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26

노동가치론의 가장 약한 고리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을 통해 어떤 철학적 영감을 얻는 일이 옳거나 그르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정당한 철학적 논변이라면 마땅히 합당한 이론의 지지를 받고 있어야 한다. 고대 그리스의, 혹은 동양철학의 4원소론은 현대 물리학의 원자론보다 어떤 면에서 더욱 아름답고 시적인 함의를 풍부하게 지니고 있으며 철학적으로 잘 다듬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기반하고 있는 물리학적 지식이 옳지 않기 때문에 합당한 철학적 논변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에 대한 재해석에 기반하여 논지를 펼치고 있는 현대 철학자들은 일종의 양자택일을 해야만 한다. 그 논변이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에 기반을 두고 있는 한, 자신의 철학이 현실과는 큰 연관을 맺지 않는 지적 유희임을 실토하거나, 이미 명백하게 틀린 것으로 판명된 노동가치론을 끝까지 옳다고 우기거나.

장차 인생을 어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며 지난 노트를 계속 뒤적이고 있는데, 이런 부분이 나와서 그것을 다시 정리하여 블로그에 공개한다. 당시에는 책의 서지사항을 정확히 밝혀놓는 법을 익히지도 않았는데, 추정컨대 모든 출처는 비봉출판사에서 나온 김수행 번역 [자본론 1上]일 것이다. 2003년 5월 무렵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해 6월부터 날짜와 시간을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상품의 소유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그가 자기의 상품가치에 가격이라는 형태, 곧 상상적인 금 형태를 부여하더라도 아직은 자신의 상품을 금으로 전환시킨 것은 결코 아니며, 또 그가 몇백만원어치의 상품가치를 금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도 현실적인 금은 한 조각도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화폐는 가치척도의 기능에 있어서는 단지 상상적인, 곧 관념적인 화폐로서의 역할만을 수행한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엉터리 화폐이론이 등장하게 되었다. 단지 상상적일 뿐인 화폐가 가치척도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할지라도 가격은 전적으로 실제의 화폐재료에 달려있다."[p.120]

여기서 말하는 '실제의 화폐재료'란 다름아닌 금이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집필하던 당시 세계 경제는 금태환제를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런데 노동가치론에 따르면 모든 상품의 가치는 그것에 투여된 노동에 비례하므로, "실제의 화폐재료"는 그 어떤 경우에도 마땅히 존재해야만 하며 그것은 그 화폐와 교환되는 상품의 가치와 동일하거나 어느 정도 상응하는 노동력을 포함하고 있어야만 한다. 마르크스는 말한다. "금이 가치척도로서 봉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금 그 자체가 노동생산물이며 따라서 가치가 잠재적으로 가변적이기 때문이다."[페이지 미상]

불환화폐, 즉 금이나 은으로 교환해주지 않고 전적으로 정부의 신용에 의지하여 발행되고 있는 현재의 화폐 체계 하에서,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은 급격하게 발 디딜 곳을 잃어버린다. 상품들 사이의 가치척도로 기능하는 화폐는, 마르크스에 따르면, "그 자체가 노동생산물이"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화폐를 찍어내는 기능을 노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단지 종이에 그림을 찍어내는 과정과는 다르다. 만원짜리 지폐를 돈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조폐공사 직원들의 노동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의 지불보증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폐공사 직원들의 노동력만큼은 하루에 수십억원 어치의 가치를 지니게 되노라고 우겨야만 한다. 혹은 "만약 12원으로 표현되는 금광을 생산하는데 24노동시간, 즉 2노동일이 걸린다면, 이 면사에는 2노동일이 대상회되어있는 셈이 된다. [p.239]"는 구체적인 예시를 포기하거나.


노동가치론이 화폐의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벌이는 이러한 이론적 곡예는, 철학적으로 볼 때, 물질과 관념을 일대일로 대응시켜야만 한다는 이분법적 집착의 산물이다. 마르크스는 구체적인 노동이 투여되지 않은 채 가치를 지니고 있는 그 무언가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상품의 가격으로 지급되는 화폐를 볼 때마다 그 뒤에 감추어져 있는 금광 노동자들의 피와 땀과 눈물을 읽어내야만 했다. 이게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을 신용카드빚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인들은 직감적으로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에 대한 '철학적 재해석'이 끊이지 않는 것은, 그가 지금까지 유효한 '경제학자'는 아닐지라도 한 사람의 '저자'로서만큼은 생명력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을 뿐이다.

2007-09-24

아마도 2003년 여름방학에

부천시립도서관에서 찾아 읽은 책의 인용구일 듯. 오래된 노트를 뒤지다가 발견. 오래도록 해결하지 못하고 있던 문제에 대한 하나의 대답을 찾았다는 느낌이었다.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지칭되는 현대 철학에 대한 나의 인식은 아직도 이와 같다. 연필로 쓴 후 뭉개진 부분이 많아서 모든 단어가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음. 현대철학에 대한 이러한 인식에 대한 적절한 반박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소개해주시길.


선험적 주체성이 붕괴되고 난 이후 분석은 세계들을 자신들로부터 방출하고 동시에 세계들을 흡수해버리는 익명적 언어사건을 향한다. 이 언어사건은 모든 존재적 역사와 모든 세계 내적 실천에 선행하며, 구멍이 많아진 자아, 저자, 그리고 그의 작품의 경계들을 통해 모든 것을 관통한다. 그러한 분석은 "자아의 해체를 가져오고, 잃어버린 수많은 사건들의 공허한 종합의 장소와 자리들에 다시 몰려오게 만든다." 푸코와 데리다, 그리고 후기구조주의자들에게는 다음의 사실이 확정된 것으로 통용된다. "철학적 주체성의 해체, 그리고 이 주체성을 무력화시키고 또 공허한 공간에서 그것을 다양화시키는 언어 속에서 철학적 주체성의 분산은 아마 동시대적 사유의 기초적 구조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구조주의를 통과하면서 이러한 사유운동은 초월적 주체성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어서, 언어적 의사소통 자체에 내재하는 세계연관, 화자관점, 타당성주장들의 체계마저 우리의 사야에서 함께 사라진다. 그러나 이러한 연관체계 없이는 현실 차원들의 구별, 허구와 현실, 일상실천과 비일상적 경험, 이에 상응하는 텍스트 장소들과 장르들의 구별은 불가능해지고 또 의미를 상실한다. 존재의 집은 그 자체, 방향을 잃은 언어 강물들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급진적 맥락주의는 일종의 액화된 언어, 즉 오직 흐름의 양태속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모든 세계 내부적 운동들이 이 흐름으로부터 비로소 생겨나는 그런 언어를 고려한다. 이러한 주장은 철학적 토론에서 단지 약한 지주들을 발견할 뿐이다. 그것은 주로 심미적 경험들에, 더욱 자세하게 말하면 문학과 문학이론의 영역으로부터 나온 증거들에 의지한다. [p.268]

[탈형이상학적 사유](하버마스, 1998) 중.

2007-09-21

또 다른 한 권의 책으로

본의 아니게 또 밤을 새버렸는데, 어제, 나는 잠을 못 잤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어제, 저녁 먹고 나눈 대화의 내용이 떠올랐다. 그 발상의 큰 부분은 바로 이 문장에 빚지고 있다.

"But if any one wants my opinions about the actual nature of the authority, Mr. G.S.Street has only to throw me another challenge, and I will write him another book."
"그러나 권위의 실제적인 성격에 관한 나의 견해를 알고자 한다면, G. S. 스트리트 씨처럼 나에게 또 다른 도전장을 던지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나는 그에게 또 다른 한 권의 책으로 대답해 줄 것이다."

- G. K. Chesterton, [Orthodoxy], 1908.

2007-09-20

두 권의 책

[88만원 세대],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 - 우석훈 박권일 저

[88만원 세대]와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는 하나의 큰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는 책이다. 전자가 취직을 앞둔 20대를 겨냥한 것이라면, 후자는 조직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자신이 속한 바로 그 조직을 이해하기 위한 개념적 틀거리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88만원 세대]를)단순히 세대론으로 읽는 것은 잘못 읽는 것이다"라는 한윤형의 말은 타당하지만, 그보다는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를 3~40대를 위한 세대론으로 읽어내는 것이 어쩌면 더 큰 실천적 함의를 지닐 수 있는 독법일 수도 있다. 저자는 조직론이라는 경제학적 관점에 근거하여 한국의 기업, 공무원 사회, 조폭 및 다단계 등의 조직을 해부하느라 정작 그것을 구성하는 이들의 심리에는 그만큼 접근하지 못한 감이 있다.

그 구성적 불비는 이 시리즈가 잠재하고 있던 파괴력을 끝까지 드러내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더 큰 아쉬움을 남긴다. [88만원 세대]는 기본적으로 '세대 내 경쟁'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으로부터 출발하여, 그것이 과외를 자유롭게 받으며 자란 20대 초중반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그들의 생활 속 사례를 통해 소상히 짚어냄으로써 근래 보기 드문 공감을 얻어내고 있다(고 믿고 싶다). 도대체 왜 김포공항 롯데리아에는 '스마일 걸'이 서 있는 것일까? 할인매장 주차장에서 광대같은 옷을 입고 팔다리를 휘젓는 청년들은 대체 얼마를 받고 저 짓을 하는 것일까? 일상적인 풍경과 경제적 분석이 맞물리면서, 20대의 현재에 대한 분노는 여타 '꼰대'들이 흔히 싸지르는 감상적인 그것의 한계를 벗어던지고, 대체 이 현실 속에서 정책적으로 실천 가능한 해답이 무엇이 있느냐는 차원으로 넘어간다. 저자는 바로 그런 작은 대안들을 '짱돌'이라 지칭했다('운동권 선배'님들은 저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뛰겠지만, [88만원 세대]는 그렇게 단순한 책이아니다).

공저자로 등록되어 있는 박권일씨가 [88만원 세대]에 첨가한 후기는, 책 전체의 맥락을 오직 한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인 것처럼 몰아간다는 점에서, 또 다소 적절하지 않은 비유를 통해 본래의 논지가 가지고 있던 분석의 살벌함을 오히려 둔화시킨다는 점에서 그리 합당하지 않다. 하지만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가 지나치게 해석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 책을 읽을 잠재적 독자, 즉 '386 세대'라 불리우는 그들에게 '야근으로 점철된 너희들의 삶이 사실 이런 거다'라는 찬물 한 바가지를 퍼붓지 못한 것이 아쉬운 점이라고 한다면, [88만원 세대]의 '선동 과잉'은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일이다.

두 권의 책의 내용에 대한 이야기는 블로그에 짧게 포스트로 올릴 것이 아닌 듯하다. 다만 계속 느껴지는 것은, 훌륭한 잡지 편집장만큼이나 탁월하고 식견 있는 단행본 편집자의 존재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각각의 출판사에 대한 폄하나 품평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우석훈씨의 블로그에 올라오는 엄청난 양의 포스트에서 느껴지는 정보 과잉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책으로 정돈되고 나니 양질의 컨텐츠로 전환되어 있는 이 변화가 놀랍다는 뜻이다. 스타인벡이 자신의 평생 친구이자 편집자였던 코비시(Covici-Friede)에게 보낸 편지들(정확하 말하자면 그걸 묶어서 편집한 단행본)을 읽고 나니 그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한국에 갈리마르가 등장하기 위해서는, 빼어난 필자만큼이나 그들의 고삐를 틀어쥘 수 있는 편집자가 필요하다. 지적인 교류는 저자와 대중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기에 앞서, 우선 글쓰는 이와 글을 책으로 만드는 이들 사이에서 가열차게 벌어져야 한다. 대중을 고려하는 것이 그 다음의 문제가 되도록 하는 것은 한국의 지적 현실을 발전시키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덧말. 책이 마음에 들면 전작을 훑는 악습이 있는 나는, 도서관에 들려서 번역서와 정부보고서 따위를 제외한 우석훈의 저서를 전부 빌려왔다. 그에 대한 평가는 나중에.

2007-09-14

로스쿨 대담

BINA 님의 말:
너 지원림 아냐?

드라마 Q&A 제보하세요 님의 말:
알지

드라마 Q&A 제보하세요 님의 말:
개인적으로야 모르지만

BINA 님의 말:
그 지원림

BINA 님의 말:
우리학교 왔다

드라마 Q&A 제보하세요 님의 말:
우와

드라마 Q&A 제보하세요 님의 말:
고대 교수로 온 거야?

BINA 님의 말:


드라마 Q&A 제보하세요 님의 말:
그냥 강의를 좀 한다 이런 게 아니고?

BINA 님의 말:
전에 친구가 그렇다고 해서 설마~ 했더니

BINA 님의 말:
진짜 학교에 이름이 있다

드라마 Q&A 제보하세요 님의 말:
서울대 법대 가려다 성대 법대 간 전직 의대생

드라마 Q&A 제보하세요 님의 말:
실망스럽겠군

BINA 님의 말:
넌 지원림이 성대인거 알았구나

BINA 님의 말:
난 연대교수인줄 알았어

드라마 Q&A 제보하세요 님의 말:
그거야 지원림 책을 괜히 사서

드라마 Q&A 제보하세요 님의 말:
책 내용이 아닌 책 날개와

드라마 Q&A 제보하세요 님의 말:
저자 소개

BINA 님의 말:
ㅋㅋㅋ

드라마 Q&A 제보하세요 님의 말:
머릿말 따위를 열심히 읽었기 때문이지

BINA 님의 말:
학교들이 아주 미쳤나봐

드라마 Q&A 제보하세요 님의 말:
어떤 면에서?

드라마 Q&A 제보하세요 님의 말:
어떤 학교가 더 미쳤길래?

BINA 님의 말:
서울대는 2학기 임용에서 타 대학 교수를 8명 영입했다. 경희대.서강대.연세대.이화여대.한양대.홍익대 등 모두 서울 소재 중상위권 대학에서 영입했다. 연세대도 해외 로스쿨을 나온 숙명여대.아주대.중앙대 교수를 영입했다.

BINA 님의 말:
뭐 이런 거지

BINA 님의 말:
진짜 지방대는 교수들이 다 사라져서

드라마 Q&A 제보하세요 님의 말:
그런 거구나

BINA 님의 말:
개강하고 휴강하다 강사들이 와서 수업하고 있대

드라마 Q&A 제보하세요 님의 말:
크아

BINA 님의 말:
우리가 노동법 강사 뺏긴건 일도 아닌 거지

드라마 Q&A 제보하세요 님의 말:
로스쿨을 앞두고

드라마 Q&A 제보하세요 님의 말:
미쳐 돌아가는 법대들

BINA 님의 말:
로스쿨 나빠요

드라마 Q&A 제보하세요 님의 말:
로스쿨 나빠요

드라마 Q&A 제보하세요 님의 말:
장학금도 안 줘요

드라마 Q&A 제보하세요 님의 말:
마구 때려요

BINA 님의 말:
ㅋㅋㅋ

2007-09-13

복학기

학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던 2001년에서 2004년 초까지, 나는 '대학생'들의 반들반들한 얼굴을 바라보며, 과연 이들을 어떻게 '계몽'할 수 있을지를 수도 없이 고민했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미래에 대한 구체적이지 않은 근심에 휩싸여, 겁을 집어먹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그 모습을 스스로 귀엽게 묘사하는 이들이 바로 내가 대학에서 마주치는 또래들이었다. '마린블루스' 같은 웹만화 보지 말고 인간의 내면을 진지하게 다루는 출판만화를 읽으라고, 한 작가가 마음에 들면 거기서 멈추지 말고 도서관에 가서 그 사람의 다른 책을 다 읽으라고 아무리 다그쳐도 소용이 없었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은 문화적 결핍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그 이상 탐구하려 하지도 않았다. 지방 출신들은 자신들의 촌스러움을, 1학년 1학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소득의 문제라고 도매금으로 넘겨버린 후, 2학기에 술을 퍼마시며 뒹굴다가 2학년이 되는 즉시 일찌감치 고시 공부를 시작하며 주변과의 연락을 끊었다. 자신만은 남들과 다르다는 듯 돌아다니던 운동권 끝물들의 얼굴에는 겸양이 잘 안 먹은 화장품처럼 덧칠되어 있었는데, 나는 그들이 입에 달고 사는 '사회과학'이라는 어휘를 견딜 수 없었다. '야, 그건 사회과학 서적이 아니야. 그저 그런 대중교양서일 뿐이지.' 그런 지점까지 알아버린 자신에 대한 우쭐한 기분은, 그래봐야 그걸 써먹을 곳도 없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으로 늘 돌아오곤 했다. 도서관 책꽂이 모서리에 머리를 들이받아 죽고 싶었다. 두 개의 서가가 양쪽에서 밀려와 나를 압살하여 주기를 바랬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기회가 생기면 말 그대로 죽어라고 술을 마셨다.

오래 방황했고 많은 일을 겪은 후, 졸업을 위해 학교에 돌아왔다. 드라마틱에 출근하여 에디터로 활동하면서, 또 포린 폴리시 한국어판을 인계하여 찍어내는 과정을 총괄하면서, 나는 매체를 통한 세계와의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을 느끼고 다소 달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가장 효율적인, 사실상 유일한 방법은 그 내용을 담은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줏어들은 후, 하겠다는 공부는 안 하고 잡지 일을 하는 자신을 그렇게 위무했다. 지금 나는 세상과,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을 배우고 있는 거다-게다가 돈도 벌면서. 넉달간 일을 하면서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그것을 먹는 걸로 풀다보니 몸이 많이 불어났지만, 세계와의 접점을 찾은 후 내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안도감이 늘어가는 허리 사이즈를 압도하고 있었다. 다시 돌아온 대학의 강의실에서, 반들반들한 얼굴을 하고 돌아다니는 대학생들의 손에 대체 무슨 매체를 쥐어줄 수 있을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하기 전까지는 분명히 그랬다. 말하자면 지금 나는 절망의 기시감을 느끼는 중이다.

법학관 신관 102호에 앉아 연필 한 자루를 들고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이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드라마틱이 누구에게 얼마나 팔리고 있는지, FP의 광고 수주가 얼마나 용이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이런 구체적인 자료와 함께 디테일한 절망을 느끼지 않는다면 나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진다. 졸업을 고작 한 학기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큰 위안으로 다가온다. 이들에게 이미 나는 떠난 몸이다. 부대끼며 슬퍼하는 대신, 하나의 유령이 되어 부유하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닐 터이다. 수업 종료를 3분 앞둔 시점, 다들 술렁이고 있다. (07.09.13. 15:12)

2007-09-09

미국의 번영을 기원하는 찬가로서의 디 워

"그는 '디 워'가 이렇다 할 만한 인과관계나 배경에 대한 설명없이 조선의 이무기와 여의주가 미국에 출현하고 마침내 착한 이무기가 그 여의주를 얻어 승천하는 것으로 설정된 것은 "미국의 국운이 더욱 번성할 것을 기원하는 찬가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기사는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음. 내가 이 소식을 접한 곳은 여기

불행하게도 학교 도서관에 계간 종합문예지 '너머'가 비치되어 있지 않아서 내일 당장 원문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기사에 소개된 내용만을 놓고 볼 때, 이는 김정란 교수의 여성주의적 해석에 이은 또 하나의 인문학적 쾌거라 하지 않을 수 없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