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13

금융위기와 안티고네, 금산분리, 그 외

1.

오빠의 시신을 매장하지 못해 국법과 대결하는 안티고네, 와 사실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영국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In a bleak new sign of the growing economic crisis, hard-up families are having to wait more than two months before receiving Government money for funerals.

Organisations representing undertakers accused the Government of putting them in an ‘impossible’ position by dragging their feet over burial costs for poor families.
("Bodies of the dead not being buried in echo of Winter of Discontent as effects of credit crunch spread across Britain", DailyMail, 13th Oct. 2008)

가난한 가족들은 정부에서 장례 보조금이 나올 때까지 두 달 가량 기다려야 하게 생겼다는 보도인데, 이것을 보도한 매체가 데일리 메일인 만큼 덥썩 믿거나 하긴 좀 그렇다. 블로그에 이 기사를 인용한 폴 크루그먼도 '내 아내가 영국에서 오래 살았고 아직도 타블로이드를 즐겨 본다'고 눙치고 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실물경제로의 위기 확산에 대한 문제의식이 영국에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영국이 이토록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닐까.


2.

국제적으로 대규모 은행 국유화가 단행되면서 주식시장이 안정되고 환율이 돌아오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눈에 띤 하루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나라 일이고,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는 이명박이 라디오를 통해 국민들이 "아침부터 재수있을 권리"를 박탈하고, 정부는 금산분리를 사실상 해제하는 법안을 떡하니 제출하고 앉아있다.

신자유주의의 기조를 완전히 뒤흔드는 '은행 국유화'에 대해, 그것이 수면 위로 떠오른 어제 그제 오늘 정도에 많은 사람들이 반응을 한 것 같은데, 사실 그것은 이미 7월부터 논의되고 있었던 해법 중 하나다. 내가 지난번에 블로그에서 잠시 소개한 이코노미스트의 기사 "Twin Twisters"에서, 이코노미스트는 프레니와 페니에 돈을 퍼주지 말고 그것들을 아예 국유화한 다음 운영을 정상화하여 비싼 값에 되팔라고 주문한 바 있다.

서방 세계의 '은행 국유화'를 보며 너무 좋아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이코노미스트는 익명으로 기사가 나가는지라 이렇게 노골적인 주장을 대놓고 펼칠 수가 있는데,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은행 국유화의 목적은 자본주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정상화'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그 '정상' 상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합의된 바가 없다.

문제는 이 씨발 대한민국의 경우, 국유화 -> 정상화 -> 민영화의 세 단계 중 두 번째 것이 쏙 빠져있는 그 무언가를 금융위기 해법이랍시고 정부가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은행 중 대다수는 정부 소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것을 '정상화'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중과 공유하여 그 정상 상태에 대한 사회의 논의를 수렴하고 민주적 절차를 통해 의사를 모으기는 커녕, 그냥 지금 달러 짤짤이로 돈 왕창 번 대기업들에게 갖다가 넘기겠다, 이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의 꼴이다. 금산분리 철폐는 결코 벌어져서는 안 될 일이다.


3.

요즘 내가 그 개념을 너무 남발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국제적 위기'를 핑계삼아 금산분리를 철폐하려 드는 이것은 그야말로 '쇼크 독트린'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앞서 나는 현재 (자본주의의) '정상성'이라는 단어가, 적어도 서구 사회에서는 허공에 붕 떠버렸다는 것을 지적했다. 진보진영은 이 '쇼크' 속에서, 사람들에게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퍼부어줄 수 있는가? 한국과 그 외 여러 나라들에서 동시에 이 질문은 던져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 내용도 없고 알맹이도 없는 'Yes, we can'(워우워우예~) 이후 큰 사회적 진통을 겪게 될 것 같다. 한국의 경우, 이번주 시사인 설문조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개혁세력'들이 완전히 주저앉아버린 것은 분명한 사실인데, 그 공백을 진보정당이 채워넣지는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지지난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이 '행복하십니까?'라는 질문으로 '행복'이라는 테마를 가져갔다면, 이번에는 미리부터 '공공성'을 밑밥으로 뿌리고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웰빙 투게더' 는 어떨까.

담론적인 차원으로 들어와보자면,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 사회가, 또 한국 사회의 담론이 이렇게 비정상이고 저렇게 잘못되어 있고 운운하는 차원을 넘어서, 앞서 말한 것처럼 '정상성'이라는 것을 손아귀에 넣기 위한 개념적 생산과 쟁취의 과정에 들어갔으면 하는 바램을 품고 있다. 지배계급이 쇼크 독트린을 무기삼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쇼크 독트린이 횡횡하는 속에서, 'shock proof'인 정보의 공유와 지식의 무장을 통해 그것과 맞서고, 공공성의 영역을 새롭게 획득하는 게 아닐까.

이명박과 그 일당들이 말하는 것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게 아니고, 공기업 선진화가 '공공의 이익'과는 완전히 거리가 있다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대체 그 '공공성'이라는 게 뭐냐고. 여기서 어떤 긍정적인 서술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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