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31

독서 목록(2017)

1. 20170103 - 파벨 차졸린, 정건 옮김, 『Enter The Kettelbell!』(경기도 고양: 대성의학사, 2011)
2. 20170109 - 마이크 데이비스, 정병선 옮김, 『조류독감 -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경기도 파주: 돌베게, 2008)
3. 20170114 - 김태경, 『월급쟁이 경매 전략』(서울: 황금부엉이, 2017)
4. 20170122 - 홍성욱 서문, 윤경희 해설, 정은주 옮김, 『백과전서 도판집: 인덱스』(서울: 프로파간다, 2017)
5. 20170129 - 가와바타 야스나리, 장경룡 옮김, 『설국』(서울: 문예출판사, 1999)
6. 20170202 - 새뮤얼 헌팅턴, 형선호 옮김,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서울: 김영사, 2004)
7. 20170209 - 랜들 먼로, 이지연 옮김, 이명현 감수, 『위험한 과학책』(서울: 시공사, 2015)
8. 20170211 - 다치바나 다카시, 와이다 준이치 사진, 박성관 옮김,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17)
9. 20170211 - 버튼 홈스, 이진석 옮김, 『1901년 서울을 걷다』(서울: 푸른길, 2012)
10. 20170212 - 다치바나 다카시, 박성관 옮김, 『지식의 단련법』(서울: 청어람미디어, 2009)
11. 20170215 - 새뮤얼 헌팅턴, 소순창·김찬동 옮김,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과 21세기 일본의 선택』(서울: 김영사, 2001)
12. 20170216 - 대니얼 W. 드레즈너, 유지연 옮김, 『국제정치 이론과 좀비』(경기도 파주: 어젠다, 2013)
13. 20170217 - 다치바나 다카시, 박연정 옮김, 『청춘표류』(서울: 예문, 2005)
14. 20170219 - 다가와 히데오 글, 마츠오카 다츠히데 그림, 양선하 옮김, 『생물이 사라진 섬』(서울: 비룡소, 2002)
15. 20170219 - 이로, 『일본 돈가스 만필집』(서울: 문자그대로 프레스(유어마인드), 2017)
16. 20170302 - 김윤식, 『한일 학병세대의 빛과 어둠』(서울: 소명출판, 2012)
17. 20170316 - 김시덕, 『전쟁의 문헌학』(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7)
18. 20170318 - 마이 셰발, 페르 발뢰, 김명남 옮김, 『로재나』(경기도 파주: 엘릭시르, 2017)
19. 20170324 - 로버트 맥키, 고영범·이승민 옮김, 『STORY』(서울: 민음인, 2011), 구판제목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20. 20170331 - 도리스 컨스 굿윈, 이수연 옮김, 『권력의 조건』(경기도 파주: 21세기북스, 2013), 개정1판.
21. 20170403 - 전봉관, 『황금광시대』(서울: 살림출판사, 2005)
22. 20170405 - 마이 셰발, 페르 발뢰, 김명남 옮김, 『연기처럼 사라진 남자』(경기도 파주: 엘릭시르, 2017)
23. 20170407 - 제임스 그레이디, 윤철희 옮김, 『콘돌의 6일』(서울: 오픈하우스, 2016)
24. 20170408 - 제임스 그레이디, 윤철희 옮김, 『콘돌의 마지막 날들』(서울: 오픈하우스, 2017)
25. 20170409 - 미치가미 히사시, 윤현희 옮김, 『한국인만 모르는 일본과 중국』(서울: 중앙books, 2016)
26. 20170414 - 기울리아 엔더스, 질 엔더스 그림, 『매력적인 장腸 여행』(서울: 와이즈베리, 2014)
27. 20170427 - 움베르토 에코, 이세욱 옮김, 『프라하의 묘지 1』(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3)
28. 20170427 - 움베르토 에코, 이세욱 옮김, 『프라하의 묘지 2』(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3)
29. 20170505 - 주대환, 『주대환의 시민을 위한 한국현대사』(경기도 고양: 나무+나무, 2017)
30. 20170507 - 마거릿 애트우드, 김선형 옮김, 『시녀 이야기』(서울: 황금가지, 2010), 개정판
31. 20170512 - 얀 베르너 뮐러, 노시내 옮김, 『누가 포퓰리스트인가』(서울: 마티, 2017)
32. 20170512 - 폴 웨이드, 정미화 옮김, 『죄수 운동법』(서울: 비타북스, 2017)
33. 20170520 - 데릭 커크 킴, 김낙호 옮김, 『다르면서 같은』(서울: 길찾기, 2005)
34. 20170521 - 전정식, 박정연 옮김, 『피부색깔=꿀색』(경기도 과천: 길찾기, 2013), 개정 증보판
35. 20170526 - 이응준, 『국가의 사생활』(서울: 민음사, 2009)
36. 20170530 - W. G. 제발트, 이경진 옮김, 『공중전과 문학』(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13)
37. 20170607 -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김수빈 옮김, 박태균 해제, 『반미주의로 보는 한국 현대사』(서울: 산처럼, 2017)
38. 20170614 - 정신대연구회·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엮음, 『중국으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서울: 한울, 1995)
39. 20170614 - 한국정신대연구소 엮음, 『중국으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2』(서울: 한울, 2003)
40. 20170618 - 차무진, 『해인』(경기도 파주: 엘릭시르, 2017)
41. 20170619 - 윤소영, 『「한국의 불행」: 한국현대지식인의 역사』(서울: 공감, 2016)
42. 20170619 - 헬무트 콜, 김주일 옮김, 『나는 조국의 통일을 원했다』(서울: 해냄, 1998)
43. 20170620 - 김용언, 『문학소녀』(서울: 반비, 2017)
44. 20170623 - 이승원, 『저잣거리의 목소리들』(서울: 천년의상상, 2014)
45. 20170625 - 홍명희, 『임꺽정 1 봉단편』(경기도 파주: 사계절, 2008)
46. 20170702 - 이시필, 백승호·부유섭·장유승 옮김, 『소문사설, 조선의 실용지식 연구노트』(서울: 휴머니스트, 2011)
47. 20170705 - 안병직 번역·해제,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서울: 이숲, 2013)
48. 20170705 - 모리카와 마치코, 김정성 옮김,『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서울: 아름다운사람들, 2005), 전자책(교보문고)
49. 20170709 - 리처드 뮬러, 장종훈 옮김,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경기도 파주: 살림, 2011)
50. 20170710 - 권오상, 『엔지니어 히어로즈』(서울: 청어람미디어, 2016)
51. 20170720 - 류샤오보, 김지은 옮김, 『류샤오보 중국을 말하다』(서울: 지식갤러리, 2011)
52. 20170722 - 김정인,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서울: 책과함께, 2015)
53. 20170726 - 박훈,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서울: 민음사, 2014)
54. 20170802 - 조재곤, 『그래서 나는 김옥균을 쏘았다』(서울: 푸른역사, 2005)
55. 20170802 - 고바야시 다키지, 양희진 옮김, 『게공선』(서울: 문파랑, 2014), 개정판.
56. 20170807 - 대니얼 예긴, 김태유·허은녕 옮김, 『황금의 샘 1』(서울: 라의눈, 2017), 최신 증보판
57. 20170809 - 조엔 그린블라트, 안진환 옮김, 『주식시장을 이기는 작은책』(서울: 시공사, 2006)
58. 20170811 - 대니얼 예긴, 김태유·허은녕 옮김, 『황금의 샘 2』(서울: 라의눈, 2017), 최신 증보판
59. 20170812 - 리처드 뮬러, 장종훈 옮김, 『대통령을 위한 에너지 강의』(경기도 파주: 살림, 2014)
60. 20170813 - 시쿠 다쓰키, 이수미 옮김, 『조작된 시간』(서울: 몽실북스, 2017)
61. 20170814 - 정교, 조광 편, 이상식 역주, 『대한계년사 1』(서울: 소명출판, 2004)
62. 20170814 - 정교, 조광 편, 이상식 역주, 『대한계년사 2』(서울: 소명출판, 2004)
63. 20170814 - 정교, 조광 편, 이상식 역주, 『대한계년사 3』(서울: 소명출판, 2004)
64. 20170814 -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서울: 뿌리와이파리, 2017)
65. 20170815 - 이해조, 박진영 편, 『쌍옥적』(경기도 파주: 엘릭시르, 2016), 미스테리아 7호 부록
66. 20170817 - 정교, 조광 편, 이상식 역주, 『대한계년사 4』(서울: 소명출판, 2004)
67. 20170818 - 폴 크루그먼, 이윤 역해, 『폴 크루그먼의 지리경제학』(서울: 창해, 2017)
68. 20170820 - 스티븐 킹, 정진영 옮김, 『그것(상)』(서울: 황금가지, 2004)
69. 20170821 - 김민규, 『돈이 없을수록 서울의 아파트를 사라』(서울: 위즈덤하우스, 2017)
70. 20170827 - 스티븐 킹, 정진영 옮김, 『그것(중)』(서울: 황금가지, 2004)
71. 20170828 - 스티븐 킹, 정진영 옮김, 『그것(하)』(서울: 황금가지, 2004)
72. 20170830 - 존 메이너드 케인스, 정명진 옮김, 『평화의 경제적 결과』(서울: 부글, 2016)
73. 20170830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정현규 옮김, 『젊은 베르터의 고통』(서울: 을유문화사, 2010)
74. 20170902 - 랜들 먼로, 조은영 옮김, 『랜들 먼로의 친절한 과학 그림책』(서울: 시공사, 2017)
75. 20170903 - 리베카 솔닛, 김명남 옮김,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경기도 파주: 창비, 2017)
76. 20170903 - 남세희, 『통증홈트 목·어깨』(서울: 중앙북스, 2017)
77. 20170905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김연경 옮김, 『죄와 벌 1』(서울: 민음사, 2012)
78. 20170907 - 윤재수, 『주식투자 무작정 따라하기』(서울: 길벗, 2017), 4차개정판
79. 20170909 -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원작, 다윈 쿡 그림, 임태현 옮김, 『리처드 스타크의 파커: 아웃핏』(서울: 시공사, 2014)
80. 20170910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김연경 옮김, 『죄와 벌 2』(서울: 민음사, 2012)
81. 20170914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김연경 옮김, 『지하로부터의 수기』(서울: 민음사, 2010)
82. 20170918 - 알렉산더 클루게, 이호성 옮김, 『이력서들』(서울: 을유문화사, 2012)
83. 20170919 - 프랑크 베데킨트, 김미란 옮김, 『눈뜨는 봄』(서울: 지만지, 2008)
84. 20170919 - 엘러리 퀸, 서계인 옮김, 『Y의 비극』(서울: 시공사, 2013)
85. 20170922 - 로렌 R. 그레이엄, 최형섭 옮김,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경기도 파주: 역사인, 2017)
86. 20170924 - 마쓰모토 세이초, 이병진 옮김, 『모래그릇 1』(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13)
87. 20170924 - 마쓰모토 세이초, 이병진 옮김, 『모래그릇 2』(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13)
88. 20170926 - 유발 하라리, 김명주 옮김, 『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경기도 파주: 김영사, 2017), 전자책(리디북스)
89. 20171005 - 마츠오 바쇼오, 유옥희 옮김, 『마츠오 바쇼오의 하이쿠』(서울: 민음사, 1998)
90. 20171008 -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안영옥 옮김, 『돈키호테 1』(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4)
91. 20171014 - 데이비드 매콜리 글·그림, 조동섭 옮김, 『미스터리 모텔』(서울: 마루벌, 2009)
92. 20171015 -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안영옥 옮김, 『돈키호테 2』(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4)
93. 20171015 - J. D. 밴스, 김보람 옮김, 『힐빌리의 노래』(서울: 흐름출판, 2017), 전자책(리디북스)
94. 20171015 - 귄터 그라스, 이수은 옮김, 『라스트 댄스』(서울: 민음사, 2004)
95. 20171017 - 쥘리 다셰 글, 마드무아젤 카롤린 그림, 앙혜진 옮김, 『제가 좀 별나긴 합니다만… 아스퍼거 증후군 이야기』(서울: 이숲, 2017)
96. 20171018 - 러디어드 키플링, 남문희 옮김, 『정글북 1』(서울: 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전자책(리디북스)
97. 20171020 - 러디어드 키플링, 남문희 옮김, 『정글북 2』(서울: 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전자책(리디북스)
98. 20171022 - 이언 뱅크스, 김상훈 옮김, 『말벌공장』(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05)
99. 20171023 - 윌리엄 마치, 정탄 옮김, 『배드 시드』(서울: 책세상, 2009)
100. 20171023 - 조나단 트리겔, 이주혜·장인선 옮김, 『보이 A』(경기도 파주: 이레, 2009)
101. 20171024 - 허버트 조지 웰스, 한동훈 옮김, 『타임머신』(서울: 펭귄클래식코리아, 2011), 전자책(리디북스)
102. 20171026 - 라이오넬 슈라이버, 송정은 옮김, 『케빈에 대하여』(서울: 알에이치코리아, 2012)
103. 20171026 - 애거서 크리스티, 권도희 옮김, 『비뚤어진 집』(서울: 황금가지, 2013)
104. 20171028 - 남세희, 『통증홈트 허리』(서울: 중앙북스, 2017)
105. 20171103 - 박성식, 『공간의 가치』(경기도 용인시: 유룩출판, 2016), 제2판
106. 20171110 - D. H. 로렌스, 최희섭 옮김, 『채털리 부인의 연인 1』(서울: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전자책(리디북스)
107. 20171111 - D. H. 로렌스, 최희섭 옮김, 『채털리 부인의 연인 2』(서울: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전자책(리디북스)
108. 20171112 - 에바 가브리엘손, 마리프랑수아즈 콜롱바니, 황가한 옮김, 『밀레니엄 스티그와 나』(서울: 뿔, 2011)
109. 20171113 - 애거서 크리스티, 신영희 옮김, 『오리엔트 특급 살인』(서울: 황금가지, 2013)
110. 20171115 - 마강래, 『지방도시 살생부』(경기도 고양: 개마고원, 2017)
111. 20171116 - 라종일,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경기도 파주: 창비, 2013)
112. 20171118 - 김건우,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충남 홍성군: 느티나무책방, 2017)
113. 20171129 - 이시필, 백승호·부유섭·장유승 옮김, 『소문사설, 조선의 실용지식 연구노트』(서울: 휴머니스트, 2011)
114. 20171201 - 조남주, 『82년생 김지영』(서울: 민음사, 2016)
115. 20171201 - 이문열, 『황제를 위하여(1~2 합본)』, (서울: 민음사, 2013), 전자책(리디북스)
116. 20171206 - 신기욱, 『슈퍼피셜 코리아』(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17)
117. 20171209 - 폴 비티, 이나경 옮김, 『배반』(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7)
118. 20171209 - 구회영,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경기도 파주: 한울, 1991)
119. 20171215 - 테어도르 카진스키, 조병준 옮김, 『산업사회와 그 미래』(서울: 박영률출판사, 2006), 개정판.
120. 20171217 - 제인 오스틴, 김정아 옮김, 『오만과 편견』(서울: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전자책(리디북스)
121. 20171230 - 토머스 모어, 류경희 옮김, 『유토피아』(서울: 펭귄클래식코리아, 2008), 전자책(리디북스)

올해의 영상물: 갓건배에 대한 모든 것(2017)

〈갓건배에 대한 모든 것〉 트레일러


지난 8월 9일 새벽, 웹 스트리밍 서비스 아프리카의 BJ인 김윤태는 유튜브 스트리머 갓건배의 집 주소를 알아냈다며, 갓건배의 집에 찾아가 죽여버리겠다는 식의 '컨텐츠'를 유포했다. 실시간으로 약 7000여명 가까운 사람이 영상을 시청하는 가운데,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울 성북경찰서에만 총 3차례 신고가 접수되었다. "그 주소에 갓건배가 살지 않아도 여성이라면 목졸라 죽이겠다"는 발언까지 했다는 증언(링크)까지 나온 가운데, 이 사건은 놀랍게도 살해협박이 아니라 '과도한 남성 혐오, 이대로 좋은가', 혹은 '인터넷 스트리머들의 무분별한 폭력과 증오의 표출은 과연 어디까지 표현의 자유인가' 따위의 주제로 소화되어 버리고 말았다.

초고속인터넷의 보급과 거의 동시에 3cf를 만드는 등 다방면에서 창작 활동을 벌였고 지금껏 꾸준히 인터넷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대한민국의 인디 록 음악가, 시인 겸 작사가, 인터넷 유명인"(위키백과) 권용만은, 갓건배를 소위 '저격'한다는 170여개의 유튜브 영상을 전부 시청한 후, 그것을 모으고 편집하여 컴필레이션 영상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갓건배에 대한 모든 것〉(2017)이다. 이 영상은 올해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진 모든 영상물 중 가장 문제적이다.

갓건배는 게임 〈오버워치〉를 플레이하며 게임 속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남성 유저들의 여성 유저에 대한 성차별, 성폭력, 비하 표현 등을 '미러링'해온 유튜브 스트리머(였)다. 그를 두고 남자들이 쏟아내는 온갖 증오와 욕설의 표현들로 1시간 44분 31초를 꽉 채워넣었는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대목이 몇 가지 나온다. 첫째, 예고편만 봐도 알 수 있다시피 '갓건배 저격'에 나선 것은 대부분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연령대의 어린 남자들이다. 과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아들자식 농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둘째, 마찬가지로 예고편만 봐도 알 수 있다시피, 그게 꼭 애들만 그러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 높은 연령대의 남자들은 어떤 '남자 역할'을 제시하고 수행하는 중인가? 셋째, 대체 이 수많은 '초딩'들의 교육 환경과 삶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거나, 구성되어 있지 못하거나, 망가지고 있는 중인가?

이 영상이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었을 때 발생한 논란은 추가적으로 생각할 거리를 하나 더 안겨준다. 이 '초딩'들은 스스로 영상을 찍어서 올렸다. 그것을 편집하여 별개의 영상물로 만드는 행위를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미성년자의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전제하고 그들 스스로의 어리석은 행동으로부터 미성년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면 당연히 〈갓건배에 대한 모든 것〉의 존재 자체를 비난할 수 있다. 하지만 다시 말하건대 〈갓건배에 대한 모든 것〉은 모두 직접 찍어 올린 영상을 편집해서 만든 것이다. 등장인물들을 '보호'하려면 〈갓건배에 대한 모든 것〉을 비판하거나 보지 말자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러한 '보호'는, 미성년자의 인격과 판단을 최대한 존중하려 하는 입장에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훈육과 맞닿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지점이 있다. 특정 여성에 대한, 그리고 여성 일반에 대한 인터넷 상의 언어 폭력이 단지 말로만 오가는 차원을 넘어 현실의 폭력으로 돌변하던 바로 그 순간과 이후의 반응으로 인해 〈갓건배에 대한 모든 것〉이 만들어졌다는 사실 말이다. 그 폭력을 휘두르겠다던 남자 BJ들은 '원래 그런 놈들'이라고 치부되면서, 실질적으로는 면죄부를 받았다. 반면 '갓건배'는 언론의 조명을 받더니 소위 '남성혐오'의 대명사가 되었다. 지금도 조금만 검색해보면 그에게 다종다양한 폭력을 행사하고 싶다는 증오의 표현이 넘쳐난다.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는, 혹은 보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 그 수많은 폭력은 어디에 있는가?

한 해의 마지막에 이 영상을 소개하면서 '꼭 보라'고 하는 것은 다소 어폐가 있는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기왕 본다면 1시간 44분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꾹 참으며 보기 바란다. 특히 남자라면 말이다. 창작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어쩌면 이것은 여성들이 느끼는 인터넷 속의 언어 폭력을 체감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일 수도 있다. 이게 바로 여성혐오의 민낯이며, 대한민국의 현재이자 미래다.

2017-12-30

올해의 책 다섯 권

2017년에 발행되어 2017년에 읽은 책 가운데 특별히 다섯 권을 꼽아보았다.

  • 김용언, 『문학소녀』(서울: 반비, 2017)
김용언의 『문학소녀』는 전혜린이라는 문제적 작가를 중심으로 하여, 한국 문학계의 남근주의, 여성 작가에 대한 멸시, 여성 작가들이 주로 종사한다고 여겨지는 산문(에세이)에 대한 저평가 등을 다룬다. 특히 전혜린은 대다수의 동시대인들과 달리 일본의 프레임을 거치지 않고 독일어 문학을 접하고 향유하며 번역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의 눈으로 골라낸 책을 공들여 한국어로 옮김으로써, 지금까지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는 어떤 감수성, 한 남성 평론가의 언어를 빌리자면 "느낌의 공동체"를 만들어낸 장본인으로 전혜린을 (재)소개하는 대목이 책의 절정을 이룬다. 모질게 저평가당하고 매도당해온 작가/번역가, 그를 대상으로 한 국문학계의 연구 성과, 그리고 페미니즘에 목마른 독자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책.

  • 김시덕, 『전쟁의 문헌학』(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7)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조교수인 김시덕은 일본 유학 시절 『이국 정벌 전기의 세계(異征伐記の世界)』라는 책을 썼다. 그 작업을 통해 40세 이하 고문헌 연구자에게 수여하는 학술상인 '일본고전문학학술상'을 수상하였는데, 해당 학술상을 외국인이 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귀국한 후 『그들이 본 임진왜란』(2012),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2015) 등으로 넓은 독자층의 환영을 받았다. 그의 책 『이국 정벌 전기의 세계』는 2016년 말 『일본의 대외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전쟁의 문헌학』은 그 후속편에 해당하는 작업이다. 『동국통감』과 『신간동국통감』, 『징비록』과 『(조선) 징비록』 등 고문헌의 이름과 내용과 전래 과정이 오가는 가운데 독자는 두 가지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된다. (〈에스콰이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김시덕이 "김시덕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힘의 근원이 바로 여기 있다는 것, 예나 지금이나 우리 한반도의 거주민들은 타자에 모르면서 모르는 상태로 이기고 싶어한다는 것.

  • 주대환, 『주대환의 시민을 위한 한국현대사』(경기도 고양: 나무+나무, 2017)
주대환은 선거보다 정책을, 정치보다 세계관을 고민해온 사람이다. 그렇게 알려져 있다.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의장직을 역임하던 시절, 기존 진보 진영의 관성에서 벗어나 실용적이고 실생활에 와닿는 정책을 고안하고 추진해왔다(고 한다). 그 민주노동당이 10여년의 세월동안 풍비박산나고 있던 과정에서, 주대환은 한국의 정치의 이면에 깔린 세계관 그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를 시작했다. 그 최초의 고민이 담긴 책이 『대한민국을 사색한다』(2008)였고, 『주대환의 시민을 위한 한국현대사』는 그 문제의식에 구체적인 살을 붙이고 간명한 레토릭까지 추가한 작업이다. 그는 진보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정통성을 물고 늘어지는 소위 '해방전후사의 인식 세계관'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한다. 해방된 조국의 정통성이 북한에 있다는 판타지를 유지하려다보니 북한 정권의 폭압적 인권 탄압에 눈을 감고, 현실성 없는 대외 정책만을 외치게 된다는 것이다. '한 방에' 혁명을 해서 세상을 뒤엎겠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이 나이만 먹은 채 그런 세계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주대환은 거침없이 폭로하며, 새로운 진보를 위한 대안 서사를 제시한다. 문제는 그 서사가 기존의 것을 대체할 수 있을만한 '무협지적 재미'를 주지는 못한다는 것. '사이다'에 중독되어 '적폐' 사냥에 맛을 들인 오늘날의 대중들을 과연 어떻게 설득하고 새로운 정치 지형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인가? 아직 그 누구도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김수빈 옮김, 박태균 해제, 『반미주의로 보는 한국 현대사』(서울: 산처럼, 2017)
자타공인 '지한파' 미국인이라고 한다면, 이제 우리는 주한미국대사를 역임한 마크 리퍼트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개량한복을 입은 남자에게 얼굴에 칼을 맞고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한국인이 정말 알아야 할 지한파 미국인을 딱 한 사람 꼽으라면 데이비드 스트라우브의 이름을 답으로 내놓아야 하며, 그 이유를 묻는다면 바로 이 책 『반미주의로 보는 한국 현대사』의 내용을 소개하고 일독을 권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만큼 중요한 책이고, 또, 예상 가능하다시피 국내 독서계에서 거의 완전히 무시당하고 매장당한 책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것이, 이 책은 비단 '주사파'나 'NL 운동권' 뿐만 아니라 사실상 거의 모든 한국인이 공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역사의 피해자' 서사와 그에 기반한 반미주의를 외부인의 시각으로 분석하고 반박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로 잘 알려진 '미군 장의사 한강 포름알데히드 사건'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미국 내에서도 포름알데히드를 버릴 때에는 그냥 강물에 희석시킨다, 다시 말해 수돗물 틀어놓고 쏟아붓는다고 말이다. 해당 미국인 군무원은 일부러 한국민의 젖줄을 더럽힌 게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하는 통상적인 방식으로 포름알데히드를 처리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분노했고, 시위했고, 영화도 찍고, 이후에는 더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한국어로 된 뉴스를 주로 접하고 사는 사람이라면 모두 『반미주의로 보는 한국 현대사』를 한 번쯤은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의 내용이 전부 옳다고 주장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래야 '자기객관화'라는 것을 시작이라도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 로렌 R. 그레이엄, 최형섭 옮김,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경기도 파주: 역사인, 2017)
개인적으로 2017년은 뜻깊은 해였다. 새로 들어선 문재인 정권에서 기습적으로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가운데, 나는 수레바퀴에 맞서는 사마귀가 된 심정으로 반대의 뜻을 밝혔고, 그 결과 『경향신문』 칼럼니스트의 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해당 매체에서 전화 통화를 통해 고지한 사실이 그렇다. 그리고 나는 원자력 발전에 대한, 합리적이고 경제적이며 인본주의적인 에너지 정책에 대한 글을 연달아 썼으며, 블로그에 글을 쓸까 하다가 그냥 넘어갔는데 환경진보(Environmental Progress)의 마이클 쉘렌버거 대표와 두 차례 만나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러한 개인적 맥락 속에서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을 읽었다. 1960년부터 소련을 방문해가며 소련 기술사를 연구해왔던 미국인 학자 로렌 R. 그레이엄이 천착하던 화두 중 하나가 바로 표트르 팔친스키였다. 소련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숙청 중 하나로 기억되는 '산업당(Industrial Party)' 사건. 그 주동자로 지목되어 처형당한 팔친스키는, 숙청 대상자가 대부분 그렇듯, 말소당한 기록 속에서 말 그대로 '사라져버리고' 있었다. 그는 끈질긴 자료 추적과 해석을 통해, 제정 러시아가 교육시켰고 무정부주의의 영향을 깊게 받은 뛰어난 엔지니어가, 중후장대한 성과를 요구하는 볼셰비키와의 갈등 속에서 짓밟혀버리고 마는 역사를 추적해 나갔다. 짧지만 강렬하고 큰 여운을 남기는 저작으로, 북한 뿐 아니라 대한민국 내에서 발생한 유사 사례를 다룬 책을 볼 수 있는 날을 기대한다.

2017-12-29

Alles wandelt sich - Bertolt Brecht

Alles wandelt sich

Alles wandelt sich. Neu beginnen
Kannst du mit dem letzten Atemzug.
Aber was geschehen, ist geschehen. Und das Wasser
Das du in den Wein gossest, kannst du
Nicht mehr herausschütten.

Was geschehen, ist geschehen. Das Wasser
Das du in den Wein gossest, kannst du
Nicht mehr herausschütten, aber
Alles wandelt sich. Neu beginnen
Kannst du mit dem letzten Atemzug.

- Bertolt Brecht

2017-12-02

82년생 김지영, 86년생 엄홍식

유아인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나는 최대한 '유아인'에 집중하고 싶었다. 연기자로서의 인격에만 논의를 국한하고 싶었다는 말이다. 그 이름은 그가 공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만든 것이며, 따라서 비판을 받더라도 페르소나의 이면에 있는 인격까지 비난의 대상이 되지는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유아인은 스스로 올린 페이스북 게시물을 통해 자신의 이름 세 글자의 한자 풀이를 하며 기꺼이 선을 넘었고, 따라서 이제 우리는 말해야 한다. 86년생 엄홍식이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온, 82년생 김지영들이 착취당해온 세상에 대해.

소설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자. 『82년생 김지영』은 이제 모든 사람들이 그 이름을 아는 베스트셀러이며, 화제작이고, 문제작이다. 일단 이 '보편적'인 인물의 프로필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김지영 씨는 1982년 4월 1일, 서울의 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키 50센티미터, 몸무게 2.9킬로그램으로 태어났다. 김지영 씨 출생 당시 아버지는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주부였다. 위로 두 살 많은 언니가 있고, 5년 후 남동생이 태어났다. 방 두 개에 마루 겸 부엌 하나, 화장실 하나인 열 평 남짓 단독주택에서 할머니와 부모님, 삼 남매, 이렇게 여섯 식구가 살았다.

딸 둘에 아들 하나. 김지영 씨 어머니의 시부모 뿐 아니라 친정어머니도 아들을 낳으라고 성화다. 김지영 씨는 태어날 때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실패한 복권이었다. 결국 5년 후 태어난 아들에게 모든 자원이 집중되었다. 밥, 옷, 혼자 쓰는 방, 용돈, 교육비, 기타등등. "우산이 두 개면 동생이 하나를 쓰고 김지영 씨와 언니가 하나를 같이 썼고, 이불이 두 개면 동생이 하나를 덮고 김지영 씨와 언니가 하나를 같이 덮었고, 간식이 두 개면 동생이 한 개를 먹고 김지영 씨와 언니가 나머지 한 개를 나눠 먹었다."(25쪽)

가족 내에서 시작된 차별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누적된다. 학교에서는 남학생들이 급식을 먼저 받아먹고, 더 달라고 성화를 부려 맛있는 반찬을 거덜낸다. 대학에 가도 여학생은 동아리의 '꽃'일 뿐 '활동 주체'로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김지영 씨는 2001년에 대학에 들어간 01학번인데, IMF의 직접적인 타격은 극복한 듯 보이는 시절이었지만, 친구의 말을 듣고 문득 깨닫는다. 이름만 대면 아는 번듯한 직장 다니면서 '우리 회사 와라'면서 폼 잡는 선배들이 다 남자라는 것. 그 똑똑하고 잘난 여자 선배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다는 것. 그런 '사라짐'이 바로 자신을 기다리는 운명이라는 것.

그렇게 김지영 씨는 계속되는 차별을 겪고, 참고, 입을 다문다. 말을 아끼고 (남자들이 보지 못하게) 한숨을 내쉬고 세상이 나한테만 불공평하게 돌아가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애써 합리화한다. 그러다가 결국 애를 낳기 위해 그 어렵게 들어갔던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된 후, 1500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자신을 보며 남자 직장인들이 '맘충'이라고 킬킬거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 김지영 씨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도달한다.

"그 커피 1500원이었어. 그 사람들도 같은 커피 마셨으니까 얼만지 알았을 거야. 오빠, 나 1500원짜리 커피 한잔 마실 자격도 없어? 아니, 1500원 아니라 1500만 원이라도 그래. 내 남편이 번 돈으로 내가 뭘 사든 그건 우리 가족 일이잖아. 내가 오빠 돈을 훔친 것도 아니잖아.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 (165쪽)

이렇게 폭발해버린 김지영 씨의 분노는 '말문이 트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여자들, 죽은 사람이건 산 사람이건, 완벽하리만치 똑같은 말투와 표정으로 그 여자들의 말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애를 낳다가 죽은, 남편이 좋아했던 대학 시절 친구에게 그가 고백했던 내용까지도, 미쳐버린, 혹은 신들린 김지영 씨는 알고 있다. 그는 최선을 다해 엄마이고자 했지만 '맘충', 즉 인간 이하의 존재로 비하당했기에, 세상의 모든 여자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책에 붙은 해제에서 여성학자 김고연주가 잘 이야기하고 있다시피, 김지영은 언제나 '말'을 빼앗기는 존재다. 학교에서 급식을 받아먹는 것 같은 사소한 문제에서마저, 남학생이 여학생을 때리고 괴롭히는 것을 선생님에게 호소할 때마저, '너는 여자니까 부당함을 참아야 한다'는 당위적이지 않은 주장이 마치 당위 명제인 양 그를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김지영은 어처구니없고 부당한 상황에서 거의 입을 닫아 버"(184쪽)렸고, 결국에는 자신처럼 입을 닫아버렸던 수많은 여자들을 대신해 말하는 존재가 된다.

애석하게도 김지영 씨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소설이기 때문에 김지영 씨가 향후 겪게 될 사건을 무궁무진하게 펼쳐갈 수도 있었겠지만, 작가는 대신 그를 정신과 의사에게 데려간다. 정신과 의사(男)는 김지영 씨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면서도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다.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175쪽)고 다짐한다. "내가 평범한 40대 남자였다면 끝내 알지 못했을 것"(170쪽)이라며 김지영 씨가 겪어온 고통과 차별을 '특별한 나'를 꾸며주는 장식품으로 몽땅 소비해버리고 난 후에 말이다.

마치, 86년생 엄홍식이 그랬던 것처럼.

2017년 11월 26일 오후 12시 12분에 올린 페이스북 게시물에서, 엄홍식이라는 이름을 가진 대구 출신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보수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구에서 누나 둘을 가진 막내 아들이자 대를 잇고 제사를 지내야 할 장남으로 한 집안에 태어나 ‘차별적 사랑’을 감당하며 살았"다고.

앞서 인용한 『82년생 김지영』의 한 구절과 비교해보자. 86년생 엄홍식이 감당하셨다는 '차별적 사랑'이란, 자신의 누나 두 명이 간식 하나를 나눠먹을 때 본인은 한 개 다 먹는 것, 누나 두 명이 우산 하나를 나눠 쓰고 비에 젖을 때 본인은 제일 좋은 우산으로 비를 가리는 것 등을 의미할 것이다. 누가 봐도 차별을 당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명백한데, 82년생 김지영 대신 86년생 엄홍식이 외친다. 내가 더 힘들었다고 말이다.

86년생 엄홍식의 '불행 배틀'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아들을 원하는 보수적인 집안에서 둘째 누나의 이름이 왜 '방울'이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그가 직접 공개한 내용이고, 나는 그것을 비판하려 하는만큼, 인용하겠다.

작은누나의 이름은 한글로 ‘방울’이다. 그때까지는 내 조부모들의 귀한 자식들인 내 부모가 가진 자식들이 딸 둘 밖에는 없어서 다음에는 꼭 아들을 낳으라고 할머니가 그렇게 지으셨다고 한다. ‘엄방울’ 불쌍하고 예쁜 이름.
https://www.facebook.com/hongsik.uhm.14/posts/1985718098308225

이러한 발화 행위를 통해 86년생 엄홍식은 '엄방울'이라는 여성에게서 대단히 중요한 것을 빼앗아갔다. '내 이름이 엄방울인 이유는 내 부모가 여자인 나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표출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 것이다.

이제 전 국민이 엄홍식의 누이의 이름에 얽힌 사연을 안다. 이제 그 누이는 자신이 여성혐오의 극단적인 피해자라는 사실을 감출 수도 없고, 드러낼 수도 없다. 남동생 엄홍식이 누이인 엄방울의 비극을 약탈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86년생 엄홍식은 친누이로부터 빼앗아온 비극을 전시한 후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했다. 마치 아프리카의 국립공원에서 불법 사냥을 한 이들이 맹수의 사체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자신이 맹수인 척 하는 것처럼 말이다.

착취자가 피착취자를, 억압자가 피억압자를, 가해자가 피해자를 낭만적인 대상으로 소비하는 것은 인류 역사상 수없이 반복되어온 패턴이다. 그런데 그것이 이렇게까지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방식으로 표현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으리라고 나는 상상해본 적이 없다. 86년생 엄홍식은 바로 그것을 해냈다. 누이의 비극을 팔아, 그 누이가 자신의 비극을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서사화하고 발화할 수 있는 기회마저 빼앗아버렸다. 누나의 비극까지도 남동생이 무대 장치로 소비해버리는 그런 모습을, 나는 정말이지 보고 싶지 않았다.

여성들은 이렇게 착취당하면서, 착취당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서사화할 기회까지도, 착취당한다.

82년생 김지영 씨가 속된 말로 '돌아버리게' 만든 방아쇠가 된 사건은 '맘충'이라는 혐오 표현이었다. 86년생 엄홍식 씨는 본인에게 동의하지 않는, 비판하는, 혹은 비아냥거리는 수많은 여성들을 향해 '폭도'라는 혐오 표현을 던졌다. 이건 실수라고 볼 수도 없다. 그가 흩뿌린 수많은 트윗들 뿐 아니라, 11월 27일에 올린 게시물에 선명하게 그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SNS를 통한 저의 외침은 세속적 가치를 내려 놓고 진정한 나의 가치와 관계를 찾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저의 노력이 언제나 처럼 폭도들에 의해 ‘인생의 낭비’로 조롱 당하고 매도 당한다 해도 저는 지금의 인생을 온 힘을 다해 성실하게 살아나가고자 합니다. 부끄럽지 않고 진실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폭도들아! 내가 여기에 ‘댓글’의 기능을 기꺼이 남겨둔다. 너희의 존재를 모두가 확인할 수 있도록. 더러워지는 것은 내가 아니라 너희의 손이고 너희의 입이고 너희의 영혼이다. 너희가 감히 선량한 사람들과 내가 나눈 소통을 막아서는 일을 묵시하지 않을 것이다.
https://www.facebook.com/hongsik.uhm.14/posts/1986309071582461

혹시 모를까봐 하는 말인데, 오늘날 한국어의 용례에서 '폭도'가 지칭하는 대상은 명백하다. 5.18 광주민주항쟁 참여자들 및 광주 시민, 더 넓게는 전라도 사람들이다.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배우 김상경이 연기한 강민우는 외친다. "여러분, 우리는 폭도가 아닙니다!"

'폭도'는 바로 그런 어휘다. 약자를 향해 집어던지는 흉기와 같은 단어. 그런 표현을 대체 어디서 배웠을까? 엄홍식은 누이의 비극을 팔아 페미니스트 행세를 하는 한 대구 남자에 대해 분노하는 여성들을 향해 외친다. "폭도들아!"

그의 의도는 명백하다. 상대를 '폭도'로 규정함으로써 '입을 닥치게' 하겠다는 것이다. 86년생 엄홍식이 그러고 있는 사이, 82년생 김지영'들'은 점점 더 할 말을 잃어간다. 대외적으로 온갖 멋진 모습을 다 보여주는 소위 '개념 연예인'이 처음에는 여성들에게 '메갈짓'을 한다고 하더니, 이제는 '폭도'라고까지 하는 모습을 보며. 그리고 그런 대구 출신의 한 남자를 어떻게든 두둔하려 드는 가부장적 체제의 구성원들을 보며.

86년생 엄홍식이 82년생 김지영을 만나면 무슨 대화를 할까. 차별받는 주체로서의 스스로를 자각하고 본인과 다른 여자들이 못 해왔던 말을 쏟아내는 이들을 향해 엄홍식이 선사한 어휘의 목록을 되짚어보자. '메갈짓', '익명의 폭력배', '온라인 테러리스트 집단', '조직폭력배', 그리고 '폭도'. 이미 그는 수많은 김지영'들'을 향해 이런 소리를 해왔다. 어떤 면에서 그는 『82년생 김지영』의 진짜 화자인 정신과 의사보다도 위선적이고 기만적이다. 적어도 그 정신과 의사는 '나야말로 진정한 페미니스트'라는 난감한 태도를 취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82년생 김지영』은 수많은 남자 독자들의 찬사를 받은 책이다. 수많은 남자들이 이 책을, 읽었건 읽지 않았건, 다른 남자들을 향해 권했다. 그리고 또 많은 남자 연예인들은, SNS에 『82년생 김지영』을 비롯한 다양한 페미니즘 서적을 올리고 소위 '인증'을 하면서 자신의 '개념'을 증명하기에 바빴다.

그런데 그들 중 그 누구도, 내가 아는 한, 82년생 김지영'들'을 향한 86년생 엄홍식의 폭력적 언행을 나무라는 사람이 없다. 정작 현실 속에서는 이렇게 82년생 김지영'들'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방언이 그저 '익명의 폭력배'의 행패요 '온라인 테러리스트 집단'의 깡패 놀음 취급당하고 있는데, 이름값 있는 남자들은 현실 속의 김지영'들'을 위해 한 마디 하기보다는 그냥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알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전시함으로써 제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렇게 글은 허공에 흩어진다. 문학은 우리의 삶을 겉돈다. 그리고 수많은 김지영'들'은 다시 할 말을 잃는다. 그 자리를 86년생 엄홍식 같은 남자들의 뻔하디 뻔한 자의식 노출이 채워넣는다. 그들이 스스로를 충분히 '불쌍한' 존재로 전시하기 위해 여성의 비극이 동원된다. 여자들의 언어는 충분히 정련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폭발하고,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 86년생 엄홍식'들'은 82년생 김지영'들'을 향해 손가락질한다. 진정한 페미니스트는 나 같은 사람이라고. 너희들은 '메갈짓'을 하는 '폭도'라고.

이 역겨운 역설 앞에 나는 할 말을 잃었지만, 그래도 길게 쓰고 기록으로 남긴다. 86년생 엄홍식과 같은 남자들의 폭력적 언행을 제지함으로써, 더 많은 82년생 김지영'들'이 자신의 언어를 잃고 방언을 내뱉는 존재가 되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여성혐오가 어떻게 여성들의 언어를 박탈했는지, 그 자리에서 터져나오는 분노의 함성을 어떻게 매도하면서 또 소비해버리는지, 우리는 더 정확히 알고 반성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