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01

다시, 용산과 노회찬

영화 <더 리더>의 원작 소설을 나는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옛 번역본으로 읽었다. 새로 나온 판본과 다를 게 없다고 하지만 아무튼 그렇다는 것이다. 그 책의 뒷부분을 보면 역자 소개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저자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역사학을 전공하려 했으나, 끊이지 않는 논쟁이 이어지는 역사학과 달리 명쾌한 결론에 도달하는 법학에 매력을 느껴 법학으로 진로를 정했다.' 그 대목을 읽으며 나는 의아했다. 독일에서는 그렇단 말인가? 법학에 명쾌한 결론이 있다고?

5월 31일, 용산 참사 유가족들에 대한 항소심에서 법원은 1심 판결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여 유죄를 선고하였다. 검찰의 공소 내용이 화염병으로 인한 발화를 특정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나 다른 발화의 이유를 찾을 수 없으므로, 화염병으로 인해 망루에 불이 났다는 사실오인은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in dubio pro reo, 불리할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한다는 형사 재판의 제1원칙은 온데간데없고, 발화 원인을 특정하지도 못한 검찰의 공소장을 따라 아들이 아비를 죽였다는 내용의 유죄가 선고된다. 발화 원인이 다른 것일 수 있다는 피고인측의 주장은 '합리적 의심'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21세기 초반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최악의 정치 재판이다. 한나라당이건 구 민주당 계열이건, 그들의 자금줄 노릇을 하고 있는 건설자본의 입김을 거스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서울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오세훈도 아니고 한명숙도 아니다. 건설사들이다. 용산 참사 유가족들이 무죄를 선고받는 것은 그 건설사들의 돈벌이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므로, 법원은 '합리적 의심'을 비합리적으로 줄여버린다. 다시 한 번 묻자. 검찰은 발화 원인이 화염병이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피고인들이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있는가?

나는 이성의 보편성을 믿는다. 그러나 구체적 상황에서 작용하는 '이성들'이 보편적이고 합리적일 것이라고 지레 가정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는 않으려 노력한다. 나는 이성이 정치적, 역사적 구성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성적 판단'의 주체임을 자임하는 자들은 정치적, 역사적 상황 속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이성적 판단의 이름 하에 포장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나는 법학에서 그 어떤 명확한 결론도 발견할 수 없다. 이것은 법정의 논리가 아니다. 정치의 논리로 그들은 용산 참사의 당사자들을 감옥으로 몰아가고 있다.

노회찬을 찍는 한 표는 그래서 사표가 아니다. 죽은 후에도 부당하게 매도당하고 있는 사람들, 살아서도 죽은 자들에 대한 책임을 법의 폭력 앞에 떠안게 된 사람들을 살리는 생표[生票]다. 용산 참사의 해결은 정치적 변화가 수반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변화의 첫걸음은 노회찬의 지지율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다. 오세훈에게 다섯 명의 희생자와 한 명의 경찰 대원의 이름을 묻는 바로 그 정치인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있다는 것을 법원에게 또 토건족들에게 보란듯이 과시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또한 당신이 최소한의 여유가 된다면, 노회찬 선본에 지금이라도 후원금을 보내주시기를 희망한다. 벌써 오후 5시 30분이지만, 내일 선거가 끝난 이후라도 치루어야 할 여타 잔금이 대단히 많을 것이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부끄러움 없는 돈이 모여서 부끄러운 줄 모르는 자들을 부끄럽게 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이 링크를 클릭해서 많은 분들이 지금이라도, 작은 쌈짓돈이라도 모아서 보내주시면 좋겠다. 나도 없는 살림에 또 5만원을 보탰다.

아직 선거는 끝나지 않았다.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여러 악재가 겹쳤고 예상치 못한 충격까지 받았지만, 남은 사람들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점이다. 부디 모두 힘을 모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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