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16

[북리뷰] 요리하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

날것의 인생 매혹의 요리사
후안 모레노, 미라크 탈리에르초, 반비, 2만원.

바야흐로 쉐프 전성시대다. TV만 틀면 칼 든 남자들이 흰 옷을 입고 요리를 하고 있다. 누구는 유학파라는 둥, 누구는 국내에서 공부했지만 그에 못지 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둥, 심심찮게 그들의 배경까지도 엿들을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요리라는 것이 과연 쉐프만의 전유물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지금도 수많은 이들이 다양한 장소와 맥락 속에서 요리를 한다. 우리가 요리를 하고 음식을 먹는 것은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생존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리사들 가운데에는 독특한,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한 사연을 겪은 이들이 있을 것이다. <슈피겔>의 기자 후안 모레노가 사진작가 미르코 탈리에르초와 수다를 떨던 중 떠올린 아이디어도 바로 그것이었다.

"미르코와 나는 독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요리사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우리가 내건 단 하나의 조건은 독자들이 따라 할 수 있는 각자의 최고 요리와 함께 각자의 사연을 들려달라는 것이었다. 음식의 질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야기의 질이다.(12쪽)"

그렇게 수집된 17명의 요리사들이 보여주는 사연들은 하나같이 비범하고, 때로는 충격적이며, 어떤 경우에는 슬픔을 안겨준다. 삼촌의 식당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삼촌이 마피아의 거물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오히려 인기를 끌었고, 지금은 빌 클린턴이나 마돈나도 예약을 하지 못할만큼 잘나가는 뉴욕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오스'의 쉐프인 프랭크 펠레그리노의 경우는 그저 재미있고 유쾌하다.

하지만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의 전속 요리사였던 오돈테 오데라의 이야기는, 그저 인터뷰를 통해 전해듣고 있을 뿐인데도 다소 섬뜩한 인상을 남긴다. 그 반대편에는 시위 현장마다 찾아다니며 '배가 고프면 투쟁도 없다'고 사람들을 독려하고 음식을 만들어 제공하는 밤 카트 같은 사람도 있고, 사라예보 내전에서 군인으로서 싸우다가 탈출하여 요리사의 길을 걷고 있는 니하드 마멜레지야의 사연도 존재한다. 요컨대, '요리사'라는 단 하나의 범주를 제외하고 나면,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더 많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 권의 책에 묶여 있는 것이다.

저자의 말은 단호하다. "레시피가 들어 있지만 이 책은 요리책이 아니다. 스타 요리사의 이야기가 있지만 스타에 대한 책도 아니다. 음식 이야기가 계속 나오지만 음식에 관한 책도 아니다. 이것은 오직 요리사에 관한 책이다."(13쪽) 그 요리사의 범주는 대단히 탄력적이며, 그만큼 많은 삶의 모습이 포착된다. 나이로비의 쓰레기 집하장에서 살아가면서 그 속에서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상대로 식당을 운영하는 여성이라던가, 텍사스 교도소에서 그 자신도 죄수의 신분으로 200명이 넘는 사형수에게 최후의 만찬을 차려주었던 남성 등,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뛰어넘는 모습이 <날것의 인생 매혹의 요리사>에 담겨 있다.

이 책을 직접 읽어보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기기로 하고, 여기서 우리의 현실을 돌이켜보자. 그렇게 TV만 틀면 누군가가 요리를 하거나 그것을 먹는 모습이 등장하고 있건만, 그 모든 요리사들은 '쉐프' 아니면 '엄마'로 양분되는 듯하다. 폼나는 흰 옷을 입고 멋진 태도로 고급스러운 요리를 만들어주는 남자들이 '쉐프'로 불리고 있는 동안, 일상을 지탱시켜주는, 시지프스의 바위 굴리기처럼 끝나지 않는 노동으로서의 '집밥' 차리기는 그저 엄마라는 이름의 여성의 몫일 뿐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요리가 인간의 삶에서 필수불가결한 본질적 요소라면, 그 요리의 양태 역시 다양할 수밖에 없고, 요리를 하는 사람인 요리사 역시 그저 두 가지 범주로만 쪼개질 수는 없다. 후안 모레노와 미르코 탈리에르초가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요리사'에 집중하여 포착해낸 17개의 삶은, 도무지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우리의 식문화와 그 식문화를 바라보는 비평적 시각을, 문득 부끄럽게 만든다. 먹방의 시대, 천편일률적인 '쉐프'들의 모습을 보는 게 지겨워진 이들에게, <날것의 인생 매혹의 요리사>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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