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11

폭발물, 터지지 않은

12월 10일 밤에는 '폭탄 테러'로 보도가 되었지만, 다음날인 11일이 되자 "폭죽용 고체연료" 같은 창의적 표현이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 고등학생이 다양한 인화성 물질을 모아 도시락통에 넣어, 전북 익산 신동성당 예배실에서 진행중이던 '전국 순회 토크 문화 콘서트' 현장에서, 불을 붙인 후 투척한 사건에 대해 지금 우리는 이야기하고 있다.

분명 사고 당시에는 '폭탄 테러'였는데, 어느새 "폭죽용 고체연료" 투척 사건으로, 슬쩍 표현이 바뀌어 있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사안의 중요성을 은폐하고, 명백한 폭탄 테러를 마치 불장난처럼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효과가 발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하지만 저러한 보도 경향 이면에는, '폭발물'에 대한 대법원의 납득하기 어려운 판례가 존재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대법원 2012.4.26, 선고, 2011도17254판결을 살펴보자. 피고인은 "①유리꽃병 내부에 휴대용 부탄가스통을 넣고 ②유리꽃병과 부탄가스 용기 사이의 두께 약 1㎝의 공간에 폭죽에서 분리한 화약을 채운 후, ③발열체인 니크롬선이 연결된 전선을 유리꽃병 안의 화약에 꽂은 다음 ④전선을 유리꽃병 밖으로 연결하여 타이머와 배터리를 연결하고, ⑤유리꽃병의 입구를 청테이프로 막은 상태에서, ⑥타이머에 설정된 시각에 배터리의 전원이 연결되면 발열체의 발열에 의해 화약이 점화되는 구조"(원문자는 인용자)의 물건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강남고속터미널 물품보관함에 집어넣었다.

①에서 ⑥까지의 과정을 쭉 읽어보자. 이건 누가 봐도 시한폭탄을 만들려고 한 것이다. 이론의 여지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피고인은 재주가 좋지 않았고, 그래서 "강남고속터미널 물품보관함에 들어 있던 것은 연소될 당시 ‘펑’하는 소리가 나면서 물품보관함의 열쇠구멍으로 잠시 불꽃과 연기가 나왔으나, 물품보관함 자체는 내부에 그을음이 생겼을 뿐 찌그러지거나 손상되지 않았고 그 내부에 압력이 가해진 흔적도 식별할 수 없"는, 시시한 결과가 발생하고 말았다. 제대로 터지지도 않고 피식~ 했다는 뜻이다.

자, 이런 걸 만들고 강남고속터미널 물품보관함에 설치까지 한 이 행위는, 형법상 무슨 범죄에 해당하는가? 두 가지 선택의 여지가 있다.

제119조(폭발물사용) ①폭발물을 사용하여 사람의 생명, 신체 또는 재산을 해하거나 기타 공안을 문란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제172조(폭발성물건파열) ①보일러, 고압가스 기타 폭발성있는 물건을 파열시켜 사람의 생명, 신체 또는 재산에 대하여 위험을 발생시킨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1심은 그 '물건'을 형법 제119조 제1항의 "폭발물"로 보지 않고, 대신 제172조 제1항의 "폭발성있는 물건"으로 보았다. 검찰은 항소하였고, 상고하였지만, 대법원은 원심의 손을 들어주었다. 유리꽃병 속에 부탄가스 통을 넣고 그 사이의 공간에 화약을 채워넣은 후 제 나름대로 도화선이라고 할 것도 꽂아넣고 시한장치까지 부착했는데도, 그것은 "폭발물"이 아닌 "폭발성있는 물건"이라고 본 것이다. 제119조 제3항은 "③전 2항의 미수범은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폭발물을 만들어 인명을 살상하는 행위의 미수범으로 처벌할 수 있음에도,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대법원의 판시 이유는 이런 것이다. 형법 제172조가 이미 있기 때문에, 제119조에 해당하는 "폭발물"은 아주 엄격하게 해석되어야 하며, "떠한 물건이 형법 제119조에 규정된 폭발물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그 폭발작용 자체의 위력이 공안을 문란하게 할 수 있는 정도로 고도의 폭발성능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한다는 것이다.(강조는 인용자)

이 판결은 잘못된 판결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폭발물'과 '폭발성있는 물질'의 구분은 폭발력, 즉 "폭발성능"에 따라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폭발시켜서 일부러 사람과 재산을 손상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냐, 아니면 통상적인 목적에 따라 사용되는 인화성 물질이냐에 따라 그 구분선이 그어져야 마땅하다.

가령 누군가가 어떤 자동차의 연료통에 담배꽁초를 일부러 집어넣는다고 가정해보자. 휘발유는 만땅으로 가득 차 있다. 그 경우, 한꺼번에 수십 리터의 휘발유가 폭발하므로, "폭발성능"은 굉장할 것이다. 하지만 자동차나 자동차의 연료통 그 자체는 폭발물이 아니다. 그것은 폭발할 수도 있는 물건이다. 형법 제172조 제1항에서 "보일러, 고압가스"로 '폭발성있는 물건'의 예시를 보여준 것은 바로 그런 것을 뜻한다. 어지간한 기름 보일러나 가스 보일러가 폭발하면, 어설픈 사제폭탄을 가볍게 뛰어넘는 폭발성능을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보일러나 고압가스 등도 그 자체가 폭발물인 것은 아니다.

정성스럽게 만든 사제 폭탄이 터지지 않았다고 해서, 다시 말해 "고도의 폭발성능"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을 '폭발물'이 아니라 '폭발성있는 물건'으로 바라보는 대법원의 판례는, 대단히 위험하다. 사제 폭탄을 만들고 테러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 자체만으로는 형법 제119조의 적용을 받지 않는 이상한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론이 불러오는 몇 가지 문제점을 짚어보자.

첫째. (<마스터 키튼> 같은 몇몇 귀중한 참고 문헌에 따르면) 전문적인 사제폭탄 제조자라고 해도 불발탄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 그런 경우, 그가 만든 폭탄은, "고도의 폭발성능"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폭발물'이 아니게 되는가?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만들었느냐가 '폭발물'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폭탄 테러범의 터지지 않은 폭탄도 형법 제119조에 의해 처벌 가능해진다.

둘째. 이러한 법 해석론은 총포·도검·화약류등단속법의 제2조 제3항에서 다음과 같이 "화약류"를 규정한 것과도 매끄럽게 상응하지 못한다. 우리의 법 체계는 이렇게 엄격하게 화약류를 규제하고 있다. 그렇다면 고의적인 목적을 가지고 모으거나, 만들어낸 폭발물을 왜 '폭발물'로 규정하고 처벌하지 않는가?

     1. 화약

        가. 흑색화약 또는 질산염을 주성분으로 하는 화약
        나. 무연화약 또는 질산에스테르를 주성분으로 하는 화약
        다. 그 밖에 "가"목 및 "나"목의 화약과 비슷한 추진적 폭발에 사용될 수 있는 것으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것

    2. 폭약

        가. 뇌홍·아지화연·로단염류·테트라센등의 기폭제
        나. 초안폭약·염소산칼리폭약·카리트 그 밖의 질산염·염소산염 또는 과염소산염을 주성분으로 하는 폭약
        다. 니트로글리세린·니트로글리콜 그 밖의 폭약으로 사용되는 질산에스테르
        라. 다이나마이트 그 밖의 질산에스테르를 주성분으로 하는 폭약
        마. 폭발에 쓰이는 트리니트로벤젠·트리니트로토루엔·피크린산·트리니트로클로로벤젠·테트릴·트리니트로아니졸·핵사니트로디페닐아민·트리메틸렌트리니트라민·펜트리트 및 니트로기 3 이상이 들어 있는 그 밖의 니트로화합물과 이들을 주성분으로 하는 폭약
        바. 액체산소폭약 그 밖의 액체폭약
        사. 그밖의 "가"목 내지 "바"목의 폭약과 비슷한 파괴적 폭발에 사용될 수 있는 것으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것

    3. 화공품

        가. 공업용뇌관·전기뇌관·총용뇌관 및 신호뇌관
        나. 실탄(실탄;산탄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 및 공포탄(공포탄)
        다. 신관 및 화관
        라. 도폭선·미진동파쇄기·도화선 및 전기도화선
        마. 신호염관·신호화전 및 신호용화공품
        바. 시동약(시동약)
        사. 꽃불 그 밖의 화약이나 폭약을 사용한 화공품
        아. 장난감용 꽃불등으로서 행정자치부령이 정하는 것
        자. 자동차 긴급신호용 불꽃신호기
        차. 자동차에어백용 가스발생기

2012년에 나온 대법원의 이 판결은 매우 실망스럽고 또 우려스럽다. 2001년 9월 11일 이후, 전 세계의 양식 있는 시민들은 테러의 공포와 위험 속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 전, 미국에서 누군가가 압력밥솥을 이용해 사제폭탄을 만들어 보스톤 마라톤 대회를 피바다로 만들었던 것을 기억해보라. 그때도 일부 폭탄은 터지지 않았다. 그럼 그건 '폭발물'이 아니라 '폭발성있는 물건'인가? 멀쩡히 테러범에 의해 제작되고 현장에 배치되었음에도?

하지만 일부러 폭탄을 만드는 자를 강하게 처벌하겠다는 입법자의 의도를 무시한 채(법문 해석상 그 의도는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대법원은 '폭탄은 터져야 폭탄'이라는, 법적 논리에 부합하지 않을 뿐더러 상식에도 어긋나는 판례를 내놓고 있다.

폭발물은 터뜨리겠다는 의도를 지니고 제작된 물건이다. 그래야 한다. 제대로 터졌냐 안 터졌냐는 '폭발물'을 판단하는 기준일 수 없다. 그래야 이른바 '백색 테러'뿐 아니라, 그에 대한 반발로 발생하게 될 '적색 테러'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가 안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찰의 책임 있는 수사와, 검찰의 뚝심 있는 공소가 이루어지기를 강력하게 요구한다.

추가) 언론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12일 오군에 대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과 폭발성물건파열치상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공범 여부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일 예정"이라고 한다. 옳지 않은 판례가 미치는 영향이 바로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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