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16

천막이었던 것들

내가 충남슈퍼 정류장에 내린 시각은 오후 8시 30분.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내가 도착하면 그 시간에 맞춰서 문화제가 끝나는 징크스가 있다. '이쯤 서 있으면 되겠지' 했는데 다들 '비정규직 투쟁가'를 부르기 시작해 적잖이 당황했다. 사람들이 적지 않았지만, 적어도 100여명은 되는 것 같았지만, 곧 절반 이상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게 문화제 중심으로 운영되는 집회라서 그런가, 정말 익숙한 풍경이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떤 아저씨가 쓱 하고 나타나 '다들 밥 먹으러 갔어'라고 말해줬다. 아홉시 반 넘게까지 거기 있었는데, '밥 먹으러 갔다'는 사람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 그래도 남아있는 사람들의 수가 적지 않았다. 50명이 좀 안 되는 숫자였다고 기억한다.

행사가 끝나자 사람들은 '천막이었던 것'에서 '천막이 될 수 있을만한 것'들을 추려내기 시작했다. 남자들 나와서 도와달라고 하길래 아무 생각 없이 갔다. 그 큰 천막이 그렇게 쳐지는 것이라는 걸 이번에 보고 처음 알았다.

철골과 지붕 역할을 하는 비닐을 펴 세우고, 바닥에 까는 나무, 플라스틱 구조물을 들고 왔다. 실제로 손을 더럽혀가며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어차피 건질 만한 것들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시간이 그리 많이 걸리지는 않았다.


'천막이었던 것들', 기륭전자 앞. 2008년 10월 15일.


몇 번 왔다갔다 하면서 책상이나 의자, 화이트보드 등을 건져내고 있었다. 대학생들로 보이는 서너 명이 그 속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자기들끼리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작업에 속도를 붙였다. '이런 말 하기 뭐 하지만, 또 침탈당하면 말짱 꽝이니까 너무 더러운 것까지 일일이 꺼내지는 마.' 맞는 말이지만 듣는 나도 서글펐다.

칼라TV의 이명선씨를 만났다. 고생하고 울고 그래서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내가 잘못한 건 없으니 미안해할 것도 없어야 하겠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게 되지가 않았다. 25일까지 구사대와 용역들이 계속 덮칠 예정이라고 한다. 이 글을 쓰는 새벽 3시 현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길이 없어서 답답하다.

중요한 건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나서는 것보다, 조직적으로 자리를 지키고 물리적으로 맞설 수 있는, 말하자면 '노조 아저씨들'이 개입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일이 그렇게 되지 않고 있다. 말로만 비정규직 투쟁에 앞장서는, 등의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왜 민주노총 산하 그 수많은 지부 중 어디도, 조직 차원에서 나서서 도와주지 않는 걸까. 연대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그 연대의 가치는 도드라진다. 이 역설이 지금 기륭전자에서 극대화되고 있다. 정규직 노동조합의 조직적 개입이 절실한 시점이다.



촛불자동차연합 회원들이 면허 취소를 당하는 이 팍팍한 시국에도, 어떤 용자분이 나서서 삭막한 현장에 작은 웃음을 던져주었다. 촛불인지 횃불인지 애매한 전등을 달고 나타난 한 대의 승용차가, 퇴근하는 기륭전자 관계자들의 차가운 눈초리를 맞으며 다시 건설된 천막을 향했다. 다시 건설된 천막 아래 사람들이 앉기 시작했고, 나는 손을 비벼 먼지를 떨어낸 다음 충남슈퍼 앞에서 마을버스를 탔다.

기륭전자에 직접 방문하는 것이 최선이고, 또 밤을 함께 새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잠깐이라도 들러서 더 많은 분들이 현장의 분위기를 체감해주셨으면 좋겠다. 좋은 글을 많이 퍼날라주시는 것도 바람직하고, 기륭 투쟁단과 칼라TV 등에 후원금을 많이 내 주셨으면 한다. 마음으로만 함께한다고 하지 말고, 통장으로도 함께합시다.

기륭전자 투쟁 후원금 계좌: 국민 362702-04-067271 (김소연)
칼라TV 후원금 계좌: 제일 403-20-446270 (박성훈칼라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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