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25

[북리뷰]인터넷 속 인공지능 갖춘 가상 존재

[북리뷰]인터넷 속 인공지능 갖춘 가상 존재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테드 창 지음·김상훈 옮김·8800원·북스피어

과학 학술 전문지 <사이언스>에 나온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소설을 읽는 것은 우리의 공감 능력을 향상시키고 사회적 기술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준다. 다른 사람이 어떤 감정 상태에 놓여 있는지 곧바로 파악하고, 그에 적절히 대응하는 그런 능력을 길러준다는 말이다.

앞서 말한 연구는 그 소설의 범위를 고전에 한정지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세계가 그 고전들이 쓰여졌던 19세기나 20세기 초와는 또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이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한 능력을 키워주는 소설의 목록 역시 꾸준히 업데이트되어야 하지 않을까?

만약 우리가 리얼타임으로 ‘현대의 고전’ 목록을 새로고침하고 있다면, 테드 창의 작품들은 그 속에 반드시 포함되어야만 한다.

굳이 분류하자면 테드 창은 ‘수줍은’ 작가지만, 셀린저처럼 한 편의 히트작을 내놓은 후 영영 종적을 감추는 그런 식의 은둔자가 아니다. 몇 년의 간격을 두고 꾸준히 중편이나 단편을 발표하며, 그렇게 소설을 내놓을 때마다 SF(과학소설) 분야의 주요 문학상을 휩쓰는 사람이다.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글로 먹고 살기 위해 원치 않는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자신의 생업을 유지하면서 소설을 쓰는 작가가 한 사람 있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바로 그 테드 창의 최신작이다. 그는 이른바 ‘하드 SF’적인 엄밀한 설정과 치밀한 자료 조사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캐릭터의 선택과 감정을 한 겹씩 포개놓는다.

소설 속 세계의 인터넷은 현재 우리가 쓰는 것과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진화했다. 마치 2000년대 초 인기를 끌었던 사이버 스페이스 게임인 ‘세컨드 라이프’처럼, 자신의 아바타를 설정해 가상 공간에서 대화하는 ‘데이터어스’ 사용이 일반화되어 있는 세상이 설정되어 있다.

주인공 애니는 그 ‘데이터어스’ 속에서 작동하는 디지언트(digient), 즉 인공지능을 갖춘 가상 존재를 개발하는 일에 참여하게 된다. 원래 그는 동물원에서 근무하는 유인원 사육사였지만, 일하던 동물원은 폐쇄되었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해 고심하던 차였다.

그런데 컴퓨터 인공지능, 가상현실 세계에서 작동하는 가상 존재의 인공지능이 마치 유인원의 그것처럼 감정적 교류와 정서적 교감을 통해 발전할 수 있게끔 해주는 게놈 엔진이 개발됐다.

애니는 이제 마치 자신의 아이처럼, 데이터어스에 접속하지 않으면 존재한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하지만 자신을 엄마처럼 믿고 따르며 아기처럼 말을 배우고 더듬거리며 애정을 요구하는 ‘소프트웨어 객체’를 길러야 한다.

엉뚱한 이야기처럼 들리는가? 하지만 오늘날 아이폰 사용자들은 ‘시리’와 대화를 나누고, 구글 검색창은 우리가 검색하고 싶어할 내용을 미리 파악해서 눈앞에 던져준다. 인공지능, 인간의 감정과 행동을 모사하는 컴퓨터, 그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애착 등은 결코 먼 미래의 일이 아닌 것이다.

한국은 수천만 건의 개인 정보가 유출된 후 USB를 돌려받았다는 이유로 ‘개인 정보를 회수했다’고 발표하는 기술맹(盲) 사회다. 소설의 범위, 인문학의 범위, 고전의 범위를 SF까지 확장하지 않는 한 한국 사회의 ‘업데이트’는 요원할 듯하다. 독자들께 일독을 권하는 책이다.

<노정태 ‘논객시대’ 저자 / 자유기고가>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403180950001&code=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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