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20

[북리뷰] 뜨거운 반미주의를 바라보던 냉철한 시각

반미주의로 보는 한국 현대사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저·김수빈 역 박태균 해제·산처럼·2만원

1976년부터 미국 국무부에서 외교관으로 일하기 시작한 데이비드 스트라우브의 주 활동 무대는 한국과 일본, 특히 한국이었다. 1979년 한국에 부임한 그는 서울 출신의 한국인 여성과 결혼했고, 1984년부터 1986년까지, 그리고 1996년부터 1998년까지 국무부 한국과에서 일했다. 마지막으로 2002년부터 2004년까지는 한국과장직을 역임했다. 이른바 '한국통'이라는 뜻이다.

그런 그가 2015년 첫 책을 썼다. 그런데 그 주제가 다름아닌 '반미주의'다. 그 어떤 미국인보다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국통 외교관의 눈으로,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반미주의의 열풍을 되짚어본 것이다.

일차적으로 미국인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쓴 책이지만, 저자는 "특히 미국에 대한 한국인의 분노가 극에 달했던 1999년부터 2002년까지 미국 관료들이 이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내부 정보'를 읽고 싶다면 이 책은 큰 도움이 될 것"이며, "당시 미국의 생각을 알게 되면 십중팔구 깜짝 놀랄 것"이라고 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예고한다. 왜냐하면 "한국 언론은 이를 이해하지 못했고 거의 보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6쪽)

기억을 더듬어보자. 그 시절 한국인들은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월드컵 16강 진출을 넘어 '4강 신화'를 달성했다는 자부심에 가득차 있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승리의 서사는 "한국인들이 자국의 역사를 특히 근대사를 열강들의 손아귀에서 희생양이 되어온 역사로 인식"(277쪽)하는, 말하자면 '희생양 내러티브'를 대체하지 못했다. 오히려 희생양 내러티브는 더욱 강화되었다. 스트라우브의 회고에 따르면 "1999~2002년에 미국은 한국의 모든 역사적 가해자를 상징하는 것 같았다."(31쪽)

진보 진영에서 익숙한 세계관에 따르면 실로 그러하다. 미국은 '에치슨 라인'을 설정하여 북한의 침략을 유발했다. 실제로는 '한반도 포기 선언'을 한 적 없지만 대체로 그렇게 알려져 있다. 미국은 5.18 광주민주항쟁 당시 전두환의 학살을 수수방관했다. 미국 대사관이 백방으로 노력하여 사태를 파악하고 외교적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혀졌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희생양 내러티브는 언론의 경쟁적인 보도를 타고 더욱 심화되었다. 당시 한국인에게 미국이란 노근리에서 의도적으로 민간인을 학살하고, 한강에 포름알데히드를 버려서 서울 시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며, 쇼트트랙 금메달을 빼앗아가고, 두 명의 여중생을 군용 장갑차로 치여 죽인 후 사과하지 않는 오만방자한 폭력의 제국이었다. 저자는 이 모든 사안이 왜곡되었거나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단정지을 수 없다고 충실한 레퍼런스를 제시하며 반박한다.

『반미주의로 보는 한국 현대사』는 미국인들에게 '불편한 진실'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21세기 현재, 대한민국에는 "미국 또는 미국 시민이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상당 부분 기반으로 한, 미국 전체에 대한 적의의 표출"(294쪽)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반미주의는 언제라도 되살아날 수 있다.

이 책은 '참여정부 1기' 출범 무렵의 한국을 바라보던 미국의 시각을 제공해준다. 청와대가 앞장서 사드 배치와 관련된 논란을 키우는 지금, 우리 모두 진지하게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이다. 물론 "미국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의 관점을 아는 것이 유용하리라 생각한다."(7쪽)

2017.06.20ㅣ주간경향 1231호

2017-06-11

[별별시선] 한·미동맹에 대한 세 가지 오해

사드 배치에 대한 청와대의 태도는 수상하기 짝이 없다. 대체 왜 끝없이 어깃장을 놓는 것일까? 어차피 미국은 사드를 못 뺀다는 전제하에 벌이는 벼랑 끝 전술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 판단은 미국과 한·미동맹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하고 있다. 하나씩 따져보자.

‘한반도는 미국에 이른바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에,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한·미동맹을 먼저 파기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럴 리가. 한국은 미국의 전략적 요충지가 결코 아니다. 미국에 전략적 요충지란 석유가 나오는 중동, 유럽을 향해 띄운 ‘항공모함’ 영국, 중국과 러시아 견제를 위한 최대 거점인 일본 등이다. 과거에 그어졌던 ‘애치슨 라인’이 보여주었다시피 한반도는 그에 포함되지 않는다. 2002~2004년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을 지낸 ‘한국통’ 데이비드 스트라우브의 책 <반미주의로 보는 한국 현대사>를 보자.

“역설적이게도 한국전쟁 전까지 한국은 미국에 전략적 중요성이 없었으며 아시아 본토에 미국의 병력이 존재할 경우 미국에 과도한 리스크만 안길 뿐이라는 것이 워싱턴 정가의 일치된 견해였다. (중략) 미국은 한국전쟁으로 4만2000명에 이르는 미국 시민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되는 등 큰 희생을 치렀다. 이 때문에 역대 미국 대통령들에게는 남한을 ‘잃어버려서’, 그런 희생을 헛된 일로 만들지 않는 것이 정치적으로 중요했다.”(50쪽) 미국에 한반도는 ‘중요하기 때문에 지키는’ 땅이 아니다. ‘지켰기 때문에 중요해진’ 곳에 가깝다. 한국 정부가 미국을 어떻게 대하건 미군이 남아 있으리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한미군이 철수한다 해도 북한은 한국을 선제공격할 수 없다?’

그게 문제가 아니다.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할 수 있다는 게 진짜 문제다. 주한미군 철수는 북한을 폭격해도 미군이 직접 반격을 당할 위험이 거의 없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미국은 자국 병력의 손실 없이 폭격이 가능할 경우 결코 폭탄을 아끼지 않는 나라다. 주한미군은 북한보다 오히려 미국의 군사 행동을 제약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안전핀이라는 뜻이다.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면, 북한의 반격은 주일미군을 향할까, 한국을 겨냥할까? 진보 진영 자주파들은 ‘북한의 주적은 미국이지 한국이 아니다’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북한은 미국이 아무 공격을 하지 않았을 때에도 연평도를 포격하고 천안함에 어뢰를 쏜 바 있다. 북한이 우리를 공격하지 않으리라는 그릇된 종교적 믿음을 안보의 논거로 삼아서는 안된다.

‘한반도가 전쟁에 휩싸일 경우 발생하게 될 경제적 혼란을 미국이 원치 않으므로 북한 선제타격은 있을 수 없다?’

과연 그럴까? 물론 미국은 혼란을 원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는 사정이 다르다.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폭로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가 임기를 다 채워나간다고 가정해 보자. 형사 피의자 신세로 전락하기 싫다면 무조건 재선에 성공해야 한다. 2020년 대선을 앞두고 ‘쇼’를 벌여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이미 지난 4월13일, 별다른 전략적 실익 없이 아프가니스탄 이슬람국가(IS) 지하기지에 ‘모든 폭탄의 어머니’라는 별명을 지닌 GBU-43/B를 투하했다. 핵무기를 제외하면 가장 강력한 폭탄이다. 그리고 언론 앞에서 우쭐거렸다. 트럼프가 재선용 카드로 북핵 문제를 ‘날려버리고’ 싶어한다면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그를 막을 방법이 없다.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고? 불과 작년 가을까지만 해도 트럼프의 당선 자체가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지 않았던가?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의 자주파들이 가지고 있는 미국과 세계에 대한 관념은 1970년대의 리영희가 1960년대 일본 좌파들의 그것을 참고하여 만든 것이다. 2017년 현재, 반세기 전의 세계관에 입각해 대한민국의 외교 안보 정책이 짜여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문재인 정권의 정직한 입장 표명과 대국민 토론이 필요하다.


입력 : 2017.06.11 21:16:02 수정 : 2017.06.11 21:24:35

2017-06-06

[북리뷰] '비국민'을 배제하고 '국민'을 앞세우는 그들

누가 포퓰리스트인가
얀 베르너 뮐러 저·노시내 역·마티·1만4000원

'포퓰리즘'이라는 개념은 일종의 정치적 으르렁말이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소위 '퍼주기 공약'을 일삼는다는 비난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나 포퓰리즘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국 뿐 아니라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프린스턴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얀 베르네 뮐러는 바로 그 점에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포퓰리즘에 대한 짧은 분량의 개론서를 썼다. 『누가 표퓰리스트인가』를 펼쳐보자.

"이렇게 포퓰리즘 거론이 흔한 요즘--현대 민주주의를 날카롭게 분석하는 불가리아의 정치학자 이반 카르사테프는 심지어 현대를 "포퓰리즘의 시대"라고 부른다--혹시 우리가 포퓰리즘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포퓰리즘이라고 부르는 건 아닌가 하는 관찰에서 이 책은 비롯되었다."(10쪽)

우리가 20세기 말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수많은 '이론가'들과 달리, 저자는 길고 현란한 문장으로 빙빙 돌려 말하지 않는다. "포퓰리즘은 민주주의 최고의 이상("국민이 직접 통치하게 하자!")를 실현해주겠다고 약속하는 타락한 형태의 민주주의다."(16쪽) 여기서 핵심은 '타락한 민주주의'이다. 포퓰리즘은 예컨대 왕정이나 귀족정 등과 달리 어쨌건 민주주의의 한 종류에 속한다. 그러나 타락한 민주주의이며, 역설적이게도 그 타락은 국민주권의 실현이라는 도덕적 명분을 앞세워 벌어진다는 것이다.

국민이 스스로를 다스려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이상은 그 개념 정의상 '완전한' 실현이 불가능하다. 모든 국민들의 이해관계가 다르고, 선호에 차이가 있으며, 사회에는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표하는 자와 대표되는 자, 어떤 사안에서 이득을 보는 자와 손해를 입는 자의 간극은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포퓰리스트들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부정한다.

포퓰리스트가 말하는 '국민'은 "도덕적으로 순수하고 완벽하게 단일한"(33쪽) 존재다. 그리고 "포퓰리스트는 오로지 자기들만 국민을 대표한다고 주장"(33쪽)한다. 그 결과, 첫째, 포퓰리스트를 지지하는 사람들만이 '진짜 국민'이 된다. 둘째, 포퓰리스트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진짜 국민'에서 배제된다. 즉 '순수하고 완벽하게 단일한' 국민의 존재를 위해, 누군가가 '비국민'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이는 해방 후 지금까지 '빨갱이'나 '호남'을 타자화하는 극우 세력의 그것과 유사해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한국의 군사 독재 세력은 '주권자인 국민 전체'를 대변하고 있다는 도덕적 우월성 대신 박정희 신화, 경제발전의 성과를 앞세워 자신들의 폭력을 정당화해왔기 때문이다.

얀 베르너 뮐러가 말하는 포퓰리즘적 정치는 오히려 '촛불 시민의 함성'에서 모든 정치적 선택과 행동의 정당성을 찾으려 하는 오늘날의 풍경과 더욱 잘 맞아떨어진다. 행정부만 바뀌었을 뿐 '기득권 세력'이 존속하고 있으며 그들이 대통령을 '왕따'로 만들고 있다는 식의 피해자 서사가 득세하는 모습 또한 그러한 우려를 증폭시킨다.

포퓰리즘은 오늘날 민주주의가 맞닥뜨리고 있는 가장 큰 위험이다. 하지만 포퓰리즘은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일면이다. '포퓰리즘을 추방하자'는 주장은 그러므로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다양한 이해관계와 정체성이 공존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정직하게 조율해나가며 공존하는 성숙한 민주주의로의 이행만이 정답일 것이다. 이 작고 가벼운 책은 그 무거운 고민을 위한 좋은 출발점이 되어준다.

2017.06.06ㅣ주간경향 1229호

2017-06-05

문재인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철수를 원하는가?

문재인 정권의 전반적인 경향성을 네 글자로 줄이자면 '내로남불'일 것이다. 자신들이 하면 위장전입도 건강보험료 부정도 모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식으로, 요컨대 '내로남불'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아울러 '정규직 일자리 81만개 확충', '원자력 발전소 전면 폐쇄'처럼 요란하게 홍보했던 멋진 정책들도 모두 슬그머니 포기하거나 목표를 과감하게 하향 조정하고 있다. 노래 가사마냥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하지만 국정과제 선정 과정에서 문 대통령 공약 일부는 수정 혹은 폐기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정기획위는 이미 부처별 1차 업무보고에서 일부 공약을 수정하거나 실제 이행 여부를 놓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기업 반발이나 현실적인 제한 때문에 공약을 액면 그대로 적용하기도 쉽지 않거나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가계 통신비 인하(통신 기본료 폐지), 광화문 대통령, 탈(脫)원전·탈석탄발전소, 고교학점제 도입, 전속고발권 폐지 등이 대표적 사례다. 국정기획위가 ‘공약을 이행하겠다’고 밝히긴 했지만 2020년까지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으로 인상(현재 6470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4대강 보 개방 등도 추진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과 논란이 일 수 있다.

김채연, 이태훈, 황정수, 박동휘, 이정호, "국정기획자문위원회 1차 업무보고 마무리…폐기·수정 기로에 선 5대 공약", 한국경제, 2017년 6월 4일, (링크).

그러나 어떤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리고 그것은 슬픔이 아니라 공포를 느끼게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청와대 참모들은 이미 배치된 사드를 조용히 '착하게' 포장하는대신, 이미 들어와 있다고 언론에 보도까지 되었던 미사일 발사대 4기를 문제삼아 국방부를 비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상황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공포다. 그리고 분노가 밀려온다. 그러므로 이 글을 쓰는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이미 배치하기로 합의가 끝났고, 당연히 국회의 비준 따위 처음부터 필요 없는 포대 하나를 두고, 신임 정부가 끝없이 어깃장을 놓고 있다. 대한민국에 배치된 주한미군을, 특히 평택 미군기지와 왜관 부산으로 이어지는 미군 보급선을 지키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하는 포대를 놓는데, 수도권의 시민들은 어떻게 할 거냐는 식의 말도 안 되는 '반론'을 야권에서 끊임없이 생산하다가 급기야는 그런 사람들이 정권을 잡기까지 했다. 미군들이 죽건 말건 한국 정부는 신경 안 쓰지만 미군은 한국인의 목숨을 지켜야 한다고 우기는 이런 나라에 정나미가 안 떨어지면 이상한 일 아닌가?

미국의 입장이 '옳다'고 단정짓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는 최소한의 역지사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이 존재하기 때문에 북한은 한국을 향해 전면적인 군사 공격을 감행하지 못하고 있다. 또 반대로,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미국은 북한을 선뜻 폭격하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폭격을 사랑하는 나라가 미국이고, 북한의 핵 시설을 날려버릴 폭탄쯤은 넘쳐난다. 하지만 때릴 수가 없다. 북한이 한국을 공격하기 시작하면 미군의 피해가 당연히 발생하고 대대적인 확전을 감수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의 존재가 북한 뿐 아니라 미군의 우발적 행동 역시 막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사드는 그 주한미군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주한미군이 한국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보호받으며 주둔하는 한, 대한민국 역시 위 문단에서 말한 이유 때문에 보호받는다. 저러한 식의 '공포'를 북한에 심어주기 위해서 우리가 '자주국방'을 하면 지불해야 할 비용이 과연 얼마가 될까? 북한의 전면적 공격이 가시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면 대한민국의 경제가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 이렇듯 많은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에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골수' 진보 자주파가 아닌 다음에야, 주한미군의 철수에는 대체로 반대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1.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는 주한미군의 철수를 원하는가?
  2.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주한미군이 철수할 경우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와 비용을 어느 정도로 추산하고 있는가?
  3. 셋째,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주한미군의 철수를 원할 경우 그 비용을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설득할 의향이 있는가?

5월 31일 문 대통령은 미국 민주당 소속 딕 더빈 상원 원내총무를 만나 사드 배치에 대해 논의했다. 더빈 의원은 면담 직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를 원치 않으면 9억2300만 달러(약 1조300억원)의 관련 예산을 다른 곳에 쓸 수 있다고 문 대통령에게 말했다”고 밝혔"다(링크). 문제는 청와대에서 내놓은 해당 면담에 대한 브리핑에서는 그러한 충격적 발언에 대한 언급이 쏙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더빈 의원이 거짓말로 인터뷰를 한 게 아니라면, 청와대에서 언론 브리핑에서 해당 내용을 '보고 누락'한 셈이다.

해당 사안에 대한 언론의 추가 취재는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를 안겨준다. 마음을 굳게 먹고 출입기자단과 청와대 관계자의 문답을 읽어보자.

▶기자=“더빈 총무가 그렇게 말한 게 사실이냐”
▶청와대 관계자=“비슷한 취지의 발언이 있었다. ‘미국 납세자들의 세금으로 미국은 한국에 사드 배치를 위해 9억2300만 달러를 지불할 예정인데 한국 내에서 사드 배치가 큰 논란이 되는 것에 대해서 놀랐다’고 했다”
▶기자=“민감한 발언인데 어제(5월 31일)는 왜 공개를 안 했나”
▶관계자=“(더빈 총무 발언이) 그렇게 중요한가…아, 그냥 미국 시민으로서 국익 차원에서 평범한 질문을 하는구나, 그렇게 받아들였다”

허진, "[현장에서] 더빈 발언을 “그냥 미국 시민 질문”으로 느꼈다는 청와대", 중앙일보, 2017년 6월 2일, 강조는 인용자. (링크).

저 청와대 관계자의 말대로라면 문재인 대통령은 '일개 미국 시민'과 만나서 사드 배치라는 안보 중대사에 대해 논의를 한 셈이다. 문재인의 청와대에는 대체 무슨 사람들이 무슨 자격으로 들어가 있는 것인가?

더빈 의원의 발언이 갖는 심각성을 인식해서 브리핑에서 뺐다면 그것은 의도적 왜곡이며 '보고 누락'이다. 반면 저 설명대로 '일개 미국 시민'이 하는 흔한 소리로 이해해서 언론 브리핑에 소개하지 않은 것이라면, 청와대 외교 안보팀은 그 자리에 앉아있을 능력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한국에 불고기와 비빔밥을 먹으러 온 여느 미국인 관광객이 아니라, 미국 국방 예산을 주무르는 장본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의 청와대는 미국 더빈 의원의 발언을 진지하게 듣지 않았다'라는 발언까지 대놓고 했다.

세상에 이런 무례한 행동이 다 있나? 한국인들은 조지 W. 부시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이 사람'(this man)이라고 불렀다는 이유로 오래도록 모욕감을 느껴왔다. 그런데 자신들은 미국 국민들에 의해 선출된 상원 원내총무를 '그냥 미국 시민'이라고 부르다니?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사드 배치에 대한 기존의 협의 사항을 잘 지켜나가자고 다시 당부했지만, 문제는 청와대에 있다. 문 대통령과 문정인 외교안보수석은 주한미군의 철수를 원하는가? 그래서 이렇게 사드를 놓고 끝없이 어깃장을 놓는 것 아닌가? 나는 그들의 외교적 지향점이 나와 다르다는 것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굉장히 크고 엄청난 사건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국민들에게 제대로 설명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다.

이미 ('K값'이 무려 1.6이나 나온, 김어준 식으로 말하자면 '부정선거'지만) 합법적 절차에 의해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그런데 그 신임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자신이 놓고 있는 외교적 행보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지, 일언반구 언급 없이 그저 보여주기식 '사이다' 행보만을 거듭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 사드 배치를 취소하고 싶게 만드는 모든 행동을 하면서, 겉으로는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논하고 있다. 이것은 부산으로 도망치면서 서울은 안전하다고 외친 이승만의 거짓말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최소한의 정직함을 요구한다. 청와대 참모진에게 최대한의 업무 파악과 투명성을 요구한다. 그들은 지금, 동맹의 가치를 코 푼 휴지만도 못하게 여기는 최악의 예측불가능한 미국 대통령이 재임한 가운데, 극히 위험한 외교 안보적 불장난을 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철수, 한미동맹의 파기, 중국의 보호 하에 가능한 북한과의 통일을 원한다면, 제발 정직하게 스스로의 입장을 밝히고 국민들에게 논의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혹시 잊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