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20

[북리뷰]박정희 시대의 권력 이야기

[북리뷰]박정희 시대의 권력 이야기

2014 01/21ㅣ주간경향 1060호

<남산의 부장들>
김충식 지음·폴리티쿠스·3만2000원

2014년 새해 첫 책으로 <남산의 부장들>을 이야기하게 될 줄은 몰랐다. 2013년이 시작될 무렵까지만 해도 그랬다. 1983년에 태어나 철이 들 무렵 이미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된 나라에 살고 있었던 내게, <남산의 부장들>은 MBC 드라마 ‘제3공화국’과 마찬가지로, 그저 흥미 위주로 슬슬 넘겨보는 정치 비화 모음집에 지나지 않았다.

적어도 누구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제목이지만, 혹시 모를 사람들을 위해 간략하게 소개해 보자. <남산의 부장들>은 1961년 설립되어 1981년까지 유지된 대한민국 중앙정보부를 통해, 같은 시기의 한국 현대사를 서술하는 책이다.

중앙정보부를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박정희 시대를 이해할 수 없으며, 박정희 시대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오늘날의 역사에 대해서도 무지할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와 그의 동료들은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로부터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6월 10일 군부는 중앙정보부를 만들었다. 국가재건비상조치법을 내놓은 후, 국가재건최고회의법과 함께 군부는 중앙정보부법을 공표하여 “미국의 CIA와 일본의 내각조사실을 절충한 정보수사기관”을 만들어낸 것이다. 국내외의 정보를 들쑤실 수 있고, 그 정보에 바탕하여 원하는 이를 구속수사할 수 있는, 희대의 권력기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바로 그 중앙정보부를 만들고 초대 부장을 역임한 사람이 김종필이다. 그는 농협중앙회에 보관되어 있던 한전의 주식을 강탈한 후 주식시장에 내다 파는 등의 수법으로 자금을 마련하고 공화당 창당작업에 나섰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화당을 통해 박정희가 대통령에 출마하였고 당선된 것이다.
중앙정보부와 박정희 정권의 역사는 이후로도 18년간 더 흘러가게 되며, <남산의 부장들>은 그 길고 복잡한 세계를 물경 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으로 전달한다.

<남산의 부장들>은 동아일보에 1990년부터 1992년까지 연재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87년 민주화 항쟁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후, 김영삼과 김대중의 분열로 인해 노태우가 당선되어버린 바로 그 시점에, 저자 김충식은 중앙정보부와 박정희 정권에 대한 초대형 기획 연재를 진행한 것이다.

본문의 첫 문장은 “전두환 대위의 등장이 빠르다”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전두환, 노태우 및 육사 11기들이 시도한 63년 쿠데타 음모가 등장한다. 물론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긴 하지만, 아무튼 ‘살아있는 권력’들의 행적을 직설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 2012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 개정증보판이 출간되었으며, 이 책의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인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민주화 이전의 대한민국을 살아온 사람들이 아닌, 나처럼 민주주의가 너무도 당연한 사람들을 위해 필자는 이 북리뷰를 쓰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은 물론 민주주의와 헌법의 원리를 위배한 도전이며 일탈이지만, 대한민국이라는 신생 국가의 역사를 놓고 볼 때, 그런 시도가 없었던 경우가 오히려 드물다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불행히도, 국가정보원은 아직도 중앙정보부 시대의 권력을 휘두르고 싶어하는 듯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남산의 부장들>을 다시 펼쳐들고 우리가 겪어온 어두운 역사를 곱씹는 것은 결코 무의미한 일이 아닐 것이다.

<노정태 번역가·자유기고가>

댓글 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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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논객시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책에 대해 생산적인 비판할 역량이 제게는 부족하여 형용사만 나열하고 갑니다..ㅋ
    여담이지만, 책 표지 디자인이 누구인지요. 받자마자 "와, 진짜 책제목과 내용에 걸맞게 잘 짜여졌다. 논객들이 맞붙은 영역에 따라 색을 달리하고 점선과 직선으로 구분한 게 치밀하네"라고 생각한 뒤 앞쪽과 맨 뒤쪽 페이지를 확인해 봤는데, 표지 디자인분이 안 나왔더라구요(처음 읽지도 않고 제가 하는 짓거리입니다.하하..)
    서문을 읽어보면, 마치 노정태 자유기고가님 스스로 만드신 것 같기도 하고 책편집자들과 같이 논의해서 한 것 같기도 하고, 흠, 궁금해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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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 책을 읽어주시고, 이렇게 블로그까지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표지 디자인은, 미술평론가 임근준 선생님의 강의에서 얻은 영감에 기반하여, 제가 기본적인 구성 및 방향을 출판사 반비에 전달했고, 반비의 내부 디자이너분께서 만들어 주셨습니다. 책날개를 펴보시면 디자이너분의 이름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ㅎㅎ 당연히 제가 혼자 만들거나 한 건 아니죠. 모든 책은 저자와 편집자와, 어떤 경우에는 디자이너와, 그것을 읽을 것이라고 가정된 독자들이 함께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독자 반응을 접하게 되어 기쁩니다. 향후 와 관련된 행사 등이 있을 예정인데, 그럴 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홍보해서, 많은 독자분들을 만나뵐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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