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20

두 권의 책

[88만원 세대],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 - 우석훈 박권일 저

[88만원 세대]와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는 하나의 큰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는 책이다. 전자가 취직을 앞둔 20대를 겨냥한 것이라면, 후자는 조직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자신이 속한 바로 그 조직을 이해하기 위한 개념적 틀거리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88만원 세대]를)단순히 세대론으로 읽는 것은 잘못 읽는 것이다"라는 한윤형의 말은 타당하지만, 그보다는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를 3~40대를 위한 세대론으로 읽어내는 것이 어쩌면 더 큰 실천적 함의를 지닐 수 있는 독법일 수도 있다. 저자는 조직론이라는 경제학적 관점에 근거하여 한국의 기업, 공무원 사회, 조폭 및 다단계 등의 조직을 해부하느라 정작 그것을 구성하는 이들의 심리에는 그만큼 접근하지 못한 감이 있다.

그 구성적 불비는 이 시리즈가 잠재하고 있던 파괴력을 끝까지 드러내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더 큰 아쉬움을 남긴다. [88만원 세대]는 기본적으로 '세대 내 경쟁'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으로부터 출발하여, 그것이 과외를 자유롭게 받으며 자란 20대 초중반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그들의 생활 속 사례를 통해 소상히 짚어냄으로써 근래 보기 드문 공감을 얻어내고 있다(고 믿고 싶다). 도대체 왜 김포공항 롯데리아에는 '스마일 걸'이 서 있는 것일까? 할인매장 주차장에서 광대같은 옷을 입고 팔다리를 휘젓는 청년들은 대체 얼마를 받고 저 짓을 하는 것일까? 일상적인 풍경과 경제적 분석이 맞물리면서, 20대의 현재에 대한 분노는 여타 '꼰대'들이 흔히 싸지르는 감상적인 그것의 한계를 벗어던지고, 대체 이 현실 속에서 정책적으로 실천 가능한 해답이 무엇이 있느냐는 차원으로 넘어간다. 저자는 바로 그런 작은 대안들을 '짱돌'이라 지칭했다('운동권 선배'님들은 저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뛰겠지만, [88만원 세대]는 그렇게 단순한 책이아니다).

공저자로 등록되어 있는 박권일씨가 [88만원 세대]에 첨가한 후기는, 책 전체의 맥락을 오직 한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인 것처럼 몰아간다는 점에서, 또 다소 적절하지 않은 비유를 통해 본래의 논지가 가지고 있던 분석의 살벌함을 오히려 둔화시킨다는 점에서 그리 합당하지 않다. 하지만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가 지나치게 해석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 책을 읽을 잠재적 독자, 즉 '386 세대'라 불리우는 그들에게 '야근으로 점철된 너희들의 삶이 사실 이런 거다'라는 찬물 한 바가지를 퍼붓지 못한 것이 아쉬운 점이라고 한다면, [88만원 세대]의 '선동 과잉'은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일이다.

두 권의 책의 내용에 대한 이야기는 블로그에 짧게 포스트로 올릴 것이 아닌 듯하다. 다만 계속 느껴지는 것은, 훌륭한 잡지 편집장만큼이나 탁월하고 식견 있는 단행본 편집자의 존재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각각의 출판사에 대한 폄하나 품평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우석훈씨의 블로그에 올라오는 엄청난 양의 포스트에서 느껴지는 정보 과잉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책으로 정돈되고 나니 양질의 컨텐츠로 전환되어 있는 이 변화가 놀랍다는 뜻이다. 스타인벡이 자신의 평생 친구이자 편집자였던 코비시(Covici-Friede)에게 보낸 편지들(정확하 말하자면 그걸 묶어서 편집한 단행본)을 읽고 나니 그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한국에 갈리마르가 등장하기 위해서는, 빼어난 필자만큼이나 그들의 고삐를 틀어쥘 수 있는 편집자가 필요하다. 지적인 교류는 저자와 대중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기에 앞서, 우선 글쓰는 이와 글을 책으로 만드는 이들 사이에서 가열차게 벌어져야 한다. 대중을 고려하는 것이 그 다음의 문제가 되도록 하는 것은 한국의 지적 현실을 발전시키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덧말. 책이 마음에 들면 전작을 훑는 악습이 있는 나는, 도서관에 들려서 번역서와 정부보고서 따위를 제외한 우석훈의 저서를 전부 빌려왔다. 그에 대한 평가는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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