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27

[북리뷰] 그래도 우리는 이성의 힘으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스티븐 핑커, 사이언스북스, 6만원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약 4700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독일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아우슈비츠의 참상을 직접 목격한 후, 미국은 큰 병력 손실이 예상되는 일본 본토로의 상륙 작전 대신 원자폭탄을 투하해 일본의 전의를 꺾는 쪽을 택한다. 그 후의 역사도, 강대국끼리의 무력 충돌만 없다 뿐이지, 피로 점철되어 있긴 마찬가지였다. 중국과 미국의 대리전이기도 했던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중간중간 벌어진 온갖 끔찍한 테러까지. 우리가 아는 20세기 이후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인류가 발전시킨 과학과 기술, 사회적 관습과 제도가 인류를 가장 효율적으로 억압하고 착취하며 살해하는 대량살상기계로 둔갑해 인간을 옥죄어온 시대가 바로 지금인 것이다.

스티븐 핑커의 책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바로 그와 같은 비관론을 반박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다. 이미 핑커는 『빈 서판』을 통해 '인간의 본성은 빈 서판과 같으며 올바른 양육, 즉 교육을 통해 모든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는 진보 진영의 이데올로기에 반기를 들었던 전례가 있다. 그런 그가 인류 역사 전체를 무대로 삼아 실증주의적 논박의 포문을 열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최악이다'라는 선언적 전제가 왜 문제인가? 그것은 우리가 도덕적으로 나태해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방부제일 뿐, 당장 우리들 중 그 누구도 100년 전은 고사하고 1970년대로 돌아가 살라고 해도 거부할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문제는 이러한 비관주의적 관점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이 너무도 크다는 것이다. 명백히 확인되는 과학적 사실을 거부하고, 인류 역사 진보의 원동력이자 결과물인 근대성을 부정하며, 이성에 의한 인간의 폭력적 욕구 통제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도외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특히 개인주의, 세계주의(cosmopolitanism), 이성(reason), 과학의 힘이 가족, 부족, 전통, 종교를 잠식하는 현상으로 규정되는 근대성(modernity)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리가 이런 변화의 유산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곧 오늘날의 세상을 범죄, 테러, 집단 살해, 전쟁의 악몽으로 보느냐 아니면 역사적 기준으로 보아 유례없이 평화적인 공존과 축복의 시기로 보느냐에 따라, 참으로 많은 문제가 결정된다."(14쪽)

중앙집권적 궁정사회의 출현이 개인에게 에티켓을 강요하면서 그들에게 현대적 도덕을 내재화하고 중세인들을 순치시켰다고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문명화 과정』을 통해 주장했다 핑커는 그 거인의 어깨 위에서 '문명화 과정'이 실제로 남의 총이나 칼 혹은 도끼나 망치 등에 맞아 죽은 사람의 숫자를 줄이는 결과를 불러왔음을 숫자와 그래프로 그려낸다. "유럽은 도시화, 세계주의, 상업화, 산업화, 세속화를 겪을수록 점점 더 안전해졌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 현상을 유효하게 설명하는 유일한 이론, 즉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견해를 떠올리게 된다."(137쪽)

특히 2차 세계대전의 사망자 수를 다른 대형 사건들의 그것과 비교하여 '상대화'하는 등의 작업은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그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우리가 한국 현대사의 가장 암울하면서 우스꽝스러운 대목을 통과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지금, 아주 묵직하고 두툼한 위안이 된다. 마지막 페이지를 닫는 순간, 우리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특히 이성의 힘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복받쳐오르기 때문이다.

2016.12.27ㅣ주간경향 12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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