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26

[북리뷰]안전은 ‘공학과 경제학’의 문제다

[북리뷰]안전은 ‘공학과 경제학’의 문제다

정의와 비용 그리고 도시와 건축
함인선 지음·마티·1만5000원

1911년 뉴욕. 당시 미국은 세계의 공장이었고, 그 중에서 뉴욕은 세계의 봉제공장이었다. 맨해튼의 그리니치 빌리지에 위치한 브라운 빌딩에 불이 났다. 그 건물에는 트라이앵글 셔트웨이스트 봉제공장이 있었는데, 공장주가 문을 잠가놓은 탓에 123명의 여성과 23명의 남성이 화재로 숨지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20세기 초 미국의 의류업계도 어린 여성들의 노동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던 탓에 사태는 더욱 끔찍해졌다. 생때같은 10대·20대 소녀들이 불에 타서, 연기를 들이마시고, 그 모든 것을 피하기 위해 창 밖으로 뛰어내려 목숨을 잃었다.

책의 말미에 수록된 저자의 말을 읽어보면, <정의와 비용 그리고 도시와 건축>은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한 책이 아니었다. “나의 작업기를 바탕으로 그 작업들의 이론적·실천적 배경이 된 근대 건축가들의 얘기로 꾸며볼 계획”(232쪽)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책의 탈고를 앞둔 시점에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 저자는 언급하지 않으려던 경주 리조트 붕괴사건에 대해서도 발언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책 자체가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으며 거기에 각각의 이름이 붙어 있지만 우리는 책 제목을 통해 그 구분을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다. 앞에서는 ‘정의와 비용’을, 뒤에서는 ‘도시와 건축’을 논하는, 뜻하지 않게 시의성을 갖춘 책이 만들어진 것이다.

‘정의’라는 단어 뒤에 곧장 ‘비용’이라는 개념이 붙는 것은 오늘날 우리의 담론 지형에서 상당히 낯선 일이다. 하지만 저자는 단호하다. “결국은 공학과 돈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것을 자꾸만 인문학적이고 사회학적인 문제로 바꾸려 든다”(19쪽)고 지적한 후 “공학적 사고의 원인은 안전율의 부족 때문이고 안전율의 부족은 돈의 부족 때문”(27쪽)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안전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안전을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을 내려 하지 않기 때문에 삼풍백화점부터 경주 리조트 붕괴, 세월호 침몰까지 공학적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것은 안전 불감‘증’(症)의 문제가 아니다. 안전 ‘공학-경제학’의 문제이다.”(같은 곳)

그러한 시각으로 세월호 침몰을 바라보면 우리는 그 참사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배의 안전율은 곧 운항 수익의 함수이다. 그리고 운임은 좁게는 그 회사의 경영진이 정했겠지만 넓게는 동종업계의 합의였을 것이고 더 크게는 물가를 통제하는 당국과 시장이 정했을 것이다.”(22쪽) 실제로 정부는 연안여객선을 이용하는 승객들의 불만을 고려하여 요금을 올리지 못하도록 틀어막고 있었고, 청해진해운은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배의 평형수를 빼고 신고하지 않은 화물을 실었다. 그렇게 생긴 이윤은 배와 안전에 재투자되지 않고 유병언 일가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박하게 책정된 안전율임에도 범죄자들은 이마저도 빼먹을 것이라는 것은 경험상 ‘예견된 일’이다.”(같은 곳)

1911년 트라이앵글 셔트웨이스트 화재 이후 미국은 같은 종류의 대형 참사를 다시는 겪지 않았다. 안전이 사회적 비용의 문제임을 올바로 인식하고, 그 비용을 어떻게 분담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서울의 도로가 푹푹 꺼지는 싱크홀 현상까지 목격하고 있는 우리는 그 비극으로부터 대체 무엇을 배웠을까.

<노정태 ‘논객시대’ 저자/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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