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02

메르스 '괴담', 정보 공개로 맞서라

1.

중동에서 최초로 메르스에 걸려온 사람을 1차 감염자라 하고, 접촉을 통해 그 사람에게 옮은 사람을 2차 감염자, 이런 2차 감염자에게 옮은 사람을 3차 감염자라고 합니다. 전 세계에 1천여 명의 메르스 확진 환자가 있었지만 이 중 3차 감염자는 아직 없습니다. http://news.jtbc.joins.com/html/284/NB10909284.html

이것이 어제까지의 뉴스였다. 오늘, 2015년 6월 2일, 대한민국에서 3차 감염자가 나왔다. 명백히 '세계 최초'로 메르스 3차 감염자를 배출한 것이지만, 모든 언론들은 그저 '최초 발생'이라고만 보도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메르스 3차 감염자를 그냥 '최초'라고만 보도하는 모든 언론은, 오보를 내고 있는 것이다.

메르스 사태가 점입가경으로 흘러가고 있다. 언론들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오보를 뿌린다. 정부는 '유언비어 유포'에 대해 엄중 대처하겠다고 벼르지만, 정작 어제 오전 청와대는 정확한 감염자 숫자마저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SNS에는 어떤 병원에서 메르스가 퍼지고 있는지 다양한 '정보'가 떠돌아다닌다. 한마디로, 난장판이다.


2.

진정으로 '메르스 괴담'을 줄여나가고 싶다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명백하다. 최초 감염자, 중국으로 빠져나간 환자, 그 외 본인이 감염된 상태에서 그 사실을 모르고 움직였던 사람들의 동선을 세세하게 포착하여 공개하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는 것이다.

지금 정부가 그 일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괴담'이 더욱 퍼지고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메르스에 감염될지 모른다는 공포가, 메르스 그 자체보다 수천배 더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하지만 메르스 그 자체는 잘 옮지 않는 질병이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환자와 2미터 이내로 접근하지 않는 한 메르스의 공기 감염은 발생하지 않는다.

모든 확진 환자들이 격리되기 전까지 움직였던 동선이 명확하게 파악되고 또 공개되어야 하는 것은 그래서이다. 그 효과를 생각해보자.


  1. 본인이 메르스 환자와 동선이 겹친다는 사실을 확인한 사람들은 최대한 빨리 의료기관을 통해 필요한 처치를 받을 수 있다.
  2. 본인이 메르스 환자와 동선이 어렵풋이 겹친다는 것을 알았지만, 2미터 이내에서 직접 접촉한 적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사람들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안심할 수 있다.
  3. 그 외 국민들은 불필요하게 '괴담'에 휩쓸리지 않게 된다.


이것보다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메르스 위기에 맞설 수 있는 방법이 또 있는가? 대한민국은 거의 모든 국민이 글을 읽을 줄 알고, 미디어에 노출되어 있으며, 전국에 의료기관이 배치되어 있는 나라다. 메르스 위기와 관련하여 부족한 것이 딱 하나 있다면, 정확한 정보일 뿐이다. 바로 그게 없기 때문에 국민들은, 정부가 볼 때는 '괴담'의 형식으로,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것이다.


3.

작년 말 에볼라 위기가 서아프리카를 강타했고, 그곳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했던 의사 한 명이 기니에서 출발해 미국으로 들어왔다. 그는 본인이 에볼라에 안 걸린 줄 알고 여기저기 돌아다녔지만, 오한과 발열 증상이 나자 스스로를 격리시킨 후 병원에 입원했다.

사실 에볼라는 증상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옮지 않는다. 따라서 그가 어디에서 뭘 했건, 실제로 에볼라를 전파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뉴욕타임즈>는 그가 입국한 이후 어떤 경로로 어떻게 움직였는지,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등에 대해 세세한 사항을 전부 입수하여 공개했다.

"What the New York City Ebola Patient Was Doing Before He Was Hospitalized"(링크: http://www.nytimes.com/interactive/2014/10/23/nyregion/new-york-city-ebola-patient-timeline-map.html?_r=0)를 보자. 과연 이런 정보 공개가 '환자에 대한 조리돌림'을 위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환자를 악마화하거나 타자화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가 어디에서 뭘 했는지 정확히 알고 나면, 해당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은 본인의 건강 상태를 한번 더 유심히 체크하게 된다. 반대로 그가 있었던 곳과 동선이 겹치지 않는 사람들은 안심하고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러한 태도다. 평택을 넘어 대전까지 갔다더라, 무슨 병원이 초토화되었더다더라, 같은 '괴담'이 떠도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그 '괴담'을 종식시킬만한 정보를 체계화하여 국민들에게 공개하면 된다. 그래야 국민들도 자신의 상황을 파악하고 안심하며, 본인이 감염되었다는 의심이 들 경우 적절한 시점에 신고하고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만약 미 정부나 <뉴욕타임즈>가 '괴담'을 두려워해서 모든 정보를 틀어막는 한국식 대처법을 취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4.

지금 정부는 국민들을 믿지 않는다. 동시에 국민들 역시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정부다. 왜냐하면 정부는 올바른 데이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신뢰를 얻기 위한 첫 단계다. 가지고 있는 정보를 다 까지도 않으면서, 국민들이 퍼즐을 맞춰서 유통시키는 것을 '괴담'이라고 지칭하고 처벌의 의지만 드높이는 것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한국 정부의 비밀주의는 바야흐로 전 세계적인 골칫거리가 될 태세다. 오늘자 뉴스를 하나 살펴보자.

1일(현지시간) 홍콩 보건당국은 한국인 J(44)씨의 메르스 확진 판정 이후 메르스 확산을 막기 위해 여행객들에 대한 방역과 검진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발열과 감기 증세 등 메르스와 관련된 어떤 증상이라도 보일 때에는 즉각 메르스 의심자로 분류해 정밀 검진한다는 방침이다. http://www.nocutnews.co.kr/news/4421582

정부의 이유 없고 실익 없는 비밀주의 때문에, 홍콩으로 향하는 모든 감기 환자들이 메르스 의심자로 분류되어, 아마도 격리 검사를 당하게 생겼다. 대체 왜 정부는 메르스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는가? 홍콩 보건당국 역시 나와 같은 논리를 편다. "한국의 어느 병원에서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는지 공개되면 한국을 여행하는 홍콩 시민들에게 해당 병원을 피하라고 알릴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에 지속적으로 정보 공개를 요청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어서, 부득이하게 한국발 입국자들에 대한 전반적인 방역 및 관리 수준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이어진다. 요컨대 모든 한국인을 잠재적 메르스 환자로 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런 수준의 질병 관리 대책을 내놓으면서 '요우커'들이 한국에 와서 돈을 펑펑 써주기를 기대한다? 다 틀렸다. 이제 한국은, 중국인들에게, 더 이상 '선진국'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정부의 멍청한 권위적 비밀주의가 심지어 경제에도 치명타를 입힐 우려가 크다.



5.

한국 사회는 '확률'에 대처하는 방법을 모른다. 모든 문제가 거기서 시작한다. 병에 걸린 것은, 물론 개인적인 위생의 문제도 있겠으나, 결국은 운이 안 좋은 것이다. 본인에게 유리하지 않은 확률이 실현된 것이다. 불운 앞에 우리는 개인적으로, 또 사회적 차원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나쁜 확률에 걸린 자'를 곧장 '더럽혀진 자'로 인식하고 쫓아내려는 사고방식. 대단히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이 사고방식이 한국 사회에 퍼져 있다. 일단 그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자. 그래서 개인들은, 본인이 운 나쁘게 뭔가에 걸렸을 경우, 그 사실을 감추려고 든다. 본인이 메르스에 걸렸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었음에도 중국행 비행기에 올라 현재 중국에서 격리되어 있는 A씨가 바로 그러한 행동 양태를 보여준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A씨를 두둔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회사 생활' 하다보면 눈치 보여서 병가도 제대로 못 쓰는데 어떡하냐, 메르스는 치사율 40%지만 병가는 치사율 100%다, 같은 이야기가 적잖이 돌아다녔다.

이러한 시각은 한국 사회가 '나쁜 확률에 걸린 자'에게 결코 관대하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그러므로 그 '나쁜 확률에 걸린 자'는 현실을 부정할 수밖에 없고, 그러한 행동을 비난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원래 그런 곳이고, 거기서 살아남으려면 알아서 눈치 보고 피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 저 와중에 직장인한테 출장 가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너희들은 사회 생활의 고통을 알긴 하느냐는 비난이 돌아온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러한 시각에 동참하거나 편승하는 게 '진보적'인 시각이라고 바라보는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왜 힘 없는 약자에게 손가락질을 하느냐, 잘못한 것은 위기 대처를 엉망으로 하고 있는 정부가 아니냐, 이런 입장이다. 물론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만 떠넘기는 것은 부당한 일일 수밖에 없겠지만, 나는 그러한 태도야말로 현재의 메르스 위기를 악화시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환자에게 딱지를 붙여 쫓아내자는 식의 대중적 감정은 당연히 극복 대상이지만, 개인에게 일말의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온당하다는 태도 역시 잘못된 것이다. '나쁜 확률'에 걸린 사람을 쫓아내자는 식의 사고방식이 비과학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그 '나쁜 확률'에 걸렸을 때 자신의 문제를 쉬쉬하고 덮어버리려고 하는 태도 역시, 비과학적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우리는 두 개의 비과학적 태도를 동시에 극복해야 한다.


6.

일단 국가가 먼저 국민을 믿어야 한다. 왜냐하면 국가가 더 많은 정보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에게 메르스 감염자들의 동선에 대한 세부적 정보를 제공하라. 그러면 괴담은 알아서 사라질 것이다.

동시에 지금부터라도 모든 신문과 방송을 동원해, 손을 잘 씻고, 눈 코 입을 함부로 만지지 말고, 기침과 재채기를 할 때는 휴지나 손수건으로 가려야 한다고 홍보하라. 손으로 가리지 말고 팔꿈치나 어깨에 기침을 해야 한다고, 엘리베이터 버튼처럼 손이 많이 닿는 곳은 직접 만지지 않기 위해 유의하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해야 할 시점이다.

이러한 '계몽'이 국민들을 우습게 보는 것인가? 국민들을 대상화하고, 무시하고, 무식하고 더러운 하층민 취급하는 것인가? 그런 식으로 지레짐작하고 반발하는 사람들을 나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오히려 국민들이 질병 전파자가 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스스로 노력하여 위생적으로 대처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존중하기 때문에, '계몽'하는 것이다. 계몽은 무시가 아니라 존중이다.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잘 해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에의 전폭적 긍정이 바로 국민 계몽이다.

인간은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다.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며 자신의 행위를 반추할 수 있는 사고력을 지니고 있다. 전염병에 걸린 사람에게 그 위험성을 인식하고 올바로 대처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대체 왜 '보수적 도덕주의'라고 비난받는지 나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와 판단 하에 올바로 행동하지 않는 한 문명은 유지되지 않는다. 문명을 유지하고 위생과 청결을 지키자는 기본적인 요구가 '보수주의'라면, 나는 위생 관념 없는 비과학적 진보와 단호하게 선을 긋겠다. 그런 '더러운' 진보는 필요 없다.


7.

정부는 지금 당장이라도 메르스 감염자들의 동선을 파악하여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모든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다. 그래야 '괴담'이 잦아들 여지가 생긴다. 그래야 국민들이 스스로 위험한 전염병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그래야 중화권과 전 세계적으로 실추된 대한민국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는 여지도, 조금이나마 열린다.

문제는 정부의 권위주의와, 그 권위주의를 당연한 전제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일부 진보 진영의 삐뚤어진 세계관이다. 언론은 정부의 권위주의를 이겨내고, 정보 공개를 요구하며, 동시에 국민들 역시 '나약한 피해자'가 아니라 '무서운 질병 매개자'가 될 수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적극적인 계몽에 나서야 한다.

과학을 존중하는, 인권을 보호하는, 권위주의를 극복하는, 위생과 청결을 지켜내는, 그런 대한민국을 만들어보자. 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보자는 말이다. 정부의 전향적인 판단과 세밀한 정보 공개를 다시 한 번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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