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16

참여연대 서한 논란

'정부'와 '국가'는 다르다. 정부는 국가에서 필요한 공적인 업무, 즉 공무를 처리하기 위해 결성된 여러 집단의 합집합일 뿐이다. 행정부만으로 축소시켜놓고 보자면 더욱 그렇다. 정부의 입장은 한 국가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간주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한 나라에서 모든 의견이 정부의 것과 일치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정부의 이익에 반하거나, 정부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행동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국가의 무언가를 침해하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보고 새삼 놀라고 있다. 극우 신문들이 그런 레토릭을 구사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나름 합리적이고 지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비슷한 논리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정부가 곧 국가인 것은 왕조나 일당독재 국가에서나 가능한 발상이다. 민주주의의 핵심 개념 중 하나는 입법부와 행정부를 합법적으로 교체할 수 있는가 없는가이고, 그 개념은 근본적으로 국가와 정부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성립한다.

참여연대의 행동으로 인해 이명박 정부가 실제로 망신을 당했는지도 미지수이지만(유엔에는 지금도 수많은 NGO들이 자국 정부의 입장과 반대되는 로비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이런 미비한 사건에 '전 세계의 이목' 따위가 쏠리는 일 따위 전혀 없으니 안심하시길), 설령 그렇다 해도 그것을 시민사회에서 문제삼는다는 것은 정말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모든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떠들지만 모든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체득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정부는 국가가 아니다. 오직 국가만이 한 영토국가의 범위 내에서 공공선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주체인가, 라는 문제를 젖혀두고 생각해보자. 설령 저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한다 해도, 말 그대로 '비정부단체'인 NGO에서 정부의 공식 입장과 다른 견해를 UN에 제출하는 것이 대체 뭐가 문제인가? 그것이 대한민국의 국격과 국익에 해가 된다는 발언이야말로 한국의 민주주의 이해 수준을 적나라하게 폭로함으로써 한국의 국격을 손상시키고 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