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23

찍을 사람이 없다고?

BBK 의혹의 사실 규명이 눈앞에 다가오고, 그에 따라 '대세'였던 이명박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과 맞물려, 민주노동당에 호의적인 입장을 지니고 있지만 권영길과 그의 주위를 둘러싼 특정 정파를 혐오하는 이들의 고뇌가 깊어지고 있다. 문국현을 포함한 '범여권' 후보들이 하나같이 선택지로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뿜어내기는커녕 비웃음의 대상 정도로 전락해버린 상황에서 민주노동당 후보가 권영길이라는 것은, 다소 오버스럽게 말하자면 역사의 비극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고민한다. 그냥 꾹 참고 권영길을 찍을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공표한 상태에서 기권을 할 것인가.

이 문제에서 내가 가장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찍을 사람이 없다는 식의 주장이 지니고 있는 고답성에 대한 것이다. 나의 주변 가까운 사람 중 하나가 민주노동당 경선 이후, 즉 심상정이 주사파의 조직표 2000장에 의해 결선투표에서 고배를 마시고 난 후 문국현 지지로 돌아서며 한 말이 바로 그와 같았다. 자신의 표를 권영길 그 버럭영감에게 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확실히 이번 경선 과정에서 권영길과 그 주변 정치 세력들이 보여준 모습은, 예상할 수 있는 바였지만 바로 그렇기에 보는 이를 속 터지게 했다. 그렇다. 솔직히 찍을 사람이 없긴 하다.

김대중이 4수 했다는 말로 자신의 노욕을 포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권영길과 이회창은 심지어 공통점을 지니기까지 한다. 이번 대선에 나와서는 안 되었을 후보가 둘 있다면 바로 그들인데, 그들은 전부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그릇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대중적인 지지를 얻기에는 너무도 극단적인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는 점마저도 흡사하다. 경제 일변도로만 흐르는 현 대선 정국에 일갈을 가했다는 점에서는 이회창의 정치적 감각을 칭찬해줄만 하지만, 햇볕정책의 번복을 당연히 포함하는 강경한 대북 정책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극우파이며 따라서 이 글에서 말하는 선택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이명박을 떨어뜨리기 위해 조갑제가 몸소 나서서 특종을 낚아왔다는 것만 봐도 정통 극우파들이 이회창에게 거는 기대가 얼마나 큰지를 이내 알 수 있는 것이다.

대선 시작하기도 전에 대통령이 되었다가 후보 등록일 이전에 탄핵당할 것만 같은 이명박은 애초에 '찍을 사람'으로서 고려 대상이 아닐 것이고, 갑자기 나타난 이회창에게 지지율 파먹히는 정동영이 가지고 있는 정치인으로서의 역량 한계도 너무도 명백하니 그에게 표를 준다고 해서 그게 사표가 아니게 된다는 보장도 없다. 참여정부의 공과 과를 모두 계승하겠다는 말은 현 시점에서 볼 때 정권재창출을 하지 않겠다는 솔직한 자기고백으로 해석되지 않는 한, 너무도 뻔뻔한 표 구걸일 뿐이니 그에 대해서는 이 이상 특별한 고찰을 하지 말기로 하자. 그러면 이제 남는 것은 전 유한킴벌리 회장 문국현이다.

처음 언급한 대로 '찍을 사람이 없다'는 주장을 하는 민주노동당 친화적인 유권자들이 선택지로 삼곤 하는 인물이 바로 문국현이니, 결국 이 글은 찍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문국현을 지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논증하기 위한 것이 된다. 우선, 훌륭한 기업가를 뽑아놓으면 한국에 훌륭한 기업 문화가 정착되고, 성공적인 중소기업 사장을 대통령으로 만들면 중소기업이 알아서 육성되리라는 발상이 얼토당토 않다는 논박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문국현이라는 CEO가 '잠재성장률' 개념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이명박의 747 플랜에 맞서 8% 성장률 달성 같은 구호를 내걸었다가 숱한 블로거들로부터 빈축을 샀다는 점도 여기서는 논하지 말기로 하자. 요컨대 자신이 표방하는 바를 다 구현하지 못해도 상관없고, 경제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현직 대통령처럼) 무지하면서 자신이 그것을 잘 모른다는 사실마저 모르고 있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해보자. 그렇다고 해도 문국현을 지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 이유는 문국현이 단일화를 통해 범여권의 후보로 추대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가령 이명박이 낙마하고 박근혜가 이회창에 대한 지지를 표명함으로써, 햇볕정책을 철회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이회창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너무도 높아 보인다고 쳐보자. 그 시점에서 대통합민주신당은 창조한국당과 또 한 번의 대통합을 성사시키고, 어찌어찌 역사의 주사위가 야바위처럼 굴러가서 문국현이 단일후보로 추대되었다고 쳐보자. 이런 식이라면 나도 문국현 지지자들에 대해 쓴소리를 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다. 대북정책의 기조가 변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대한민국 뿐 아니라 동아시아와 세계정세를 놓고 볼 때 대단히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국현 본인은 절대 단일화에 뜻이 없다고 공언하고 있고, 허지웅의 경우에서 확연하게 드러나는 바와 같이, 문국현 지지자들은 문국현이 '기존 정치판'의 난잡한 질서에 '단일화' 따위를 통해 포섭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지지한다는 논조를 고수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길게 보고 문국현이라는 사람에 대한 신뢰를 표현하고 있다고 말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문국현 지지는 큰 난점에 부딪친다. 설령 그들이 말하는 대로 오늘의 문국현이 킹왕짱 후보라고 하더라도, 5년 후의 문국현이 지금의 그와 동일한 인물이라는 것을 어떻게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다 아는 그 부산 사나이의 경우를 짚어보자. 현재 불거지고 있는 삼성 비자금 문제에 있어서 특검법 통과를 가장 단호하게 반대하는 집단이 바로 청와대이며, 대통령 노무현은 부산에서 낙방하던 시절부터 삼성의 관리 대상 중 일부였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회의원 지망생이 자신의 사무실을 유지하며 정치 조직을 건사하기 위해서는 한 개인이 노동을 통해 벌 수 있는 것을 훌쩍 뛰어넘는 금전이 요구된다. 상근자들에게 월급을 100만원씩만 준다고 해도, 다섯 명이면 500만원이고 1년이면 6000만원이 들어간다. 군 의원의 경우가 이런 수준이고, 전국 단위의 대선을 노리고 있다면 그 비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단적인 예로 현대의 왕회장 정주영도 개인적으로 당을 만들어서 대선을 치르려고 했는데, 그 짓 하다보니까 현대그룹이 통째로 삐걱거렸다.

문국현 지지자들의 현실 감각과 이상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충돌한다. 그들 또한 문국현이라는 정치인의 정치 생명이 대선 이상 연장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TV광고 한 번 할 만큼의 돈도 없다고 괴로워하는 문국현 홈페이지의 호소문이 괜히 올라와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문국현이 이번 대선을 깨끗하게 통과하고 다음 대선을 노리기를 기대하고 있다. '희망'의 허황됨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문국현 순수주의자'들의 나이브함은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강렬하다. 한국 정치의 현실을 바꾸자고 하면서, 이렇게 철저하게 현실을 도외시하는 지지자 무리를 우리는 일찍이 경험해본 적이 없다.

문국현은 '빤짝 스타'로서 대선판을 잡아먹을 정도의 야수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이에 대해서는 김수민이 쓴 이 글을 참조하라). 하지만 그에게는 그를 지탱해줄 수 있을만한 조직이 없기 때문에, 다음 대선까지의 그 오랜 세월동안 깨끗한 신인으로서의 이미지를 곱게 지키고 있을 수도 없다. 한국 정치의 현 상황이라는 거대한 기근 앞에서, 문국현은 그저 한 점의 생선회와도 같은 정치인일 뿐이다. 그거 한 점 집어먹는다고 배가 부를 리 만무하지만, 지금 소비하지 않으면 곧 상해버릴 수밖에 없다. 얼려놓고 어쩌고 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자신을 중도세력이라고 믿는 많은 이들이 좌파들에게 늘 하던 말을 이제 돌려줄 때가 왔다. 문국현을 찍는 것은 그만큼의 사표를 만드는 일일 뿐이다.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이인제 사표와 같은, 역사적 역효과를 낼 수도 없는 그저 사표로서 사표일 뿐인 그런 사표가 바로 문국현 지지표인 것이다.

그러므로 문국현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한국 정치의 미래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문국현에게 '투자'한다는 등의 메타포를 즐겨 사용한다. 하지만 문국현이 표방하고 있는 이념이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문국현 자신조차도 종종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 한미 FTA에 대한 그의 입장은 무엇인가? 달러화 약세로 대변되는 세계 질서의 개편 속에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문국현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중소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그 잘난 '사람중심 진짜경제' 말고 문국현이 가지고 있는 정책적인 틀거리가 존재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그 후보의 '사상'에 대해 장기적인 투자를 하겠다는 것이 문국현 지지자들의 논리이지만, 본래의 개념상 장기투자는 자신이 잘 아는 우량기업에 대해 하는 것이지 어디서 듣보잡 컴퍼니의 투자설명회 듣고 와서 집문서 밀어 넣는 그런 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결국 문국현 또한 '찍어줄 사람'은 아니다.

찍어줄 만한 사람이 단 하나도 없는 이 대선 정국을 확인한 이 시점에서, 우리는 '찍을 사람이 없다'는 담론의 성격에 대한 본래의 고찰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한국 정치의 발전을 가로막아온 굵은 이데올로기적 장애물이었다. 정당정치의 실패가,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서 떨어지자 독자 출마하여 한나라당을 말아먹은 이인제를 낳았고, 그러한 이인제짓을 막기 위한 공선법, 흔히 말하는 '이인제법'을 낳았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인제에 당한 이회창에게 다시 이인제짓을 하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최장집의 분석은 언제나 그렇듯이 너무도 타당하다. 여기서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 원동력이 바로 '찍을 사람이 없다'는 궁시렁거림에 있다는 것이다.

정당정치를 지지하고 싶다면, 비록 후보자의 개인적 성격이 매우 강력하게 드러나는 대선 정국이라 하더라도, 정당을 지지해야 한다. 비록 그 정당이 자신이 바라는 이념적 지향을 100% 실현하고 있지 못하다 하더라도,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는 키신저의 말마따나, 그 100%의 이상으로 향하기 위한 가능성을 열어놓기 위해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요구되는 시점인 것이다. 현재 한국의 우파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지고 있다. 이회창을 구심점으로 삼고 있는, 6~70대의 반공주의자들. 이명박을 구심점으로 삼고 있는 4~50대 경제주의자들. 그리고 범여권을 두루 포괄하는 3~40대 '386 세대'들. 이들이 한국 정치의 모든 지분을 셋으로 나누어 가질 수 없도록, 최소한의 좌파 정치의 몫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우나 고우나 일단 민주노동당을 찍어야 한다. 심상정이 후보 경선에서 떨어졌다는 이유로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을 찍지 않겠다는 사람들은, 박근혜를 지지하고 있지만 눈물을 머금고 이명박을 찍어주겠다던 한나라당 지지자들만도 못한 당 충성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정치적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탈당을 참고 있는 심상정에게 당을 깨라고 종용하는 이들의 정치적 IQ는 과연 얼마나 될지 너무도 궁금하다. 그들은 심상정을 박근혜만도 못한 정치인으로 만들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처럼 보일 뿐이다. 경선에서 졌다면 경선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경선에 승복했다면, 그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 또한 경선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 자신이 실천하지 못하는 정당정치를 오직 거시적인 차원에서만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정치적 요구라고 할 수 없다. 한국에 정당정치가 뿌리내리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다면, 일단 민주노동당의 경선 결과에 승복하는 최소한의 연습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나도 권영길이 싫다. 나도 주사파를 혐오한다. 주사파와 손을 잡은 권영길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은 민주노동당에 우호적인 대부분의 상식인들에게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국에 정당정치가 뿌리내리기를 희망하며, 우파가 급격한 세포 분열을 거듭하며 자신의 정치적 지분을 공고히 해나가고 있는 이 시점에, 좌파 정치가 성립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영역이 지켜질 수 있기를 진정으로 희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의 선택은 명백하다. 찍을 사람이 없다고? 나는 심상정이 후보로 나섰다가 떨어진 민주노동당을 찍겠다. 그것이야말로 심상정에 대한 지지를 표명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고도 확실한 방법이며, 아주 큰 그림을 놓고 볼 때에도 유익하고 건전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택할 수 있는 정치적 행로일 것이기 때문이다.

2007-11-22

2007-11-20

스파이웨어를 품고 있는 스파이 영화

스파이웨어를 품고 있는 스파이 영화



오스카 수상 감독 리안의 최신작 "색, 계"가 여러 국제 영화제에 초청되며 전 세계의 은막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상하이를 배경으로 하는 그의 스파이 스릴러는, 일제 부역자를 유혹하고 암살하기 위해 훈련받은 한 젊은 여성을 다루고 있다. 또한 그것은 미국에서 NC-17 등급을 받을 정도로 노골적인 섹스신을 보여준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리안 감독이 화려한 섹스신의 일부를 덜어내지 않으면 그 영화를 극장에서 빼버리겠다는 정부 검열 당국의 위협이 있었다. 그는 그 요구를 받아들였고, 지금 "색, 계"는 고작 두 주만에 9천만 위안을 벌어들이며 중국 박스 오피스 최고 흥행작이 되었다. 그 영화는 가볍게 그 해 최고의 히트 상품 중 하나가 되었다.

중국판에서 사라져버린 7분은 몇몇 영화 관람자들이 무삭제판을 보기 위해 국경을 넘어 홍콩으로 가게 만들었다. 놀랍지 않은 일이지만, 무삭제판은 또한 많은 영화광들을, 무삭제판을 다운받기 위해 인터넷으로 몰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해적질을 하려는 이들은 대신 스파이웨어를 다운받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중국의 안티 바이러스 업체인 Rising International Software는 "색, 계"의 무료 다운로드를 제공하는 수백 개의 사이트에 사용자의 비밀번호를 훔치는 바이러스가 숨어있을 수 있다고 인터넷 사용자들에게 경고했다.

관리들은 컴퓨터 바이러스에 감염될 가능성만을 경고하고 있지 않다. 광동성의 의사들은 영화에 등장한 더욱 도전적인 섹스신을 따라하고자 할 때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영화 관람객들에게 충고하고 있다. 중국의 공식 매체인 신화통신에서 운영하는 포털 신화넷은, 한 의사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색, 계"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성적인 움직임은 비정상적인 체위이다... 체조나 요가 훈련 등을 통해 완전히 유연한 몸을 지니고 있는 여성만이 그런 것들을 할 수 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그들을 맹목적으로 따라하다가는 불필요한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

영화를 재편집하면서 이안 감독은 영화의 제목을 "섹, 계, 특별히 경계"라고 이름 붙였어야 하지 않을까.



크리스틴 Y. 첸 - FP Passport

2007-11-19

희망돼지의 실패

참여정부가 초기의, 지금 생각해보면 사소한 삽질을 하고 있을 당시, 정상적인 기억력을 지니고 있던 소수의 노무현 지지자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곤 했다. "뭐야? 노무현 우리가 준 희망돼지로 대통령 되었잖아, 그럼 우리가 고용한 거잖아. 그러니까 고분고분 우리 말 들어야 하는 거 아냐?" 이제 임기를 3개월 남짓 남겨놓은 상황에서 그 모든 의문들은 나노 단위로 쪼개져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삼성의 '관리 대상'이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는 현실 아닌가.

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돈을 돼지저금통에 담아서 주는 게 아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 돼지를 그저 잡아먹었을 뿐, '국민'이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혼내주겠다는 의사표시로 이해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는 시장이라고 쓰고 삼성이라고 읽는 그 무언가를 제외하면 아무 것도 겁내지 않는 사나이이기 때문에, 애초에 노란색 돼지모양 플라스틱 저금통에 백원 십원 오백원 천원짜리 꼬깃꼬깃 모아서 줘봐야 별무소용이었다.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노무현에게 '이 돈 받고 대통령 된 다음 엉뚱한 정책 시행하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노란색 돼지 모양 저금통이 아니라, 하늘색 이건희 대통령, 아니 회장 모양의 저금통을 보냈어야 하지 않을까. 지지율 10%대의 신인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희망' 타령을 보면 딱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것은 그래서이다. 그들은 그 결과가 바로 현재 구현되고 있는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기는 커녕, 그것을 다시 한 번 고스란히 답습하면 보다 나은 결과가 나오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섯불리 희망이 어쩌고 민생이 어쩌고 논하기 전에, 5년 전의 희망돼지가 어떻게 도축되었는지에 대해 잠시나마 돌이켜보는 시간을 갖는 쪽을 권하고 싶다.

입동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최근 이 블로그를 통해 아기고양이를 주워왔다는 이야기를 한 바 있습니다. 가을이와 함께 살아야 하므로 계속 사이가 좋지 않은 채로 지속된다면 다른 사람에게 분양할 수밖에 없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런데 녀석과 가을이의 관계가, 아주 훌륭하지는 않지만 썩 나쁘지는 않은 정도로 진전되었고, 이래저래 정도 들고 해서, 그냥 내가 기르기로 했습니다. 잠시나마 설레였던 방문자분들께서는 서운하시겠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마음을 달래주셨으면 합니다.

장시간의 회의 끝에 녀석의 이름은 '입동'으로 정해졌습니다. 가을이를 데려올 당시 아름다운 가을 오후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 탓에 그 녀석이 가을이라고 불리게 되었듯이, 이 업둥이를 업어오던 때는 입동이 지나고 가을과 겨울을 가르는 빗방울이 떨어지던 시점이어서, 이렇듯 천시를 고려한 끝에 붙인 이름이니 다들 순순히 납득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원래는 겨울이라고 부를까 했지만 고양이들의 입장에서는 '가을'이라는 단어와 전혀 구분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입동으로 갔습니다.

사진이나 육아일기 등 방문자들을 즐겁게 할만한 자료는 추후 정리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잠시나마 이 일에 관심을 가져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07-11-18

Visiting the Library in a Strange City

Visiting the Library in a Strange City


by Franz Wright


The words reappear, slowly
developing
on a vast unknown
but precise number of pages

as I enter: the great building
empty of visitors
except for me, reading
the minds of the dead—

moving with exaggerated
and slow-motion care,
as when assigned to lead
the blind kid to his classroom

forty years ago,
down rows
between dusty volumes, a light
snow beginning.

2007-11-15

새끼고양이를 주웠습니다

새끼고양이를 주웠습니다. 나이는 2~3개월 가량 되어보이고, 암컷이며, 검은색 흰색 혼합입니다. 사진을 핸드폰에서 꺼내기에는 다소 상황이 여의치 않은데, 가을이같은 미묘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분위기 있게 생겼습니다. 성격이 아주 대범해서, 가을이가 잔뜩 경계하고 하악거리는데도 전혀 굴하지 않고 주는 밥 잘 먹고 이불 위에서 잡니다. 제가 데리고 오는 동안에도 단 한 번도 겁내거나 앙탈부리지 않았고요. 마치 만화 [아기와 나]의 검은 머리 아기, 이름이 뭐더라, 아무튼 그 애 같군요.

당장 식구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만약 가을이가 계속 불안해하고 하악질을 한다면 저는 이 새끼고양이를 다른 분께 분양할 생각입니다. 고양이를 기르는 일에 관심이 있는 방문자께서는 이후 올라올 경과 보고를 주의 깊게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2007-11-14

철학을 공부하는 남학생들에게

--한 가지 금언.

자신의 성욕을 인간 보편의 욕망으로 치환하여 드러내지 말라. 그것은 잘생긴 프랑스 철학자들에게만 허용된 특권이다.

2007-11-09

조선일보의 [88만원 세대] 언급, 과연 부정적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책이 조선일보에 언급되면서, 정작 중요한 내용은 쏙 빠진채 386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조선일보 편집진에게 왜곡된 형태로 인용되고 있다는 지적들은 다 옳다. 하지만 바로 그 왜곡된 인용이야말로 [88만원 세대]가 한국 사회의 맥락 속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는 책이라는 것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우선 조선일보가 [88만원 세대]를 자기들 입맛대로 인용하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검토해보자. 잠시만 기억을 돌이켜보면, 그것은 조선일보의 입장에서 너무도 자연스러울 뿐더러 일관성 있는 정치적 행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386의 정치적 봉기를 막기 위해 부모들이 '용돈권력'을 통해 20대 표를 제어해야 한다고 말했던 그들이다. 그 책을 세대간 갈등을 조장하자는 내용으로 읽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요컨대 이 칼럼의 논조는 너무도 자연스럽다.

그러므로 조선일보에 대해 새삼스럽게 '왜 책 인용을 그따위로 하는가'라고 분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고 잘못된 것도 아니지만 큰 실익은 없다. 조선일보는 텍스트를 멋대로 해석하고 인용하는 데 있어서 일종의 경지를 획득하고 있는 독특한 글쟁이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만약 조선일보가 어떤 책의 논지를 있는 그대로, 정치적 차원에서 왜곡하지 않고 인용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조선일보가 아닐 터이다.자신들만의 독특한 영문법과 영어사전을 이미 내부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그래서 뉴욕 타임즈에서도 디워에 대한 찬사를 추출해낼 수 있는 것이 그들이다. 뭘 더 바래?


여기서 문제는 조선일보라는 한 신문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저서가 그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해석되어 인용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라는, 일종의 철학적 차원으로 승화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왜곡된 형태로나마 인용되고 인구에 회자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는 낫다는 주장을 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 책은, 경제학자가 쓴 사회 경제에 대한 것이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또 한국 사회의 지적인 미성숙으로 인하여 정치적인 책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88만원 세대]의 내용을, 그것이 한국 사회의 '밝은 음지'를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있다는 것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지만, 정작 그 책의 내용에 대해 옳고 그름을 놓고 토론이 벌어지는 것을 나는 목격한 바 없다. 청년실업이 턱도 없이 심각하다는 것, 그것이 전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사회적 안전망이 전혀 구성되어 있지 않은 한국에서는 청년들의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 이런 불편한 진실들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우석훈은 20대 왕자님 공주님들이 벌거벗고 있다는 것을 경제학적 용어를 통해 서술했다. 그 진실은, 막상 폭로되고 나니 너무도 명확한 것이어서, 그 누구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할 수는 없는 그런 종류의 것이다.

그렇다면 폭로된 진실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혹은 당사자이며 피해자인 88만원 세대들에게 다른 이들이 어떤 자세를 요구할 것인지 등은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관 내지는 세계관의 문제가 된다. 조선일보는 88만원 세대를 '한 표 가지고 있는 얼간이들'로 바라볼 뿐이기 때문에 떡하니 저따위 칼럼을 써놓고,이영하의 이름을 들먹이면 젊은 층이 좋아라 하겠거니 착각의 댄스를 추고 있는 것일 뿐이다. 웹 서핑을 이상하게 해놓고서, 혹은 이상하게 하는 후배 기자의 덜떨어진 요약을 전해듣고서, 이렇게 하면 떡밥을 뿌릴 수 있겠거니 야무진 착각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조선일보의 [88만원 세대] 인용은 지적 무능과 부정직을 드러내는 현상이지만, 동시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입장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주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런 식의 이간질이 그다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글에서 검색한 결과 붙잡힌 이따위 포스트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시피, 88만원 세대 중 제대로 머리가 썩은 것들은 심지어는 조선일보의 칼럼조차 존중하지 않는다. 386과 정면대결을 펼친다고? 천만에. "귀는 솔깃하나 자세히 하나하나 따져 읽으면 괴리가 큼. 우석훈씨 다른 책을 안 읽어봐서 모르겠는데, 이 책만 가지고 판단하자면... 툭하면 프랑스, 프랑스 타령 하는 홍세화씨와 동급이라고 봄. 그 사람 말대로 '짱돌을 들고 바리케이트를 치느니(저자 역시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얘기했지만)', 차라리 그 시간에 한자라도 더 공부해서 요 아수라장을 헤치며 박차고 올라가는 길을 모색하는 게 훨씬 낫겠다."고 쨍알거리는 것이 바로 88만원 세대의 진면목임을 조선일보는 아직 모르거나,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있다.

하지만 정 반대 방향에서 보자면, 조선일보의 왜곡된 정치적 인용은 [88만원 세대]를 읽고도 무기력하게 주저앉기만 하는 88만원 세대들에게 일종의 자극이 될 수도 있다. 그 책의 특정 어구가 등장하는 조선일보의 칼럼에는 어김없이 '이 책을 그런 식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는 논지의 리플이 올라온다. 조선일보의 말이라면 일단 믿지 않고 보는 것, 그리하여 그 어떤 언론도 믿지 않게 되어버린 것은 분명 안티조선 운동의 부작용이지만, 이 경우 그러한 사고방식은 오답의 오답을 통해 20대들에게 자신의 처지에 대한, 정답에 다소 근접한 결론을 내릴 수 있게끔 하는 효과를 낳는다.

[88만원 세대]는 태생적으로 정치적인 책이었고, 앞으로도 꾸준히 정치적인 맥락에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는 올바르지 않은 정치적 지향을 위해 텍스트마저도 곡해하는 모두스 비벤디(modus vivendi)를 가지고 있는데, 대중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조선일보가 그 책을 다소 왜곡된 시각으로 읽는다고 해서 특별히 한국 사회의 담론적 수준이 더 저하되거나 할 일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여기서 우리는 '결국 [88만원 세대] 같은 책을 써도 조선일보에 인용되고 곡해될 뿐이다'라는 식의 회의주의에 빠짐으로써, 지금 이 시대를 지적으로 조망하려는 노력 자체를 허망한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만연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신을 신고 걷다보면 꽃밭도 통과하고 똥도 밟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발을 버릴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2007-11-08

영국에서는 이래도 되나?

BBC Learning English에서 갓 나온 꼭지를 듣다가 오밤중에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다. 실의에 빠져있는 상대방에게 긍정적인 다른 측면을 부각시킴으로써 위로해주는 방법, 그럴때 요긴한 몇 가지 표현을 가르쳐주고 있는데, 그 중 첫번째와 두번째 예시가 매우 부적절하다.

Language for pointing out the positive side of a situation Examples
At least...

My flatmate, Sue, is always borrowing my CDs and she only gives them back when I go and ask her for them!
Well, at least she returns them to you.

But... My mum always calls me in the evenings when I'm trying to study.
Yeah, but she does call you! My family never call me. I have to call them!


이 페이지에서 직접 녹음된 목소리를 들어보면 화자가 빈정대고 있다는 사실을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내용을 함부로 가르치는 BBC의 반성을 촉구한다.

2007-11-06

최근 가장 큰 분노를 불러일으킨 게시물

허지웅 기자는 자신이 쓴 [88만원 세대]에 대한 기사를 블로그에 올려놓았고, 거기에는 득달같이 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어 리플과 트랙백을 달아놓았다. 그런데 그 중 하나가 나의 눈길을 끌었고 분노를 자아냈다. "20대가 사라진 것이 아니고, 20대의 침묵이 문제다"라는 제목의 포스트에서, 화자는 "정치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가능하면 오프모임에 많이 참석하려 노력한다. 최근에는 문국현 지지자 모임에 거의 매일 참석하고 있다. 그런데, 39살인 내가 막내인 경우가 많다. 도대체 나보다 젊은 친구들은 다 어디에 있는걸까?"라고 탄식을 한다. 바로 이렇게, 사회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를 한 정치인에 대한 지지로 환원시키는 사고방식이 대한민국의 5년을 '희망고문' 속에서 잘게 찢어버렸다는 사실을 저 글의 화자는 절대 깨닫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기껏 내놓는 결론이라고는 값싼 훈계일 뿐. '88만원 세대는 문국현을 지지하라'는 식의 레토릭이 횡횡하기 전에 그 후보의 빈약한 체급이 드러나버려서 참으로 다행이다.

제왕병 환자들

'희망'을 부르짖는 문국현 지지자들에게서 나는 [눈물을 마시는 새]에 나오는 제왕병 환자들의 육체적 현현을 본다. 혹자는 그들의 행태를 '의장님 문화'의 연속으로 파악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문국현 지지자들이 오직 386에 국한되어 있을 것이라는 단견에서 비롯한 착각일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00분 토론 출연을 계기로 문국현이라는 후보가 과거의 박찬종만도 못한 정치인이라는 사실이 일찌감치 폭로되었다는 것이다. 이명박과 이회창이 격돌하는 시점에, 엉뚱한 사람을 '희망'으로 모셔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주문을 외치던 문국현 지지자들은 닭 쫓던 개 꼴이 되었다. 대선을 40여일 앞둔 시점에서, 후보자 본인이 어떤 바람을 불러일으킬만한 파괴력을 갖추고 있지 않고, 사람들의 관심은 그런 제3후보와는 전혀 무관한 방향으로만 집중되고 있다. 잔치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