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07

[북리뷰]유리벽 안에서 행복한 나라 - 싱가포르가 이룬 부와 교육의 비밀…인공낙원의 다양한 면모

유리벽 안에서 행복한 나라-싱가포르가 이룬 부와 교육의 비밀
이순미 지음·리수·1만3900원

“가난한 어촌 마을을 세계적인 선진국으로 만들었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사망한 후 언론에 수도 없이 오르내린 관용어구다. 그 나라의 지도층이 얼마나 청렴결백한지, 거리가 얼마나 깨끗한지, 기타 등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어떤 ‘이미지’들이 그 뒤를 잇는다. <유리벽 안에서 행복한 나라>는 싱가포르에 대한 간접경험을 제공하는 책이다.

저자 이순미는 싱가포르에 주재원으로 근무한 남편과 함께 4년을 그 나라에서 보냈다. 이 책의 눈높이는 저자 본인의 그것, 다시 말해 중산층 가정의 주부 겸 파트타임으로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하는 지식인 여성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저자가 싱가포르의 다양한 면모를 관찰하고, 그 감상을 솔직하게 적어놓은 덕분에, 우리는 최근 언론에서 호들갑스럽게 칭송하는 ‘그 싱가포르’의 이면까지 두루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싱가포르를 표상하는 하나의 이미지가 있다면 그것은 ‘유리문’이다. “싱가포르 창이공항 출입구의 유리문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여러 번 방문했다고 해도 싱가포르를 안다고 할 수 없다.”(6쪽) 그 유리문을 넘어서면 숨이 턱 막히는 열대의 습한 공기와 언제라도 벌금을 매기기 위해 사복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비밀경찰의 눈초리와 짐짝처럼 트럭에 실려다니며 저임금 노동을 제공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땀냄새가 가득하다. 유리문 안의 싱가포르는 너무 강하게 틀어놓는 에어컨 때문에 종종 스웨터나 카디건을 걸쳐야만 하는 인공낙원이다. 그 밖은 한밤에도 기온이 20도를 웃도는 열대성 기후다. 리콴유 전 총리가 싱가포르를 가능케 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에어컨을 꼽았다는 것은 이제 국내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 아닌가.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싱가포르는 그 에어컨을 쬐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칼 같이 나누고 있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세 등급의 우열반이 정해지면서 시험에 의한 걸러내기(streaming out) 제도가 시작”되며, “초등교육을 마칠 때까지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싱가포르 땅에서는 중등교육조차 받을 수 없다.”(106쪽) 학교 성적의 차이는 곧 ‘인생 등급’이 된다. “정규 코스에 합류한 우수 학생들이 집권당인 인민행동당으로 스카우트되면 특별관리를 받은 뒤 30대에 국장을 하고 40대에 장관을 하는 초고속 승진”을 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 이미 ‘걸러진’ 학생들에게는 무더위 속을 헤매고 다니는 일꾼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

중산층 이상이 사는 맨션, 평균적인 사람들이 거주하는 국가 소유 아파트는 모두 그러한 ‘인간 등급’에 맞춰져 있고, 그 속에서도 ‘유리벽’은 사라지지 않는다. 중산층 이상 고학력 여성들을 가사노동에서 해방시켜주는 존재인 ‘메이드’(maid)가 사용하는 엘리베이터와 통로는 거주민의 그것과 겹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유일하게 에어컨이 없는 곳이 바로 부엌과 메이드의 거처”(111쪽)다. 그 “거처는 집 뒤쪽에 있는 창고 바닥”(113쪽)이다. 민주주의라고 스스로 주장하지만, 사실상 뚜렷한 신분제 국가로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잘 짜여진 인공낙원은 그 속에 들어오지 못하는 자들의 땀과 눈물로 간신히 유지될 수밖에 없다. 저자의 의도와는 약간 어긋나게 <유리벽 안에서 행복한 나라>를 읽으며, 우리는 싱가포르를 보다 입체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노정태 ‘논객시대’ 저자/번역가>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503301549131&code=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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