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24

아마도 2003년 여름방학에

부천시립도서관에서 찾아 읽은 책의 인용구일 듯. 오래된 노트를 뒤지다가 발견. 오래도록 해결하지 못하고 있던 문제에 대한 하나의 대답을 찾았다는 느낌이었다.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지칭되는 현대 철학에 대한 나의 인식은 아직도 이와 같다. 연필로 쓴 후 뭉개진 부분이 많아서 모든 단어가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음. 현대철학에 대한 이러한 인식에 대한 적절한 반박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소개해주시길.


선험적 주체성이 붕괴되고 난 이후 분석은 세계들을 자신들로부터 방출하고 동시에 세계들을 흡수해버리는 익명적 언어사건을 향한다. 이 언어사건은 모든 존재적 역사와 모든 세계 내적 실천에 선행하며, 구멍이 많아진 자아, 저자, 그리고 그의 작품의 경계들을 통해 모든 것을 관통한다. 그러한 분석은 "자아의 해체를 가져오고, 잃어버린 수많은 사건들의 공허한 종합의 장소와 자리들에 다시 몰려오게 만든다." 푸코와 데리다, 그리고 후기구조주의자들에게는 다음의 사실이 확정된 것으로 통용된다. "철학적 주체성의 해체, 그리고 이 주체성을 무력화시키고 또 공허한 공간에서 그것을 다양화시키는 언어 속에서 철학적 주체성의 분산은 아마 동시대적 사유의 기초적 구조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구조주의를 통과하면서 이러한 사유운동은 초월적 주체성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어서, 언어적 의사소통 자체에 내재하는 세계연관, 화자관점, 타당성주장들의 체계마저 우리의 사야에서 함께 사라진다. 그러나 이러한 연관체계 없이는 현실 차원들의 구별, 허구와 현실, 일상실천과 비일상적 경험, 이에 상응하는 텍스트 장소들과 장르들의 구별은 불가능해지고 또 의미를 상실한다. 존재의 집은 그 자체, 방향을 잃은 언어 강물들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급진적 맥락주의는 일종의 액화된 언어, 즉 오직 흐름의 양태속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모든 세계 내부적 운동들이 이 흐름으로부터 비로소 생겨나는 그런 언어를 고려한다. 이러한 주장은 철학적 토론에서 단지 약한 지주들을 발견할 뿐이다. 그것은 주로 심미적 경험들에, 더욱 자세하게 말하면 문학과 문학이론의 영역으로부터 나온 증거들에 의지한다. [p.268]

[탈형이상학적 사유](하버마스, 1998)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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