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9-28

중산층을 위한 감세 정책

middle class라는 단어의 번역어를 '중산층'으로 할 것인가 '중간계급'으로 할 것인가는 이 논쟁에서 쟁점이 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아무튼 그 번역된 단어가 대한민국의 상위 2~5%에 속하는 강남 거주자들에게 적용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그리고 그것을 '잘~ 하는 짓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풍자'로서 적합한가, 그런 담론적 전략에 대해 재고찰을 요구하는 것이 타당한가 그렇지 않은가 등이 될 것이다.

이 모든 논점들에 대해 하나씩 대답하기에 앞서, 비슷한 차원의 '중산층을 위한 감세' 논쟁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은 금융 위기 때문에 쟁점에서 빗겨나 버렸지만, 오바마와 매케인은 부시의 대규모 감세안을 유지할 것인가 폐기할 것인가를 놓고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오바마는 부시의 감세안을 원점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했고, 매케인은 후보가 되기 전까지는 오바마와 같은 입장이었지만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지명된 후에는 부시 감세안을 유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거기서 매케인이 사용하는 수사법 또한 'middle class'를 위해 감세안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산층의 기준선을 어디로 잡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오바마는 연봉 15만 달러 이하, 한국돈으로 (지금은 말이 안 되지만, 그래도 대강 1달러당 1000원으로 잡았을 때) 1억 5천만원 이하의 소득을 얻는 사람들이 middle class라고 보고, 그보다 많이 버는 사람들에 대한 세율을 다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매케인은 "5백만 달러?"라고 농담을 했다가, 자신이 그 누구의 세금도 올리지 않을 거라며 어려운 주장을 회피했다.

여기서 우리는 이 논쟁과 한국에서 벌어지는 '중산층' 논쟁의 유사성을 즉각 확인할 수 있다. 지난번에 내가 인용한 기사에서 나오는 바와 같이, "근로소득세 과세표준 8800만원은 총급여가 1억 2000~1억 3000만원에 달해야 나올 수 있는 수치"이기 때문이다. 즉 오바마와 강만수는 같은 지점에서 전혀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middle class'라는 어휘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상류층 중 하위층이 자신을 'middle class'라고 주장하는 현상은 동일하게 발견된다. 폴 크루그먼의 8월 22일 칼럼인 "Now That's Rich"의 일부를 인용해보자.

When we think about the middle class, we tend to think of Americans whose lives are decent but not luxurious: they have houses, cars and health insurance, but they still worry about making ends meet, especially the time comes to send the kids to college.

Meanwhile, when we think about the rich, we tend to think about the handful of people who are really, really rich -- people with servants, people with so much money that, like Mr. McCain, they don't know how many houses they own. (Remember how Republicans jeered at John Kerry for being too rich?)

The trouble with Mr. Warren's question was that it seemed to imply that everyone except the poor belongs to one of these two categories: either you're clearly rich, or you're an ordinary member of the middle class. And that's just wrong.

우리는 중산층을 사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사치스럽게 살지는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집, 차, 건강 보험을 가지고 있지만, 특히 자녀들을 대학에 보내야 할 때 돈 걱정을 하게 되는 사람들 말이다.

반면 우리는 극소수의 매우 매우 부유한 사람들만을 부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인을 부리고, 자신이 몇 채의 집을 가졌는지도 모르는 존 매케인처럼 돈이 많은 그런 사람들 말이다. (공화당원들이 존 케리가 너무 부자라는 이유로 얼마나 비난을 퍼부었는지 기억하는가?)

워렌 목사의 질문에 담긴 문제는 빈곤층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단지 두 부류로 나누어지는 것같은 함의를 품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명백하게 부자가 아니라면, 당신은 평범한 중산층의 일원이다. 이건 잘못된 생각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미국에서 현재 통용되는 영어 맥락에서, middle class의 번역어는 '중산층'이며, 그것은 전혀 '쁘띠 부르주아'라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지 않다(물론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쁘띠 부르주아에 속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중산층'이라 칭함으로써 개념의 혼돈을 야기하고 있기는 하다). 둘째, 인용문에서 말하는 middle class를 '중간계급'으로 바꿔도, 뭔가 어색하긴 하지만 글을 이해하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오히려 '사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사치스럽게 살지는 못하는', '자녀들을 대학에 보낼 때 돈 걱정을 하게 되는 사람들'을 중간계급이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도 타당한 일처럼 보인다.

따라서 나는 middle class의 번역어를 '중간계급'으로 쓰자는 주장까지는 이택광님의 글에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1억 2000만원보다 '많이' 버는 사람들을 중산층이라고, 즉 중간계급이라고 간주하는 강만수의 주장에 대한 '풍자'가 그 글의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오히려 그는 "한국 사회에는 중간계급에 속하지 못하면서도 중간계급 의식을 소유한 '서민들'이 참으로 많다.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감세정책에 대한 지지가 높다는 건 이를 반증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세표준 8800만원 이하인 사람들은, 이택광 스스로는 뭐라고 '풍자'를 하고 있건, 이택광과 강만수 양자에 의해 '중산층 혹은 중간계급이 아님'이라는 판정을 받은 것이다.

내 논지를 이해하지 못하시는 분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중산층이라는 단어가 워낙 복잡한 맥락에서 사용되고 있으니, 차라리 '중산층'을 이명박이 말하는 그것으로 설정하고 대신 '서민'을 강조하자'. 문제는 그 '중산층'이, 그렇게 되면 결코 'middle class'의 번역어로 작동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폴 크루그먼의 칼럼으로 돌아가보자.

In his entertaining book “Richistan,” Robert Frank of The Wall Street Journal declares that the rich aren’t just different from you and me, they live in a different, parallel country. But that country is divided into levels, and only the inhabitants of upper Richistan live like aristocrats; the inhabitants of middle Richistan lead ample but not gilded lives; and lower Richistanis live in McMansions, drive around in S.U.V.’s, and are likely to think of themselves as “affluent” rather than rich.

Even these arguably not-rich, however, live in a different financial universe from that inhabited by ordinary members of the middle class: they have lots of disposable income after paying for the essentials, and they don’t lose sleep over expenses, like insurance co-pays and tuition bills, that can seem daunting to many working American families.

그의 재미있는 저서 "리치스탄"에서, 월스트리트 저널의 로버트 프랭크는 부자들이 나와 당신과 다른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평행 우주에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나라는 몇 개의 층으로 나위어 있고, 오직 상위 리치스탄에 사는 사람들만이 귀족처럼 산다. 중위 리치스탄에 사는 사람들은 넘쳐나는 부를 가지고 있지만 금박 입혀진 인생은 아니며, 하위 리치스타니안들은 맥맨션에 살고, S.U.V.를 몰며, 자신들이 부유하다기보다는 그저 "살만하다"고 여긴다.

이러한 논쟁의 여지가 있는 '부자 아닌 사람들'도, 그러나, 중산층의 평범한 구성원들과는 완전히 다른 금융 우주에서 살고 있다. 그들은 반드시 필요한 지출을 하고도 사용할 수 있는 다수의 수입원을 가지고 있으며, 다수의 일하는 미국 가정들을 괴롭히는 보험금 납입이나 수업료 등으로 인해 잠 못 이루지도 않는다.


하지만 매케인이 주장하는 바 부시의 감세안을 유지하는 것은, 바로 이렇듯 '하위 리치스타니안'들에게서 세금을 걷지 않는 대신, 중산층과 빈곤층에게 그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폴 크루그먼은 주장하고 있다. 요컨대 '교양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현대 미국 영어'에서 'middle class'는 우리가 아는 '중간 소득을 버는 사람들'이지 '쁘띠 부르주아'가 아니다. 적어도 폴 크루그먼은 그 구분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입장에 서고 있고, 반면 존 매케인과 그 선거본부는, 마치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것과도 같은 '중산층' 논쟁을 벌여 하위 리치스타니안들의 호주머니를 불려줄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적 차이를 도표로 그려보자.

폴 크루그먼

존 매케인

강만수

노정태

상위 리치스탄

부자

부자

부자

하위 리치스탄

중산층

중산층

(강남)쁘띠

중산층

중산층

서민

중산층

빈곤층

빈곤층

빈곤층

빈곤층




이제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도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본다. 나는 '하위 리치스탄'의 한국 버전에 해당하는 강남의 아파트 부자들을 '중산층' 대신 '쁘띠 부르주아'라고 직설적으로 부르자고 주장하고 있다(좋은 욕 놔두고 어렵게 말할 필요가 뭐가 있나). 그럼으로써 우리는 이명박 정부의 '중산층을 위한 감세 정책'이라는 말이 전적으로 허위의 것임을 드러낼 수 있고, 동시에 '서민'이라는 단어가 야기하는 개념적 혼동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한편 존 매케인은 중산층의 범위를 하위 리치스탄까지 확대함으로써, 리치스타니안을 위한 감세안이 마치 진짜 중산층과 서민층에게까지 이익이 되는 것처럼 호도한다(주어를 이명박이나 강만수로 바꾸어도 큰 무리가 없다).

나는 이택광이 '풍자'를 통해 택하는 담론적 전략이 그다지 현명한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 이유야 도표를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이택광과 같이, 엄연히 middle class의 번역어인 중산층을 하위 리치스타니안의 자리에 분류하고, '한국에서 중산층이라는 게 그렇지'라고 냉소하는 전략을 택한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우리는 결코 한국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세계 제1의 군사, 경제대국에서 벌어지는 논쟁과 보조를 맞추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거나 할 수 없고, 도리어 '서민'이라는 막연한 단어 안에 포함되어버리는 또 다른 개념적 혼돈과 맞닥뜨려야만 한다.

서민과 중산층, 중간계급의 구분으로 넘어가보면 개념적 혼돈은 한층 더 심화된 양상을 보인다. 만약 한윤형이 지난 글의 리플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대충 '중산층'='쁘띠 부르주아'의 번역어구요. '중간층'은 '미들 클래스'의 번역어"라고 하면, 이택광이 말하는 '서민'이야말로 '중간계급'이 될 것이고, 중산층은 중산층의 위치를 그대로 지키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분명히 이택광은 '중간계급'을 '중산층'의 대체어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부유층-중산층-중간계급-빈곤층'으로 사회 계층 구도를 보고 있다고 할 수도 없다. 한윤형은 이택광을 옹호하겠다는 건가 옹호하지 않겠다는 건가?

나는 한국 사회의 '좌파'들이 대체 '중산층'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해왔는지, 그 속에서 어떤 쟁점을 어떻게 잡아왔는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그리 큰 관심도 가지고 있지 않다. ('중산층'이라는 단어에 대해 강력한 혐오를 보이는 것은, 그것이 '노동자' 내지는 '민중'과 친화성이 없는 어휘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볼 뿐이다. 하지만 내가 인용한 프레시안 기사만 봐도 알 수 있다시피, '중산층'이라는 단어를 '쁘띠 부르주아'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일반적인 용법에서 벗어난다. 문제는 그 방언 집단이, 하나는 이명박의 경제팀이고, 또 다른 하나는 '좌뇌와 우뇌가 고루 발달'한 '좌파'들이라는 것이다.)

이미 상대방이 설정해놓은 개념적인 틀거리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은 전략적으로 현명하지 않은 선택이며, 특히 '한국에서만은 '쁘띠 부르주아'가 '중산층'이고 'middle class'의 번역어는 '서민'이다'라는 용어표를 만들어내는 것은 국제적으로 고립만을 자처하는 더욱 어리석은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나는 '폴 크루그먼이 부시의 감세 정책을 비판하듯, 그것은 중산층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할 수 있다. 이택광과 한윤형은 훨씬 더 멀고 어려운 길을 돌아가야만 할 것이다. 서로 열심히 '풍자'해가며 그 고단함을 이겨내시길 희망한다.

댓글 20개:

  1. 음, 역시 개념설정의 문제가 좀 중요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강만수의 "서민" 개념은 노정태님의 "중산층"개념에 넣기에도 좀 애매한 면이 많지 않나요? 워낙 그쪽 인간들이 단어를 왜곡되고 광범위하게 써놔서...

    그리고 요즘상황처럼 양극화가 심해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중간자산층"이라는 의미에서의 "중산층"이 얼마나 적확한 말일지는 조금 의문입니다. 인구의 중간을 자르면 그 사람들이 중간자산층이라고 말하기 힘들테고, 경제수준의 중간을 자르면, 하위리치스탄쯤에 걸릴거 같단 말이지요... (물론 이것은 통계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만) 차라리 요즘 모 책에 나오는 방식처름 1,2,3... 등으로 재구분하는게 효율적일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우석훈님이 88만원세대라는 말을 만들어 먹혔듯이, 차라리 새로운 개념어로 들고나오는 게 효율적일수도 있지않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전 부동산 5계급인가 그렇더군요 ㅋ -_-)

    답글삭제
  2. 탄탄한 논리 구성이 돋보이는 글입니다.
    결국 작금에 부딪히고 있는 상황을 일종의 '프레임 전쟁'의 측면에서 '본다면', 결국 "무엇이 효과적인 대응 전략이냐?"가 초점이 되겠지요.
    그리고 이런 글에 대한 논평의 초점도 밑에 한윤형씨 글처럼 '네 전략만 잘났냐, 태도를 똑바로 해라' 식의 비생산적인 코멘트가 아니라, 그 전략적 우위성에 대해 다 함께 검토해 보는 것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적어도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전략이 다른 이의 전략보다 낫다고 일단 주장할 특권이 있습니다. 일단 자기 주장을 펼친 여러 사람의 글을 보고 나서 그것을 평가하는 것은 이런 글을 읽는 식자층의 몫이겠지요.
    여담이지만 저는 '프레임 전쟁'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등의 번역된 책 등에 의해 촉발된 '프레임 전쟁'염두에 두기라는 유행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것은 일종의 언발에 오줌누기식 조삼모사고, 결국 안정적인 변화는 훨씬 더 중층적인 대중의 '자기 교육'이 동반되는 구조를 구축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여기서 초점이 되는 측면에서만 보자면 (A) 전략: 중산층의 개념에 대해 '풍자화'와 의미 가두기를 통해서 '폭로'를 한다, (B) 전략: 중산층의 개념을 재설정하고, 쁘띠 부르주아든 뭐든 대안적인 개념으로 이름을 선명하게 붙인다, 이 두가지가 있습니다.
    이 (A) (B) 두 전략 결국 추구하는 바는 같다고 하겠습니다. 즉, "일년에 1억을 넘게 버는 사람들은" (1) 다른 사회구성원들의 이해관계를 '대표'하거나 그 이해관계와 일치하는 지위에 있지 않고 오히려 (2) '지배계급 일구성원으로서 다른 사회구성원을 착취하는 사회적 위치'에 있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봅니다.
    결국 이 목표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달성하느냐가 초점이 되어야지, 어차피 아카데미즘의 개념이 아닌 '중산층' 자체의 의미정확성의 문제야 염두에 둘 바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중산층'이라는 의미를 둘러싼 현 사태 중 몇가지만 검토해 보지요.
    (1) '풍자'를 통해 '폭로'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중산층'이라는 의미는 '서민'이라는 의미와 밀접한 연상작용을 갖고 있다. 즉, '중산층'이라는 말을 써서 자기자신의 상류층 위주 정책을 방어하려는 사람이나, 그것을 공격하려는 사람이나 적어도 이제까지는 중산층이라는 단어가 지배계급의 일구성원으로서 인식되지 않는 의미와 연상성을 갖고 있다는 것은 공히 인정할 정도로 이 연접성은 광범위하다.
    (2) 한때 우리 사회에서는 하위계급조차도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인식할 정도로 중산층이라는 말은 지배계급의 의미와는 매우 동떨어져 있다. 말하자면, 남을 착취하지는 않으면서, 주류질서에 비추어 보아도 꿀리지 않는 지위를 의미하는 사회의 허리 같은 느낌이다.
    (3) 중산층이라는 용어는 그 한자의 의미 때문에 필연적으로 '중위소득' '중간값' '중간계급'을 연상시킬 수 밖에 없다.
    (4) 중산층이라는 말은 한마디로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5) 지배계급은 이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착취성'에 연막을 까려고 한다.
    (6) 이제서야 '중산층'이라는 말의 의미를 폭로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사회의 어생활은 너무나 비계획적이고 무질서하게 이루어져서 '의미 가두기'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 힘들다.
    (7) 이것은 다른 한편으로, 중산층의 '의미 제대로 설정하기'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것을 뜻한다.


    위와 같은 사실 인식들이 저는 보편적으로 공유될 수 있는 것, 즉 공지의 사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위와 같은 인정사실에 비추어 보면, 프레임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우선 의미가두기'는 그리 효과적인 전략이 되지 못합니다. 이는 '중산층'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지배계급의 프레임에 그대로 끌려갈 위험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의미 재설정'이 유의미한 효과를 낼 수도 없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 계급에 맞는 새로운 '이름 붙이기'는 사람들의 관심도 끌 수 있고, 인식 전환의 효과도 있을 것입니다. 이름을 붙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이 붙은 사회구성원들이 얼마나 소수인지 통계도 계속 반복적으로 인용하면서 말이죠. 소자본가, 쁘띠 부르주아... 그런 면에서 좀 이름이 입에 쫙쫙 달라붙지 못하는 맛이 있습니다. 이건 좀 생각해 봐야 겠습니다.

    그리고 '의미 가두기'를 통한 폭로 전략이나 '의미 재설정'을 통한 '새로운 이름 붙이기' 나 논리적으로는 양립 불가능하지만 어차피 진보 진영 이야기를 일사불란하게 전할 수 있는 네트워크도 없기 때문에 각자 자신이 접촉하는 대중에게 나름의 전략으로 임해도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노정태 씨 전략에 한 표를 주고 싶군요.

    그리고 맡에 한윤형씨의 에릭 올린 라이트는 좀 의미 없이 인용되었습니다. 라이트의 계급론은 '노동을 파는 사람'이 참 많다, 그들을 제외한 상류층이 중산층이다...이런 내용은 결코 아닙니다.

    답글삭제
  3. 이번 논쟁은 취지를 벗어난 중산층이라는 단어의 개념 정립으로 혼란스럽고 짜증이 났었지만, 어쨌거나 긴 댓글 열심히 다느라 노고를 아끼지 않은 분들 덕에 중산층이라는 단어의 개념은 확실히 정립되었네요. 노정태님의 위 도표는 중산층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에 대한 명징한 근거 자료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정부에서 내정하고 있던 의미는 엄청난 차이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진정한 중산층들은 그 사실을 간파하지 못한 채 끌려다녔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정말 억울하고 더 서글퍼지는 것은 너무 어렵다는 것입니다. 처음 이 논쟁의 시발이 된 댓글들을 보면서 부와 지식을 모조리 가진 자들이 장난질을 칠라치면 얼마든지 골수까지 빼먹혀도 모르겠구나 싶은 오싹함이 느껴지더군요.
    경제적으로도 지식적으로도 부족하다면 도대체 이눔의 세상에서 자신조차 정의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에 정말 슬퍼지는군요.

    답글삭제
  4. 위에 익명님이 잘 정리해주신 것 같네요. 저도 나름대로 정리를 해보면,

    1. 학술적으로 중산계급이 쁘띠 부르주아의 의미로 쓰이는 것은 사실이겠지요. 그게 좌파의 방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2. 엄밀하게는 한윤형님 말대로 중산계급과 중간계급을 구분하는 것이 좋겠죠. 설사 중산계급=쁘띠 부르주아가 좌파의 방언이라고 해도 지금까지 쓰여온 맥락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3. 그러나 대중적으로 저 두 용어가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바로 그러한 개념 혼동을 저쪽에서 악용하고 있다면, 노정태님 말대로 굳이 그 프레임 안에서 잘 되지도 않는 개념 교육(당신들은 서민이라고!)을 계속 고집할 필요는 없겠죠. 서민이 자신을 중산계급으로 생각하는 것은 허위의식 때문이라기보단 단순히 그 용어를 중간계급의 의미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산계급이란 게 그게 아닌데, 라고 얘기하는 건 뭘 좀 아는 사람들끼리의 학식 자랑이나 자조로 그치고 말 공산이 크겠죠. 그래서 전략을 수정하자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4. 한윤형님은 아마도 이택광님이 중산계급과 중간계급을 구분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한 듯 하군요. 이택광님은 한윤형님과는 다르게 중산계급 본연의 의미와 중간계급을 거의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는 것 같은데, 확실히 그런 의미의 중간계급은 중산계급이라는 용어보다 오히려 더 큰 오해를 대중에게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5. 언론에서는 이미 중산층과 중간층을 별 구분없이 취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강만수와 같은 사람들이 '중산층을 위한 정책'을 얘기할 땐 뻔뻔하게 엄밀한 의미에서의 중산층을 사용한다는 거겠죠. 물론 이때 대중이 받아들이는 중산층은 중간층일 테구요. 여기서 (1)정부가 말하는 중산층은 쁘띠 부르주아다. (2)정부는 중산층을 위한 정책을 펴는 게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게 모두 가능하다고 한다면, (1)의 방법이 개념 혼동 때문에 잘 먹히고 있지 않으므로, 차라리 (2)라고 말해버리는 게 '프레임 전쟁'에서 더 낫다는 얘기겠죠.

    대충 이렇게 이해해도 괜찮을까요?

    답글삭제
  5. erte/ 강만수 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서민'은, 중산층 중 중하위 소득을 올리거나 빈곤층에 속하는 '가계 구성원'을 일컫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이것 역시 엄밀한 분석과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개념이겠지요.

    경제수준의 중간을 잘랐는데 하위 리치스탄이 나온다면, 그건 그래프가 나오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잠시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간단히 말하기 어려운 가정이니 여기서는 답변을 피하는 쪽을 택하고 싶군요. 그나저나 저는 부동산 6계급입니다. 이사를 했지만 결국 옥탑방에 살고 있으니까요. 좋은 리플 감사합니다.


    익명/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저 또한 한윤형님이 '반론'하는 방식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주제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면 될 일이지요.

    아무튼 주제로 들어가보자면, 저는 (1)에서 지적하시는 내용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미 민주노동당이었나 진보신당이었나도,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치' 같은 캐치프레이즈를 사용한 전례가 있습니다. '중산층'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쉽게 '좌파적'인 맥락으로 끌어올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건 너무도 자기중심적인 발상이 아닐까 싶네요. 이후 (2)에서 (7)까지도 같은 맥락에서 무난하게 동의할 수 있습니다.

    저는 '쁘띠 부르주아'라는 말이 욕설로 사용되었던 기존의 맥락을 되살리자는, 다소 과격한 입장입니다. 하지만 더욱 정확하고 입에 잘 붙는 어휘가 나온다면 그것을 적극적으로 차용하여 제가 사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활용할 생각입니다. 그게 바로 말씀하신 '각자 자신이 접촉하는 대중에게 나름의 전략으로 임하는 것'이 되겠지요. 제가 택한 전략에 한 표를 던져주시니 괜히 뿌듯하군요.

    에릭 올린 라이트에 대해서는 제가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부정확한 인용은 학문적인 자세가 아님을 지난번에 강조한 바 있었는데, 안타까운 일이군요.

    아무튼 논지를 잘 요약해 주셨고, 또 그 과정에서 다소 누락되었던 부분도 명확해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익명/ 저도 이 논쟁을 하면서, 소득만 놓고 보면 저 자신이 '중산층'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고 다소 놀랐습니다. 저 또한 '중산층'에 대한 다양한 맥락을 접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사회적으로, 또 사회학적으로 통용되는 바는 지금 논의에서 이택광님과 한윤형님을 통해 주장된 그것과 다소 차이가 있지 않나, 이게 처음 품고 있었던 문제의식이었습니다.

    저는 '중산층'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모종의 윤리 의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켜지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문제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소득상 중산층에 속하는 이들을 '서민'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더욱 현명하지 못한 처사가 되겠지요('중산층 윤리'가 '서민 윤리'보다 더 말이 되는 개념이니까요).

    나오미 클라인이 말하는 것처럼, 쇼크 독트린이 횡횡하고 개념적 혼돈이 난무하는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보로 무장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단 그것은 정확한 지식에 기반한 정보여야 하겠죠. 쉽지 않은 일이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익명2/ 저 또한 익명으로 코멘트를 남기신 분의 정리에 상당히 동의합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부분 중 1. 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설명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술적으로 중산층이 쁘띠 부르주아의 의미로 쓰인다, 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지난 글에서 인용한 프레시안의 기사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회학'적인 논의인데, 거기서는 자연스럽게 '중산층'을 '쁘띠 부르주아'가 아닌 '중간계급'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떤 학문 분야에서 어떻게 쓰이고 있다, 이런 식으로 구체적인 맥락과 함께 어휘가 제시되어야 할 일이지요.

    저 또한 한윤형님이 중산층과 중간계급을 분리해서 보고 있는 프레임에 반대하고 있지 않습니다. 한윤형님이 '중산층'이라고 부르는 집단을 '쁘띠'로, '중간계급'이라고 부르는 집단을 '중산층'으로 부르고 있는 거죠.

    사회학적으로 볼 때 중산층에 속하는 사람들을, 학적으로 정의되어 있지도 않고 도리어 더욱 혼란스럽기만 한 '서민'으로 칭하는 것이 과연 어떤 담론적 선(善)을 낳을지 저로서는 아직도 의아하기만 합니다. 앞서 erte님께 답변하며 잠시 언급한 것처럼, 한국어에서 '서민'은 '빈민'의 존재를 가리는 역할도 다소 수행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이 문제는 정말이지 단순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 또한 (1)로 요약하신, '정부가 말하는 중산층은 쁘띠 부르주아다'라는 폭로가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2)의 주장이 더 힘을 받을 수 있다고 보는 거죠. '중산층'은 원래 그렇다, 서민들이여 착각하지 말아라, 이런 입장을 취하면 곤란하다는 겁니다.

    전반적인 논의의 취지를 잘 이해하시고 계셔서, 몇 가지 제가 생각하기에 빠져 있는 부분들을 골라 첨언했습니다. 좋은 리플 감사합니다.

    답글삭제
  6. 계층과 계급의 구분 따위 다 무시해 버리는 본문과 댓글들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다 아파옵니다. 학문적 입장이 전제된 이택광님의 글에 처음엔 얼토당토않는 트집을 잡다가 이젠 비아냥으로 가버린 님이 '운동'의 일환으로서 방향성을 명분으로 내세운 셈인데 혼란한 용어들을 '운동'의 차원에서 전유하며 언어싸움을 하는 것도 좋지만 기존에 학문적으로 어느 정도 축적되고 정도에 대해 논란은 있다해도 어느 정도 대중적으로 통용되고 있기도 한 용어들을 멋대로 변형시키는 건 님이 내세우고 있는 의도와 달리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키는 게 아닐까요? 굳이 에릭 올린 라이트의 논의를 심도깊게 파고들 것도 없이 대학교양 수준의 교과서에서 계층과 계급에 대한 20여 페이지만 주의깊게 읽어도 여기서 나오는 '말들의 성찬'이 얼마나 기반없이 멋대로 오용되고 있는 건지 금방 드러날 텐데요.
    그러나 님이 좋아하는 비평과 운동의 차원과 의도를 십분 선의로 해석하고 그럼 저도 운동 차원에서 질문을 좀 드리지요.
    1)님 논의를 수용하면 GS칼텍스나 현대자동차 기타 정규직 노조들 나아가 화이트칼라 직종 노조를 향해 쏟아지는 '귀족'노조라는 비난이 타당해지는 구석이 크게 생기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2)OECD의 계층구분이 한 사회의 구성원들의 계층분포를 제대로 드러내기에 과연 타당하다고 생각하시나요? OECD의 기준과 사회학적으로 통용되는 계층연구의 괘는 님이 본문에서 인정하거나 생각하고 있는 수준보다 격차가 훨씬 클 텐데요?
    3)님 논의라는 게 우리 사회가 2:8이 아닌 2:98 수준으로 심각하게 양극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물타기하는 결과가 된다는 건 또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4)아주 단순하게 질문 하나 합시다. 강남부자들이 우리 실은 중산층이라며 별로 잘 사는 거 아니라고 징징대는 소리를 듣고 짜증내는 거랑 빈곤층과 극빈층이 폭발적이고 기하급수적으로 급팽창하고 있는 현상에 어느 정도 솔루션을 만드는 거랑 대체 어느 게 더 중요합니까? 님한텐 전자가 훨씬 더 중요해 보이기에 드리는 질문입니다.
    5)님 식대로 용어를 정리하는 게 짜증스러운 징징대는 소리 막는 거 말고 빈곤문제 해결에 어떤 도움을 줍니까?

    답글삭제
  7. 계층과 계급의 구분을 나누면, '중산층'과 '서민'이라는 개념쌍을 쓰게 되는 건가요? '학문적 입장이 전제', '기존에 학문적으로 어느 정도 축적되고', '에릭 올린 라이트의 논의', '대학교양 수준의 교과서에서 계층과 계급에 대한 20여 페이지만 주의깊게 읽어도' 등의 말잔치를 통해 구체적으로 남는 개념 정의가 무엇인지 저는 알고 싶습니다. 제 논의를 부정만 하지 마시고, 그 '초보적'인 무언가를 직접 보여주세요. 가급적 초급 수준의 교과서를 직접 인용해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지금 통용되는 한국어와 미국 영어의 맥락에서 논의의 가닥을 잡았고, 그 출처를 명확히 드러냈다고 생각합니다.

    비평과 운동의 차원에서 볼 때, 익명의 방문자께서 던지시는 다섯 가지의 질문은 모두 다소 의아한 측면이 있습니다. 첫째, 제 논의를 수용한다 해서 대체 왜 대기업 정규직 노조들에게 '귀족노조'라고 비아냥거리는 것이 타당해집니까? 그들이 소득분위에서 중산층의 수준을 넘기 때문에? 그렇다면, 그들보다 소득이 낮은 이들을 '서민'이라고 칭하고, 제가 '쁘띠'라고 부르는 계층을 '중산층'이라고 부른다면, 그 대기업 노조들이 귀족노조라는 비아냥을 듣지 않게 되는 겁니까? 대기업 노조가 비판받는 것은 그들이 '노동계급'으로서의 자의식 없이 자기들 사업장의 편익과 자신들의 임금만을 위해 투쟁하기 때문 아닌가요? 이건 소득분위가 아니라 노동의식의 문제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두 편의 글에서 단 한 번도 노동의식을 다룬 적이 없고요.

    둘째, OECD의 자료는 제가 참조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것이었기에 인용했습니다. 그것이 '정확'하다고 제가 함부로 장담할수야 없겠지만, 신뢰할만 할 것이라는 추측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더 좋은 지표가 있다면 방문자께서 제시해주시면 됩니다. 저는 언제나 새로운 정보를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셋째, 양극화를 물타기하는 것은 오히려 강만수의 입장입니다. 사회의 중간 소득 계층이 붕괴되고, 소득이 양극화되는 엄연한 사회 현상이 있는데, 강만수가 보기에 그것은 '서민 경제는 어려워졌을지 몰라도 중산층은 살림이 나아졌다'가 될테니까요. 저는 바로 그런 종류의 물타기를 막고자 이 긴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중산층을 중산층이라고 하고 쁘띠를 쁘띠라고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양극화를 어떻게 물타기하는 결과를 낳는지,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넷째, 둘 다 중요하죠. 지금 저는 계속 묻고 있습니다. '중산층-서민'의 개념 틀을 유지하는 것이, 그렇다면 방문자님께서 가지고 계신 문제의식의 해결에는 대체 어떤 도움이 되냐고. 제 개념틀은 적어도 강남부자들의 징징거림을 막을 수 있고, 또 사회 빈민층을 '서민'이라는 단어로 포장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 실상을 잘 드러나게 하는 효과도 가지고 있습니다.

    다섯째, 빈곤문제에 대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빈민층'을 감싸고 있는 '서민'이라는 단어를 폐기함으로써 사회적, 경제적 현상을 좀 더 명료하게 드러내는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을 위해서는 더욱 철저한 비판적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말입니다.

    이상입니다. 여러 문제 제기를 통해 이 논의를 다른 각도에서 비춰볼 수 있었군요. 감사합니다.

    답글삭제
  8. 제가 '서민'이라는 말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계시는군요. '서민'이란 말은 중산층과 하나의 체계 안에서 종으로 연결되는 말이 아닌데 왜 제게 그걸 강요하십니까? 애초 이택광님의 글에도 '서민'이라는 말은 따옴표 안에서 두 번 사용될 뿐이며 그 중 한 번은 강만수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 것에 불과합니다. 책을 만드시는 분이니 작은따옴표의 용례는 저보다 더 잘 아시겠지요.
    님은 엄밀하게 사용해야 할 맥락의 단어들을 비롯해 학적인 의미가 일상에서도 어느 정도 통용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약속'이라 할 만한 개념어들까지도 자의적으로 구성한 맥락에서 오용하면서 개념과 언어의 혼탁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학적 용어와 일상어를 마구 뒤섞는 것도 일반적으로 관용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서고 있어요. 그뿐이 아닙니다. 강만수가 자신들의 정책이 부자들을 위한 것이며 우리 사회에 빈곤층이 너무나 광범위한 데다 이들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걸 엉겁결에 자기 입으로 실토했다는 것을 명확하게 집어낸 글의 성과를 오히려 깎아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님이 더 큰 성과를 올렸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운동의 방향성과 전략이라는 요소를 도입해 다른 이들을 까면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했으나 정작 님의 운동의 지향점과 목적이란 빈곤층이나 노동계급과 거의 상관이 없고 예측되는 성과마저 그저 나보다 잘 사는 놈들의 징징거림을 못 봐주겠다는 초딩적 짜증에 그칠 뿐이지요.
    님의 논의가 과연 얼마나 빈곤층의 현실을 드러내는데요? 님이 두 편의 글에서 빈곤층을 다뤘습니까? 오히려 빈곤층이 중산층으로 둔갑하지 않았습니까. 님이 근거로 내세우며 상당한 신뢰를 부여한 기사에 의하면 연봉 천오백도 빈곤층이 아니라 중산층이지요. 빈곤층을 서민'이라는 말로 포장하든 '중산층'으로 포장하든 빈곤층이 빈곤층인 건 여전하며 빈곤층의 현실이 잘 드러나지도 않습니다. 님이 정말로 다루고 있는 건 빈곤층이 아니라 중산층(님의 용어로 하면 쁘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님이야말로 강만수의 프레임을 깨기는커녕 오히려 강만수를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님이 말한 이유로 대기업노조가 비판받는 맥락과 귀족노조라 욕먹는 맥락은 다릅니다. 제가 그 말 꺼낸 이유를 충분히 짐작하신 것 같은데요. 전 대기업 노조의 '노동의식(?)'을 얘기한 게 아니라 그들을 귀족노조라 욕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을 얘기한 겁니다. 귀족노조라는 비난 앞에는 언제나 "그들이 연봉을 얼마 받는다더라."가 존재하고 있었죠. 한마디로 나보다 잘 사는 놈들이 징징대는 걸 못 봐주겠다는 짜증의 맥락이 다수입니다. 애초 님이 시작한 것도 연봉 오천이 왜 중산층이 아닌가였지요. 하고많은 대기업 노조 중 굳이 GS칼텍스와 현대자동차 노조 예를 든 이유는 10년 근속한 노조원들의 연봉이 상당히 부풀려진 채 공개, 모함당한 과거 신문기사를 찾아보시면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프레시안 기사의 문제점을 굳이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계층과 계급의 개념도 구분도 못 하고 있구나 의심스러운 판에 중고등학교 사회교과서에서도 나오는 '초보적인' 내용을 굳이 '보여달라고' 게으름까지 피우시는 분께는 버거울 뿐 아니라 제가 의지가 안 느껴집니다. 과세표준만을 기준으로 그린 계층도라는 건 물가조차 반영되지 않은 지극히 상대적인 통계에 불과한 것이라고 힌트를 드리면 알아들으실까요? 님 말대로 님은 두 편의 글에서 '노동의식(?)'을 다룬 적이 없을뿐더러 노동자도 노동계급도 다루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무의식에 상당한 흥미를 느끼며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가 두 번이나 괜히 붙은 게 아닐 거라는 눈치는 있으시지요?

    답글삭제
  9. 작은따옴표의 용례가 이러저러하게 있는 것이 사실이고, '서민'이라는 개념이 중산층보다 낮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로 규정되어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강남에 사는 사람들과 빈곤층에서 간신히 벗어난 사람들을 다 싸잡아서 '중산층'이라고 부를 이는 (매케인이 아닌 다음에야) 아무도 없으니, 저는 자연스럽게 '서민' 개념이 들어가 있겠거니 짐작하였습니다. 본의와 어긋난 해석이라고 생각하실 여지가 있습니다.

    저는 학적 용어와 일상어를 뒤섞는다기보다는, 도리어 '좌파'적 의미에서 학적 용어가 일상어와 섞이면서 본의 아니게 정부에서 내놓은 사이비 '중산층'과 맞물려 들어가는 지점을 드러내 보이고 있습니다. 강만수의 논의에서 그가 말하는 '중산층'이 드러난 것은 이택광님의 글이 아니어도 너무도 명명백백한 사실이었고요, 다만 저는 잘 나가다가 '중산층 의식에 젖은 서민들'을 비아냥대기 위해 성급하게 결론을 내린 것이 잘못이라고 봅니다.

    저는 제 본문에서의 논의가 빈곤층과 관련되어 있다고 한 적은 없어요. 하지만 '서민'이라는 단어를 빼고 나면, 그 단어가 가리고 있었던 빈곤층이 드러나게 된다는 말을, 리플에서 슬쩍 했을 뿐이죠. 제가 정말로 다루고 있는 대상이 '쁘띠'라는 익명의 방문자님의 지적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정확합니다. 그런데 그게 어째서 "강만수의 프레임을 깨기는커녕 오히려 강만수를 충실하게 계승"하는 것인가요? 그런 식이라면 이택광님의 '중간계급'론도 같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귀족노조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신 것 같아 첨언합니다. 어차피 그들을 중산층이라 부르건 쁘띠라 부르건, 연봉 숫자가 달라질 리는 없어요. 부정적인 의미를 한껏 머금고 있는 '중산층'이 되었건, 더 부정적인 의미 맥락을 가지고 있는 '쁘띠'가 되었건, 남의 연봉을 아니꼬와하는 사람들에게는 별반 차이가 없을 겁니다. 연봉이 공개되면 불리하기는 매한가지라 이거죠. 그리고 제가 일부 언론이 파업 노동자들의 연봉을 공개하는 현상까지 책임져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방문자께서 프레시안 기사의 문제점을, 말씀하실 수 있다면 '굳이' 지적해주셨으면 합니다. 중고등학교 사회교과서에도 나오는 내용이라느니, '힌트'를 주겠다느니 하는 식의 화법은 논의 전개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적어도 제 경험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또 제 경험에 따르면, 그런 화법을 구사하시는 분들은 죽어도 자기 주장의 전거를 제시하지 않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저는 오늘 도서관에 가서 앤서니 기든스의 "현대 사회학"(2판, 1994, 을유문화사)를 봤죠. 이런 내용이 적혀 있더군요.

    "중간 계급(middle class)에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속한다. 어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오늘날 영국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중간 계급에 속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화이트 칼라 직업의 비율이 블루 칼라 직업에 비하여 뚜렷하게 늘어났기 때문이다."(234쪽)

    이것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아서, 많은 분들이 주워섬기기는 하지만 그 누구도 내용을 설명해주지 않는 에릭 올린 라이트의 "계급론"도 빌려왔습니다. '중간계급과 모순적 위치'라는 절을 펼쳐보니 이런 내용이 있네요.

    " 착취자도 아니고 피착취자도 아닌 계급 위치가 있다. 즉, 보유한 자산 수준이 정확히 사회 전체 총자산 중 일인당 자산 분량만큼인 사람들이 있다. . . 이런 종류의 직위는 계급제도에서 특정한 종류의 '전통적' 또는 '구'중간계급이라 명명될 수 있다."(130쪽, 에릭 올린 라이트, 계급론, 한울, 2005년)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저는 '좌파'적 맥락에서의 계급론에 대해 잘 모르고, 그것에 대해 코멘트하고자 이 글을 쓴 것도 아닙니다. 'middle class'라는 어휘의 화용론에서 출발해, 더욱 적절한 담론적 포지션을 찾자는 것이 근본적인 취지였죠.

    하지만 많은 분들이 자신이 무엇을 아는지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도사연하며 거들먹거리는 모습은 너무도 우습게 느껴집니다. 익명의 방문자께서 (?)를 두 번씩이나 사용하시는 이유도 그런 의미에서 제가 알 바 아닙니다. 설령 남을 가르칠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방문자께서 사용하시는 것 같은 화법을 사용하는 것은 그리 보기 좋은 일이 못 됩니다. 하물며 누군지도 모르는 분의 '속내'까지 제가 짚어드려야 할 필요는 전혀 없죠.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답글삭제
  10. 간단히 몇 가지만 지적하겠습니다.

    1. OECD 기준에 대한 의문

    OECD 기준 그 자체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그 기준으로 분석하는 표본집단이 '연말정산 대상 근로자(대기업 임원 등 포함)'이라는 것은 좀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다른 층위는 거세한 채 곧바로 노동계급 내부를 상류층, 중산층, 빈곤층으로 분할하는 것인데 여기서 막바로 "과세표준 5677만원에 해당하는 총급여를 받는 사람이 상위 2.6%"라고 결론지을 수는 없는 거라고 봅니다. 정작 고소득 전문직(의사, 변호사 등)의 경우 자영업자로 분류될 것이고, 뿐만 아니라 IMF 이후로 자영업자 비율이 상당히 늘어났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요.

    만약 저 분석이 옳다고 본다면, 현재 노동청 기준으로 전체 근로자의 37%가 비정규직에 해당한다는 것에 비추어 볼 때(그나마도 민주노총의 발표치와는 편차가 큽니다.) 하위 20% 모두가 비정규직으로 구성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17%가 남는데, 과연 이런 사람들까지 중산층에 포섭시킬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렇다면 중산층이라는 말이 오용되다 못해 의미가 전도된 것 아닙니까? 행간에서 읽혀지는 바로는 노정태님 스스로도 자신이 인용한 기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스스로도 수긍할 수 없는 기준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근거로 삼는 것은 도대체 뭐하자는 건지 싶네요.

    2. 계급과 계층

    위에서도 잠깐 언급하였듯이, 노동계급 내부를 분할하는 것은 계층이 될 수 없다고 봅니다. 계급론이 유산계급(부르주아)-중산계급(쁘띠 부르주아)-무산계급(프롤레타리아)로 개념쌍을 이루고 있다는 것 정도는 상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위의 리플들에서도 언급되듯이 노정태님의 이야기에서는 "쁘띠"(이게 과연 욕설인지는?)만 이야기될 뿐(그나마도 계급론적 의미에서의 쁘띠도 아니죠) 부르주아와 노동계급은 실종되어 있지요. 그렇다고 지금 이게 계층론에 대한 이야기도 아닌 것 같구요. 만약 그렇다면 사회적 지위같은 요소들를 고려해야 할텐데, 노정태님의 글에서 그런 부분에 대한 분석은 전무하지요. 그러므로 "학적 용어와 일상적 용어가 뒤섞여 있다"는 지적은 그런 면에서 타당합니다. 물론 노정태님은 "'좌파'적 의미에서 학적 용어가 일상어와 섞이면서 본의 아니게 정부에서 내놓은 사이비 '중산층'과 맞물려 들어가는 지점"을 비판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시지만, 정작 개념적 혼동을 확대하는 것은 노정태님의 이야기가 아닌가요? 학적으로 어느 정도 정리된 개념들이 존재하는데, 일상 용어의 화용론을 빙자해 그저 학적인 용법을 무작정 까고 보는 것은 "한국 사회의 무식을 타파하는 것이 더욱 급선무라고 생각"하시는 분에게는 그닥 어울리는 것이 아니군요.

    3. 전략에 대한 의문점

    위의 익명 덧글에서 제가 하고 싶은 말들을 많이 해주었는데, 기본적으로 저는 노정태님의 전략이 결국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제가 1번에서 이야기하였듯, 결국 노정태님의 전략은 상당수의 빈곤층까지 중산층으로 '격상'시키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좀 궁금하군요. 게다가 대체로 '중산층'이라는 정체성은 좌파들이 주창하는 '계급성'과는 상당히 모순되는 위치에 서게 되는데, 좌파로서 이 전략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도 상당히 궁금합니다.

    4. 그러고 보니 좌파에 대하여

    요 근래 노정태님이 부쩍 좌파를 언급하는 일이 많았지요. 심지어 "우리 좌파"라는 이야기까지 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제 생각엔, 좌파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다른 좌파들이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이론적 바탕을 전제하는 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봐요. 이 논란도 다분히 그런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혐의가 있구요.

    5. 이것은 사적으로 하고 싶은 말입니다만,

    사실 이런 말씀까지는 드리고 싶지 않은데, 노정태님이 지금 보여주는 행태는 과거 어느 사이트에서 자주 보아왔던 것과 유사한 것입니다. 엄존하는 개념들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유아론적 작태, 꽤 낯이 익지 않습니까? 게다가 그들이 계급/계층에 관하여 노정태님과 비슷한 관념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 굳이 하나하나 말씀드리지 않아도 스스로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이걸 도사연한다고 하시면 좀 곤란한 것이, 그간 제가 노정태님께 가져왔던 정리를 생각해서 그러는 것이니 널리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6. 사족입니다만,

    제가 존대를 하는 이유를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건필하시길.

    답글삭제
  11. 1. 바로 윗 댓글을 쓰신 분은 '중산층'이 '학적으로 정립된 개념'이라고 쓰시는 데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보통 우리가 학적으로 정립된 개념이라는 표현을 쓸 때에는 그 개념이 (1) 학문의 연구 패러다임 내에서 연구주제로서 일정한 구획범위를 가지고서 탐구되고 있으며 (구획 범위내에서는 학설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그것에 관하여도 의미있는 방법론 논쟁이 있으며) (2)체계적인 방법론을 통해 탐구되고 있음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중간계급'이 여러 논쟁자들이 존재하는 학문적으로 정립된 개념 중의 하나라고 할 것입니다. 중간계급은 계급사회학과 계급정치학의 학문 패러다임 내에 있으며 중간계급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대해서도 '단순 양극화론' '신프티부르주아론' '신계급론' '중간계층론' 여러가지 논의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중산층'는 학문 패러다임 내에서 어떤 주목받을 만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연구주제가 아닙니다. '중산층' 개념이 정치학이나 사회학적으로 여전히 중요하다고 '보았던' 국내 몇몇 학자들은 있지만 그들은 그 개념을 보다 너른 연구 패러다임 내에서 위치지우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중간계급'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은 정치의식과 관련하여 중요한 분석적 설명력이 달린 문제지만 '중산층'을 소득에 따라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그렇지 못합니다.
    어떤 근거로 '중산층'이 학적으로 정립된 개념이라고 자신있게 주장하며 또다시 이를 토대로 다양한 프레임 전략을 '무시'할 수 있는 논리를 내세울 수 있는지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어떤 분석적 설명력을 목표로 하여 연구 패러다임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체계적 방법론이 제시되고 있느냐' 이 두 가지를 이야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중산층'이 학적 개념으로 의미있다고 일종의 단초적 사고만을 제시한 논문이 존재하는 것은 저도 알고 있으니까, 그것을 넘어서는 논문이나 학계의 합의 같은 것을 보여주시지요.


    2. 그리고 제(두번째 긴 댓글 쓴 사람입니다)가 앞서 이야기했듯이 노정태씨가 '프레임 전략'을 한가지 제안했으면 그 지평에서 논의를 하는 것이 생산적인 일이지, 자신들 스스로도 잘 알지도 못해서 '초보적인' '정립된' 이런 말만 써가면서 마치 계급사회학의 큰 원리를 노정태씨의 프레임 전략이 위배하여 좌파의 대의 전체도 훼손한다는 듯한 괴상한 논리를 펴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솔직히 제3자가 볼 때 윗 댓글 쓰신 분, 그리고 그 위에 '초보' 운운하며 댓글 쓰신 분, '한윤형씨' 모두 계급 사회학을 별로 공부하지 않은 것이 뻔히 드러납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보통 명확한 개념설정, 라이벌 개념의 소개, 자신이 채택한 개념이 (설명력에서) 우위를 가지는 이유, 그리고 '정립된' '초보적인' 등등의 말을 쓸 때에는 당연히 '초보적인' 문헌을 언급하는 자세가 돋보입니다.
    노정태씨가 어떤 공당의 대변인도 아니고 한 명의 블로거로서 하나의 제안을 밝히는 것 뿐이고, 여기에는 다양한 의견을 접하기 위해 여러 블로그를 들리는 사람들이 이따금씩 찾는 곳입니다.
    이런 곳에 지적 허영에 물들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학적 개념이 어쩌니 저쩌니 좌파의 세계관이 어쩌니 저쩌니 이야기하는 이들이 비생산적으로 들쑤시는 걸 보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 이름 인용하고 개념 들먹이면서 아는 척 하려고 공부하는 사람들 보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답글삭제
  12. 1. 표본집단 선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타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말씀하신대로 누락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 편차가 어느 정도일지 지금은 명확하게 말할 수 없겠지만, 아무튼 정확한 기준이 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지적에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제가 '비판의 여지를 남기는 것'을 놓고 "스스로도 수긍할 수 없는 기준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비판"한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다소 지나친 해석이 아닐까 싶군요. 밑에서도 잘 말씀하셨습니다만, 저의 1차적인 목표는 '중산층'과 관련된 논의를 전개하는 데 있었으므로, 그 지점에서 논의의 발판을 삼을 수 있으면 만족하는 수준입니다. 그래서 다른 분이 제가 논의의 토대로 삼은 연구를 대체할만한 무언가를 가져다준다면, 그것을 놓고 고려해보겠다는 입장을 취한 거고요. "도대체 뭐하자는 건지 싶"다는 노지아님의 입장을 이해하기 어렵군요. 이보다 더 나은 기준이 있다면, 그걸 저에게 제시해주면 됩니다.


    2. 자꾸 지적하게 되는데, 너무 독해를 자의적으로 하시는 것 같군요. '계층론'이 정확히 어떻게 정의되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제 논의가 (특히 '좌파'적인 입장에서의) '계급론'과는 맥락을 달리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죠.

    그런데 "지금 이게 계층론에 대한 이야기도 아닌 것 같"다고 단정지은 다음, 그러니까 노정태의 논의는 학적인 맥락과 일상어적인 맥락을 뒤섞고 있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시는 것 같군요. 제가 말하지 않은 것으로 제 글을 판단하시는 거, 1.에서부터 자꾸 눈에 띄는 현상입니다. 솔직히 저는 노지아님이 일단 입장을 정한 상태에서 이 글을 읽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게 이상하거나 의아하지는 않습니다만, 기대했던 반응 그대로여서 대단히 실망스럽습니다.

    (며칠 전 모 블로그에서도 비슷하게, 제대로 읽지도 않고 대충 넘겨짚어서 리플 달았다가 심하게 쪽팔린 적 있지 않나요? 선입견에 차서 글 읽고 리플 달고 그러지 마세요. 실수로부터 배울 줄을 알아야 하는 겁니다.)


    3. 뭐, 저도 제 전략을 통해 무엇을 얼마나 성취할 수 있을지 장담하지는 못하죠. 특히 "'중산층'이라는 정체성은 좌파들이 주창하는 '계급성'과는 상당히 모순"된다는 지적은 정확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실을 도외시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어요? 한국은 아직 중남미형 국가로 도입하기 전 단계입니다. 빈곤층의 숫자가 그렇게까지 많지도 않고, 양극화가 심화되었다고는 하지만 국제적으로 볼 때 지옥같은 수준이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이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배후에 깔고 이 사태를 바라보고 있고요. 일단 현실을 제대로 기술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자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4. "우리 좌파"라는 소리까지 한 것은, 진보신당 당원으로서의 정체성을 너무 진하게 느꼈을 때의 일이 아닐까 싶네요. 아무튼, 제가 "다른 좌파들이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이론적 바탕을 전제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위 리플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중산층'을 계급적인 차원에서 이해해보기 위해 에릭 올린 라이트의 책을 빌려왔고(그 짧은 시간에 조금 읽기도 했고), 가장 널리 쓰인다는 기든스의 교과서도 참조했습니다. 지금 노지아님은 스스로 '좌파'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주장을 일단 덮어두고 긍정해주는 것과, 좌파적인 논의의 맥락을 따라가는 것을 혼동하고 계신 것 같네요. 저는 전자에는 거의 관심이 없고, 후자에는 흥미가 많습니다.


    5. 개념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유아론적'이라고 부르는 것부터가 개념의 오용입니다. 인식론적 개념을 해석학적 차원에 들이대고 있는 거죠. 제가 늘 주장하는, 그리고 지금도 주장하는 바가 있다면 이런 겁니다. 자기 집 장농에 금송아지 있다고 떠벌이지 말고, 가지고 나오세요. 노지아님과 다른 좌파분들이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6. 공부 열심히 하세요. 안녕히.

    답글삭제
  13. 헉..제가 쓰는 사이에 노정태씨가 글을 올렸군요. 위에 이어서 덧붙이자면 '학적으로 정립된 중산층'의 개념을 정의하고, 그것이 어떤 연구패러다임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보여달라고 했을 때에는 중위소득의 50~150%로 구획시켜서 단순히 기계적인 분배태양을 연구하는 일반적인 통계문헌을 들이밀으시면 안될 것입니다.(당연히 노지아씨의 논지는 그 반대일 테니까요)

    그리고 제가 맨처음 댓글에서도 밝혔듯이 이 문제는 상대적으로 피상적인 지평의 것입니다. 즉, 정부가 계속 '중산층'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정책 본질을 호도하는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즉 그 중산층이라는 이름을 써서 옹호하고자 하는 계층이 사실은 착취적인 지배계급이라는 것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여기에다 대고 부르주아와 노동계급이 실종되었다느니 이런 이야기를 하시면 곤란합니다.

    답글삭제
  14. 노정태님 자신이 냉소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일갈하셨지요. 굳이 지식이 짧은데도 논쟁에 참여한 이유는 이택광님의 글에 대한 노정태님의 트집잡기가 오히려 생산적인 논쟁의 장을 방해하고 흐리고 있는 데다 겉으로 그럴 듯해보이는 말의 성찬 속에 허위의식을 확대재생산하는 말장난을 너무 진지하게 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지적허영 운운하신 전공자 익명님과 노정태님 두 분 다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전공자 익명님의 경우 전형적인 지적 권위주의 행태를 보이시는군요. 님의 비아냥대로 제가 전공자가 아니고 공부가 짧기 때문에 오히려 가장 기본적이고 초보적인 개념이나 거의 '약속'의 수준에 해당하는 말들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며 정확한 사용할 것을 요구하는 겁니다. 전공자의 경우 다른 사람이 개념어를 잘못 써도 감안하고 이해하여 논의를 전개할 수 있지만 비전공자의 경우 바벨탑의 혼란을 고스란히 겪게 되니까요. 직설적으로 말해 노정태님은 계급과 계층에 대한 개념부터 스스로 교통정리 하셔야 한다는 게 저의 요구 중 하나인 셈입니다. 에릭 라이트의 이름은 제가 아니라 이택광님 블로그의 댓글과 지적허영 익명님의 리플에서 먼저 언급됐지요. 저는 라이트까진 갈 필요도 없이 기본교양서 20여 페이지만이라도 보라고 했고요. 그런데 초보적인 걸 보여달라고 떼를 쓰면 제가 중학교 사회교과서에도 나오는 계층과 계급에 대한 정의라도 타이핑해서 붙여야 합니까? 그 정도는 스스로 찾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교과서에서 다루는 기본용어부터 안 본 게 뻔히 드러나는 글을 학적인 글에 갖다 대면서 내가 누굴 깠노라 으쓱대면 읽는 비전공자는 상당히 피곤해집니다. 확인할 게 너무 많아지는 데다 별로 반갑지 않은 변 누구 얼굴도 같이 떠올라버리고요.
    노정태님의 혼란스러운 두 편의 글을 보고 제가 느낀 것과 어필하고 싶었던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본격적인 내용에 대해 숙고를 해보기도 전에 제가 알고있는 가장 초보적인 개념조차 혼란스럽게 오용되고 있다. 둘째, 통상적인 일상어로 이해한다고 해도 노정태님 논의에 의하면 사회 전반의 광범위한 빈곤층이 중산층으로 격상되는 결과가 되며 이는 강만수가 빈곤층을 '서민'으로 둔갑시키며 ‘중산층’ 운운하며 호도해대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갖는다. 거기에 생산적인 논의를 상당히 방해하는 비아냥이 글을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 노정태님 스스로 냉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일갈했는데 노정태님의 비아냥은 다른 이의 지적작업에 대한 냉소와 깎아내리기에서 시작하고 있고 심지어 글의 진정한 의도가 새로운 프레임 제시보다 다른 사람 깎아내리기인 것 같다고까지 의심되는데요.
    프레시안 기사의 문제점은 위에 노지아님이 잘 지적해주셨네요. 노정태님 논의의 객관적인 근거란 게 고작해야 폴 크루그먼의 글 몇 조각과 이 기사 아니었습니까? 애초 노동‘계급’에 속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 OECD의 통계는 20:60:20의 마름모꼴 도형도를 사회 전반이 아닌 중간과 하위층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리고 있는 것인데 이걸 내세우면서 마치 사회 전반에 걸친 그림인 양 호도해 버리면 실제로 상류층인 사람들이 생략된 채 고작해야 사회의 중간층을 형성하는 사람들이 상류층으로, 역시 빈곤층 일부와 겹치는 차상위계층 정도에 해당하는 사람들과 차상위계층도 안 되는 빈곤층 일부도 중간층으로 포장돼버립니다. 애초 ‘중’이라는 말이 갖는 효과를 노린 말장난에 제동을 걸고 싶었다면 이 기사를 봤을 때 근거로 내세울 게 아니라 의문점부터 느끼고 뭐가 문제인지 확인해 보는 게 당연하지요. 기사에 의하면 연봉 천오백의 노동자도 빈민층이 아니라 중산층이 돼버리고 근속년수가 길고 높은 위험수당을 받기 때문에 급여의 숫자는 큰 GS칼텍스나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 소속의 육체노동자 일부는 심지어 상류층이 돼버리는데요. 정부가 제시한 최저생계비라는 거 자체가 실제 생계비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두 잘 아실 거고 이번에 보복부가 새로 고시한 2009년 4인 가족 최저생계비가 월 132만여 원입니다. 노정태님의 인용과 주장에 의하면 년도 차이가 있긴 해도 거칠게 말해서 최저생계비에도 안 되는 돈을 버는 사람이 4인 가족을 혼자 부양하는 경우도 졸지에 중산층이 되는 거란 말입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강남부자들을 욕할 수 있으니 큰 성과다 자위하고 계실 겁니까? 고작 빈곤층에 대해 전혀 관심없는 노정태님이 이택광님 블로그에서 쪽팔린 거 만회하기 위해 빈곤층이 이런 식으로 호도돼도 되는 겁니까?
    만약 노정태님이 강남부자들을 쁘띠로 제안하면서 통상 서민으로 호칭되는 사람들 중 다수를 가리키는 말로 중산층이 아닌 전혀 다른 용어를 제시하셨다면 제가 굳이 이 논쟁에 뛰어들 일도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중산층이라는 용어 자체가 학적으로는 그리 의미를 가지지 못하지만 일상에서는 대단한 부자는 아니어도 꽤 부유하게 사는 사람들까지 포함하여 지칭되는 게 현실인데 빈민층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중산층이라 부르자고 제안하면 이게 강만수식 언어유희와 뭐가 다릅니까? 더 악질적 아닙니까? 소위 ‘서민’의 허위의식이 잘 살아있는 단적인 본보기와 같은 글을 쓰면서 허위의식을 확대유포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노정태님은 강만수의 충실한 계승자 맞습니다. 그걸 이해 못하고 있으니 더욱 ‘안습’입니다. 이래도 제가 지엽적인 딴지나 걸고 있는 겁니까? 그 누구보다 충실하게 노정태님 글 속으로 들어간 댓글을 쓰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성과는 미비한데 해악은 너무 크다는 거죠.
    고작해야 부자들 징징거림 듣기 싫다고 빈곤층을 중산층으로 포장하는 거나 대기업 노조를 귀족노조라 비아냥대며 육체노동자들을 귀족으로 포장하는 거나 심리나 본질은 똑같습니다. 언론의 웃긴 짓을 노정태님이 책임질 이유도 없고 그러라고 요구한 적도 없습니다. 다만 자신이 하고 있는 짓이 찌질이들의 저열한 짓과 별 다를 바 없다는 것쯤은 깨달으셔야겠지요. 노정태님이 좌파인지 아닌지 모르겠고 관심도 없지만 말 많고 게으른 잘난척쟁이 중산층-워너비가 어떤 해악을 끼칠 수 있는지는 충분히 확인했습니다. 이제 스스로 중산층이라 선언하셨으니 우리 좌파 운운하며 좌파에게 훈계를 일삼거나 비정규직 노동자 팔아먹는 것 대신 본인이 중산층의 윤리의식부터 먼저 갖추시는 게 좋겠습니다. ‘중산층 좌파’ 노릇을 하시려면 할 수 없고요. ‘좌파 신자유주의자’도 있다는데 중산층 좌파쯤이야.

    답글삭제
  15. 익명/ 제가 알지 못해 반박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답변해 주셨군요. 특히 '중산층'에 대한 학적인 논의를 전개하고 싶거든, 소득분위가 아닌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무언가를 가져와야 한다는 말씀에 저도 동의합니다. 노지아님과 밑에 익명으로 리플을 다신 분 모두, 소득분위를 나누기 위한 모집단 설정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과, '중산층' 개념의 타당성 자체를 혼동하고 계신 것 같군요.

    제 논의가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다루어져야 할 필요는 사실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체 무슨 이유로 이렇게까지 노지아님, 한윤형님, 그 외에 익명으로 리플을 다시는 분 등이 길길이 날뛰고 있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죠. 아무튼 논의의 가닥을 확실히 정리하는 좋은 리플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또한 덕분에 제 논의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명확하게 알게 되었으니 일석이조라고 할 수 있겠죠.



    익명/ "바벨탑의 혼란"을 겪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상대방의 주장을 논박하고자 하는 이가, '적극적인(positive)' 정의를 내놓기는커녕 '너는 틀렸고 내가 옳지만 왜 옳은지 설명하지는 않겠다'는 식의 부정적인(negagtive) 태도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 교양수업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앤소니 기든스의 "현대 사회학"에서 주제와 관련된 20여 페이지를 읽었는데, 익명의 방문자께서 원하시는 그런 내용이 나오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전공자'와 '비전공자'가 문제가 아니라, 최소한의 지적 성실함과 솔직함이 관건입니다.

    저는 솔직하게, 제가 참조하고 있는 자료의 한계를 인정하고 있고, 특히 표본집단을 잘못 선정하면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혼동될 수 있다는 지적을 수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간소득의 50~150%에 속하는 이들을 '중산층'이라 부르는 분류법 자체가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게다가 제 논의 자체가 중산층을 어느 선에서 그을 것이냐, 이 문제에서 출발한만큼 지적하시는 내용들은 부차적인 것일 수밖에 없고요.

    게다가 제가 보기에는, 익명의 방문자님 또한 '계급'론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다고 느껴집니다. 가령 방문자께서는 "애초 노동‘계급’에 속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 OECD의 통계는 20:60:20의 마름모꼴 도형도를 사회 전반이 아닌 중간과 하위층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이건 정말 잘못 생각하시는 거죠. 원문으로 돌아가봅시다.

    "국세통계연보(2007)에 의하면 2006년 연말정산 대상 근로자(대기업 임원 등 포함) 1259.5만 명 중에서 상위 5.2%인 66.2만 명의 평균급여는 9482만 원이고, 그 과세표준은 5677만 원이다. 과세표준이란 총급여에서 각종 소득공제를 제외한 과세대상 소득을 의미한다."

    '근로자'가 '노동자'의 대체어인 것은 맞지만, 모든 '근로자'가 '노동계급'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특히 그 안에는 '대기업 임원'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말이죠. "OECD의 통계는 20:60:20의 마름모꼴 도형도를 사회 전반이 아닌 중간과 하위층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라는 말씀도 그래서 앞뒤가 안 맞아요. 대기업 임원마저 포함되는데 그게 '중간과 하위층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니 그게 말이 됩니까?

    게다가 4인 가족 기준의 132만원을 왜 거기다가 비교하시나요. 가계 단위와 개인 단위를 구분하는 것은, 중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나오지는 않지만, 대단히 중요한 상식입니다. 돈을 쓰는 거야 가족 단위로 쓸 수 있지만, 버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 단위죠. 저는 익명의 방문자님과 더 이상 논의를 진행해야 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지적 성실함과 솔직함을 강조하면서 리플을 마무리짓고 싶습니다. 계급 차원에서 '중산층', 혹은 '중간계급'을 탐색하고자 먼저 나선 것은 저입니다. 익명의 방문자님은 자신이 무엇을 아는지, 알고 있다면 그것을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먼저 성찰해보실 필요가 있을 것 같군요. 그게 "글의 진정한 의도가 새로운 프레임 제시보다 다른 사람 깎아내리기인 것 같다고까지 의심"하는 것보다 더 심각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감사합니다.

    답글삭제
  16. 저도 정말 의지를 못 느낍니다. 허니 간단하게 말하죠. 비전공자가 사회학 기초 개념을 설명하려니 정말 우스운 꼴이 되는데 이게 싫어서 직접 찾아보라 했건만 정말 날로 먹으려 드시네요.

    1. 계층과 계급 : 물질적 기반을 주로 고려하는 계급과 달리 계층은 신분, 사회적 지위 등 복합적인 기준을 적용한다. 라이트의 경우 기본적으로 네오 맑시스트의 ‘계급’의 관점에서 ‘중간계급’을 설정한 것은 기본적으로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지 않고 피고용 형태의 노동자이나 다수의 노동자들과 달리 일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 단적으로 예를 들면 중간관리자나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라이트는 관리자, 감독자도 중간계급으로 포함시키고 있다. 달리 ‘모순적 계급위치’가 아닌 것이다.
    2. 중산층 : 한편 중산층이 딱히 중간계급과 겹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 실제로 중산층은 상당히 너른 층을 아우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산‘층’이라 표현되는 데에서 일단 계층의 차원에서 얘기되고 있고 노정태님의 글이 전반적으로 계급 아닌 계층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일정한 ‘계층’을 가리키는 용어라 본다면 단지 소득만을 기준으로 하는 OECD의 통계는 처음부터 계층 논의에 적절한 근거자료가 결코 될 수 없다. 근거가 박살나고 주장만 난무하는 글에 생산적인 다른 논거들을 제시한다는 건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3. 노동자와 대기업 임원 : 현대사회에서 더 이상 애초 맑스의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의 모델만을 적용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프티든, 중간계급이든, 패러다임에 따라 다양한 이름이 등장했고 가운뎃층/계급의 분포는 패러다임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살짝 상이하게 되며 딱히 구분도 애매한 사람들이 등장하게 된다. 앞엣 댓글에서 상당한 무리수를 두고도 대기업 임원들 역시 굳이 ‘노동계급’으로 퉁쳐서 말한 것은 이들이 기본적으로 ‘피고용 형태’이기 때문이다. 사장도 피고용인으로 고용됐다가 ‘짤리는’ 경우가 많은 현재, 대기업 임원을 노동자로 보는 것은 상당히 무리이지만 그러나 대기업 임원의 경우 생산수단을 소유했다고도, 소유하지 않았다고도 말할 수 없는 애매한 위치에 처한다. 대기업 임원은 화폐 및 투자자본, 생산수단, 노동력에 대한 통제권을 모두 전적으로 가지고 있는가? (이 모두를 가져야 부르주아다.) 물론 라이트의 중간계급에서도 상당히 상위이거나, 일부는 계층상 상류층에 속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의 기준으로 보면 생산수단을 소유한 이의 가족 및 친인척으로 낙하산을 탄 경우 말고 밑에서부터 차근히 올라간 대기업 임원이야말로 성공한 중산층의 표본이다. 계급과 계층을 가로지르는 논의는 이토록이나 혼란스럽고 어렵다. 이 부분은 전공자가 보완해주어야 할 내용이다. 과연 애초에 노정태님은 이런 고려를 했는가?
    4. 최저생계비 : 최저생계비도 안 되는 돈을 벌며 4인 가족을 혼자 부양해야 하는 경우는 매우 극단적인 경우다. “가계 단위와 개인 단위를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경제학’ 상식”이기는 하지만(인용 중 작은 따옴표는 인용자의 첨가), 실제로 ‘계층’ 논의는 종종 개인과 그의 가족 단위로 언급된다. 한 가족을 구성하는 구성원들은 각자 계급이 다를 수는 있지만 계층상으로는 비슷하게 묶인다. 굳이 최저생계비가 나와야 했던 이유? 처음 계층 논의의 근거로 ‘소득분위’가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첫 주장자가 말도 안 되는 삽질을 해놓으면 그 프레임에서 얘기해야 하는 반박자도 당연히 뻔히 알면서 상당한 무리수를 두며 삽질을 할 수밖에 없다.

    애초 노정태님의 논의부터가 목적과 의도 모두 네가티브한 지점에서 시작했음을 상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탓을 하는 건 아닙니다. 많은 대안들이 ‘네가티브’한 부정에서 시작합니다. 정과 반의 갈등이 합을 만드는 것이지 반 혼자 합을 만드는 게 아니지요. 게시판도 아니고 트랙백 기능 따위 없는 블로그에서 익명 댓글자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쩔 수 없이 수동적 반응자에 불과할 수밖에 없는 물리적 한계가 있기 마련이며 님도 다른 블로그에서는 어차피 수동적 반응자일 수밖에 없다는 점은 차치합시다. 님의 댓글 역시 수동적 반응자 노릇밖에 못 하고 있다는 사실은 단적으로 제가 계속 님의 원래 글로 회귀하는 반면 님은 제 댓글에 트집만 잡고 있다는 데에서도 드러납니다. 님이 진정 새로운 대안을 만들려 했다면 댓글에서 지적된 부분들을 본글에 반영시켜 버전업된 주장을 펼치거나 애초의 것은 폐기하고 새로운 것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 논의에 끼기 위해 가장 기초적인 개념을 교과서로 다시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해 여러 참고자료를 보면서 님의 논의를 매우 성실하게 검토했고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저에게 지적 성실함이 없다고 선언한다고 해서 이제야 교과서를 찾아본 노정태님의 지적 불성실함과 게으름이 가려지는 게 아니라는 건 본인도 잘 아실 겁니다. 하긴 자신의 부족을 만회하기 위해 일단 남부터 까고 보는 게 노정태님의 고질적인 버릇 같기는 합니다만.

    답글삭제
  17. 기초 개념이 괜히 '기초' 개념인 게 아니죠. 사전적인 개념 정의는 그 누구라도 배우고 전달할 수 있습니다. 본인이 제대로 알고 있다면 전달할 수도 있죠.

    그런데 아래 1에서 4까지 전개되는 내용들이, 어디까지가 개념 전달이고 어디까지가 주장인지 알 수가 없군요. 뒤죽박죽 논의를 하다가 "계급과 계층을 가로지르는 논의는 이토록이나 혼란스럽고 어렵다. 이 부분은 전공자가 보완해주어야 할 내용이다. 과연 애초에 노정태님은 이런 고려를 했는가?"라고 물으면 뭘 어쩌라는 건지.

    그리고 소득분위와 최저생계비 문제는 끝까지 이해를 못 하시는 것 같아서 그냥 내버려 두겠습니다. '개인별 소득'을 따지는 것과 '가계지출'을 따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얘기에요. ('경제학적' 상식이라고 눙치고 넘어간다고 해서 실수가 가려지는 건 아닙니다. 게다가 그건 경제학이 아니라 굳이 분류하자면 사회학적 차원에 속하는 논의가 될 거고요.) 그냥 본인이 틀렸다고 인정하면 될 것을, 왜 이리 인생 어렵게 사시나요.

    제 논지는 별거 없습니다. '중산층'이라고 강만수가 부르는 사람들이 '중산층'이 아님을 드러내보이는 거죠. 왜냐하면 그 단어가 여러 맥락에서 다양한 의미를 포괄하고 있긴 하지만,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감세 정책"이라는 말이 무리 없이 통용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시피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뉘앙스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으니까요.

    저는 이택광님이 처음 쓴 포스트가 '중산층'이라는 단어를 '중간계급'으로 대체하다가,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착각하는 한국 서민들을 비판하면서 도리어 이명박과 강만수의 개념 앞에 무비판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고 비판하였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맥락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에서의 'middle class' 논쟁을 소개함으로써, 중산층을 '중간 소득을 올리는 평범한 사람들'로 확고하게 붙들어놓는 것이 담론의 전략상 더욱 우월하다는 주장을 했고요.

    이런 주장은 좌파적인, 다시 말해 노동계급과 자본가의 대립 구도를 상정하고 있는 '계급론'이 아니고, 또 중산층에 대한 약간의 학문적 논의와도 그리 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니 저는 제 주장을 펼쳐놓은 다음, 계급론적 차원에서의 '중간계급'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라이트의 책을 읽어보려고 하고 있고요. 그 양자는 대립하는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남의 '의도'를 함부로 넘겨짚는 건 좋은 일이 아닐 겁니다. "노정태님의 논의부터가 목적과 의도 모두 네가티브한 지점에서 시작했"다고 함부로 가정하고 계시는데, 날짜를 확인해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제가 논의의 토대로 삼고 있는 폴 크루그먼의 칼럼은 올해 8월에 나왔고, 이택광님의 포스트는 그 뒤에 나왔습니다. 저는 그 칼럼을 본 순간부터 한국의 '중산층'에 대한 담론적 혼돈을 떠올렸지만, 당장 블로깅을 할 시간과 정신적 여유가 없어서 저장만 해뒀죠. 저는 논쟁을 하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해서 황급히 근거를 마련하려 들거나 하지 않습니다.

    더 논의하실 내용이 없을 것 같군요. 안녕히 가십시오. 감사합니다.

    답글삭제
  18. 위에 익명으로 연달아 답글 남긴 분은 노정태 님을 잘 아는 분인가봐요..개인적으로 원한이 많은 분 같아요 갈수록 답글 수위가 높아지고 논쟁을 자꾸 흐리고 계신 듯...왜 그렇게 감정에 격해지셨을까 제가 가끔 구경가는 블로그 주인장하고 말투가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남 블로그 기능까지 씹으시다니...블로그스팟이 구글 꺼든가...목에서 피나오겠어요 고정하세요 하긴 뭐 이제 여기는 안 오실 거 같긴 하네요

    답글삭제
  19. 1. '정립된 개념' 이야기 해달라고 했던 익명자입니다. 바로 위에 위에 "계급과 계층을 가로지르는 논의는 이토록이나 혼란스럽고 어렵다"고 쓰신 분은, 계급과 계층을 가로지르는 논의가 혼란스러러운 것이 아니라 쓰신 분 글 자체가 좀 혼란스럽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글쓰신 분이 스스로 프린트해서 친구나 동료에게 떳떳하게 읽힐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보통 글이라는 건 '결론'이라는 것이 있고, 그 결론을 적절하게 뒷받힘하는 논거와 그 논거를 적절하게 잇는 논리라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 안에서 상대방 논리에 대한 비판과 논거 동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님의 글에는 '중산층'에 대한 적극적인 개념 정의가 단 한 줄도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정태님의 글에 대한 비판도 아무런 알맹이가 없어 보이는 것입니다.
    이런 여러가지 (어리석은) 혼란스러움으로 인하여 더 이상 생산적인 논쟁이 안될테니 저는 이 글을 마지막으로 댓글을 그만 달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이 문제를 가지고 여기서 여러사람이 시간 낭비하는 것도 좀 아깝다는 생각은 듭니다. 말했듯이 저는 '프레임 전략'이라는 것이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노정태씨 블로그 뿐만 아니라 한윤형씨 등의 블로그도 같이 가끔 들려 눈팅하며 젊은 사람들의 참신한 시각에 감탄하던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간을 투자해서 댓글을 남긴 것은 허영심에 차서 모르는 것에 대해서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막상 뭘 아는지 제대로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아무런 논리전개상 연관성 없이 정보만 나열하면서 핵심적인 답은 하나도 하지 못하면서 그 답을 하지 못하는 자신을 '지적 권위주의' 피해자인냥 생각하는 등 글도 쓸 줄 모르면서 '좌파의 세계관''학계의 정립된 개념' '초보적인 아카데미즘의 상식' 운운하시는 분들이 좀 우습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중산층이라는 용어는 특별히 '중위소득'과 관련된 분배양태 연구가 아니라면 아카데즘에서(그것도 밑에서 이야기할 계층론을 적극 활용하는 기능론 등 우파 사회학이 아니라 좌파 아카데미즘에서) 확고한 위치를 갖고 있는 연구주제가 아니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런 것처럼 여러명의 분들이 이야기를 하시길래 혹시 제가 모르는 것을 좀 알고 계신가 했습니다. 차후라도

    2. 계급론과 계층론은 연구 패러다임 자체가 다릅니다.
    (1) 맑스, 베버, 골드소로프, 라이트.. 이 사람들은 모두 '계급'을 다룹니다. 계급은 분석 대상의 사회에서 '불평등'의 지속적(이것이 한 세대 내건 아니면 세대를 걸쳐 일어나건)'근원'을 밝히는 작업입니다.
    다만 맑스주의자들에게 있어서는 '생산수단 소유'가 베버주의자들에게는 '시장에서의 기회의 종류'가 그 물질적 기반으로서 중요한 기준선이 된다는 차이점만 있을 뿐입니다.
    예를 들어 라이트의 계급 이론은 전통적인 맑스주의 이론으로 그 체계적인 분석을 할 수 없는 '중간계급'을 체계적으로 세 차원(조직자산, 학력-기술자산, 생산수단 자산)에서 가지는 물질적 기반의 매트릭스에서 갖는 위치에 따라 세분화하고, 그 세분화의 정당성을 실증적 데이타에 의해 확보했다는 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2)반면에 (계급class이 아니라) 계층stratum 은 불평등의 근저에 있는 물질적 기반보다는 '결과로서' 나타난 불평등의 지표 그 자체에 의해서 사회구성원을 집단으로 분류하는 범주입니다. 이러한 지표로 나타나는 계층은 계급과는 달리 본질적으로 각 계층간의 '갈등'이나 '모순'이 내재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키가 큰 사람과 작은 사람으로 죽 지표별로 묶는다 해서 거기에 어떤 본질적 모순이나 '희소성을 둘러싼' 투쟁 같은 것이 있을리 만무합니다.
    그래서 지표의 기준으로 여러가지 것들이 동시에 동원되는데 그러는 가운데서도'소득'이나 '지위'가 핵심 지표가 될 것입니다. 때로는 '주관적 의식 수준'이 지표가 되어서 그런 통계조사가 심심치 않게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상류층, 중상류층, 중간층 또는 중산층, 중하류층, 하류층 하는 이야기에서 '소득' '지위' '자율성' 등을 지표로 그래프를 그릴 수가 있는 겁니다.
    따라서 '소득'이라는 요소를 핵심으로 삼는 것은 계층론의 연구 패러다임에서 당연한 것입니다.
    계층론은 결국 불평등의 정도와, 그 불평등의 정도로 나뉘어진 집단간의 이동의 정도 등을 파악하는 연구 패러다임인 것입니다. 계층론의 개념은 따라서 집단간의 '본질적인' 모순간 착취, 갈등 관계를 다루는 좌파의 계급사회학과 큰 관계가 없으며, 다만 통계조사를 위해 많이 활용되는 지표의 여러다른 집합을 보여줄 뿐입니다. (물론 그 집합간의 관계를 다룰 수도 있겠지만 그럴려면 결국 '물질적 기반'을 다루는 계급론으로 한 발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중산층'은 어떤 특별한 물질적 기반, 직업 집단, 생산수단과의 관계를 본질로 하지 않는 '불평등 양태파악'이라는 연구 패러다임 내에서 임의적인 개념일 뿐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중산층'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포섭시키느냐를 두고 '계급개념'이 실종되었다느니, 중산층에 (고용관계의 측면에서)노동자가 포함되면 안된다느니 펄쩍 뛰는 사람은 왜 뛰는 사람인지도 모르겠거니와, 계층론과 계급론의 연구 패러다임 자체가 다른 차원에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 같습니다. 저로서는 '중산층'이라는, 계급론 분석에서 별 의미를 가지지 않는 지표적인 개념을 가지고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계급투쟁의 사활이 걸린 듯이 하는 분들의 머릿속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노동계급'을 어떻게 쓰느냐를 가지고 다툰다면 그건 큰 문제겠지요. 그러나 '중산층?' 그건 그냥 프레임 전략일 뿐입니다.


    3.마지막으로 애초 논쟁의 필요성이 무엇인가를 다시 상기해 봅시다.
    이 논쟁은 '프레임 전략'으로 무엇이 우월하느냐입니다. (A) 중산층의 의미를 '상류층'에 가까운 것으로 가두고, 그래서 현 정부의 '중산층을 위한다는 정책'을 폭로할 것이냐. (B) 중산층과 쉽게 연결되는 '중위소득' '중류층'의 의미연상을 그대로 놓아두고, 현 정부의 '중산층'은 언어의 완전한 오용이며, 현 정부가 수혜의 타겟으로 삼고 있는 집단을 새로운 이름으로 부를 것이냐.
    그리고 저는 (A)와 (B)가 논리적으로는 양립불가능하지만 둘 다 유의미하다고 생각하고, 다만 여러가지 이유로 (B)가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이 글에 두번째로 달린 댓글에서)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생산적인 논의는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것은 같이 탐구해볼만한 흥미로운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질문1) 한국의 '중산층 의식'에 대한 주관적 조사 결과의 추이도와, 소득 등의 지표에 따른 계층분포 추이도를 비교해 가기

    질문2)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지목하 이'들이 현재 누구인지.

    질문3) 예전에는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다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질문4) 중산층이 아니라고 답한 사람들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누구를 생각하는지

    질문5) 중산층이라는 단어가 어떤 느낌이 드는지


    이런 건 전부 경험적 연구들입니다. 이미 있는 연구를 찾아볼 수도 있고, 새로운 연구수행과제로 당에서 생각해 볼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이것이 흥미로운 까닭은 결국 '프레임 전략' 때문이겠지요.

    그렇게 본다면 '중산층'이라는 개념을 두고 어떻게 전략을 짤 것인가라는 지평을 넘어서서, 한국사회도 서구 유럽처럼 '계급'개념을 자유롭게 쓰는 전략도 생각해 볼 수가 있겠지요.

    댓글을 주고 받가 기분이 상하신 분들이 있다면 죄송한 말씀을 드리며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답글삭제
  20. 익명5/ 저도 모 블로그의 운영자와 위 익명 방문자가 같은 분이 아닐까 하는 의혹을 품고 있습니다. 말하는 내용이 대단히 유사하고, 문장의 어투도 결국 비슷하게 나오고 있고요. 하지만 앞으로 확인할 일 없으니 그냥 묻어두고 지나가려 하고 있지요.

    저도 블로그스팟의 기능 부족이 안타깝긴 하지만, 덕분에 단순한 블로깅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기도 합니다. 게다가 검색 기능이 (구글 꺼니까) 대단히 빠르고 강력해서, 예전에 썼던 글을 찾아볼 때에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죠. 방문자를 선택적으로 받는 기능이 있긴 하지만 그걸 활용할 생각은 없습니다. 아무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익명/ 다섯 가지의 질문 내용들은, 말씀하신대로 구체적인 조사 과정을 거쳐 가치 있는 자료를 뽑아낼 수 있을만한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지목하는 이'들이 현재 누구인지 묻지 않고 진행된 이 논의는, 말씀하신대로 피상적인 차원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한계를 내포하고 있었죠. 필요 이상으로 논의가 격화되고 또 공허하게 되었다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서구 유럽에서 '계급' 개념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지만 참 신선한 것이로군요. 아직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배워야 할 것이 그만큼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까지 알고 있었다면 이 논의를 좀 더 깔끔하게 풀어갈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군요.

    저로서는 이번 논쟁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또 명확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좋은 코멘트 남겨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