It's real conversation for your ass

I once had a bitch named Mandy May
Used to be up in them guts like everyday
The pussy was the bomb, had a nigga on sprung
I was in love like a muthafucka lickin' the protung
The homies used to tell me that she wasn't no good
But I'm the maniac in black, Mr. Snoop Eastwood
So I figure niggaz wouldn't trip with mine
Guess what? Got gaffled by one time

I'm back to the muthafuckin' county jail
6 months on my chest, now it's time to bail
I get's released on a hot sunny day
My nigga D.O.C. and my homey Dr Dre
Scooped in a coupe, Snoop we got news
Your girl was trickin' while you was draped in your county blues
I ain't been out a second
And already gotta do some muthafuckin chin checkin

Move up the block as we groove down the block
See my girl's house, Dre, pass the glock
Kick in the do', I look on the flo'
It's my little cousin Daz and he's fuckin' my hoe, yo
I uncocked my shit...I'm heart-broke but I'm still loc'ed

Man, fuck that bitch!

Bitches ain't shit but hoes and tricks
Lick on deez nutz and suck the dick
Get's the fuck out after you're done
And I hops in my ride to make a quick run...
I used to know a bitch named Eric Wright
We used to roll around and fuck the hoes at night
Tighter than a mutharfucka with the gangsta beats
And we was ballin' on the muthafuckin' Compton streets
Peep, the shit got deep and it was on
Number one song after number one song
Long as my muthafuckin' pockets was fat
I didn't give a fuck where the bitch was at
But she was hangin' with a white bitch doin' the shit she do
Suckin' on his dick just to get a buck or two
And the ends she got didn't mean nothin'
Now she's suing cuz the shit she be doin' ain't shit

Bitches can't hang with the streets, she found herself short
So now she's takin' me to court
It's real conversation for your ass

Bitches can't hang with the streets
Bitches can't hang with the streets
Bitches can't hang with the streets
Bitches can't hang with the streets

드라마로부터 비평하기

드라마를 비평하면서 머리 속에서 계속 맴도는 하나의 화두가 있다면, 이렇게 담론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장르를 대함에 있어서, 적어도 나는 드라마를 비평하지 말고 드라마로부터 무언가를 논할 수 있는 경지를 추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이 차이가 너무도 명백하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서는 더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반면 이해하지 못하면서 솔직한 사람들은 그게 대체 뭐냐고 물어본 다음 피식 하고 웃어넘길 테고, 마지막으로, 알건 모르건 그럴듯한 문구가 나오면 자신이 원래부터 그 입장을 취하고 있었던 듯이 행세하는 자들은, 내게 설득의 대상이 아니다. 이 일로 돈을 벌고 있으니 대중성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것이 천박한 시선을 통해 작품들을 힐끗 깔아보는 것과 거리가 있다는 점을 늘 상기하고 있는 한, 이 분야에 있어서 드라마는 비평의 대상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정성일의 영화평에서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보는 게 바로 그것이다. 그 영화광은 결국 영화로부터 뛰쳐나가, 자신의 독자들이 가위눌려있는 80년대의 거리 속으로 달려간다. 나는 그의 문장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가, 본의건 본의가 아니건, 지향하고 있는 바에 공감한다.

2007-05-08

Alabama 3 - Woke Up This Morning



You woke up this morning
Got yourself a gun,
Mama always said you'd be
The Chosen One.

She said: You're one in a million
You've got to burn to shine,
But you were born under a bad sign,
With a blue moon in your eyes.

You woke up this morning
All the love has gone,
Your Papa never told you
About right and wrong.

But you're looking good, baby,
I believe you're feeling fine, (shame about it),
Born under a bad sign
With a blue moon in your eyes.

You woke up this morning
The world turned upside down,
Thing's ain't been the same
Since the Blues walked into town.

But you're one in a million
You've got that shotgun shine.
Born under a bad sign,
With a blue moon in your eyes.

When you woke up this morning everything you had was
gone. By half past ten your head was going ding-dong.
Ringing like a bell from your head down to your toes,
like a voice telling you there was something you should
know. Last night you were flying but today you're so low
- ain't it times like these that make you wonder if
you'll ever know the meaning of things as they appear to
the others; wives, mothers, fathers, sisters and
brothers. Don't you wish you didn't function, wish you
didn't think beyond the next paycheck and the next little
drink' Well you do so make up your mind to go on, 'cos
when you woke up this morning everything you had was gone.

When you woke up this morning,
When you woke up this morning,
When you woke up this morning,
Mama said you'd be the Chosen One.

When you woke up this morning,
When you woke up this morning,
When you woke up this morning,
You got yourself a gun.

2007-05-07

국가주의에 기생하는 민족주의

두 개념의 정의를 명확히 내리지 않고 그저 어감에 의존하여 본다면, 현대 사회에서 작동하고 있는 민족주의는 국가주의와 결탁할 수는 있어도 그것과 본질적인 요소를 공유하지는 않는다. 애초부터 '민족국가'에서 출발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혹은 한민족들은 그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지만,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온전히 포개지는 개념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서 '한국적 특수성'의 일부에 속한다.

가령, 많은 한국인들이 대한민국과 비교하곤 하는 이탈리아의 경우를 보자. 그들의 민족주의는 국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군대가 전설적인 '막장'이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제노바 사람이거나 나폴리 사람이거나 까포네 집안 사람이거나 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었을 뿐, 가리발디가 억지로 통일시켜놓고 무솔리니가 인수한 파시즘 국가에 확고한 정체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항복하여 내 한 몸 건사하는 것이 이탈리아 군인들의 제1목표였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각자 자신의 고장에서 벌어진 소규모 항전에서는 그야말로 득달같은 저항을 벌였고, 그리하여 이탈리아 마피아들은 그 의병대들을 제압하기 위한 무기와 물자를 미국으로부터 지원받기에 이른다.

한국의 경우 민족주의는 국가주의로부터 독립되어서는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없는, 미약하고도 시시한 담론 중 하나이다. 그것이 시시한 담론인 이유는, 담론의 기저 차원으로서 마땅히 가지고 있어야 할 토대를 전혀 보유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민족주의가 자신의 고장에 대한 향수와 거기서 먹던 음식, 마시던 와인, 축구팀의 드리블, 울려퍼지던 성당의 종소리 따위에 근거하고 있다면, 한국의 민족주의는 '우리'가 이루어야 할 '더 큰 하나의 민족'이라는 이상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한민족에게는 공통의 생활 기반이 없을 뿐 아니라 그들을 각각의 지방 사람들로 나누어줄 개별적인 삶의 토대도 없기 때문에, 결국 민족주의 담론은 기껏해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며 '더 큰 민족'에 대한 막연하고도 추상적인 이상향을 제시하는 선에서 멈출 수밖에 없다.

조승희 사건에서 엿보였던 한국인들의 민족주의가 미국의 심기를 거칠게 긁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거기에 있다. 한국인들은 자신의 민족주의를 민족적인 차원에서 표현하는 방법을 모른다. 조씨 문중에서, 혹은 한인교포회 차원에서 'I'm sorry'했으면 그만일 것을, 한국의 민족주의는 그 시점에서 필연적으로 국가를 호출하고야 말았다.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그 외의 방식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헌데 한 국가가 이미 이민을 가버린 국민의 범죄에 대해 지나친 미안함을 표시하는 것은, 피해가 발생한 국가의 사법권과 경찰권을, 미안하다는 핑계로 슬슬 침해하겠다는 의사 표시로 해석될 우려가 있다. 가령 조승희가 살아있었다면 한국 정부는 어떻게 했을 것인가? 만약, 당시의 '국민 정서'대로 그를 한국에 넘겨서 우리가 사형시키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었다면, 이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내정 간섭이 되어버린다. 범죄인을 인도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사례에서는 그가 한국인의 혈통을 지니고 있다는 것 외에는 전혀 근거가 없었다. 한국 정부는, 단지 그들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미국 정부에 부당한 요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족주의보다는 국가주의에 더 친화성을 느끼는 나로서는, 한국 민족주의의 이 부실함에 대해서 그다지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민족의식의 부재가 국가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기능하는가 하면 그것 또한 절대 그렇지 않다.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공법인으로서 국가는 어느 정도 적절한 무력과 집행력을 가지고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국가주의에 스며든 이 찐득한 민족주의의 점액은 대한민국이 '국민의 권리를 수호하는 기계'로서 작동하는 과정을 철저하게 방해한다. 하지만 내가 오래도록 붙들어온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이 민족적 뿌리의 실종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 김수영도 그랬었지만, '전통이라면 아무리 더러운 것이라도 좋다'고 하기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유착이 낳는 폐해가 너무도 심각한 것 같다.1)


1) 사실 김수영이 말한 맥락이야말로 내가 긍정적이라고 묘사한 '민족적 전통'의 부활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지만, 지금은 박정희의 폭력적 근대화를 겪은 다음이기 때문에 그의 절규의 의미가 심하게 왜곡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넘어가야겠다.

2007-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