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23

[북리뷰] 해방 전후사의 진보적 재인식

주대환의 시민을 위한 한국현대사
주대환·1만7000원·나무나무

진보진영의 이론가 주대환. 상주 주씨인 그는 종친회 모임을 따라가서 집성촌의 묘역에 있는 한 비문을 읽었다. 부부가 함께 묻힌 묘의 비문은 그들의 삶을 "당당하고 정직하고 근면 성실하게 자식을 위해서라면 뼈가 부서지고 살가죽이 갈라져도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망설임 없이 모든 것을 바"(16쪽)쳤다고 기록하고 있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깨달음을 얻었다. 대한민국을 만들어내며 살아온 이들의 평범한 삶을 긍정적으로 재조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이다.

"이분들은 건국과 동시에 이루어진 농지개혁으로 자기 땅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기 땅을 갖게 된 자영농 부부는 이렇게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녀들은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이것이 대한민국 역사를 만들어온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분들의 입장에서 대한민국 역사를 한번 봐야 하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뉴레프트(new left) 대한민국 사관(史觀)입니다."(18쪽)

2008년 『대한민국을 사색하다』를 출간한 이후 주대환이 붙들고 있는 문제의식이 바로 이것이다. 좌파의 세계관을 재구성하는 것. 그 세계관의 핵심인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이해를 갱신하는 것. 대한민국의 현재를 뒤덮고 있는 불평등을 이겨내기 위한 지적 무기를, 우리의 역사에 대한 환멸과 분노가 아닌 사랑과 긍정으로부터 뽑아내는 것.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열기 속에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 만든 프레임에 여전히 갇혀 있는 1964년생들이 아직 50대 초반밖에 되지 않"(7쪽)은 현실 속에서 새로운 진보적 사유를 개척하는 것.

주대환은 해방 정국부터 출발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를 일주했다. 그렇게 공부한 내용을 2014년 가을부터 2015년 겨울까지 광주에서 한 달에 한 번씩 강연했고, 책으로 엮었다. 그렇기에 이 책, 『주대환의 시민을 위한 한국현대사』는 읽고 이해하기 쉬운 말투로 차분하게 흘러간다. '진보적 세계관'에 친숙한 이들이라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수 있지만 말이다.

진보의 세계관 속에서 이승만은 단독정부 수립에 앞장서 민족 분단을 부추긴 악당이다. 하지만 1946년 6월 이승만이 '정읍 발언'으로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하기 전, "북한에서는 이미 1946년 2월에 사실상 정부인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세우고 김일성이 그 위원장으로 취임하여 토지개혁을 단행"(333쪽)했다. 분단을 기정사실화한 것은 북한이지 남한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북한식 토지개혁은 사실상 온 농민을 국가 소작농으로 전락시킨 반면, 진보 진영이 그토록 비난해온 유상몰수 유상분배야말로 국민의 85%를 자영농으로 만들어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고도 주장한다. 이것은 사실 역사학계에서는 상식에 가깝지만 진보 내에서는 그렇지 않다.

기존의 진보적 세계관에 갇힌 그들, 전대협 세대에게는, 현실 정치를 주무르는 힘이 있다. 주대환의 말을 들어보자. "문재인 씨 같은 사람들이 대표를 하고 있지만, 모두 얼굴마담일 뿐이지요. 정치 안 하려고 하는 문재인을 "다 알아서 해드릴 테니 걱정 마세요"라고 하면서 끌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민주당 내 486, 전대협 세대의 힘입니다. 말하자면 택군(擇君)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집단입니다."(231쪽) 정권 교체와 더불어 우리는 우리가 지금까지 '옳다'고 믿었던 수많은 것들을 되짚어볼 기회를 얻었다. 이 책은 그 비판적 고찰의 출발점이 되어줄 것이다.

2017.05.23ㅣ주간경향 12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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