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27

떡밥을 물지 말아야 하는 이유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수사기관은 완결되지도 않은 수사 내용을 조금씩 조금씩 언론에 흘린다. 기자들은 그것을 받아 적고, 데스크에서는 가장 자극적인 제목을 골라 뽑는다. 그 뉴스를 읽고 독자들은 ‘진실’이 뭐냐, ‘...설’의 팩트는 뭐냐, 왈가왈부 따지기 시작한다. 정작 제대로 밝혀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남는 것은 그저, 피의자의 황폐해진 영혼 뿐이다. 그는 설령 수사결과가 무죄로 나온다 해도, 사회가 자신을 평생 죄인 취급하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남은 선택은 결백을 주장하며 목숨을 던지는 것 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타살설 따위를 놓고 벌어지는 인터넷상의 설왕설래를 보고 하는 말이다. 많은 이들은 쉽게 말한다. 조선일보가 문제야, 언론의 선정성이 문제야, 쯧쯧. 하지만 그 말을 하는 그 사람부터가, 그 언론에서 흘리는 파편적인 정보를 놓고 누가 진범이네 아니네, ‘시나리오’가 이렇게 나오네 저렇게 나오네, 여론재판에 슬그머니 참여해버린다. 좋은 언론은 결국 좋은 독자가 만들고, 좆같은 언론은 좆같은 독자새끼들이 만드는 거다. 조중동 뿐 아니라 모든 언론이 싸구려스럽다면, 그 언론을 소비하는 사람들, 특히 ‘...설’에 혹하는 자기 자신부터 돌아보기 바란다.

이 사람들아, 정신 좀 차려라. 이러다가 그 경호원 자살하겠다.

지금 똑같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지나가던 등산객의 증언, 번복되는 진술, 과연 진실은? 이게 지금이다. 일주일 전에는 이랬다. 박연차 회장의 증언, 번복되는 노무현의 진술, 과연 진실은? 타살설이니 뭐니 하는 떡밥을 덥썩 무는 순간, 당신도 결국 조선일보 독자들과 다를 바 없는 팩트 골룸이 될 뿐이다.

안티조선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언론운동은 철저하게 실패했다. 조선일보의 공신력이야 떨어졌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성취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자신들이 왜 조선일보를 욕하는지, 왜 욕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공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사안을 ‘진실 게임’으로 몰아가고, 한 개인의 공적 판단과 선택을 그의 신변잡기와 연루시키는 조선일보, 혹은 조중동의 황색 저널리즘을 이겨내는 방법은, 언론의 소비자들이 그런 천박한 ‘팩트’에 관심을 끄고 오직 명백하게 확인된 사실만을 토대로 담론을 쌓아가는 것 뿐이다. 하지만 지금 그런 모습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안타깝게 여긴다면, 대체 그 죽음이 왜 닥쳐와야만 했는지에 대해 생각을 좀 해보기 바란다. 검찰은 확인되지도 않은 범죄 사실을 언론에 계속 흘렸고, 언론은 그것을 확대재생산했다. 그러한 전방위적 압박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지금도 마찬가지 아닌가? 노 전 대통령의 경호원에 대한 수사는, 경찰에서 조용히 하면 되고, 수사 결과 공개는 모든 사실이 확인된 후에 해도 늦지 않다. 사안이 시급하다면, 경찰은 우선 완전히 확인된 사실부터 공개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도 최대한의 신중을 가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모습은 어떤가? 이미 또 하나의 여론재판이 시작되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다며 그 여론재판에 끼어드는 사람들, 당신들도 이미 공범이다.

조중동이 어쩌고 저쩌고, 좆중동이네 마네 욕하는 사람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조선일보 못 이기는 이유가 딴 게 아니다. 그놈의 달콤한 ‘팩트’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거 살살 흘리면서 애간장 타게 만드는 기술이라면 조선일보가 세계 최고 수준이지. 그래서 정작 지나고 보면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피의자는 병신 되어 있고 정작 ‘진실’은 과도한 ‘팩트’의 무더기에 갇혀버리고, 환기되었어야 하는 여론의 방향은 오직 ‘진실 게임’에만 쏠려버리는 그런 것 말이다. 지금도 딱 그 패턴으로 흘러가고 있다. 무슨 말이냐고? 그놈의 타살설 때문에 지금 묻혀진 이야기가 뭔지 잘 생각해보라.

서울시청 광장 봉쇄를 둘러싸고, 27일 수요일, 시민과 경찰 사이에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져 가고 있었다. 타살설이 운위되기 전까지 그 문제를 둘러싼 담론이 형성되고 있기도 했다. 정부도 아닌 일개 지자체 서울시가, 국민들의 집회의 자유를 완벽하게 억압하고 있다. 사실상의 집회허가제가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는, 그런데 적어도 인터넷상에서는, ‘타살설의 진실’을 찾아 헤매는 선량한 사람들 덕분에 완전히 묻혀버리게 되었다. 네, 진실 좋죠. 잘 찾아보세요. 이미 조선일보는 웃고 있습니다.

명백하게 확인된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내가 ‘팩트 골룸’이라고 욕하는 것은, 하지만, 다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놓고 제 깜냥으로 시나리오 써가며 왈가왈부하느라, 정작 중요하게 논의되어야 할 것을 놓쳐버리는 어리석고 한심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조선일보가 문제라고? 부스러기 ‘팩트’를 줏어먹는 당신 같은 독자가 있는 한, 조선일보는 망하지 않는다. 조선일보가 망한다 해도 어차피 같은 식으로 장사하는 다른 언론이 등장할 것이다. 그 품위 없는 언론은 결국 품위 없는 독자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 언론과 검찰의 수사가 노무현을 죽였다. 이제 그의 경호원도 칼날 위에 서게 되었다.

제발, 그만하자. 떡밥을 물지 말자. 당신들이 낚이는 한 저들은 영원히 낚게 되어 있다. 조선일보의 독자들이 노무현을 죽였듯이, 한겨레의 독자들이 노무현의 경호원을 죽이는 모습을 나는 정말 보고 싶지 않다. ‘사회적 타살’은 바로 그렇게 저질러진다. 떡밥에는 낚시바늘이 들어 있다. 그것을 물고 자유를 얻을 수는 없다. 경찰의 수사와 언론의 호응이 다시 한 번 큰 죄를 저지르기 전에, 제발 그만 좀 하잔 말이다.

2009-05-23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고물상의 아들로 태어나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다가
바보처럼 돌아가셨군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09-05-18

『예수전』 일별

예수전 - 10점
김규항 지음/돌베개



오래간만에 여유가 생겨서 교보문고에 들렀다. 김규항의 신작 『예수전』이 매대에 놓여 있었다. 디자인과 만듬새가 좋아서 들춰보았는데, 저자가 전제로 삼고 있는 내용에 대해 한 마디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규항은 마르코의 복음서(마가복음)가 가장 오래 전에 작성되었으며, 종교적인 가필이 없기 때문에 예수의 생애를 살펴보는데 가장 좋은 텍스트라고 주장한다.

4복음서중 마가복음이 가장 이른 시점에 나왔다는 것은 맞다. 하지만 마가복음이 '덜 종교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마가복음의 예수는 설교하는 대신 전도하고,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열혈남아인데, 그것은 마가복음을 편찬한 집단이 그런 속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경 연구자들은 마태, 마가, 누가 세 복음서의 출처를 대략 다음과 같이 짐작하고 있다. 마태복음은 예루살렘의 기독교 집단에서 편찬되었으며, 마가복음은 로마에서 이방민족을 위한 전도를 염두에 두었던 분파의 것이고, 누가복음은 좀 더 후기의 로마 기독교인들이 집성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에 따라 각 복음서의 개별적 성격이 형성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마태복음은 말도 안 되게 예수의 탄생설화를 비비 꽈서 '다윗의 14대손'으로 맞춰놓는다. 예루살렘에서 만들어진 책이기 때문이다. 반면 누가복음은 로마, 혹은 로마에서 가까운 어딘가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로마인들과 이방인(즉 할례받지 않은 비유대인)들에게 온정적이다. '덜 종교적'인 마가복음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 복음서 안에서 예수는 그 자신이 한 사람의 사도처럼 열성적으로 뛰어다닌다.

중요한 건 이러한 모습이 '덜 종교적'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보다 마가복음에 등장하는 예수가 덜 종교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러한 개념적 장치를 동원하여 엄연히 자신이 종교에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예수("내가 율법을 폐하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나는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를 종교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굳이 비교하자면, 정치인들이 탈정치적인 제스추어를 취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이 시대의 모습과, 종교에 대해 가장 진지하게 고민하고 행동으로 옮긴 한 사람을 탈종교적인 누군가로 만들려 하는 것 사이에, 모종의 유사성이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탈정치의 시대가 정치적 타락을 낳았듯, 이러한 탈종교적 해석이 정치적 선보다는 종교적 악을 낳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우려한다.

나 또한 그 책을 꼼꼼하게 읽어본 것은 아니므로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는 것이 옳을 것이다.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간단하다.

첫째, '인간 예수'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인간 예수'는 자신이 불러올 파장을 알면서도 스스로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한, 가장 급진적인 종교인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둘째, 마가복음에 대한 김규항의 취향은 존중해줄 수 있지만, 오직 그것만이 '올바른' 예수를 담고 있으며, 나머지는 종교에 의해 오염된 것인 양 말하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김규항의 논법대로 작성 시기가 가장 앞서기 때문에 마가복음에 다른 복음서를 압도하는 권위를 부여한다면, 마가복음보다 앞서 저술·편찬되었을 뿐 아니라 저자가 누구인지도 확실히 밝혀진 사도 바오로의 서간에 그보다 더 높은 권위를 부여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김규항은 예수의 부활에 대한 마가복음의 기술이 마태, 누가의 내용이 첨가된 것이라고 말하며 그에 대해서는 기술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가복음보다 앞서 쓰여진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고린도전서) 15장 1절에서 8절까지의 내용은, 이후 복음서에 등장한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기술과 일치하며, 더구나 저자인 바오로를 포함한 오백 명이 넘는 증인을 열거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마가복음의 뒷부분이 가필된 것일 가능성이야 적지 않겠지만, 그것을 '불순물'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예수와 함께 살고 밥을 먹고 마셨던 사람들이 겪었던 일이 전승으로 남아 있었고, 그게 바로 '종교적'인 내용을 이루는 것들이라는 점을 감안해본다면 분명히 그렇다.

2009-05-07

돼지독감, 아프가니스탄 동물원

미디어스에 격주로 칼럼을 연재하게 되었다. 첫 꼭지로 '돼지독감'에 대해 썼다. "돼지가 독감에 걸린 날"(미디어스, 2009년 5월 6일) 참조. FP 마감을 하느라 밤을 새면서 쓴 것이어서, 완전히 만족스럽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링크를 걸어도 어차피 안 읽을 사람들은 죽어도 안 읽을 것이므로 결론만 요약해보자.

국내의 현 의료 체계를 놓고 볼 때 신종 인플루엔자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 사태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전 국민에게 의료 접근권이 보장되어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므로, 현재 추진되는 의료법 개정은 철회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칼럼에는 두 번째 문장의 주장을 대놓고 개진하지 않았지만 요점은 그거다.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감염되었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은, 감염된 사람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고 인구 밀집 지역에서 병을 '참고' 있을 때이다. 감염자가 늘어날 뿐 아니라 변종이 생길 가능성도 비약적으로 높아지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겁나서 병원 못 가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위험하긴 하지만 '독감'에 불과한 질병이 '재앙'으로 거듭날 가능성도 커지는 것이다.

'돼지독감'이라는 이름 때문에 여기 저기서 코미디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가령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탈레반이 지배하는 나라답게 '공식적'으로 아프가니스탄에 존재하는 돼지는 단 1마리이며, 당연히 동물원에 있다. 로이터의 보도에 따르면, 돼지독감을 우려해서 동물원측은 그 외롭고 쓸쓸한 돼지에 대한 격리 조치를 단행했다고 한다.


바로 그 공포의 돼지 (ⓒ로이터)



기사를 읽어보면 더 골때리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1992년에서 94년까지 벌어진 아프가니스탄 내전 기간 동안 동물들이 많은 수모를 당했다. 무자헤딘 전사들이 동물원에 쳐들어가 사슴과 토끼를 잡아먹고 코끼리를 쏘아 죽인 것이다.

거기서 끝났다면 좋았겠지만, 어떤 무자헤딘 전사는 사자 우리의 철창을 넘어 들어갔다가 마르잔이라는 이름의 사자에게 물려 죽었다. 그러자 다음날 그 남자의 형이 쳐들어와 사자에게 수류탄을 투척하여, 마르잔은 이빨 빠진 장님 사자가 되어버렸다. 마르잔은 이후 2002년 고령으로 죽었고, 지금은 동물원에 대신 두 마리의 사자가 들어와 있다고 한다.


아프간 내전의 희생자, 애꿎은 사자 (ⓒ로이터)



여기까지 쓰고 보니 어떻게 결론을 내야 할지 난감한 지경에 이르렀다. 억지로라도 마무리를 지어보자. 오늘의 교훈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의료법 개정은 더 많은 국민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향으로만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것은 옳지 않다. 둘째, '돼지독감'이라는 말만 듣고 동물을 괴롭히거나 하지 말자. 아무리 내전중이라고 해도 동물원에 침입해서 동물을 잡아먹거나 사자우리에 뛰어들거나 해서는 안 된다.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