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31

2009: Power to the People

1. 현실: 석유는 고갈될 것이다.

2020년이 다가오고 있다. 2008년의 마지막날에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정말 2020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IEA의 2008년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석유 생산량이 6.7%가량 감소할 전망이다. 그러면 늦어도 2030년 정도에는 석유 정점에 도달하게 되는데, 시장에서 가격에 따라 수요가 조절되는 것을 감안해본다면 2020년부터는 '정점'이 아닌 '고원'에서 유가가 오락가락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그 IEA가 내놓는 보고서의 일관성이다. 국제 에너지 기구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구체적인 날짜를 지목하여 석유 고갈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다. 게다가 그들은 작년 발표한 보고서에서는 매년 생산량이 3.7%씩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3.7%와 6.7%는 하늘과 땅 차이다. 이런 차이가 왜 발생하고 있는지 묻기 위해, 영국 저널리스트 조지 몬비오는 직접 IEA에 찾아가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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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IEA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패티 비롤(Fatih Birol)은, 전 세계 국가들이 정책 결정의 도구로 사용하는 보고서가, 여태까지는 현장 실사 없이 'assuming'에 의지해서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말을 고지식하게 털어놓았다. 지금까지는 추산해보니까 3.7% 떨어질 것 같았는데, 가서 조사해보니까 더 심각해서 6.7%로 올렸다는 거다. 그렇다면 대체 그동안 석유 고갈에 대해 미적거린 것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진단 말인가?

지구 기후 변화와 에너지 문제에 대해 가장 회의적인 목소리를 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집단에서조차, 2020년이면 유가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선에서 형성될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한다. 이게 우리가 2008년의 마지막 날 기억하고 있어야 할 '현실'이다.


2. 임기: 1년 반 남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회에서는 한나라당의 방송법 날치기 통과를 막기 위해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한나라당은 급하다. 연말을 앞두고,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대규모 군집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알면서도 무리수를 연달아 두고 있다. 둘째. 한나라당의 패악질만을 놓고, 그것에 대항하는 전선만을 고려한다면 영원히 진보정당들은 민주당의 뒤에 설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이 왜 이리 급하게 구는 걸까? 청와대가 뒤에서 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왜 이렇게 급하게 구는 걸까? 대통령 연임이 불가능한 한국의 정치 제도상, 그리고 20퍼센트 선에서 왔다갔다하는 대통령 지지도를 감안해볼 때, 이명박의 레임덕이 찾아오는 시점은 기존의 대통령들보다 훨씬 빠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시에게 신발이 날아오는 장면을 떠올려보면 쉽다. 이명박은 정오를 넘기면 바로 '지는 태양'이고, 자유낙하하는 별똥별 신세가 된다. '앞으로 4년을 어떻게 더 견디냐'며 지나치게 괴로워할 필요 없다. 올라가는 길이 힘들었던 만큼 내려오는 길은 롤러코스터나 다름없을 테니까.

언론을 장악하고, 경찰을 장악하고, 지방 토호들을 장악하려 하는 이유는, 그나마 그거라도 없으면 나머지 임기의 절반 동안 처절하게 두들겨맞을 것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경제도 그렇다. 세계 경제가 회복된다 해도 그 영향이 한국에 도달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게다가 국내 부동산 거품이 꺼질 것도 고려해본다면, 이명박은 경제 문제를 해결 못 한다고 봐야 옳다. 따라서 그나마 '말빨'이 먹히는 지금, 꽉 잡을 수 있는 만큼 꽉 잡아놔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절망적인 만큼 이명박도 필사적이다.

그러므로 '반 이명박 연대'는 그리 오래 지속될 수 없고, 지속되더라도 '이명박을 털어서 나온 전리품'을 누가 더 많이 차지하느냐를 놓고 더 큰 정치적 분쟁만을 낳을 수밖에 없는 구도가 된다. 국회 점거 농성에 진보신당이 참여하고 있지 못하다 해서, '반 이명박 투쟁'에 장내에서 참여하고 있지 못하다 해서 좌절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3. 지향: 정치를 다시 생각하자

올해까지는 에너지 문제가 고작 유가환급금 정도와 관련된 부차적인 이슈였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그것이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할 것이고, 서서히 정치적인 주제로 떠오를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2020년이면 유가는 고원에 올라간다. 실감이 안 난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싼타 모자를 12번만 더 쓰고 나면, 기름값은 현재의 두 배 이상이 된다.

최근 '반 한나라당 전선'을 강조하며 심상정이 은평을 재보선에 출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보신당의 당원들을 보며 내가 콧방귀를 뀌었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앞서 2.에서 말한 것처럼, 이명박의 실제 임기는 시한부 환자의 생명줄과도 비슷하기 때문에, 그 전선에 섯불리 참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지금 당장 국회 꼴을 보더라도, 민주노동당이 같이 싸우고 있지만 보도되는 것은 '민주당' 뿐이다. 진보진영은 덩치가 작기 때문에, '전리품 나눠먹기'에서 큰 파이를 가져갈 수가 없다. 그리고 우리가 '성장'하기 전에 이명박이 먼저 쓰러지게 되어 있다. 손해보는 장사는 애초에 끼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진보신당이, 에너지 정치를 전면에 부각시키고, 더 많은 대비를 하고 있으며, 그 방면에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정당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에너지 문제가 정치적인 주제로 떠오른 상황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사람들은 한나라당이네 반 한나라당이네 박근혜네 이명박이네 하고 싸우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정치적 담론의 하부구조는 지금과 다른 구조에서 작동하게 된다.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원자력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고, 그것에 반대하여 대체에너지 개발에 힘써야 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전자의 범위가 대단히 넓다는 데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마치 한미 FTA나 이라크 파병에서 그러하였듯이, 원자력 발전 확대에 공히 찬성할 것이다. 핵무기를 보유하고자 시도했던 북한을 감싸고 돌아야 하는 민주노동당 또한, 원자력 발전에 대한 이미지를 나쁘게 하는 행동을 굳이 할 필요를 느끼지는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통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제어하고 에너지 수요량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많은 수의 원자력 발전소를 지어야 한다. 이번호 포린폴리시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 중 하나라서, 매체가 나올 때까지 더 이상의 내용 누설을 할 수는 없다.

결론만 말하자면 원자력 발전은 미래의 에너지원이 될 수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또한 바로 그 지점이야말로 정치적 이슈가 되어야 마땅하다고 본다. 최장집의 정당정치론은, 정당 환원주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본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정치적 이슈를 결정하는 하부구조의 변동에 둔감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최장집의 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수용하는 20대들을 보며 우려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그것 때문이다.

에너지 정치는 정당 구조와는 다른 차원에서 결정될 것이다. 따라서 그때까지 '반 한나라당', '반 이명박' 전선을 붙들고 늘어진다면 낭패를 보게 된다. '우리 편'인줄 알았는데, 정권 잡고 부안에 전경 보내고 사람 때려 죽이는 일이 또 벌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민주당이 다시 급성장할 가능성은 없지만, 만약 그들이 회복하고 정권을 잡는다면, 분명히 '제2의 부안', '제3의 부안'이 속출한다. 반 한나라당 전선? 시신의 고환을 쓰다듬는 소리다. 제발 눈 좀 뜨고 살자.


4. 결론: Power to the People

'Power to the People'. 본래 이 말은 '민중에게 권력을' 정도로 번역된다. 하지만 에너지 정치와 맞물려 생각해본다면 그 함의는 더욱 커진다. '민중에게 힘을', 그리고 '민중에게 에너지를'. 진보신당 녹색특위의 유가환급금 태양열 발전소 운동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정치는 단순한 권력의 차원을 넘어, 에너지의 생산과 분배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차원으로 나아가고 있다. '민주주의'의 해석을 놓고 이런 저런 의견이 분분했던 2008년이었다. 2009년의 주제는 'Power'가 될 것이다.

내년 당장은 그것이 부각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에는 분명히 그렇다. 'Power to the People.' 이 말을 품고, 오늘 밤 재야의 종소리를 들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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