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09

문국현 대통령?

고등학교 교실에 이런 학생이 있다고 치자. 수능을 50일 앞둔 시점에, 우선 20일 동안 시중에 출시된 모든 수학 문제집을 풀어서 기본기를 다진 다음, 20일은 오전에 영어 오후에 국어를 공부하며 언어 감각을 매만지고, 나머지 열흘간 암기과목에 총력을 기울인다면 서울대에 입학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그런 학생이 있다고 쳐보자. 여기서 그가 펜을 손에 잡아본지 고작 석달 쯤 된, 초등학교 정도의 학력을 지니고 있는 그런 수재라고 한다면 이 비유는 아마도 더욱 정확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학생이 뭔가 해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는 이들은 그가 '고등학교에서 비록 공부는 하지 않았지만 책상에서 열심히 졸았다'라는 식으로 그의 학습 부진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덧붙인다면, 이제 문국현 지지자들이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믿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비유가 완성된다.

설령 내가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그 어떤 이유에 의하여 문국현이 대통령이 됐다고 쳐보자. 다짜고짜 출마하여 당을 만들면서 선거에 나온 인물이, 성공적인 기업인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사회가 과연 정상적인 곳일까? 문국현의 출마와 그를 둘러싼 바람몰이는 그 자체가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반영하고 있다. 그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는 것과 거의 같거나 더욱 나쁜 현실이 한국의 기저에 깔려 있음을 방증하는 사건일 수밖에 없다.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뽑아놓고도, 자신들이 얼마나 잘못된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학습 효과가 국민들 사이에서 전혀 없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국현 지지자들은 5년 전 노무현이 단물을 다 빨아먹은 '희망'이라는 단어를 다시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유한킴벌리 사장으로서 그가 보여준 치적이 그나마 작은 희망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적지 않은 수의 상식적인 사람들은 일종의 정치적, 정신적 자위행위의 현장을 목격한다. 공교롭게도 유한킴벌리는 외로운 남성들의 생활 필수품, 두루마리 화장지를 만드는 회사이며, 그들의 제품은 전국 방방곳곳에 깔려 있다. 이게 다 문국현이 워낙 경영을 잘 해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덧말) 상당한 수의 문국현 지지자들은 구 열린우리당 경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행을 문국현 지지의 이유로 삼고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대항마'가 없다는 것. 하지만 이명박이라는 브라퀴가 여의주를 물기 전에 문국현이라는 선한 이무기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는 대선 시나리오는 아무리 거듭 살펴봐도 '디 워'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2000년 전부터 벌써 구리기로 정평이 난 희곡 작법이었다는 점을 참고 삼아 적어둔다.

댓글 2개:

  1. 그래 사람들은 우리때가-70년대말 80년대초- 혼란기였었다고 하지
    하지만 지금이 더 혼란스러워
    꿈꾸듯이 노무현을 선택했지만 그건 정말 한 여름밤의 꿈으로 끝나버리고 우리가 사무치게 벗어나길 원헸던 박정희는 지금도 우리주위를 맴돌고 있지
    그의 딸을보면 우리가 너무 서글퍼지고 박정희 만한키 비슷한 머리모양을한 이명박은 정말 마빡을 까고 싶을정도로 얄밉도다

    (글을 이렇게 써도되나요 글을 너무잘 쓰셔서 덧글쓰기 정말 민망하지만)
    another excuse: 우리 컴에 한글 스티커 없슴 그리고 자판 잘 외지못해요 아들놈이 지저분하다고 못붙이게 하거든요

    가끔와서 글읽는데 정말 좋아요 노래도...
    혹시 nick drake란 가수아세요
    제가 좋아하는 가수인데 그냉 알려드리고 싷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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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가능하면 경어체를 사용해 주시는 것이 많은 사람들 보기에 좋을 것 같군요. 리플에서 말씀하시는 내용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아드님 말씀대로 자판은 그냥 외우시는 편이 더 좋을 것 같군요. 닉 드레이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요. 아무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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