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8-31

나는 저들과 다르게

독일 신학자 마르틴 니묄러가 썼다는 이 시가 요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한겨레 21의 파시즘 특집 기사에서도 인용되었고, 그 외 많은 수의 네티즌들이 이 시를 읽으며 성찰의 시간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대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가톨릭교도를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였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 시를 볼 때마다, 혹은 이 시를 인용하면서 자신이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하지 못하고 있음을 짐짓 자책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루카의 복음서에 나오는 이 대목이 떠오른다.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
18: 9 예수님께서는 또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물론 두 인용문의 상황이 1:1로 일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나는 저들과 다르다'라는 인식만큼은 양자가 공유하고 있고, 나는 바로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비정규직이 아니라서 비정규직과 연대하지 않았고, 그 결과 경제 공황의 파고가 내게도 닥쳐왔다'라는 길고 긴 반성문을 되풀이하고 있는 한, 그것은 결코 복음서에서 말하는 참회가 아닐 것이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연대'가 아니라, 차라리 '태도 변경'이다.

혹자는 이렇게 반박할지도 모른다. 앞의 시에 나오는 '공산당원, 유대인, 노동조합원, 가톨릭 신자'들은 진짜 죄인이 아니라 단지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몰린 사람들에 불과하지만, '강도,불의를 저지르는 자, 간음을 하는 자'는 말 그대로 범죄자가 아니냐고. 하지만 지금 세상의 법은 이랜드 파업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하고 있고, 기륭전자의 단식투쟁을 업무방해라는 형법의 조항으로 처벌하려 든다.

나는 착하고 안전하며 법을 지키고 세금을 내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비정규직과의 연대가 필요했는데, 라는 후회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시를 읽으며 정신적인 위안을 찾는 것부터가 잘못된 일일 수 있다. 대체 저 시를 읽으면서 감동했다는 이들은 누구길래 '비정규직 노동자, 노동조합 구성원, 촛불시위 참여자, 한우 축산 농부'가 아니었지만 침묵했고 그 결과 '내 차례가 왔다'고 말하고 있는지, 나는 그게 정말 궁금하다.

무슨 몰아의 경지에서 온 국민이 노동운동에 뛰어들자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다만 '나는 저들과 다르지만,' 이라는 전제를 계속 손에 쥐고 놓지 않는 그 담론적 태도가 실질적으로 의미할 수밖에 없는 바를 잠시라도 되짚어보자는 것이다. 탄압받는 소수자와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계속 강조하는 것 자체가, 소수자를 소수자의 영역에 가두어놓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실질적 다수자가 담론적 소수자로 전락해있는 현재의 모순된 상황을 고착화하는 일이다. 우리가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858만명이 858만명의 몫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 아닌가?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것은, 차이를 강조하면서 마지못해 맺고 있는 '연대'가 아니라, '남들은 이렇고 저렇고'를 따지지 않고 내 안에서부터 출발하는 '태도 변경'일 것이다.

2008-08-28

멍청하면 안전하다

멍청하면 안전하다


걱정 마라
당신은 위험하지 않다
당신은 매우 안전하다
멍청하니까

이것은 만고의 진리다
멍청하면 안전하다
그들에게 당신은
놓아 기르는 호주산 청정육이다
안심하고 축제나 즐겨라

멍청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위험한 물건을 소지하고 있지 않아도
위험한 행동을 하고 있지 않아도
그들에겐 당신이 위험하고
당신에게도 그들이 위험하다

하지만 안심하시라
멍청하면 안전하니까
모래톱에 머리를 처박은
타조새끼마냥
당신은 안전할 수밖에 없으니까.


(08. 08. 28)

2008-08-26

판타지를 부수는 판타지 - '강남 불패'와 교육감 선거

* 판타스틱 9월호 원고입니다. 편집부의 승인을 받아 올립니다.

* 소설 《다이디타운》3부의 결말에 대한 언급이 들어있긴 하지만, 그 결말을 알고 소설을 봐도 큰 상관이 없습니다. 3부작으로 구성된 《다이디타운》은 2부까지가 정말 재미있고, 3부는 일종의 보너스 스테이지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으니까요.

* 판타스틱 구독을 권합니다. 제 원고가 종종 실리는 좋은 매체입니다, 가 아니라, '서사'를 충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매달 엄선된 소설과 만화가 실립니다. 장르물의 다양한 지점들을 짚어주는 특집들도 좋고요. 이번호 특집은 FBI 입니다. 창작에 관심 있으신 분들이라면 자료집 삼아 한 권쯤 구입해도 괜찮을 겁니다.

* 판타스틱 구독 문의처는 다음과 같습니다. 담당자 김신영(02-713-0143) 홈페이지 http://www.fantastique.co.kr



POLITIQUE

판타지를 부수는 판타지 - ‘강남 불패’와 교육감 선거

지난 7월 30일 열렸던 서울시 교육감 선거를 둘러싼 두 가지 판타지가 있었다. 직접 민주주의의 힘, 그리고 잘못된 현재를 교정하려는 과거의 힘을 떠올리게 하는 그 희망찬 판타지는 ‘강남불패’의 또다른 판타지에 의해 산산조각나버렸다. 먼 길을 돌아 또다시 출발선상에 서게 된 셈이다.


‘강남 불패’를 가장 흔하게 수식하는 단어는 다름아닌 ‘신화’다. 강남의 땅값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명제는, 건조한 사회적 현상을 넘어 대중들의 머릿속에서 그 자체로서 생명력을 갖는 무언가가 되어 있다. 한국어 화자들, 특히 언론계에 종사하는 이들이 걸핏하면 ‘신화’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는 습성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가령 ‘붕대 투혼’이라거나, ‘라면 먹고 금메달 신화’라거나 등등) ‘강남 불패’만큼은 확실히 신화적이다. 7월 30일 교육감 선거를 통해 그 신화성은 다시 한 번 화려하게 입증되었다. 강남은 지지 않는다. 강남은 져도 결코 혼자 지지 않는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를 둘러싼 판타지

7월 30일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대결 구도와 심판 구도에 의해 지배된 하나의 정치적 싸움이었다. 이명박 현 대통령에 대한 심판을 전면에 내세운 주경복 후보와, 반 전교조라는 기치를 걸고 교육 정책을 유지하려는 공정택 후보가 대결 구도를 세우고 있었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대한 기대감은 특히 촛불시위에 참여해온 시민들 사이에서 하루가 다르게 고조되고 있었다. 최초의 직선제 교육감 투표에서 승리한다면, 국민들이 이명박의 교육 정책을 반기지 않고 있다는 것을 뚜렷하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매일같이 경찰에 밀리고 전경에 쫓긴 촛불 시민들에게는 단 하나의 승리가 고프기도 했다.

여론 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전국적으로 팽배한 반 이명박 정서를 대변하듯, 교육감 선거 후보 지지율은 서울 시내 대부분 지역에서 주경복 후보가 앞섰다. 종합해보면 3~5% 차이로 승리한다는 결과가 나온 상태였다. 이렇게까지 낙관적인 여론 조사 결과를 등에 업고 선거를 하는 일은, 이른바 ‘진보진영’에서 매우 드문 일이다. 투표율이 비록 15%대에서 머물렀지만 뚜껑을 열어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다들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거기서 ‘강남’이라는 괴물이 튀어나왔다.

강남구에서는 전체 투표자 중 61.14퍼센트가, 서초구에서는 59.02퍼센트가 공정택 후보에게 몰표를 안겨주었다. 이것이 결정적이었다. 워낙 인구가 많은 두 지역에서, 기타 범 보수진영 후보들에게는 일절 투표하지 않고 오직 공정택 후보만을 향해 표를 던진 이것이 바로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결정타였다. 이 차이는 주경복 후보가 최대 득표 퍼센트를 기록한 관악구의 성적을 보면 알 수 있다. 거기서 주경복 후보는 47.80퍼센트, 공정택 후보는 30.81퍼센트를 득표했다. 반면 강남구는 공정택 후보에게 61.14퍼센트를 몰아주었으며, 동시에 주경복 후보의 득표율은 고작 22.62퍼센트에 머물고 있다. 잘라 말하자면, 강남구와 서초구에는 흔히 말하는 ‘이탈표’가 없었다. 군소 후보자에게 고루 표가 갈린 다른 구와 달리, 강남구와 서초구의 유권자들은 마치 ‘보수 단일화’가 이미 진행된 것처럼 투표했다. 그것이 이번 선거의 희비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었다.

이 시대가 제 아무리 탈정치적인 포스트모던 시대라 한들, 사교육 열풍을 이어나가 아파트 값을 더 올리고 싶어하는 ‘강남 아줌마’들의 집단 행동을 해체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진보는 갈라졌지만 보수는 그대로 있다. 대한민국은 사분오열되었지만 강남의 성채는 공고하다. 혹자들은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새로운 동력을 5월 이후 촛불시위에서 찾았지만, 7월 30일의 선거는 말한다. 촛불은 강남에 졌다. 적어도 지금은.

이른바 ‘직접 민주주의’와 ‘간접 민주주의’의 대립구도를 설정한 후, 전자가 후자보다 낫네 그르네 벌어지던 수많은 논의들을 돌이켜보자. 그런 종류의 논의가 벌어지던 당시, 많은 사람들은 촛불이 통제되지 않는 거대한 민중의 에너지이며, 그것을 거스르는 자는 세상에 감히 존재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지식인들은 그 막대한 에너지를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를 논의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순진한 발상이다. 요컨대 모든 이들이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광장의 목소리가 세상을 바꾸는 것에 대한 판타지를 잃지 않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업둥이’(부모로부터 버려져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아이)들의 엄마 노릇을 하고 있던 웬디가 피라미드에 감금되어 있자, ‘업둥이’들은 드디어 햇살 아래 나와 항의를 시작한다. 그 업둥이들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 수많은 ‘진민’(자연 수정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시위대에 합류하여 수백만의 물결을 이룬다. 그 모습을 보고 고민하던 다이디타운의 수뇌부는 웬디와 함께 ‘업둥이’들을 지구 밖 외행성계의 농장으로 파견하는 정치적 결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판타스틱》에도 연재된 바 있는 《다이디타운》 3부의 마지막 장면이다. ‘직접 민주주의’를 주장하던 자들은 업둥이들의 함성이 더 커져야 한다는 쪽에 방점을 찍고 있었다. 반면 ‘간접 민주주의’의 안정성을 외치던 자들은 정치가 브로드와 저널리스트 럼이 막후 협상을 통해 ‘업둥이’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하는 그런 기능에 주목했다. 문제는 이 두 가지 착상 모두가 하나의 판타지에 기반하고 있었고, ‘강남 불패’의 신화는 바로 그 판타지를 박살내버렸다는 것이다. 민중의 함성은 헌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경찰은 헌법보다 도로교통법의 준수를 요구한다.

‘민중의 함성’이라는,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거대한 판타지가 깨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른바 ‘과거의 그림자’가 다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에 사라졌던 전국대학생협의회, 즉 전대협 깃발이 거리에 나부끼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 속에 묻혀졌던 과거의 힘이 살아 돌아와 현재의 질서를 재구성한다는 것 또한 일종의 판타지이다. 특히 《반지의 제왕》에서 고대의 힘인 엔트들이 긴 회의 끝에 떨쳐 일어나는 장면은 3부작 중 제2부의 절정을 이룬다. 자연의 섭리를 파괴하고 마구 토목공사를 벌이던 사루만의 야욕이 파괴되고, 두 개의 탑 동맹이 깨어지며, 댐은 무너지고 숲은 생명을 되찾는다. 전대협 깃발이 뜨고, 시청 앞 광장에서 세 대의 살수차를 점령하고 부순 6월 28일만 해도 그 판타지는 실현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위대는 이후 오히려 시청 앞 광장을 빼앗겼고, 8월 5일에는 명동성당 앞까지 밀려났다. 올바른 과거가 잘못된 현재를 이기는 판타지는 오늘날 실현되고 있지 못하다.

산 위를 날아가는 독수리를 쫓듯이

강남 신화는 계속된다. 강남은 불패다. 져도 혼자 지지 않는다. 맹목적인 자기 복제를 통해 생명체의 건강을 해치고 목숨을 빼앗아가는 암 세포처럼, 강남은 대한민국을 잡아먹고 있다. 이 욕망의 변증법은 흡사 괴물의 눈과도 같아서,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빨려들어가는 마력을 지니고 있기까지 하다. D&D 계열 판타지에서 드래곤은 마법이 통하지 않는 존재다. 강남 불패의 신화가 다른 판타지를 부수는 것과도 비슷하다. 대체 우리는 이 괴물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 걸까? 어쩌면 ‘강남’만을 바라보느라 긍정적인 가치로서의 ‘공공성’의 추구를 잃어버린, 막강한 적을 상대하느라 스스로를 잃어버린 모습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하는 건 아닐까? G. K. 체스터튼의 문장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짓도록 하자. “우리는 산 위를 날아가는 독수리를 쫓듯이 신을 사냥해야 한다. 그 추적 중에 우리는 모든 괴물들을 죽였다.”

2008-08-23

안녕? 허 대짜 수짜님

8월 21일 목요일, 저녁에 있었던 약속이 끝난 후 한성대입구역에서 출발해 서울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내렸다. 금천03 마을버스를 타고 잠깐 달리니 충남슈퍼 정거장이 나왔다. 몇몇 젊은 사람들이 이미 그곳에서 내리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기륭전자 가는 길이 그렇다.

기륭전자에 대해 한 마디 언급을 하고 싶을 때마다 꾹 참았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직접 본 것, 직접 겪어본 것에 대해서만 말해야 한다고 강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제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 어떤 '의미'를 찾아내고 발견하는 것은 분명 월권이다. 나는 종종 '이유를 알 수 없는 일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나 자신에게 말하곤 한다. 도착한 시각은 9시 30분 경이었고, 기륭전자 정문으로 향하는 골목에는 전경들과 교통경찰들이 두어 소대 정도 있었다.

뭔가 문화제 비슷한 걸 했는데 이미 끝난 것 같았다. 근처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입에 물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데, 갑자기 영화 '안녕? 허 대짜 수짜님'이 상영되기 시작했다. 다들 철푸덕 앉아서 영화를 보기 시작하길래, 나도 그냥 은박 돗자리 조각을 깔고 앉았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영화 상영이 끝나면 행사가 마무리될 듯했다.

'안녕? 허 대짜 수짜님', 제목 참 길군, 아무튼 이 영화의 강점은 이른바 '대기업 노조' 사람들이 대체 어떤 식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대강이라도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가 한 다리 건너면 다 친구고, 선배 후배고, 혈연과 친분으로 얽혀 있다. 허대수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 조연은 허대수의 처남으로 설정되어 있고, 그것은 전혀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현대자동차 공장으로 먹고 사는 울산이라는 도시의 풍경마저도 다소 손에 잡힐 듯하다. 현대차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아파트에 살고, 현대차에서 일하지 않거나 비정규직인 사람들은 시 외곽 허름한 주택가에 산다. 이것을 명시적으로 드러내고 있지는 않지만, 영화를 통해 충분히 감지할 수는 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를 봐야 할 진정한 이유가 된다. 울산 노동자들이 만든 울산 영화라서 그런지, 일부러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울산이 보인다.

하지만 본의 아니게 성취된 이러한 리얼리즘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작위적인 줄거리 전개로 인한 단점을 다 가려주지는 못한다. 아빠의 꾀병 -> 딸이 알아채고 분노 -> 아빠가 진짜 병으로 쓰러짐 -> 병원에서 비정규직 사윗감이 정규직 아빠에게 감명을 줌 -> 비정규직 해고자 20명을 위해 정규직이 으쌰으쌰 -> 투쟁! 승리! 로 이어지는 후반부의 스토리라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하냐, 네가 한 번 써보지 않겠느냐'라고 말한다면 나도 딱히 할 말은 없다. 이것은 한국어권에서 개발된 서사 양식 자체가 지나치게 협소하기 때문에, 바꿔 말하자면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일 가능성이 더 크다.

그 어떤 문제도 제대로 해결되지는 않은 채로, 하지만 뭔가 결말이 나는 그런 이야기를 우리는 쉽사리 떠올릴 수가 없다(켄 로치의 '아름다운 세계'가 이런 종류에 속하지만, 켄 로치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빈곤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니 더 서술하지는 않기로 하자). 따라서 한국의 수용자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작위적이고 실은 아무 것도 해결된 바 없다고 할지라도(이 영화 속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문제는 전혀 해결된 게 아니니까), 일단 '좋은 결말'을 내야 하고 그것도 가급적이면 갓 태어난 아기의 입을 통해 읊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마무리되고 있는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도리어 희망은 저 먼 곳으로 사라져만 간다.

엔드 크레딧이 올라간 후 사람들은 이곳 저곳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동안 진보신당 칼라TV가 와서 몇 명을 인터뷰했고, 촛불다방에서는 누룽지를 나눠줬고(먹다가 입 천장을 살짝 데였지만 맛있었다), 저 구석에 있는 컨테이너 안에서는 누군가 계속 굶고 있었을 것이다. 기륭전자에 정규직 노조가 있을까? 있다고 해도 과연 그들이 이 영화처럼 '연대'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지금 이 사태가 해결될 수 있는 걸까?

'노동문제가 중요하다'라고 강조하던 나 같은 사람이 아니라, '대한국민 안중근' 같은 국가주의의 기표를 티셔츠로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기륭전자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그들은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말 한 마디에 목숨을 걸 것이고, 일본은 악이며 일제시대의 조선은 선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견지하고 있을 터이지만, 정작 기륭의 옆에 서 있는 건 그런 사람들이다.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졌고, 집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나는 충남슈퍼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구로디지털단지역으로 향했다. 공단 지역의 유흥을 책임지는 역전가의 불야성을 헤치고, 내가 탄 2호선 열차가 출발했다. 시위하러 갔다가 영화만 보고 돌아왔다. 해답을 바란 건 아니었지만, 더 많은 질문들과 함께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2008-08-18

떡볶이 민주주의

8월 15일 경찰은 역시나 무차별 연행을 감행했다. 그 과정에서 종로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먹고 있던 사람도 잡아갔다는 기사가 경향신문에 게재되었다. 프레시안은 경찰이 촛불 연행자 여성에게 브레지어를 벗어서 내놓으라고 강요했다는 기사를 터뜨렸는데, 놀랍게도 사실을 부인하고 있지도 않다. 다만 자살 방지를 위해 '본인에게 요구'했다는 변명을 내놓았다.

대체 왜 경찰은 무자비한 연행과 지독한 인권 탄압을 자행하고 있는 것일까? '혁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경찰이 강경하게 나오면 강경하게 나올수록 이른바 '전민항쟁'의 가능성이 커진다고 좋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상은 그것과 정 반대이다. 현재 경찰이 펴고 있는 무차별 연행 전략은, 버마 군부가 8888 혁명 당시 자국민들을 무차별 학살하던 그것과 같은 행동 유형이다.

1988년 8월 8일 터졌던 버마의 인민 봉기, 즉 '8888'의 20주년을 기념하는 기사가 이코노미스트 온라인 에디션에 8월 12일 게재되었다. 이 기사에서 이코노미스트는 '인민의 힘'이 갖는 명백한 한계를 탐색한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8888이 실패한 원인은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의 부재도, 국제 사회의 지지 결여도, 일반적인 대중들의 지지 부족도, 저항하고자 하는 의지의 결핍도 아니었다. 아웅산 수지와 그의 정당은 80%에 가까운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문제는 군부가 저항하는 사람들을 죽일 수 있을 만큼 죽이겠다고 작정하고 있었다는 데 있다. 당시 사망자 숫자는 공식적으로 3000여 명이지만 그것을 믿는 이는 아무도 없다. 중화기로 무장한 군인들이 거리에 뛰쳐나온 시민들에게 닥치는대로 발포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 후, '전민항쟁'은 진압되었다. 아웅산 수지는 가택 연금되었고 버마는 아직까지도 군부 독재에 시달리고 있다. 1989년 천안문 사태도 같은 경로로 실패한 민주화 투쟁이다. 탱크가 출동했고, 시위는 진압되었다.

국제 사회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권력을 내놓을 의향 따위 전혀 없으며, 폭력적인 진압의 도구가 되는 관료 조직(즉 경찰 혹은 군대)을 단단히 틀어쥐고 있는 독재 권력 앞에서, 사실 '국민의 힘'이란 미약하기 짝이 없다. 인간에게는 생존을 향한 본능이 있기 때문에, 죽이겠다고, 잡아 가두겠다고 협박하며 그 의지를 매일같이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는 한, 겁을 먹고 움추려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청수의 목줄을 움켜쥔 채 숨을 식식거리며 광화문과 종로 일대를 헤매고 다니는 이명박의 '미친놈 되기 전략'은, 불행하게도 성공적이다.

버마의 민주화에 대한 가능성을 이코노미스트는 대단히 낮게 평가한다. 버마의 국민들이, 군부가 무슨 짓이건 하고야 말리라는 것을 늘 인식하고 있는 한 군부 독재는 유지될 수밖에 없다. 뜨겁게 몰아치는 민중의 함성보다는, 군부 내에서 이탈 세력이 발생하는 쪽에 기대를 거는 것이 낫다는 것이 이코노미스트의 평가다. 이건 이 매체를 보는 사람들이 서구 사회의 정책 결정자들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보면 다소 섬뜩할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여기서는 더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이 기사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현실 또한 객관적으로 되짚어볼 수 있다. 앞서도 말했듯이, 브레지어를 빼앗는 경찰에게 무차별 연행될 우려가 있다면, 촛불시위의 가장 큰 동력 중 하나였던 '일반 대중들의 참여'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정치권, 특히 한나라당 내에서 강력한 이탈 세력이 발생하고, 그들이 이명박의 독주를 견제하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낼 수가 없다. 그 집단의 수장이 다름아닌 복당 박근혜 여사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어떤 해법을, 적어도 이 짧은 글에서 도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기동성을 앞세운 촛불시위를 넘어선 또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촛불을 계속 들되, 다음 아고라에서 분통을 터뜨리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다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정치다. 하지만 진보신당을 포함한 대안 정치세력들이 과연 현재의 움직임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할 수 있을까를 묻는다면, 그 답 또한 불투명하다. 떡볶이 먹던 사람도 체포해가는, 그런 민주주의의 위기다. 하지만 그 절망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수도 없을 것이다.

2008-08-14

마감과 납기

《판타스틱》 9월호에 실릴 원고 두 편을 모두 털어냈다. 그 외에도 이번 달에는 흔히 말하는 '외고'를 많이 맡아서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 떠오른 생각 하나를, 집에 가기 전에 후딱 적어놓는다.

사람들은 흔히 '마감'이라는 단어에 대해 모종의 환상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마감이 존재하지 않는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 혹은 아직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은 20대 초중반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간혹가다 정말 컨텐츠를 생산하면서도 '마감'이라는 단어를 말랑하게 사용하는 경우를 목격할 수 있긴 한데, 그것도 결국 후자에 포함되는 것이므로 이쯤에서 논의를 진전시켜 보도록 하자.

특히 만화가의 마감에 대해 여러 가지 판타지가 존재한다. 만화가가 마감을 맞추기 위해 며칠 밤을 새고, 편집자에게 오는 전화를 이런 저런 방식으로 교묘하게 회피하고, 그래도 결국에는 어찌 어찌 일자를 맞춰서 원고를 보낸 후 '하얗게 불타버리는' 그런 장면들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연상할 수 있다. 만화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란 젊은 세대들의 경우, 앞서 말한 것처럼 본격적인 사회 생활을 해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에, '마감'에 대한 판타지에 더 쉽게 휩쓸리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마감은 만화가들이 편집후기에 그려놓는 것처럼, 남에게 쉽사리 징징거리면서 자기 일을 한 없이 미루고, 창조적인 생각이 안 떠오른다는 핑계를 대며 술이나 퍼마시고, '빈 문서 1' 앞에서 한없이 한숨을 내쉬는 그런 것이 아니다. 마감일은 그저 그때까지 원고가 넘어가야 다음 공정 진행에 차질이 없음을 나타내는 최후의 데드라인일 뿐이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음 공정'이다. 글쓰는 이가, 혹은 만화를 그리는 이가 원고를 생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출판 산업의 큰 맥락에서 원 재료를 생산하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그 원고 안에 세계를 벌벌 떨게 할 놀라운 무언가가 담겨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만들어지는 순간에 그것은 다른 수십억의 원고와 전혀 다를 바 없는 '1차 재료'일 뿐이다. 그것을 받아서 편집, 즉 가공하고, 디자인 과정을 거쳐 필름 출력, 인쇄하는 모든 공정을 거쳐야 비로소 책이 나온다.

자본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하지 말고, 자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출판 산업의 차원에서 보면, 내가 쓰고 있는 글은 이 광대한 산업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그것은 당연히 재가공되고, 편집되며, 디자인 과정에서 눈 베리는 무언가로 전락할 수도 있고, 제책 과정의 실수로 앞뒤 순서가 뒤바뀔 수도 있다. 광부가 광산에서 캐낸 원광석이 장신구가 될 수도 있고 자동차가 될 수도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글은 인간 정신의 산물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통되는 글은 모듬살이하는 인간들의 사회적 산물이다.

마감의 고통을 토로하는 천편일률적인 말은 이제 그만 나와야 한다. 글 쓰는 이는 그저 납기에 맞춰 1차 생산물을 뽑아내는 것일 뿐이다. 편집자가 바라는 대로 투덕투덕 아무렇게나 써서 줘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글에 담기는 극도로 내면적이고 사밀한 그 무언가를 구태여 '마감의 고통'으로 치환시키지 말자는 뜻이다. 글은 정신의 산물이지만 원고는 산업의 일부분이다. '마감'이라는 닳고 닳은 단어 대신 '납기'라는 단어를 넣어보면 그 차이가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0대 문제에 대해 사고하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나'를 한가운데 놓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어떤 산업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짚어보는 그런 종류의 객관화가 필요하다. 보름 넘게 품고 있던 원고를 털어낸 후 잠시 든 생각이다.

성조기와 태극기

이명박의 태극기 사건 이후, 조지 부시도 성조기를 거꾸로 들었다며 '유유상종' 같은 말이 나돌았다. 이명박이나 부시나 똑같은 놈들이다, 이런 식의 비아냥이 인터넷 공간을 잠시 휩쓸었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사진을 놓고 보면 그 둘의 '실수'는 전혀 같은 차원의 것이 아니다. 순수한 의미에서 '멍청함'은 오직 부시만의 것이고, 이명박의 실수는 멍청해서가 아니라 무관심해서 벌어진 것이다.



사진=한겨레


두 사람의 사진을 나란히 놓고 확인해보자. 부시는 성조기의 좌우를 혼동해서 들고 있다가, 딸이 지적하자 얼른 바꿨다. 그것은 그가 카메라에 찍힐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자기가 보기에 올바른 방향으로 성조기를 들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건 똘똘하지 못한 초등학생이 거리에 서 있는 사람들을 놀리겠다는 심산 하에, 버스 좌석에 앉아 하얗게 김이 서린 차창에 '바보'라고 똑바로 써놓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바보'라는 글자를 상대가 읽을 수 있도록 좌우를 바꿔야 한다는 상식적인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부시의 멍청한 짓에는 이처럼 천진난만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이명박의 경우는 차원이 다르다. 국기의 상하가 바뀌었다는 것은 그가 태극기를 손에 받아 휘두르기까지 단 한 번도 그것을 거들떠보지 않았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성조기를 펄럭이는 부시의 해맑은 바보짓과 비교해볼 때, 이명박의 거꾸로 된 태극기는 다소 섬뜩한 인상까지 준다. 부시에게 애국심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만, 이명박에게 그럴 수는 없을 것만 같다. 단언하건대, 멍청한 대통령보다 더 나쁜 것은 무관심한 대통령이다.

2008-08-13

작은 언론, 큰 언론

[세상 그리고 사람]“20대 문제는 모든 세대의 문제… 20대만 욕하지 말라” ‘포린 폴리시’ 한국어판 편집장 노정태(경향신문, 2008년 8월 14일자 섹션 4면)

최근 경향신문의 김후남 기자님을 통해 지면을 얻고 또 인터뷰까지 하게 되면서, 언론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2시간 40분 넘게 손동우 사회부 부국장님과 마주앉아 별별 이야기를 다 했는데, 그 중 꺼내지 못한 게 있다면 이런 것이다. 대한민국의 일간지, 즉 메이저 출판 매체가 취약한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을 뒷받침해줄 튼튼한 전문지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관계의 오류 등을 화끈하게 질타하면서 정정해줄 그런 전문 매체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한국의 출판 매체 시장에 다양한 전문지가 강인하게 뿌리내리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이 언론에서 '정보'가 아닌 '내 편'을 찾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은 드라마 전문 매체인 드라마틱에서 일할 때 특히 강렬하게 느꼈던 것이다. 사람들은 드라마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그 한 편의 드라마의 팬인 내 편을 들어줄 그런 매체를 원한다. 사실 촛불 정국에서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구독자가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촛불 시민'들은 '우리 편'이 되어줄 그런 신문을 원했지, 종합 일간지답게 사회의 다양한 사실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주는 신뢰할만한 언론을 원한 게 아니다.

작은 언론들이 많이 등장할 수 있어야 큰 언론들도 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작은 언론들의 생존을 위해서는, 큰 언론들 또한 조화로운 언론 생태계를 구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 그 중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본적인 것은, 인터뷰에 언급된 것처럼, 사실과 의견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언론 문화를 정착시켜 나가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원론적으로는, 경향신문이 미국 축산농민협회의 의견 광고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략적으로 현재의 분위기를 감안해볼 때 그런 광고 제의를 거절한 것은 당연하며 또한 잘 한 일이라고 본다. 문제는 이 두 선택지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방안을 과연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FP 9/10월호 제작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아직 커버 타이틀 등을 공개할 수는 없는데, 이번호 타이틀은 지난호보다 훨씬 '핫'하다. 앞서 나는 작은 언론과 큰 언론을 구분지으면서, 전문지를 작은 언론으로, 종합 일간지를 큰 언론으로 대강 분류했다. 하지만 미디어가 발달한 나라일수록 그런 구분은 희미해진다. Foreign Policy와 Foreign Affairs는 모두 외교 전문지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 두 매체를 '작은 언론'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궁극적으로는 '작은 언론'과 '큰 언론'의 경계선 또한 지금과는 다른 차원에서 그어져야 할 일이다. 물론 나는 FP 한국어판이 한국 내에서도 '큰 언론'이 되기를 바란다.



근 세 시간을 떠들고도, 인터뷰를 읽어보니 덧붙이고 싶은 말이 생겨서 후기를 적어보았다. 방문자들께서는 인터뷰에 대한 코멘트를 이 게시물에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2008-08-08

금리 인상과 주택 버블 붕괴

경제에 대해 잘 아는 편이 아니다, 라는 말을 하기도 민망할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과 더불어 벌어지게 될 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하다. 비록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호의 Economic Focus에서(이 코너 정말 최고다. '경제학적 사고'가 뭔지 알고 싶다면 이걸 꼭 읽어야 한다) "Home Truths"라는 기사를 통해 '주택 가격의 하락이 반드시 전체 경제에 나쁜 일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는 논지를 펼쳤지만, 한국의 경우는 문제가 조금 더 심각하기 때문이다.

금리를 인상하면 당연히 매달 붙는 이자가 높아진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중산층, 1주택 소유하고 있고 그 주택을 담보삼아 대출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이자 부담이 가속화되면 가속화될수록 소비를 줄이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은 곧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 이 상황에서 주택 가격의 거품이 빠지면, 그나마 그 중산층들의 유일한 자산인 주택의 가치가 줄어들기 때문에, 재산은 줄었는데 빚은 늘어나버린 이중고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애초에 주택 가격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이코노미스트 기사에서 나온, '지금까지 집을 사지 못하고 있던 젊은이들이 이익을 보고' 같은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현재 집값이 아무리 떨어져도 나는 집을 못 산다. 이건 대부분의 20대에게 공통되는 현상이며, 30대로 올라가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현재 한국의 젊은 층은 불안정한 고용의 첫번째 피해자가 될 사람들이다. 학자금 대출 금리가 말도 못하게 올랐다는 것은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주택 가격 버블이 빠진 후의 한국 경제는, 현재의 금리 인상과 맞물려, 정말 우려된다.

2008-08-07

대화와 소통과 자치공간



오늘자 경향신문에 실린 칼럼, "겁먹은 20대와 '쇼크 독트린'"은 기본적으로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에서 출발하고 있다. '쇼크 독트린'은 비단 20대에 대해서만 적용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가까운 예로, 서울 시내 한복판에 컨테이너 박스로 장벽을 쳐버리는 그것 또한, 일종의 '충격 요법'인 셈이다. 방패로 땅을 찍고 구호를 외치면서 달려드는 전경들 또한 시민들의 공포심을 자극하기 위한 기제이다.

20대들이 '정보'와 '소통'으로 '쇼크 독트린'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대화와 사색을 위한 공간과 시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하지만 기업들이 세워주는 으리으리한 건물에는 자치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과거의 대학생과 현재의 대학생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차이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그들에게는 최소한의 자치공간이 있었지만, 지금의 대학생들에게는 몸을 누이고 책을 읽고 토론할 수 있는 한 뼘의 공간이 없다. 예전에는 세미나실에 모여서 그냥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지만, 지금은 스타벅스에서 4800원짜리 까페라떼를 주문하거나 토즈 등 공간을 빌려주는 업체를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또 돈이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 "겁먹은 20대와 '쇼크 독트린'"(경향신문, 2008년 8월 7일)에 대한 코멘트를 이 게시물에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대화와 소통과 자치공간



오늘자 경향신문에 실린 칼럼, "겁먹은 20대와 '쇼크 독트린'"은 기본적으로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에서 출발하고 있다. '쇼크 독트린'은 비단 20대에 대해서만 적용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가까운 예로, 서울 시내 한복판에 컨테이너 박스로 장벽을 쳐버리는 그것 또한, 일종의 '충격 요법'인 셈이다. 방패로 땅을 찍고 구호를 외치면서 달려드는 전경들 또한 시민들의 공포심을 자극하기 위한 기제이다.

20대들이 '정보'와 '소통'으로 '쇼크 독트린'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대화와 사색을 위한 공간과 시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하지만 기업들이 세워주는 으리으리한 건물에는 자치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과거의 대학생과 현재의 대학생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차이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그들에게는 최소한의 자치공간이 있었지만, 지금의 대학생들에게는 몸을 누이고 책을 읽고 토론할 수 있는 한 뼘의 공간이 없다. 예전에는 세미나실에 모여서 그냥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지만, 지금은 스타벅스에서 4800원짜리 까페라떼를 주문하거나 토즈 등 공간을 빌려주는 업체를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또 돈이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 "겁먹은 20대와 '쇼크 독트린'"에 대한 코멘트를 이 게시물에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2008-08-04

2008 펜타포트 후기

7월 26, 27일 이틀에 걸쳐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약 한 달 넘도록 주말이 되면 폭우가 쏟아지는 날씨가 반복되고 있다. 지난 주말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와 동행인은 약수역에서 오후 3시 경에 출발하여, 저녁 7시가 넘어서 공연장에 도착했다. 공연장 바깥에는 이미 장화와 비옷과 암표를 파는 상인들이 군데군데 서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펜타포트 1회 당시 얼마나 공연장 상황이 좋지 않았는지를 이미 들은 터라, 낚시의자와 슬리퍼로 대비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려가 앞섰다.

한철 특수를 노리는 숙박업소에 다소 비싼 값을 주고 짐을 내려놓은 다음, 역시 비싼 가격으로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한 후, 공연장에 들어갔다. 물빠짐이 좋지 않고, 주차장에 쓰는 자갈을 뿌려놓긴 했지만 본디 흙바닥인지라, 폭우가 쏟아지고 난 후의 모습은 갯뻘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메인 공연이 열리는 큰 무대까지 가는 일부터가 쉽지 않았다.

펜타포트에는 '좌석' 따위가 없다. 기본적으로 스탠딩 공연인지라, 서서 볼 사람들은 계속 서서 보고, 앉고 싶은 사람은 알아서 뭐라도 깔고 앉거나 해야 하는 방식이다.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내 동행인은 공연 시작 이틀 전 대형 낚시의자를 주문했고, 덕분에 우리는 엉덩이를 적시지 않고 앉을 수 있었다. 그러나 'Next Stage 자우림'이라는 전광판 문구를 보는 순간 나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언제적 자우림인데 아직도 이런 큰 무대에 불러준단 말인지, 한국 음악계의 세대 교체, 혹은 중견 밴드들의 자기 혁신이 이렇게 모자란 것인지, 등등을 고뇌하고 있는 동안 자우림이 무대 세팅을 마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도 fan이거든요!'(f 발음을 강조하며)라고 외친 후 '팬이야'를 불렀는데, 관객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관중들에게 소리를 질러달라고 한 후 오른손을 두 바퀴 돌려서 귀에 대고 왼손을 옆구리에 갖다붙일 때, 나는 내가 왜 김윤아를 싫어하는지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분명 김윤아는 재능 있고 비주얼도 어느 정도 갖춘 드문 여가수이지만, 예쁜척하느라 인생을 너무 낭비하고 있다.

자우림의 나머지 세 명에 대해서도 그날 대대적인 평가절하가 이루어졌다. 리더, 이름이 뭐더라, 아무튼 '안녕하세요, 퍼킹 자우림입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신곡 소개한다고 자꾸 모르는 노래만 하죠, 씨팔 존나 재미없게'라고 쿨한 척 하는 모습이 유독 눈에 거슬렸다. 고등학교 밴드부가 여고 가서 할 때나 써먹을법한 멘트를, 내가 왜 이 진창 속에서 인천 송도까지 와서 듣고 있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앵콜로 '헤이 헤이 헤이'와 '일탈'을 부르는 것도 나름 안습이라면 안습이다. 자우림의 전성기는 자우림 1집, 이 잔인한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90년대 소녀 감수성은 제발 좀 버려라.

트래비스가 나올 때까지 나와 동행인은 정신을 놓고 있었다. 원거리 여행의 피로와, 그 엄청난 습기, 더위, 벌레는 별로 없었지만 저 멀리 화장실에서 느껴지는 향기, 등등을 전부 견뎌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트래비스만이 희망이었고, 그 희망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았다.

세 번째 노래 'Writing to Reach You'가 나올때부터 관객들의 분위기는 본격적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트래비스 특유의 기타 사운드가 갖는 서정성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은 라이브 무대에서, CD를 들을 때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만큼 락킹(Rocking)했다.

흔히들 '떼창'이라 부르는 노래 따라부르기 속에 내 목소리도 한 줄기 들어간다는 사실이 이토록 뿌듯할 수가 없었다. 'Closer'를 부를 때가 절정이었고, 앵콜곡 'Why Does It Always Rain On Me?'가 나올 때 나와 친구와 모든 관객들은 모든 것을 잊고 깡총거리며 하나가 되어 있었다. 트래비스 공연에 대해 더 이상 무엇을 말하랴. 당시 현황을 담은 영상으로 그리움을 달래본다.


Closer, Travis, at Pentaport 2008



Why Does It Always Rain On Me?, Travis, at Pentaport 2008


숙소에서 나와 친구는 다음날 메인 무대를 장식할 언더월드의 노래 몇 개, 카사비안의 곡 몇 개를 예습하며 내일을 기약했다. 2박 3일 공연의 첫째 날과 둘째 날의 절반을 포기한 만큼, 마지막 날은 최선을 다해서 축제에 참여해야 했다. 해가 뜨고 날이 밝았다. 작정하고 나와 점심을 비싸고 맛있게 먹은 다음 공연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밤새 비가 더 오지 않았고, 햇살이 쨍하게 내리쬐어 땅이 적당히 굳어가고 있던 차였다.



송도의 꽃게탕



낚시의자에 앉아 현장을 지휘하고 있는 것처럼 보임


순서도에 따라 여러 밴드가 무대를 장식했는데, 그 중 '오브라더스'가 인상적이었다. 그 밴드의 본명은 '오르가즘 브라더스'지만, 대외적으로 볼 때 현명한 선택이 아닐 것이라는 판단 하에 '오브라더스'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낸다. 물론 스스로를 소개할 때에는 자신들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본명을 쓰는 그들은, 이름에 걸맞게 대놓고 엉큼하고 음탕한 가사의 로큰롤을 딱 50년대 필로 풀어내고 있었다.

무대 인사를 하는 방식도 눈여겨볼만 했다. '오르가즘 브라더스입니다. 오르가즘 브라더스는 로큰롤 밴드입니다'가 첫 인사의 전부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커져버린, 갑자기 커져버린, 갑자기 커져버린 좆" 이라는 가사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 노래를 부르기 전이었나 부른 다음이었나, 관중들을 바라보며 '로큰롤 별거 없습니다, 그저 좆!'이라는 맨트를 '나는 한국인입니다'라고 선서하는 듯한 말투로 내뱉었다. 관객석은 쏟아지는 햇볕보다 뜨거웠다.

그리고 하드 파이가 나왔는데, 그냥 내 감상으로는 명성에 비해 좀 약하다는 느낌이었다. 오브라더스의 해괴망측한 흥겨움을 지워버리기에는 약했다는 뜻이다. 내가 그들에게서 너무 큰 감명을 받아서일 수도 있으니, 이건 그냥 취향 문제일 듯하다. 다음 스테이지는 델리 스파이스. 아주 오래간만에 무대에 섰던 델리 스파이스는 녹슬지 않는 실력을 보여주었다. '고백'을 오래간만에 그것도 라이브로 들으니 정말 짠한 기분이 들었고, 앵콜송 '차우차우'도 부르고 다 좋았는데, 갑자기 기타를 부수겠다고 나선 것도 그렇거니와 잘 부수지도 못해 몇 번씩 땅바닥에 내리치는 모습은 보기 딱할 지경이었다.

이제 해가 많이 기울어 땅거미가 기웃기웃해지는 시간. 아직 무대 위로 떠있는 태양이 눈부시긴 하지만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 그리고 조금만 더 참으면 카사비안이 나온다. 카사비안이 나왔다. 이건 정말이지, 맥주 마시면서 축구 보다가 주먹질하는 청년들을 위한 락이다. 안타깝게도 한국 무대 실황을 편집한 영상을 발견할 수는 없지만, 이 영상을 보면 분위기가 어땠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위의 것을 먼저 보고 아래 영상을 보면 충분히 상상이 간다.


Shoot the Runner, Kasabian, at T in the Park 2007



LSF, Kasabina, at T in the Park 2007



Shoot the Runner, Kasabian, at Pentaport 2008



문제는 이들이 공연하는 가운데 사운드 트러블이 있었다는 것. 보컬과 드러머가 몇 번씩 제스춰를 취했는데 문제가 원활하게 해결되지 않아, 급기야 드러머가 스틱을 뒤로 던져버리는 일까지 발생했다. 다행히도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 속에 복귀하여 앵콜 송을 불렀지만, 다소 개운치 못한 기분이 든 것이 사실이다.

최종적인 무대는 이례적으로 테크노 그룹인 언더월드의 것이었는데, 정말이지 짜릿하면서도 동시에 신선한 자극이 되는 그런 공연이었다. 그들은 음악을 하면서 동시에 비디오아트를 선사하고, 심지어는 설치미술까지 동원하는 그런 총체적 예술의 한 형태를 제시했다. 눈과 귀와 몸이 이토록 동시에 즐겁고 짜릿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공연 중간에 무대에 설치한 초대형 형광봉. 치킨집 개업할 때 쓰는 대형 비닐 풍선 속에 전구를 설치하여 다양한 색깔을 낼 수 있도록 했다. 중간에 모양도 한 번 바꿔가며 완벽한 무대를 연출해냈다.


숙박업체에 바가지 요금을 내는 것보다, 차라리 택시를 콜로 불러서 타고 장거리를 뛰는 편이 더 싸다는 판단에 다다른 우리는, 미리 계획했던대로 택시 회사에 전화를 걸어 인천에서 서울로 향하는 먼 길에 올랐다. 모든 것을 잊고 행복하게 분출할 수 있었던 이틀이었지만, 그것이 방금 끝났다는 사실은 더욱 강하게 그와 나를 엄습해왔다. 온 몸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고 머리는 아직도 강렬한 사운드의 여파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듯 웅웅거렸다.

차에서 내리고 나서야 비로소 촛불집회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낼 수 있었다. 어젯밤부터 우리는 알고 있었다. 40여명이 연행되었고 경찰은 더욱 매몰차게 시위대를 몰아붙이고 있으며, 선거전은 '근소한 우세' 속에 일부 신문 매체의 집중 포화 속에 힘겹게 치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그 진짜 축제의 장에서, 민주주의가 어쩌고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다 아니다 노래를 부르고 있던, 대책회의가 주관하던 어설픈 '축제'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잊기 위해 더욱 미친듯이 뛰고 소리지르고 몸을 흔들었다. 하지만 축제는 어디까지나 축제일 뿐이며, 현실은 엄연히 우리가 떠나기 전의 그 모습 그대로 검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그때는 교육감 선거에 질 거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고 있었고, 체포전담조가 구성되어 투입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 다음주 토요일인 8월 2일, 비옷을 뚫을 듯 쏟아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나는 '집회를 축제의 장으로' 라고 함부로 떠들던 그런 이들에 대한 새삼스러운 분노를 느꼈다. 그들은 진짜 축제가 뭔지도 모르고, 진짜 축제에서는 놀 줄도 모르는 주제에, 집회의 힘을 소진시키기만 했구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화가 났다. 내가 청계천의 구멍가게에서 노란 비옷을 사서 입고 있는 동안, 친구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또한 많이 지친 모습이었다. 내 머리를 쓰다듬는 그를 바라보며, 나는, 웃으며, 속으로 말했다.

그래 씨발, 놀 때 놀고 할 때 해야지 뭐.

2008 펜타포트 후기

7월 26, 27일 이틀에 걸쳐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약 한 달 넘도록 주말이 되면 폭우가 쏟아지는 날씨가 반복되고 있다. 지난 주말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와 동행인은 약수역에서 오후 3시 경에 출발하여, 저녁 7시가 넘어서 공연장에 도착했다. 공연장 바깥에는 이미 장화와 비옷과 암표를 파는 상인들이 군데군데 서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펜타포트 1회 당시 얼마나 공연장 상황이 좋지 않았는지를 이미 들은 터라, 낚시의자와 슬리퍼로 대비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려가 앞섰다.

한철 특수를 노리는 숙박업소에 다소 비싼 값을 주고 짐을 내려놓은 다음, 역시 비싼 가격으로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한 후, 공연장에 들어갔다. 물빠짐이 좋지 않고, 주차장에 쓰는 자갈을 뿌려놓긴 했지만 본디 흙바닥인지라, 폭우가 쏟아지고 난 후의 모습은 갯뻘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메인 공연이 열리는 큰 무대까지 가는 일부터가 쉽지 않았다.

펜타포트에는 '좌석' 따위가 없다. 기본적으로 스탠딩 공연인지라, 서서 볼 사람들은 계속 서서 보고, 앉고 싶은 사람은 알아서 뭐라도 깔고 앉거나 해야 하는 방식이다.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내 동행인은 공연 시작 이틀 전 대형 낚시의자를 주문했고, 덕분에 우리는 엉덩이를 적시지 않고 앉을 수 있었다. 그러나 'Next Stage 자우림'이라는 전광판 문구를 보는 순간 나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언제적 자우림인데 아직도 이런 큰 무대에 불러준단 말인지, 한국 음악계의 세대 교체, 혹은 중견 밴드들의 자기 혁신이 이렇게 모자란 것인지, 등등을 고뇌하고 있는 동안 자우림이 무대 세팅을 마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도 fan이거든요!'(f 발음을 강조하며)라고 외친 후 팬이야를 불렀는데, 관객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관중들에게 소리를 질러달라고 한 후 오른손을 두 바퀴 돌려서 귀에 대고 왼손을 옆구리에 갖다붙일 때, 나는 내가 왜 김윤아를 싫어하는지 새삼스래 깨닫게 되었다. 분명 김윤아는 재능 있고 비주얼도 어느 정도 갖춘 드문 여가수이지만, 예쁜척하느라 인생을 너무 낭비하고 있다.

자우림의 나머지 세 명에 대해서도 그날 대대적인 평가절하가 이루어졌다. 리더, 이름이 뭐더라, 아무튼 '안녕하세요, 퍼킹 자우림입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신곡 소개한다고 자꾸 모르는 노래만 하죠, 씨팔 존나 재미없게'라고 쿨한 척 하는 모습이 유독 눈에 거슬렸다. 고등학교 밴드부가 여고 가서 할 때나 써먹을법한 멘트를, 내가 왜 이 진창 속에서 인천 송도까지 와서 듣고 있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앵콜로 헤이 헤이 헤이와 일탈을 부르는 것도 나름 안습이라면 안습이다. 자우림의 전성기는 자우림 1집, 이 잔인한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90년대 소녀 감수성은 제발 좀 버려라.

트래비스가 나올 때까지 나와 동행인은 정신을 놓고 있었다. 원거리 여행의 피로와, 그 엄청난 습기, 더위, 벌레는 별로 없었지만 저 멀리 화장실에서 느껴지는 향기, 등등을 전부 견뎌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트래비스만이 희망이었고, 그 희망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았다.

세 번째 노래 Writing to Reach You가 나올때부터 관객들의 분위기는 본격적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트래비스 특유의 기타 사운드가 갖는 서정성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은 라이브 무대에서, CD를 들을 때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만큼 락킹(Rocking)했다.

흔히들 '떼창'이라 부르는 노래 따라부르기 속에 내 목소리도 한 줄기 들어간다는 사실이 이토록 뿌듯할 수가 없었다. Closer를 부를 때가 절정이었고, 앵콜곡 Why Does It Always Rain On Me?가 나올 때 나와 친구와 모든 관객들은 모든 것을 잊고 깡총거리며 하나가 되어 있었다. 트래비스 공연에 대해 더 이상 무엇을 말하랴. 당시 현황을 담은 영상으로 그리움을 달래본다.


Closer, Travis, at Pentaport 2008



Why Does It Always Rain On Me?, Travis, at Pentaport 2008


숙소에서 나와 친구는 다음날 메인 무대를 장식할 언더월드의 노래 몇 개, 카사비안의 곡 몇 개를 예습하며 내일을 기약했다. 2박 3일 공연의 첫째 날과 둘째 날의 절반을 포기한 만큼, 마지막 날은 최선을 다해서 축제에 참여해야 했다. 해가 뜨고 날이 밝았다. 작정하고 나와 점심을 비싸고 맛있게 먹은 다음 공연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밤새 비가 더 오지 않았고, 햇살이 쨍하게 내리쬐어 땅이 적당히 굳어가고 있던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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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도에 따라 여러 밴드가 무대를 장식했는데, 그 중 오브라더스가 인상적이었다. 그 밴드의 본명은 '오르가즘 브라더스'지만, 대외적으로 볼 때 현명한 선택이 아닐 것이라는 판단 하에 '오브라더스'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낸다. 물론 스스로를 소개할 때에는 자신들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본명을 쓰는 그들은, 이름에 걸맞게 대놓고 엉큼하고 음탕한 가사의 로큰롤을 딱 50년대 필로 풀어내고 있었다.

무대 인사를 하는 방식도 눈여겨볼만 했다. '오르가즘 브라더스입니다. 오르가즘 브라더스는 로큰롤 밴드입니다'가 첫 인사의 전부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커져버린, 갑자기 커져버린, 갑자기 커져버린 좆" 이라는 가사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 노래를 부르기 전이었나 부른 다음이었나, 관중들을 바라보며 '로큰롤 별거 없습니다, 그저 좆!'이라는 맨트를 '나는 한국인입니다'라고 선서하는 듯한 말투로 내뱉었다. 밴드는 시큰둥한 듯한 태도를 유지했지만, 관객석은 쏟아지는 햇볕보다 뜨거웠다.

그리고 하드 파이가 나왔는데, 그냥 내 감상으로는 명성에 비해 좀 약하다는 느낌이었다. 오브라더스의 해괴망측한 흥겨움을 지워버리기에는 약했다는 뜻이다. 내가 그들에게서 너무 큰 감명을 받아서일 수도 있으니, 이건 그냥 취향 문제일 듯하다. 다음 스테이지는 델리 스파이스. 아주 오래간만에 무대에 섰던 델리 스파이스는 녹슬지 않는 실력을 보여주었다. 고백을 오래간만에 그것도 라이브로 들으니 정말 짠한 기분이 들었고, 앵콜송 차우차우도 부르고 다 좋았는데, 갑자기 기타를 부수겠다고 나선 것도 그렇거니와 잘 부수지도 못해 몇 번씩 땅바닥에 내리치는 모습은 보기 딱할 지경이었다.

이제 해가 많이 기울어 땅거미가 기웃기웃해지는 시간. 아직 무대 위로 떠있는 태양이 눈부시긴 하지만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 그리고 조금만 더 참으면 카사비안이 나온다. 카사비안이 나왔다. 이건 정말이지, 맥주 마시면서 축구 보다가 주먹질하는 청년들을 위한 락이다. 안타깝게도 한국 무대 실황을 편집한 영상을 발견할 수는 없지만, 이 영상을 보면 분위기가 어땠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위의 것을 먼저 보고 아래 영상을 보면 충분히 상상이 간다.


Shoot the Runner, Kasabian, at T in the Park 2007


LSF, Kasabina, at T in the Park 2007


Shoot the Runner, Kasabian, at Pentaport 2008


문제는 이들이 공연하는 가운데 사운드 트러블이 있었다는 것. 보컬과 드러머가 몇 번씩 제스춰를 취했는데 문제가 원활하게 해결되지 않아, 급기야 드러머가 스틱을 뒤로 던져버리는 일까지 발생했다. 다행히도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 속에 복귀하여 앵콜 송을 불렀지만, 다소 개운치 못한 기분이 든 것이 사실이다.

최종적인 무대는 이례적으로 테크노 그룹인 언더월드의 것이었는데, 정말이지 짜릿하면서도 동시에 신선한 자극이 되는 그런 공연이었다. 그들은 음악을 하면서 동시에 비디오아트를 선사하고, 심지어는 설치미술까지 동원하는 그런 총체적 예술의 한 형태를 제시했다. 눈과 귀와 몸이 이토록 동시에 즐겁고 짜릿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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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업체에 바가지 요금을 내는 것보다, 차라리 택시를 콜로 불러서 타고 장거리를 뛰는 편이 더 싸다는 판단에 다다른 우리는, 미리 계획했던대로 택시 회사에 전화를 걸어 인천에서 서울로 향하는 먼 길에 올랐다. 모든 것을 잊고 행복하게 분출할 수 있었던 이틀이었지만, 그것이 방금 끝났다는 사실은 더욱 강하게 그와 나를 엄습해왔다. 온 몸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고 머리는 아직도 강렬한 사운드의 여파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듯 웅웅거렸다.

차에서 내리고 나서야 비로소 촛불집회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낼 수 있었다. 어젯밤부터 우리는 알고 있었다. 40여명이 연행되었고 경찰은 더욱 매몰차게 시위대를 몰아붙이고 있으며, 선거전은 '근소한 우세' 속에 일부 신문 매체의 집중 포화 속에 힘겹게 치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그 진짜 축제의 장에서, 민주주의가 어쩌고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다 아니다 노래를 부르고 있던, 대책회의가 주관하던 어설픈 '축제'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잊기 위해 더욱 미친듯이 뛰고 소리지르고 몸을 흔들었다. 하지만 축제는 어디까지나 축제일 뿐이며, 현실은 엄연히 우리가 떠나기 전의 그 모습 그대로 검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그때는 교육감 선거에 질 거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고 있었고, 체포전담조가 구성되어 투입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 다음주 토요일인 8월 2일, 비옷을 뚫을 듯 쏟아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나는 '집회를 축제의 장으로' 라고 함부로 떠들던 그런 주둥이들에 대한 새삼스러운 분노를 느꼈다. 그들은 진짜 축제가 뭔지도 모르고, 진짜 축제에서는 놀 줄도 모르는 주제에, 집회의 힘을 소진시키기만 했구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화가 났다. 내가 청계천의 구멍가게에서 노란 비옷을 사서 입고 있는 동안, 친구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또한 많이 지친 모습이었다. 내 머리를 쓰다듬는 그를 바라보며, 나는, 웃으며, 속으로 말했다.

그래 씨발, 놀 때 놀고 할 때 해야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