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8-24

개와 늑대의 시간 12화 단상

* 스포일러 있음


날이 갈수록 마오와 자신을 동일시 할 수밖에 없는 여건으로 빨려들어가던 이수현은, 정작 그 마오와 완전히 같은 행동을 하게 되는 순간 케이라는 정체성으로부터 튕겨져 나오게 된다. 그의 정체성의 물밑 부분들은 마오의 총구를 손으로 가로막던 그 순간의 트라우마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리 이수현이 어미결정과도 같은 과정을 통해 거의 완벽한 청방의 일원으로 거듭났다고 해도, 그가 마오라는 새로운 아버지의 후계자가 되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총구를 가로막은 서지우에게 이수현이 정서적 친화성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도 적어둘만한 일이다. 희생자인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이 아니라, 그런 종류의 감정은 양아버지가 살해되는 순간 이미 이수현의 척수를 훑고 지나간 바 있고, 다만 어머니를 해치려는 총구 앞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자신을, 거울에 비친 듯 마주하게 됨으로 인해 그는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아주 명확하게 확인한다.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보면, 기억을 잃기 전 마오를 향하고 있던 이수현의 끝없는 증오심이 단지 복수를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물론 시간 순서대로 사건과 감정을 훑으면 방금 내가 쓴 문장은 진실이 아니다. 하지만 이수현의 입장에서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이 모든 일들을 재구성한다면, '닿을 수 없는 제2의 정체성'이라는 식으로 축약될 수 있는, 단순한 복수심만으로 해소될 수 없는 심리적 문제가 또아리를 맺는다. 그런 이유로, 기억을 찾은 수현은 쉽게 마오를 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갑수본좌 꽃무늬 넥타이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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