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06

법은 최소한의 도덕

모든 동성애 혐오 발언은 합법적이다'라는 명제가 참이 아님을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동성애 혐오 발언은 불법적이다'라는 것을 굳이 증명해야 할 필요가 없다. 그저 '어떤 동성애 혐오 발언은 법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라는 것만 보여주면 된다. 양화사가 들어가는 논리적 계산인데, 너무 간단해서 이걸 굳이 설명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은 것 같아서 잠깐 짬을 내어 보겠다.

'내게는 표현의 자유가 있다', '내가 내 취향을 표현하는 것은 자유다'라면서 동성애에 대해 이런 저런 혐오 발언을 마구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전제하고 있는 '모든 동성애 발언은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권리에 의해(왜냐하면 취향이니까) 보호받는다'라는 명제는, '어떤 동성애 혐오 발언은 법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라는 것을 보여주면 참이 아니게 된다.

정 이해가 안 가면 벤다이어그램을 그려보면 된다. 동성애 혐오 발언의 집합을 H라고 하고, 헌법에 의해 보장받는 표현의 자유를 F라고 해보자. '모든 동성애 혐오 발언은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라는 명제는 H가 F의 부분집합이라는 뜻이며, 따라서 이렇게 그려질 수 있다.

{ 집합 F {집합 H} }


따라서 F에 속하지 않는 H의 원소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면, 자신들이 무슨 소리를 찍찍 싸대건 한국 사회의 법이 그들을 처벌하지 않을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이 헛된 것임을 보여줄 수 있다. 나는 지난 포스트인 "동성애에 대한 혐오를 말할 권리?"에서, 인종적인 이유로 모욕죄의 성립을 인정한 최근 판례를 근거로, 동성애에 대해서도 모욕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이 말은 당연히, 모든 동성애 혐오 발언이 모욕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아니고, 모든 동성애 혐오 발언이 집합 F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일 뿐이며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다.

어떤 수위의 동성애 혐오 발언은 표현의 자유의 일부로 보호받을 수도 있다. 내 블로그에서 리플을 달았다 지웠다 하던 어떤 사람은 위키피디아를 뒤져가며 그것을 내게 굳이 강변하려 들었는데, KKK단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있고 인종혐오 발언도 어느 정도까지는 미국의 법 내에서 허용된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다. 법적으로 금지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런 발언이나 행동을 하는 것이 곧 정당하다는 결론은 결코 나오지 않는다. 가령 당신이 만원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방귀를 뀌고 싶다고 해보자. 그런 행동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당신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 예의와 도덕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법률 외적인 사회적 규제와 기준은 법을 통한 것보다 더 중요하다.

블로그 공간에서 '나는 동성애가 싫습니다'라는 표현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정도의 미약한, 대상이 명확하지 않은 혐오 발언까지 법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 그런 일이 있어서도 안 되는데, 왜냐하면 그렇게까지 개인의 표현을 국가가 법으로 억압하려 들 경우 그 칼날은 내게 먼저 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으로서 누군가가 다른 '개인'의 그러한 발언 혹은 행동을 비난하고 비판하고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며, 그런 비판은 더욱 활발하게 벌어져야 한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기 때문에, 국가가 법의 잣대를 들이대려 하지 못하도록, 개인들끼리 활발하게 도덕을 만들고 지켜나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문제는 도덕적 기준이나 상식적 당위라는 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공동체 내에서의 토론과 담론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데 있다. 따라서 '저 잉여들이 법을 어기지만 않는다면 괜찮다'고 말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무제한의 헛소리의 자유를 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행동이다.

나도 지겹지만, 이런 문제가 생길 때마다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상식과 윤리의 기준을 좀먹는 반인권적 발언들을 방치하면, 법으로 보장된 인권마저도 축소시키려는 정치적 움직임이 결국 도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와 같은 권위주의 선호 집단은 도덕의 공백을 법으로 해결하려 드는 경향이 있다. 인터넷 악플로 최진실이 자살했다며 '최진실법'을 만들겠다고 설치는 것 따위가 대표적이다. 그러한 논리에 맞서기 위해서는 역시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명제에 기대야 한다. 인터넷 악플은 도덕적 기준의 문제이지 법으로 다스릴 게 아니다. 그 기준은 결코 점잔 빼는 사람들의 고상한 촌평으로 지켜지는 게 아니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다. 따라서 '저들이 불법을 저지를 때까지는 무시하는 게 낫다'고 말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전략적으로도 어리석기 짝이 없는 소리이다. 그렇게 도덕의 영역이 허물어지기 시작하면 그 공백을 타고 법의 지배가 스며들어온다. 그것은 권력 위에 군림하는 극소수를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 일이다.

만약 누가 진정으로 범죄적인 혐오 발언을 한다면, 왜 그따위 인간과 '토론'을 한단 말인가? 당장 경찰에 신고해서 콩밥을 먹여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우리가 시끄럽게 토론하고 싸우는 것은 누군가가 불법을 저지르고 있어서가 아니라, 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 없더라도 옳지 않은 발언과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시끄럽게 싸워야 하고, 서로의 생각을 명확하게 드러내야 한다. 참된 평화는 결코 강요된 침묵과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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