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10

[북리뷰] 마늘을 먹지 못하는 호랑이의 방랑

비수기의 전문가들
김한민·워크룸 프레스·1만5000원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터 잡으신 후, 단군 할아버지가 가장 먼저 하신 일은 부적격자를 솎아내는 것이었다. 『비수기의 전문가들』에서 관찰자적 역할을 맡은 화자인 "문학을 연구하는 김 아무개"(6쪽)에 따르면 그렇다. 그는 "신화가 가치관을 반영한다고 전제하면, 우리 민족은 대대로 곰이 대변하는 인간형을 추구해온 셈"(6쪽)이라며, 우리 민족이 지금까지 딱히 고려해본 적 없는 질문을 던진다. "못 참고 뛰쳐나간 '호랑이 유형'은 어떻게 됐을까요?"(6쪽)

그렇다. 호랑이는 인내심이 부족했고, 자신보다 우월한 존재인 단군이 제시한 시험을 끝까지 참아내지 못했으며, 결국 성급하고 무책임하게 뛰쳐나가버렸다. 단군은 그러므로 웅녀와 결혼하기 전에 일단 부적격자를 솎아낸 셈이다. 이런 유형의 인간, 우리 민족이 대대로 추구해온 곰의 인간형과 반대편에 서 있는 호랑이형의 인간을, 김 아무개는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에 빗대어) '호모 티게르'라고 농담삼아 부르기로 한다.

그렇게 김 아무개가 발굴하여 발표하는 '호모 티게르', 혹은 '퀭'은 "길에서 가래침 뱉는 소리 때문"(39쪽)에, "그 물질이 아니라 뱉는 행동에 스민 확신"(39쪽) 때문에 한국을 떠나, 마흔 두 개나 되는 조건을 충족시키는 유일한 나라인 포르투갈에 도착해, 리스본에서 짐을 푼다. 하지만 그는 그 어디에서도 편안히 머물 수 없다. 자발적으로 택한 가난 속에는 중산층의 삶과 같은 고요와 안락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공공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잘못된 바닥에 떨어져 / 썩지도 못하는 것들"(56쪽), 아스팔트 위에서 죽은 동물들을 동정하고 공감하며 그 시신을 풀밭으로 옮겨주는 등, 부적응을 계속해 나간다.

그 부적응의 과정 속에서 '퀭'이 남긴 시의 일부를 읽어보자. "이곳은 비수기 / 기회만 주어지면 누구나 떠나버릴 시공간 / 실은 무언가 잘 안 풀려서 온 곳 / 아니었다면 올 일 없는 곳"(93쪽) 즉 『비수기의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로 인한 특정 분야 종사자의 고통을 다룬 책이 아니다. 제목에서 말하는 '전문가'는 '비수기' 그 자체의 전문가이다. 인생이 안 풀리는 것, 겉도는 삶을 사는 것, 누구를 만나도 낯설기 때문에 홀로 있는 것 등의 전문가 말이다.

그런 존재에 대한 발표를 하던 김 아무개는 유일한 청중이 강연장을 나가버리자 발표물을 컴퓨터에 남겨둔 채 본인도 자리를 뜬다. 지워지지 않은 파일 속의 '퀭', 혹은 '호모 티게르'는 아무도 듣지도 읽지도 않는 자료 속에서 "나는 비공감주의의 창시자"(94쪽)라고 선언한다. "내게 있어서 비공감주의란 / 모두가 공감해야 할 만한 건 없다는 주의다."(95쪽)

요컨대 '퀭'은, 작년 발표된 어떤 소설의 제목처럼, '한국이 싫어서' 떠나고 방랑하는 존재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탈과 방랑에 그 어떤 낭만성도 부여하지 않으려 든다. 작가 김한민은 그 낭만성의 거부에도 낭만적 시선이 스며들어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마저도 거부하고자 '퀭'을 김 아무개의 눈을 통해 타자화한다. 모든 책은 독자의 공감을 원하므로, 결국 이 책은 '나는 당신의 공감을 원하지 않는다'는 공감만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비수기의 전문가들』은 그러므로 이국에의 동경과 낭만을 담은 책도 아니고, '한국이 싫어서' 떠나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는 책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단군 할아버지 이후 이 땅에서 사라져버린 '개인'의 모색을 담은 기록인 것이다.

2017.01.10ㅣ주간경향 12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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