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5-15

어떤 분기점

나는 진중권이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부분적으론 아무래도 그가 인터넷 매체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진중권은 자신이 이용하는 매체의 성격에 따라 각기 다른 전술을 구사한다. 물론 이는 나를 포함하여 모든 글쟁이들이 써먹는 전술이다. 그런데 진중권의 경우엔 인터넷에서도 익명의 네티즌들과 멱살 잡고 싸우는 희귀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름깨나 있는 논객 가운데 그런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진중권이 유일하다. 나는 진중권의 그런 활동에 대해 찬탄을 표한 바 있다.

그런데 비극은 진중권이 자신의 그러한 희귀한 행태의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진중권의 독특한 텍스트주의는 상황에 둔감하다. 그는 불특정 다수를 겨냥해 '썩어빠진 정치'라고 욕하는 것이나 정치인들의 면전에서 '썩어빠진 정치인'이라고 욕하는 것 사이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굳게 믿고 있는 듯하다.

강준만, 『인물과 사상』, 23권, (서울: 개마고원, 2002년 7월), 140쪽.

댓글 8개:

  1. '논객시대'의 글을 재미있게 읽고 있는 사람입니다. 오래된 자료들을 일일이 찾아 비평을 하는 님의 노고에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전에 쓰신 진중권에 대한 글은 너무 찬양 일색이라 보기에 좀 그랬습니다. 그래서 뒷부분은 대충 읽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그에 대해 호감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래도 그 또한 무오류의 존재가 아닐진대.. 그렇게 비판할 게 없는 건가요? 비교적 근래의 문제만 하더라도 목수정, 김규항, 정명훈, 곽노현, 이정희, 공지영 등과 관련한 수많은 논란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모든 문제에 있어 그와 생각이 일치했던 건가요? 주제넘는 소린지 모르겠습니다만, 감히 한 말씀드리자면.. '합리성' 못지 않게 '주체성'의 의미를 깊이 새겼으면 합니다. 원조진빠 소리를 듣는 하뉴녕도 최근에 곽노현, 이정희, 공지영과 관련한 문제에 있어 진중권과 다투다 결국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까? 솔직히 인간적인 면에서 본다면.. 그의 인격은 '성장이 항문기에서 멈춰버린 수준'으로, 협량하기 짝이 없는 성품의 소유자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야말로 똑같은 좌표에 위치하지 않는 이상, 비판할 건 비판하는 것이 '비평가'로서의 사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근데 비밀댓글로 하고 싶은데 방법을 잘 모르겠군요. 가능하면 좀 바꿔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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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논객시대를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중권에 대한 제 글이 찬양 일색으로 느껴지셨다면, 그것은 어쨌건 저의 지적 성장 과정에서 진중권의 영향이 적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몇몇 중요 지점에서 비판적인 입장을 충분히 드러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일일이 나열하기보다는, 이런 의견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단행본 편집 과정에서 '모아두었지만 활용하지 않은 자료'를 좀 더 집어넣는 쪽을 고려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가령 의자놀이 사건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 강하게 진중권을 비판했습니다. 그것은 이 서평을 참고해 주세요.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0817171522 제가 다루는 논객들은 그 누가 됐건 호불호가 강하게 갈릴 수밖에 없는 이들이므로, 생각하시는 것처럼 강하게 대립각을 세우거나 하지 않으면 편파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원고가 그렇게 작성되었느냐는 별개의 문제겠습니다.

      공지에 적혀있다시피 제 블로그는 비밀덧글 기능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제3자가 보면 안 되는 내용은 이메일을 보내주셔도 좋습니다. 아무튼 제 글을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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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노정태 자유기고가님, 안녕하세요. 프레시안에서 저도 역시나 논객시대란 글을 읽고 있는 독자입니다. 논객분들이 한창 활동하던 시기를 같이 나 먹으며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후세대인 저에겐 현재 보이는 그 분들의 모습 외에 과거모습도 가늠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강준만 교수님에 대한 글을 읽었을 때, 제가 아름아름 구해서 예전에 읽어본 인물과 사상3권에서 보여준 강준만교수님의 얼굴과 현재의 얼굴이 오버랩이 되더군요. 정말 무릎을 치며 술술 읽었답니다. 다만, 이 말은 현재와 과거의 모습이 정치에 국한될 때입니다. 강준만 교수님이 문화면에 눈을 돌린 모습이 저에게는 오히려 더 넓은 시각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자료'가 부족하고 앎이 부족한 저로서는 '매매춘 한국을 벗기다.' '룸상롤 공화국'같은 책으로 더 넓은 글 읽기에 밑바탕이 되었고, '한국대중매체사'는 저의 지적 허영심?(과장과 겸손의 두 표현.)을 채워주었습니다. 특히 한국대중매체사는 정말 정리를 기가막히게 하셨지요. 저같은 경우 이런 문화의 글 방식이 과거를 오롯이 현재의 그림으로 물들게 만드는 데는 더욱 효과적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노정태님은 다른 생각을 하실지도 모르지만요.

    유시민 전 장관님(유시민씨가 이렇게 불러주길 바래서..)의 책은 보지 못 했지만, 과거에 어떠한지를 추적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유시민이라는 이름이 제 뇌의 시냅스를 돌아다니게 한 시기는 '통합진보당의 탄생과 몰락'때이거든요. 한창 정치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던 시기에 제 정치적 스탠스를 이곳에서 찾았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지금은 조금 더 컸으며 '통진당 사건'을 목격한 이후로는 당연히 달라졌지만 말이죠. 아, 사설이 길었습니다. 유시민 전 장관님의 글에서 한 가지 묻고 싶은 면이 있습니다.

    " 그렇게 한국에 돌아온 그는 짧은 계약직 공무원 생활을 거쳐 자유기고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 과정에서 여기저기 기고를 하고 방송을 하다가 어느 날 불현듯 영감을 받아 스스로를 '지식소매상'이라고 부르게 되었을 것이다. 2001년 정신과전문의 정혜신의 (개마고원 펴냄)에 그 어휘가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유시민이 스스로를 '지식소매상'이라고 부른 것은 적어도 2001년 이전부터 시작된 일이다. 그렇게 형성된 정체성은 2002년 (돌베개 펴냄)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또렷하게 선언되었다.

    내 직업은 '지식소매상'이다. 이 '경제학 카페'를 여는 것도 다 내 영업활동 가운데 하나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에 오면 경제학과 경제현상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카페가 경제에 대한 정보와 경제학 지식 그 자체를 파는 곳은 아니다. (, 8쪽)"

    이 부분은 에서 노정태 자유기고가님이 쓰신 부분입니다. '지식소매상'. 이 부분을 전 진중권 교수님의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에서 본 단어인듯 한 과거의 기억이 있었고 곧 집에 책을 뒤져봤습니다. 제5장 제국주의, '어 얘들 좀 보라!'의 전통과 현대 첫 단락에 진교수님은 이렇게 썼습니다. "...어차피 지식인은 지식소매상. 채소장수에게도 도덕은 있는 법. 지식소매상이라면 최소한의 상도덕은 지켜야 한다.(p.75)" 이 부분이 초판본과 차이(제가 가진 책은 개정판 2쇄본입니다.)가 없다면, 지식소매상이라는 단어는 진중권 교수님이 1998년 혹은 그 이전에 이미 쓰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자신을 스스로 '지식소매상'이라 명명하지 않았지만 말이죠.

    저에겐 지식소매상은 '홍세화,박노자,진중권,리영희,강준만,고종석'로 시작하여 현재의 한윤형, 노정태로 이어집니다. 이 말은 여기에 써 올린 이름들 하나하나가 제가 철학과 인문서적책을 볼 때 해석과 선택에 있어서 상당한 길라잡이역할을 했다는 것이지요. '지식소매상'이라는 단어를 유시민 전 장관이 '과거 활자 속 진중권'을 한번에 빼앗아 간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제 기질과 존경심의 꿈틀거림이 아닐까 합니다.

    허접한 딴지였습니다. 비문이나 오타(미리 쉴드)가 있어도 날카로운 지적은 말고 따스한 말로 해주었으면 합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홍세화선생님을 첫 머리에 논객으로 말했습니다. 이유는 더 존경하고 더 좋아해서가 아닙니다. 집에 엄마의 책장에 홍세화선생님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꼽아져 있었거든요. 에서 제가 처음으로 접한 사람이었습니다. 초딩때 읽었지만, 뭐 무슨소린지 몰랐죠. 지금에 와서야 다시 봤을 때, 더욱 가슴에 와닿긴 했지만요. 그 다음에 접한 게 제 친척형의 추천으로 박노자선생님을 읽게 되었습니다..각각을 접한 사연이 많지만, 젠체와 허영심으로 드러나느 것이 두려워 정말로 이만 글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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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분명 여러번 읽은 책인데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에서 지식소매상이라는 단어가 먼저 나왔다는 생각은 못 하고 있었네요. 지적 감사합니다. 단행본으로 원고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감사히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지식소매상'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삼은 것은 유시민입니다. 이 '논객'들의 글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식소매상'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유시민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입니다. 인용하셨다시피 진중권은 '지식소매상이라면 최소한의 상도덕은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만 했을 뿐이지만, 그것을 '내가 지식소매상이다'라는 선언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으니까요. 반면 유시민은 일말의 오해의 여지 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지식소매상으로 못박고 있습니다.

      한편 지식소매상이라는 단어에는 다소 비하의 뜻도 담겨있습니다. 지식생산자도 아니고 도매상도 못 된다는 그런 뉘앙스를 지울 수 없으니까요. 그렇게 따졌을 때 그 계보가 저에게까지 이어져온다는 것은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일이지만, 역사학을 이야기할 때의 박노자 교수님은 지식생산자에, 미학을 논할 때의 진중권 교수님은 지식도매상에 더욱 가까운 것 같습니다. 즉, 그 표현은 '나는 어설프게 경제학을 공부했을 뿐 경제학자가 못 된다'고 말하는 유시민에 의해 좀 더 정교하게 다듬어진 것이죠. 마치 이제는 김규항이 아닌 그 누구도 자신을 'B급 좌파'라고 칭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나름 열심히 한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중요한 서지 정보를 놓쳤다는 것에 대한 자책감이 생기는군요.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습하고 더운 날씨에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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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 지식소매상에 비하의 뉘앙스가 있군요. 저는 그렇게 느껴지 못했는데. 오히려 진교수님 말씀처럼 계속 생각해 왔던지라. 현재 쓰이고 있는 지식소매상이라는 말이 유시민 전 장관님에 의해 지금의 옷(다소 비하의 뜻)을 입고 있다면, 쓰는데 조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쓴 글의 지식소매상은 "...어차피 지식인은 지식소매상"이라는 의미로 말한 것임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저기 있는 분들(논객)이 쓴 내용에 오롯이 동의하진 않지만, 분명히 존경하고 있으니까요. 하나의 말을 하려다가 괜히 노정태 자유기고가님을 욕되게 한 거 같네요..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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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그 '비하'라는 것이, 정식 학계를 염두에 두고 있을 때에나 자기비하로 기능하는 것이죠. 그냥 책 읽고 즐겁게 사는 것만을 염두에 둔다면 여느녘님이 말씀하신대로 그다지 비하하는 느낌이 아니게 됩니다. 저 자신은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지만, 누군가 '너는 지금 지식소매상 노릇을 하는 게 아니냐'라고 한다면 당연히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냥 사실일 뿐이니까요. 공연히 죄송해하실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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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혹시, 책으로 프레시안 연재 글을 엮은다면 한사람 한사람 논객에 대해 추가 글은 없는지요? 핫한 논쟁거리들이 적어도 한 두번씩 있었는데, 그 부분이 연재글에서는 많이 보이지 않아 아쉬워거든요. 정확하게 말하면 유연한 해석과 넓은 아량?이 제게는 자유기고가님의 생각이 부족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노정태 자유기고가님이 각각 모습을 담담히 담아내는 데에 목적을 둔다면 그 이상의 개입은 글을 망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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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닌게 아니라, 단행본으로 다시 편집하는 과정에서 빠진 쟁점 및 허술하게 다루어진 부분들을 보강하고, 서술이 중복되거나 산만하게 이루어진 곳들을 쳐내고 있습니다. 좋은 지적이십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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