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13

용산의 오줌

4월 5일 일요일. 맑은 날이었다. 용산역 CGV에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보려던 참이었다. 영화 시간에 맞추기 힘들 것 같아 택시를 탔다. 이태원에서 용산역까지 가는 길은 멀지 않았지만, 차량이 많았고 길은 막혔다. 용산역 바로 앞으로 택시를 타고 진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나는 몇 천원을 아저씨에게 쥐어주고 차에서 내렸다. 횡단보도까지 가기 위해서는 삼각지역 쪽으로 약간 올라가야 했다. '그 현장'에 꼭 다시 가보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가던 길이었을 뿐이고, '그 현장'이 워낙 교통의 요지에 있을 뿐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서건, 버스 전용차선 위에 놓여 있는 정류장에 가기 위해서건, 그곳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용산에서 사람이 불에 타 죽은지 벌써 석달 째. 하지만 정부는 책임 있는 자세를 결코 보여주지 않고 있다. '그들을 잊어서는 안 되는데'라고 흔히들 쉽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궁지에 몰린 사람들과의 '연대'라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 쫓기는 사람들, 구석으로 몰려 있는 자들, 승산 없는 싸움을 계속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촛불소녀처럼 귀엽고 예쁘장하고 '쿨'할 수가 없다.

눈보다 코를 통해 그곳이 그곳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현장까지 10미터도 더 남아있었지만, 오래도록 쌓여온 소변의 지린내가 진동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을 빼앗긴 사람들은 결국 침을 뱉고 오줌을 갈기고 똥을 뿌릴 수밖에 없을 터이다. 가진 것이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합판을 대충 못으로 박아 만든 '화장실'은 전경 버스의 타이어쪽을 향해 있었다. 전경 버스에 오줌을 싸는 사람의 양 옆을 가려주는 정도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악취가 코를 찌르는 그 곳에는 '연대'해주는 '촛불시민'도 없었고, 심지어 경찰 병력도 그리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버스 한 대 정도의 전경들이 멀찍이 떨어져 관망하고 있을 뿐이었다. 유족들은 의자에 줄줄이 앉아 그저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명'과 '삶'은 결코 같지 않았다. 남편이 생명을 빼앗기자 아내는 삶을 잃었다. 아버지의 목숨을 짓뭉개놓고도 사과하지 않는 국가와 대립하는 과정에서, 딸의 삶 또한 제 형태를 잃어가고 있었다. 이 두 문장에 과거형 시제를 붙이는 것은 옳지 않다.

나는 차마 '연대'라는 단어를 쉽게 꺼낼 수가 없다. 그 '화장실' 앞을 지나 횡단보도로 향하며, 용산 참사 유족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어떤 훈수쟁이는 '더 많은 시민들의 호응을 얻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용산의 시민이여...'라고 지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참을 수 없이 화가 난다. 용산 참사를 기억합시다! 블로거들이 연대해서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글쎄요. 모르겠어요. 나는 차마 '연대'라는 말을 꺼낼 수가 없다. 내가 그 암모니아 냄새를 맡으며 느꼈던 당혹스러움은, 이른바 '교양 있는 시민'으로서 당연한 반응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당연함이, 자연스러움이 부끄럽다.

처음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오늘과 내일 있을 용산참사 유가족 돕기 콘서트 '라이브 에이드(Live Aid)-희망'을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모금액 전액이 용산 참사 희생자들을 위해 사용되는 이 행사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줬으면 좋겠다.

가진 것은 오줌밖에 남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그 행사가 열린다. 용산의 슬픔은 퀴퀴하게 썩어가고 있는데, 쾌적한 공연장에서 춤과 노래를 즐긴다니. 이것이 모순된 행동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앞에 주어지는 재현된 고통이 아닌, 날것 그대로의 무언가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용산 참사'가 주제인 공연을 보는 것은, 껄끄럽겠지만, 나쁜 일이 아니다.

용산의 그 '화장실'을 생각하면 나는 아직도 부끄럽고, 불편하고, 당혹스럽다. 콘서트에 갈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들도 어쩌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 불편함은 결코 당장 해소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중요한 것은 우리를 거북하게 하는 진실 그 자체를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용산참사 유가족 돕기 콘서트 '라이브 에이드(Live Aid)-희망'

* 공연정보

23일: 이승환, 이상은, 오! 브라더스, 윈디 시티, 흐른

24일: 블랙홀, 브로콜리 너마저, 갤럭시 익스프레스, 킹스턴 루디스타

관람료: 1일 2만원

* 공연 수익금 전액은 용산참사 유가족에게 전달될 예정.

(02)749-0883, 후원 계좌:하나은행/159-910003-67004(예금주-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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