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03

지식인, 광대, 개념인

신해철의 학원광고를 둘러싼 논란을 보며, 유승준의 병역문제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나도 그들 중 하나다. 두 사건은 비슷한 구조 하에서 벌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 두 경우 모두에서 해당 연예인보다는, 그들에게 열광한 후 다시 열광적으로 매도하는 대중들의 목소리에 주목하고, 그쪽에도 책임을 묻고자 한다. 역사는 역시나 두 번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유승준과 신해철 모두, 한국 특유의 현상으로 보이는 '개념인'이라는 카테고리를 발견한 후, 그것을 적극 자신의 인기를 위해 사용하다가 역풍을 맞은 사례이다. 내가 생각하는 '개념인'이란 이런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대충 동의하고 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는 이야기를, 유독 다른 사람들보다 돋보이게 주창하고 나서서 그들의 지지를 획득할 때 그는 '개념인'이 된다.

유승준의 경우부터 먼저 살펴보자. 한국에는 '남자라면 군말없이 군대를 갔다 와야 한다'라는 통념이 있다. 하지만 군대 문제 자체가 국가의 폭력과 결부되어 있으며,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곳에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게다가 군대에 다녀온 남성들의 피해의식이 포진해 있기 때문에 연예인이 군대와 관련하여 함부로 농담을 하거나 하면 큰 코 다치는 수가 있다.

이럴 경우 가장 현명한 선택은 아예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이다. 혹은 누가 말을 시키더라도 가장 소극적인 답변만 하는 것이다.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죠, 헤헤...'라며 말꼬리를 흐리는 그런 것 말이다. 유승준은 거기서 혁신적인 마케팅 방식을 찾아냈다. 아예 적극적으로 '군대를 가고자 하는 바른생활 사나이'라는 이미지 구축에 나선 것이다. 유승준 개인이 지니고 있던 확실한 스타성에, 그러한 '개념'이 덧붙여졌을 때 그 효과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 역풍도 확실히 불어닥쳐서, 지금도 유승준은 인천국제공항을 통과하지 못하는 국제 미아 신세가 되어 있는 처지이다. 내가 유승준이라면 가수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우고 '정치적 이유에서의 망명 신청'을 해버리고 싶을 정도로 비인간적인 일이다. 대체 그게 뭐가 죽일 일이라고? 물론 정언명법에 따르면 또 십계명에 따르면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지. 하지만 사람들은 살면서 거짓말도 하고, 걸리기도 하고, 연예인의 경우에는 '참회의 눈물'을 흘린 후 용서받기도 한다.

그 모든 과정에서 유승준만은 예외이다. '개념인'이었기 때문이다. 유승준에 대해 아직도 분노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심리에는, 유승준을 철저히 연예인으로 취급하면서도, 동시에 연예인의 범주 바깥에 있는 수준의 윤리 의식을 요구하는 양면성이 포진하고 있다. 교통사고로 사람을 치여 죽여도 '용서'받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군대 간다고 했다가 한국 국적 포기하는 것은 안 된다. 류시원은 '개념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승준은 아름다운 청년이었고, '개념인'이었다. 평가의 기준이 확 달라진 것이다.

신해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물론 유승준보다야 신해철의 '개념 발언'들이 비교적 낫다고 나는 생각하지만, 아무튼 그도 자신이 '개념인'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부인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고 분노할 뿐'이라는 말이 언제나 양념처럼 덧붙여졌다. 그 유보 조건이야말로 '개념인'을 개념인이게끔 하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은 그저 평범하고 상식적인 것이다, 따라서 내 말에 동의하는 당신은 '안전'하다, 이런 식으로 브레이크를 걸어주지 않으면 '개념인'의 발언은 성립하지 않는다.

신해철은 '상식적'이라는 이유로 노무현을 지지했고, '비상식적'이라는 이유로 이명박을 비판하고 있다. 그가 해명 차원에서 내놓았던 첫 번째 요소가 '각하가 주신 용돈'이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개념인'으로서의 자신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내놓은 답변에서도 마찬가지 코드가 좌르륵 나온다. '절라디언', 하지만 '알고보면 깨끗'한 사생활. 그런 것들로 방어벽을 쳐놓고 나서야 신해철은 공교육과 사교육을 분리하여, 자신이 반대하는 것은 공교육일 뿐 사교육에 반대한 적은 없다는 해명을 내놓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해명의 문제점이 아니라(이것은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이야기했다고 본다), 그 해명에 앞서 등장한 온갖 '개념인 코드'들이다. 너무도 쉽게 동의를 얻을 수 있는 그 말들. 너무도 '상식적'이지만 아무도 공적인 자리에서 말하지 않는 그런 이야기들. 그래서 개념찬 발언을 해주는 신해철이 너무도 고마워지게 했었던 그런 것들.

문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개념'과, 신해철이 머리에 담고 있는 '개념'이 다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 또한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깨달아가고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그 사실만을 적어놓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논의를 한 단계 더 진전시키기 위해, 우리는 질문을 더 깊숙히 던져야 한다. 그렇다면 '개념인으로서의 연예인'이라는 통념에는 문제가 없는가? 문제가 있다면, 대체 왜 문제인가?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해 누구를 탓해야 하는가?

나는 '개념인으로서의 연예인'을 만들어내고 소비하는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지식인과 예능인, 진중권의 표현대로라면 '광대'의 입지 모두를 좁히는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식인들과 예능인들이 공히 각성해야 하겠지만, 예능인들이 개념인 행세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대중적인 분위기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나는 신해철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차고 있지만, 그것 뿐이다.

앞서 말한 '개념인'의 코드를 다시 한 번 살펴보자. 그것들은 그냥 '상식적'이다. 그냥 한나라당이고 이명박이다. 그냥 조선일보고 그냥 강남이고 그냥 사교육이다. '개념인'이 툭툭 던지는 '개념찬 발언'에는 '왜?'가 없다. 복잡하고 어려운 설명이, 혹은 쉽게 잘 이해되지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껄끄러운 그런 진실이 들어갈 공간이 없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개념인은 지식인을 구축한다.

신해철과 같은 '개념인'들이 용산 참사같은 진짜 사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명박이니까 잘못된 거지,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이러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도 크고 두려운, 진짜 참여와 사유를 하도록 강요하는 그런 사건이 터졌을 때, 그들의 (그리고 어쩌면 당신의) '상식'은 불현듯 입을 다물어버린다.

이명박이 경찰을 함부로 부리는 것은 잘못한 것 같지만 직접 명령을 내렸을 리도 없고 세입자들이 딱한 것도 같지만 연 매출이 억단위라고 그러고 찬 물을 끼얹은 게 잘못이긴 한데 전철연이 개입하고 있었고... '상식'이 침묵하고 있는 가운데, '팩트'만이 난잡한 시장판을 벌이고 있다.

악순환이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사람들이 지식인은 멸시하고 폄하하지만 개념인은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예비 지식인들은, '대중성'이라는 명목 하에 본래의 역할을 포기해버린다. 누군가를 개념인으로 만들어주는 그 '개념'이 상식과 통념이라면, 지식인 또한 결코 개념인일 수가 없다. 다들 알지만 쉬쉬해오는 것을 폭로하는 사람, 이미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을 회의하게 만드는 사람, 상식과 통념을 파괴함으로써 사회를 위협한다고 모함당하지만 결국은 그에 기여하는 사람이 지식인이라면 분명히 그렇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이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자판기에 200원을 넣고 버튼을 누르듯 질문이 들어온다. 나는 그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손쉬운 대답을 안겨주고 싶지 않다. 그가 욕망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그런 욕망에 굴복하고, 그것을 잘 충족시켜준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으면 나 또한 '개념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겠다. 나는 개념인이 아니다. 대체 지식인이 뭐냐고 나에게 물으면, 실은 나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지식인이 되고자 지향하고 있고, 그것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래야 한다.

개념인이라는 개념은 옳지 않은 개념이다. 그것은 진지한 탐구와 고민이 있어야 할 자리에, 한 두 줄로 요약되는 '어록'을 집어넣고, 사유를 마비시키며, 스스로가 똑똑하다고 믿는 대중을 양성한다. 개념인이 있고, 그 개념인의 발언에 열광하는 내가 있다면, 나 또한 개념이 있는 것이다. 이런 손쉬운 삼단논법은 정말 어려운 문제들, 한국 사회가 진지하게 마주봐야 하는 문제들을 상대할 수 없다.

용산 참사가 터졌다. 그렇다면 재개발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어야 할 것인가? 수많은 전문가와 지식인들이 답변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여론 수용층의 입맛이 이미 '개념인'이라는 인스턴트 식품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진중권은 이명박을 깔 때에만 사랑받는다. 그때만 '개념인'이기 때문이다. 진보신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한국 정치의 불균형한 정당 구조를 토로하고, 미디어와 현대 사회에 대한 '머리 아픈' 논의를 늘어놓을 때에는 진중권 또한 그저 '지식인'에 불과한 누군가로 강등된다.

연예인의 경우에도 '개념인'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것은 결코 이익이 되지 않는다. 사회적인 발언 한 두 개만 해도 졸지에 타고 싶지 않았던 무등을 타야 한다. 유재석이 정치에 대해 한 마디 했다고 쳐 보자. 난리가 날 것이다. 오오 개념인, 혹은 오오 알고보니 꼴통, 등등.

조지 클루니 일당처럼 '쿨'하게 정치적인 지향성을 드러내는 연예인이 나올 수 없는 이유는, 그런 발언을 하는 순간 대중들이 자신을 '개념인'으로 소비할 것임을 그들이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에 대해 한 마디 하려면, 연예인은 자신의 직업 생명을 걸거나, 아예 컨셉을 바꿔야 한다. '광대니까 넘어가자'는 식의 중재안이 먹힐 수가 없는 사회인 것이다. 예술과 정치 사이에 길고도 깊은 구렁이 파이고, 그 강을 건너간 자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유승준이 그랬고, 신해철도 그렇게 만들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들이 너무 많다.

개념인이라는 개념을 붙들고 있는 것은 대단히 개념 없는 짓이다. 따라서 그러한 가치 판단의 기준 하에 신해철을 비판하는 것에 나는 원론적으로 찬성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 포지션을 충분히 활용해 온 신해철에게 개인적인 실망을 느끼는 것까지 반대할 생각도 없다. 다만 나는 이 사건을 통해 사람들이, 특히 신해철이 두 번에 걸쳐 해명한 글에서 나온 그런 '개념 넘치는 단어'들에 대해 의문을 품고 숙고하고 고민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개념'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당신은 '개념인'들이 대답해주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드디어 지식인이 필요해지는 순간이다. 그런데 지식인들은 쾌락을 주지 않고, 마음의 평화를 주지도 않는다. 지독하게 머리를 굴리고 나면 화끈하게 놀고 싶어진다. 그럴 때에는 광대를 찾아가면 된다.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해법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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