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21

법정 스님의 유언에 대하여

다음 두 문장은 완전히 다르다.

① 나는 내 제자들 중 그 누구도 내가 남긴 책의 저작권으로 인해 경제적 이익을 보는 것을 원치 않는다.

② 나는 내 이름을 단 출판물이 더 나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법정 스님의 유언은 분명히 ②를 의미하고 있다. 워낙 돈에 미쳐 있는 세상이라 그런지, 저작권자에게는 인세를 받을 수 있는 권리 외에도 '저작물에 대한 인격권'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내 책을 절판시켜라'라는 말은 말 그대로, 자신의 책을 더 찍어내지 말고, 어떤 식으로건 공개하지 말라는 뜻이다.

한 저자가 자신의 책을 절판시키고 싶어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자신의 제자들이 추가적인 이권을 놓고 큰 다툼을 벌이거나 그에 준하는 추문을 일으킬 가능성을 배제하고 싶은 것도 그중 일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본인의 이름을 단 책이 더 나오는 것을 바라지 않고, 말 그대로 무(無)와 공(空)으로 사라지고 싶어서 그런 유언을 남겼을 수도 있다. 법정 스님의 저서 『무소유』 등을 읽어본 사람으로서, 나는 법정 스님이 애초부터 '완전한 소멸'을 원해서 본인의 저서를 절판시키라는 유언을 남겼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쪽에 속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돈에 미쳐있는지, '절판시키라고 유언을 남겼어? 그렇다면 인터넷에 공짜로 뿌리면 되겠네?'라며 눈을 희번덕거릴 뿐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책은 상품이면서 동시에 한 사람의 사상과 인격의 표현이기도 하다. (만약 가능하다면 '내 책을 전부 태워버려라'고 유언을 남기시지 않았을까, 나는 그렇게 추측한다.) 평생 '무소유'를 설파한 한 스님이 자신의 인격을 위해 더 이상의 출간을 멈추라고 유언을 남겼을 때, 그것을 '공짜로 만들어라'고 해석할 만큼 우리 사회가 돈에 미쳐있다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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