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15

에휴 진짜...

성공은 몇 년 동안 지속되었다. 1784년 3월 3일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다가오는 사순절의 마지막 3주 동안 수요일마다 정기 회원들을 위한 연주회를 세 차례 가질 예정인데, 벌써 100명이 신청했고 30명의 추가 신청자를 기다리고 있다고 쓴다. 그 밖에도 두 차례 음악회를 열 생각인데-이 모든 것을 위해 그는 '새로운 작품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전에는 피아노 레슨을 하고, 거의 매일 밤 귀족 저택에서 연주한다고 전한다. 그의 연주회 예약자들-우리는 일부 명단을 가지고 있는데-은 역시 귀족들이었다. 그러나 1789년 7월 12일에 그는 미하엘 푸흐베르크라는 상인인 새로운 연주회를 예약했지만 신청자가 단 한 명, 즉 그의 매우 친한 친지인 판 슈비이텐 씨뿐이라 취소했다고 털어놓는다. 맨 꼭대기의 황제를 포함하여 빈 상류 사회 전체가 그에게 등을 돌린 것이다.19)

19) 전환점은 아마 <피가로의 결혼>이었던 것 같다. 모차르트가 직접 골랐던 오페라의 주제는 절대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정치적으로 상당히 의심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한 귀족은 그 당시 일기에 이 오페라를 관람했고 'ennuyiert'했다고 적고 있다.(Hildesheimer, 앞의 책, 199쪽) 이 말은 흔히 번역되듯이 '지루했다'가 아니라 '화가 났다'를 의미한다. [47쪽]


베토벤은 모차르트보다 15년 늦은 1770년에 태어났다. 모차르트가 헛되이 추구했던 것을 베토벤은, 설령 놀이하듯이 손쉽게는 아니라 하더라도, 별 힘 안 들이고 얻을 수 있었다. 즉 궁정 귀족의 후원에 대한 의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고 그래서 곡 의뢰인의 관습적 취향보다는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또는 더 정확하게는 그 목소리의 내재적 일관성에 충실한-곡들을 작곡할 수 있었다. 베토벤만 해도 이미 음악 청중에게 자신의 취향을 강요할 수 있었다. 그는 모차르트와는 달리 사회적으로 힘있는 고용주나 의뢰인을 위해 아랫사람이나 하인으로서 음악을 생산해야만 하는 사회적 속박을 벗어날 수 있었고, 생애의 대부분을 자유 예술가(현재 우리가 일컫는 용어로)로서 미지의 청중을 위해 창조할 수 있었다. 하나의 짧은 인용구가 그 차이를 구체적으로 말해준다. 1801년 베토벤은 친구 베겔러에게 이렇게 쓴다.

작품들은 내게 많은 수입을 안겨주었고, 만족할 정도보다 더 많은 주문이 밀려들고 있네. 한 작품마다 6명 내지 7명의 출판인들이 달라붙는데, 내가 좀 신경만 쓴다면 더 많은 작자들이 덤빌 걸세. 사람들은 이제 나와 흥정하려 하지 않네. 내가 요구하면 그들은 지불하지. 그게 얼마나 행복한 처지인지 자네는 알겠지…….


여기서 베토벤이 성취하였다고 의기양양하게 선언하는 것을 모차르트도 일생 동안 꿈꾸어왔다. 그가 좀더 오래 살겠다는 용기를 잃지 않았더라면 혹시 거기까지 도달했을지 누가 알겠는가. 지배적인 사고 규범에 따라 우리가 추정해볼 수 있는 것은 모차르트도, 그가 좀더 넓은 층의 청중을 염두에 두었더라면, 31세의 나이에는 베토벤처럼 출판인들이 그의 작품에 달려들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일생에서 나타나는 그런 차이를 일차적으로 개인차로 돌리고 사회의 구조 변화에 기초한 설명을 무시하도록 강요하는 규범의 압력에 너무 쉽게 양보해서는 안 된다. 성공은 모차르트에게 그의 사후에조차도 부족하지는 않았다. 생시 그에게 결핍되어 있었던 것은 베토벤의 편지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고도로 발달한 출판활동이었다(동시에 초대 손님이 아니라 지불하는 청중을 위한 연주회 개최의 확산). 실로 "사람들은 이제 나와 흥정하려 하지 않네. 내가 요구하면 그들은 지불하지"라는 문장처럼 예리하게 예술가들의 사회적 지위에 일어난 결정적인 구조 변화를 밝혀주는 문장도 드물다. [59-60쪽]


노베르트 엘리아스, 『모차르트 - 한 천재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 trans. 박미애 (서울: 문학동네, 1999).
모차르트 - 10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지음, 박미애 옮김/문학동네



저는 술자리에서 얻어들은 이야기로 대충 칼럼을 쓰거나 하지 않습니다. 제 말은 한 마디 한 마디에 다 근거가 있어요. 게다가 이런 짓을 몇 년째 하고 있어서 자료도 점점 누적적으로 증가하고 있답니다. 조테로에 차곡차곡 쌓여 있던 카드를 약간 꺼내서 보여드리는 거에요. 클래식을 잘 모른다고? 물론 그렇겠죠. 뉴비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니까. 하지만 노베르트 엘리아스가 모차르트의 삶에 대해 사회학적으로 어떻게 해석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압니다. 그러니 깝ㄴㄴ 플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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