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4-07

마광수, "사도마조히스틱한 사회", 『한겨레21』, 1997년 3월 6일, 제147호.

사도마조히스틱한 사회



마광수/ 연세대 강사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 머리 좋기로 이름 난 독일 국민들은, 어째서 히틀러를 자기네 지도자로 떠받들었던 것일까? 그리고 히틀러의 카리스마적 독재에 왜 그토록 열광했던 것일까? 히틀러는 군사쿠데타나 폭력혁명을 일으켜 권력을 잡은 인물이 아니다. 여론조작을 통했든 감언이설에 의했든, 어쨌든 그는 대다수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장악했다.

히틀러에 그토록 열광했던 이유는


많은 학자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접근한다. 우선 1차대전 뒤 패배감과 무력감에 시달릴 대로 시달린 독일 국민들에게 히틀러가 민족적 긍지를 심어주고, 또 경제발전을 위한 긍정적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영웅적 카리스마로 백성 위에 군림하는 독재자는 언제나 난세에 출현하게 마련이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았던 때가 바로 그 ‘난세’의 정점이었던 것이다. 나폴레옹이 프랑스혁명 뒤의 혼란기를 틈타 황제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같은 경우다. 히틀러는 1차대전 뒤의 만성적 인플레이션과 민주정부의 무력한 통치에 대한 민중들의 반감을 등에 업고 ‘강력한 지도자’로 부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혼란기라고 해서 무조건 카리스마적 독재자가 출현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독재정치를 은근히 그리워하는 국민들의 집단적 정서가 있어야만 비로소 독재자가 힘을 행사할 수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 점에 착안하여 히틀러의 집권 이유를 설명하려 한다. 그 가운데 가장 설득력있는 이론으로 정평을 받는 것이 바로 에리히 프롬의 ‘권위주의적 성격’ 이론이다. 히틀러의 집권이 가능했던 것은 히틀러가 ‘권위’를 가진 인물이라서 그랬던 게 아니라, 당시의 독일 국민들이 대체로 권위주의적 성격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권위주의적 성격이란 한마디로 말해 사도마조히스틱한 성격을 말한다. 자기보다 강한 자에게는 절대 복종함으로써 마조히즘적 피학의 쾌감을 얻고,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는 가혹한 잔인성을 발휘함으로써 사디스틱한 가학의 쾌감을 얻는 심리가 사도마조히즘의 심리다.

권위주의적 성격을 가진 인간은 스스로 자유를 누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홀로서기’를 도모해 보지 못하고 언제나 독재적 보호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마치 평생 동안 아버지의 품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자식과도 같다. 종교적 가부장제도가 확립돼 있는 나라의 국민들이나 성적 억압이 심하고 관념 우월주의가 강한 나라의 국민들은 권위주의적 성격을 갖게 되기 쉽다. 나치즘 출현 당시의 독일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히틀러가 집권 뒤 에로틱한 내용의 서적들을 몽땅 불태워 버렸다는 것이 한 증거다. 관념 우월주의는 또한 극기주의나 금욕주의와 통하는데, 히틀러가 철저한 채식주의자였다는 것도 그 역시 지독한 권위주의적 성격의 인간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히틀러는 ‘국가와 민족’을 섬기며 마조히스틱한 쾌감을 맛보았고 국민들 위에 군림하여 그들을 부림으로써 사디스틱한 쾌감을 맛봤다. 독일 국민들은 히틀러를 섬기며 마조히스틱한 쾌감을 맛보았고, 유태인들을 학대하면서 사디스틱한 쾌감을 맛봤다.

권위주의적 성격은 곧바로 관료주의적 성격과 통한다. 윗사람에겐 약하고 아랫사람에 강한 것이 바로 관료주의적 성격인데 이는 개성없고 야심만 많은 출세주의자들이 흔히 갖고 있는 성격이다. 그들은 주체적 자아가 없기 때문에 지위에 의해서만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받으려 한다. 그리고 높은 지위에 올라가는 가장 효과빠른 수단이 ‘보스에 대한 아첨과 절대 충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강력한 아버지’에 의지하는 봉건윤리


우리나라처럼 권위주의가 만연한 나라도 달리 없을 것이다. 수구적 봉건 윤리가 여전히 판치고 있기 때문에 ‘민주화’나 ‘자유화’를 아무리 소리높이 외쳐도 권위주의는 사라질 줄을 모른다. 예전에는 단순히 군사독재가 권위주의적 사회분위기를 만드는 원흉이라고 생각하여 그 해결책의 제시도 쉬웠다. 그러나 외형상 군사독재 문화가 사라진 지금, 권위주의 문화를 없앨 수 있는 뾰족한 처방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저 ‘도덕성 회복’이니 ‘의식 개혁’이니 하는 투의 막연한 처방만 제시되고 있을 뿐 이다.

이럴 경우 우리는 다시 한번 금욕주의적 봉건윤리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강력한 아버지’의 관념에만 의지하려고 하는 정신편향의 봉건윤리는 자아상실을 가져오고, 성적 억압에 따른 ‘화풀이 문화’를 가져온다. 국민 각자각자가 권위주의적 성격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인으로서의 주체성을 가질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권위주의 문화에 따른 상명하복과 복지부동의 풍조가 사라져 우리나라는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마광수, "사도마조히스틱한 사회", 『한겨레21』, 1997년 3월 6일, 제1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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