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27

[노정태의 우물 밖 개구리] 오바마의 곤경으로부터 배운다 - 중도주의의 덫

오바마 미 대통령이 ‘중도주의의 덫’에 걸렸다. 의료보험 개혁과 관련하여 보수층과 진보층 양쪽으로부터 비판의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전 세계인의 대통령으로 환영받았던 그의 지지율은 현재 50% 선에서 오가고 있다(국내 상황 때문에 이게 ‘높은’ 지지율로 보일 수 있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의 지지율은 임기 초기임을 감안했을 때 유례가 없이 낮은 수준이다). 대선과 총선 모두에서 압승을 거둔 민주당은 상원과 하원 모두에서 공히 다수당의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정작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오바마의 개혁은 시작부터 높은 파도를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놀라울 정도의 카리스마와 연설 능력 및 매력을 지닌 정치인이 혜성처럼 등장하여 드라마틱한 경선을 통해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높은 기대를 받으며 대권을 탈환해낸 모습은 여러 모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케했다. 따지고 보면 그런 측면이 적지 않다. 오바마는 민주당과 공화당으로 나누어진 미국을 ‘하나의 미국’으로 통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드높였다. 노무현은 영남과 호남의 갈등을 극복하는 것이 자신의 정치적 과제임을 천명했다. 양자 모두 기존의 ‘정치권’과는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겠노라고 다짐했고, 기존의 정치인들과는 다른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노무현과 오바마 모두 사회적으로 볼 때 비주류 출신이며 그들의 당선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회적 차별 구조가 어느 정도는 해소되었음을 보여주는 의미를 지닌다.

   
  ▲ 경향신문 8월 18일자 9면.  
 
노무현과 오바마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의료보험 개혁을 둘러싼 난맥상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그들은 장점이나 특징 뿐 아니라 단점도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중도주의’라는 막연한 이상에 대한 집착이 그 단점으로 꼽힐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리 노 정부에 온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국가보안법 폐지를 비롯한 주요 개혁 법안들을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한 여당이 처리하지 못했다는 것을 변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 터이다. 마찬가지 현상이 오바마의 민주당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다. 미국 민주당은 현재 상원과 하원 모두에서 다수당이며,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지만 열성적인 지지자 그룹을 일구어낸 대통령을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의료보험 개혁 법안의 처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일까?

국내 매체에서는 이 사안을 두고 ‘세금 내기를 죽도록 싫어하는 미국인들의 정서’ 등을 이유로 들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오바마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위로가 될 수 있을지언정 사태 자체를 이해하는데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설명이다. 미국인들은 원래부터 세금 내기를 싫어했지만, 강력한 국세청 덕분에 성실한 납세가 몸에 베어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극성적인 공화당 지지자들이 정부에서 추진하는 ‘타운홀 미팅’을 방해하고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지만, 애초에 이런 법안을 처리하고자 했다면 그정도 저항은 예상했어야 하는 것이었지 그것 ‘때문에’ 일을 처리할 수 없다고 말할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 본질적인 원인은 개혁을 추진하고 성사시킬만한 오바마측의 동력이 고갈되고 있다는 데 있다.

오바마가 ‘초당적 협력’, ‘중도주의’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는 비판을 이제는 피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의료보험 개혁안을 ‘공산주의적’이라고 몰아붙이는 보수진영의 공세에 맞서 굳건한 신념을 보여주지 못하고, 공화당과 민주당 내 보수파의 눈치만 살피고 있는 실정이다. 적어도 외부인의 시각에서 보면 그렇게 보인다. 본인이 빌 클린턴처럼 탁월한 사교술을 바탕으로 의원 개개인에게 접근하여 세부적인 주고받기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공화당의 이탈표를 이끌어낼 수 있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고, ‘중도주의’의 이상을 빨리 포기해야 한다. 공화당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자, 공화당 의원과 민주당 의원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중도주의는 없다

여러 진영의 눈치만 살피며 갈팡질팡하는 사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 풀뿌리 자원봉사자들의 조직력과 단결력이 서서히 와해되고 있다. ‘버락’이 단호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운동원들 사이에서는 선명성 싸움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대통령이 된 그에게 실망했다는 사람들이 등장하며, 그런 이들의 목소리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나타남으로써 정책에 대해 토론하고 힘을 모아야 할 시점에 내부의 정치 투쟁이 불거지는 것이다. 이 모든 광경을 우리는 이미 지난 정부 기간 동안 충분히 보아 왔다.

그렇게 해서는 소수파 출신 정치인이 살아날 수가 없다. 자신보다 강한 세력들의 눈치를 보는 것도 하나의 생존술이 될 수 있겠지만, 이미 대통령이라는 자리까지 얻어내었다면 자신의 지지층을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세상이 두 쪽 나도 나는 내 진정성을 지키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야 할 때이다. ‘중도주의’를 외치며 이쪽의 정책과 저쪽의 정책을 절충하겠다는 발상은 양쪽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본거지 역할을 해야 할 기존 지지자들마저 이탈시키는 효과를 불러온다. 이것은 내 생각이 아니라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와 『프레임 전쟁』등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와 그가 만든 로크리지연구소의 정치 전략 제언에서 따온 것이다. ‘중도주의’는 없다.

가령 낙태에 대해 정치적 논쟁이 발생했다고 해보자. 한 아기를 ‘중간 정도’만 낙태할 수는 없다. 결국 모든 해답은 0 아니면 1, 도 아니면 모로 나누어지게 마련이다. 여기서 진보진영에 속한 누군가가 ‘중도주의’를 표방함으로써 어중간한 합의책을 도출하거나 그런 제안을 어물쩍 받아들인다고 해도, 이미 견고한 신념을 지니고 있는 보수층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우리가 이미 노무현 정부의 사례를 통해 잘 알고 있다시피, 기존의 지지층이 대폭 이탈하는 역효과가 발생한다.

중도주의 덫에는 미래가 없다

레이코프 교수와 로크리지연구소는 ‘중도주의’를 추구하지 말고, 대신 지지층과 반대자에게 강력한 ‘진정성’을 보여줄 것을 권한다. 사람들이 정치인에게 진정 원하는 것은 특정 정책에 대한 해답이 아니라, 내가 이 사람을 믿고 내 삶의 중요한 결정을 맡길 수 있는지에 대한 신뢰이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의료개혁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정책적인 차원에서 이것 저것을 뒤섞는 것보다, 현재 추진되는 의료보험 개혁이 어떻게 ‘미국적 가치’와 부합하는 것인지를 진정성 있게 설득하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에게는 탁월한 대중 설득력과 카리스마가 있지만 그것을 얼마나 활용해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생에서도 우리는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통일에 대한 그의 신념은 그를 평생 빨갱이라는 족쇄에 묶어놓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그것을 ‘중도적’으로 뒤섞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 반대로, 국민들이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진정성’을 갖고 때를 기다리며 사람들을 설득하고 자신의 입장을 다져나갔다. 70년대의 김대중과 2000년대의 김대중은 경제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관점을 취할지 모르지만, 통일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초지일관 같은 편에 선다. 그것이 바로 진정성이다.

연이어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영원히 떠나보내며, 그 유산을 어떻게 관리하고 키워나갈 것인지를 놓고 이른바 ‘진보 진영’ 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놀라운 것은 그들 중 누구도 ‘진정성’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어떻게 해서든 자신을 ‘중도주의자’로 포장하려고 하며, 계파 내의 이합집산에만 집중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잡탕밥같은 정책을 내놓는 일에만 골몰하는 형국이다.

하지만 중도주의는 덫이다. 그것은 권력을 이미 어느 정도 가진 사람이 여타의 정치세력을 무마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사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 우리 국민들은 워낙 중간을 좋아한다고?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고 외친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외친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었다. 오바마의 실패에서 배워야 한다. 중도주의의 덫에 빠져 있는 한, 미래는 없다.

2009-08-18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와 안식을 이루게 하소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09-08-12

[노정태의 우물 밖 개구리] 버마에서 벌어지는 법의 횡포와 민주주의 - 아웅산 수치와 쌍용자동차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병세가 악화된 채 오랜 시간이 지속되자, 그의 영원한 라이벌이자 숙적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 또한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 중환자실을 찾았다. “화해한 것으로 봐도 좋다”고 보도된 그의 말은 여러 사람들의 실소를 자아냈다. 하지만 조깅을 열심히 한 덕분에 아직까지 건강한 김 전 대통령의 발언 중 한 문장만큼은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었다. YS는 ‘우리가 함께 잘 싸워서 민주주의를 이뤘다. 아니었다면 버마처럼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역시 사람은 평소에 이미지 관리를 잘 해야 한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 내용을 기사로 읽으면서도 의미 있는 내용으로 인지하지 못했으리라 추정된다. YS가 한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그 말을 DJ가 했다면 큰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실로 버마의 상황은 정말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특히 현지시각으로 8월 11일 버마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존재인 아웅산 수치 여사가 다시 군부에 의해 1년 6개월의 가택연금 처분을 당함으로써 버마의 민주주의는 또 한 번의 기회를 상실하고 말았다. 이것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볼 수야 없겠지만, 버마 국민들이 가지고 있던 미약한 희망이 다시 한 번 짓밟혔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아니면, 버마처럼...지금 버마는?

지난 기사에서도 언급했지만, 아시아의 민주화는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바람을 타고 이루어졌다. 1987년 한국에서 직선제 개헌을 쟁취했고, 필리핀에서는 그 전 해인 1986년 피플 파워 운동이 벌어졌다. 그 영향을 받아 버마에서도 1988년 8월 8일 대대적인 민중봉기가 일어났다. 문제는 최루탄을 쏘다가 탄이 다 떨어지자 항복한 한국 군부와 달리, 버마 군부는 국민들을 향해 실탄을 마구 쏘았고, 시위대가 전부 투쟁 의지를 상실하고 집에 들어박힐 때까지 계속 실탄을 쏘았다는 데 있다.

   
  ▲ 동아일보 8월 12일자 1면.  
 
아웅산 수치는 바로 그 당시 민주항쟁을 이끈 당사자였다. 항쟁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국민들은 군부를 표로 심판했고, 수치 여사가 이끄는 야당은 1990년 총선에서 승리했다. 아웅산 수치 여사는 민주화된 버마의 총리가 되었어야 한다. 비록 1989년부터 가택 연금 상태였긴 하지만, 그가 이끄는 정당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었고, 또 그 정당은 아웅산 수치 여사를 총리로 인정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군부는 선거 결과에 불복했고 대대적인 탄압에 들어갔다. 선거는 무효화되었고 수치 여사는 오래도록 자신의 집에 갇혀있었다.

가택연금 기간이 끝난 후 다시 연금이 시작된 것은 이번에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버마 군부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아웅산 수치를 법원으로 끌고 들어가고, 법원은 그에게 예정된 징역형을 선고한다. 차마 살해할 수는 없으니만큼 늙어 죽을 때까지 가두어두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가장 어이없는 경우는 바로 올해 벌어진 것이었다. 존 윌리엄 예토(John William Yettaw)라는 미국인이 수치 여사가 연금되어 있는 저택의 건너편 호수를 헤엄쳐 건너갔다. 그는 저택에 도착했고 수치 여사는 그를 받아줄 수밖에 없었다. 군부는 바로 그 점을 물고 늘어졌다. 가택연금 규칙상 외부인이 허가 없이 들어와서는 안 되므로 아웅산 수치가 법을 어겼다는 것이다. 형식적인 법 논리만 놓고 보면 맞는 말이지만, 그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버마 군부는 오래도록 재판을 끌었다. 재판의 방청을 요구하는 외국 저널리스트들의 요구에 대해서도, 묵살했다가 허용했다가 다시 묵살하는 식으로 갈팡질팡했다. 아웅산 수치 뿐 아니라 그를 지지하는 숱한 범민주화세력들에 대해서도 일제히 연행 및 수사가 시작되었는데, 그 결과야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인세인 교도소는 새삼스레 밀려닥친 정치범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세계 각국의 인권단체들이 항의를 하고 행동을 취해보았지만 이미 국제적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버마 군부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버마 봉쇄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The Economist>가 도달한 결론도 그런 것이다. 이미 (‘인권’을 존중하는) 서구 세계는 버마에 대해 봉쇄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 결과 괴로워지는 것은 버마의 국민들이지 군부가 아니다. 왜냐하면 군부는 국민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건 전혀 신경쓰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인 대우인터내셔널을 포함하여 여러 아시아 기업들이 버마의 해상 유전 및 가스전 개발에 진출하고 있고, 그 경로를 통해 군부는 엄청난 양의 달러를 직접 챙길 수 있다. 일반적인 봉쇄 조치가 실질적인 의미를 전혀 지니지 못하는 수준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이 서구 언론들의 중평이다.

<The Guardian>그런 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군부의 돈줄이 되는 바로 그 에너지 수출에 대해서도 봉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버마의 주변에 있는 돈 많은 아시아 국가들, 특히 중국과 한국은 버마의 국내 정치에 대해 거의 완전히 무관심한 수준에 이르러 있다. 버마 뿐 아니라 수단과 나이지리아 등에서도 중국은 자원을 챙겨 떠나면 그만이라는 자세로 일관하여 독재 정부의 후견자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에는 시민사회가 국가의 제국주의적 행태를 견제하기는커녕, 잃어버린 고구려의 꿈을 꾸고 앉아있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버마의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는 주범 중 하나로 대한민국을 지목하는 것은 그리 ‘오버’스러운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법 지배는 버마와 얼마나 다른가? 

역설적이게도 국내에서는 한창 ‘민주주의의 후퇴’에 대한 논의가 오가고 있다. 고작 싸이월드에 ‘쇠고기를 먹느니 청산가리를 먹겠다’고 써놓은 것만으로도 수억원 어치의 손해배상 청구의 대상이 되고, 다음 아고라에 글 좀 썼다고 구치소에 잡아넣고, 시위중인 노동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찾아온 시민들이 엄연히 보도 위에 올라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세 번의 경고방송을 형식적으로 마무리지은 후 방패와 몽둥이를 들고 진압작전에 돌입한다. 대한민국의 법과 질서는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가, 그리고 법원의 사법 절차가 군사독재 종결 이후 이토록 문란해지리라고 누가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문제는 바로 우리가 느끼는 이러한 법 질서의 혼돈이, 버마의 군부 독재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는 데 있다. 군부의 개가 되어 있는 사법부는 이미 아웅산 수치에게 가택 연금을 내리겠다는 결정을 해놓고 수사 및 재판을 시작한다. 그나마 국제적으로 명성이 있는 수치가 아닌 다음에야,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거나 ‘수사 기법’의 일환으로 폭행을 당해 사망하거나 하는 일이 벌이진다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왜냐? 지금까지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나아질 리 없는 ‘현실’이니까.

버마 군부는 아웅산 수치가 총선에 출마하는 것을 막기 위해 18개월, 즉 1년 반 동안의 가택 연금을 추가로 명령했다. 사법 절차의 몽둥이를 휘둘러 정치적 반대자의 입을 틀어막는 행태는, 그러나 남의 일이 아니다. 삼성 X파일 사건 관련 폭로로 인해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현재 재판중이다. 법원은 노회찬에게 아마도 실형을 선고할 것인데,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삼성의 비위를 거슬린 누군가가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되는지 본보기를 보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노회찬이 서울시장에 출마하는 것을 막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간난신고끝에 다시 국회의원 뱃지를 얻어낸 조승수의 경우도 억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선거 전 날 밤 주민들에게 ‘친환경 농법을 도와주는 지렁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사전선거운동을 한 후보자가 되었고, 의원 자격을 박탈당했다. 일명 ‘젖사마’로 불리는 최연희 의원이 벌금 500만원에 선고유예 판결을 받음으로써 의원직을 유지하는 것과 비교해보자. 대한민국에 공정한 법의 지배가 과연 이루어지고 있는가?

지금 우리는 두 가지 차원 모두를 함께 걱정해야 한다. 대한민국이라는 미성숙한 부국(富國)이 국경 밖에서 어떤 해악을 끼치고 다니는지, 민주화를 염원하는 버마 국민들에게 얼마나 미운 나라일 수밖에 없는지를 우선 똑똑히 알아야 한다. 동시에 버마에서 벌어지는 것과 같은 법의 횡포가 지금 우리에게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쌍용자동차 파업 노동자 60여명을 대상으로 검찰은 무더기 기소를 하고 나섰다. 심지어 예전에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어떤 사회주의 조직과의 연관이 있다는 식으로 분위기를 잡고 이 노동쟁의를 일종의 공안사건으로 몰아가고자 하는 분위기까지 감지된다.

외국인도 사람이고 노동자도 국민이다. 외국인의 인권을 깔아뭉개는 대한민국을 바로잡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을 무턱대고 두들겨 패고 잡아 넣는 현행 법 집행에 대해서도 시민사회의 단호한 문제 제기가 있어야 한다. ‘아직은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며 어물거리다가는 곧 ‘내 차례’가 온다. 20년이 넘도록 암흑 속에 갇혀 있는 버마 국민들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2009-08-03

바더 마인호프 컴플렉스

2008년 6월 10일. 100만이 넘는 인파가 서울 시내 중심가에 모였다. 그들의 요구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현직 대통령에 대한 강렬한 반감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결같았다. 정부는 컨테이너 박스를 이용하여 세종로 사거리의 북쪽을 틀어막는 초강수를 두었다. 그것은 이른바 '명박산성'이라고 불리웠고, 집회 현장에 나온 사람들은 분노와 허탈함을 동시에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명박산성을 어찌해야 하는가를 놓고 사람들 사이에서 이견이 갈렸다. 당시에는 자신들이 그 스티로폼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극구 부인했지만, 사실 그때 명박산성 앞에 쌓였던 스티로폼은 이른바 '연석회의'에서 마련한 것이었다(고 나는 알고 있는데, 확인된 정보는 절대 아니다). 문제는 컨테이너 박스 앞에 스티로폼을 쌓아놓고 올라가자는 그 단순한 발상에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 등을 이유로 '비폭력'을 외치며 오래도록 시간을 끌었다. 그렇게 6월 10일은 지나갔고, 우리는 지금까지 왔다.

당시 나는 무엇엔가 홀린 것처럼 거의 매일 촛불시위 현장에 나갔다. 촛불시위에 대한 그 모든 비판은 대체로 타당하다.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비전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민주주의와 비폭력 같은 선한 가치들이 고삐 풀린 채 돌아다니며 독재와 폭력보다 더 큰 해악을 끼치고 있었다. 당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놈의 '비폭력'에 대한 억압을 떨쳐버리고 진작에 명박산성 위를 점거했더라면, 어찌어찌 방법을 찾아 광화문 사거리 너머까지 진출할 수 있었더라면, 그랬더라면, 그랬더라면...

<바더 마인호프>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각별한 영화일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아무런 해답을 주지 않는다. 1968년 부활절 휴가 무렵, 독일 학생운동의 리더였던 두치케는 극우 청년단체 회원의 총에 맞아 의식을 잃는다. 그에 항의하기 위해 학생들은 <빌트>를 찍어내는 독일의 미디어 재벌 슈프링어 그룹의 사옥으로 쳐들어간다. 신문 수송 차량을 습격해서 갓 나온 신문을 불태우고, 자동차를 때려 부수고 불을 지른다.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 마인호프는 체포될 뻔하지만 그의 얼굴을 알아본 경찰 덕분에 유치장 신세를 면하고 더욱 급진적인 기사를 쓰기 시작한다.

조선일보 사옥 근처에 앉아서 신문 수송 차량의 진행을 방해하던 수십 명의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토론을 하다가 결국 그 차를 보내줬다. 우리도 독일처럼 그렇게 '선진국형 시위'를 했어야 했던 것일까? 그런다고 해서 세상이 바뀔 수 있을까? <바더 마인호프>는 이란의 팔레비 국왕이 독일을 방문하던 당시의 풍경에서 출발한다. 경찰은 이란 청년들이 피켓을 뜯어 만든 각목으로 학생 시위대를 구타하는 모습을 뒷짐 지고 바라보고만 있다. 기마경찰과 전투경찰이 투입되어 오직 학생 시위대만을 두들겨 패고 진압한다. 이 오프닝을 통해 '지금 여기'는 곧장 '그때 그곳'이 되어버리고 만다. 조선일보 신문 운송 트럭에 불을 질러야 했을까? 더욱 과격한 행동만이 새로운 정국을 이끌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었을까? 문제는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질문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게 된다는 데 있다.

나는 철이 들기 전부터 나 자신의 성격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나는 내키는대로 행동하는 유형의 인간이 아니고, 한 가지를 저지르기 전에 열 가지를 고민한다. 스스로의 행동성에 일관성이 있는지 없는지 돌이켜보지 않으면 바늘방석에 앉은 것만 같고, 그로 인해 더 큰 잘못을 저지르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 산다.

적군파 1세대를 도와준 변호사에게 리더인 바더는 '저 할머니의 지갑을 훔쳐오라'고 지시한다. '순전히 말 뿐이군'이라는 비아냥을 덧붙이면서.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변호사는 미국인 관광객인 척하면서 슬쩍 지갑을 훔친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킬킬거리는 '급진주의자'들은 그러나, 자본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소유권에 대해 급진적으로 저항하는 아나키스트가 결코 아니다. 비록 변호사 자신은 바로 그런 '원칙'을 떠올리며 할머니의 지갑을 훔쳤겠지만, 그 도둑질을 지시한 바더는 누군가 자신의 차를 훔쳐가자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고 저주를 하며 욕을 퍼붓는다. 어쩌면 그들은 진정한 혁명가였고, 단지 잘못된 시대에 잘못된 공간에 살았을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기본적으로 철부지였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그 철부지들의 우발적 폭력에 이른바 '인텔리'들이 끼어들면서 적군파 운동은 지능화되고 또 심화된다. 마인호프가 가담하기 전까지 바더와 그 일당들은 조잡한 시한폭탄으로 텅 빈 백화점에 불이나 지르는 잡범들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 경험이 많고 선동적인 글을 쓰는 재주를 지녔던 마인호프가 가담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테러 행위를 적극적으로 변호하게 되고, 그에 걸맞는 사회적 반향을 불러온다. 재판을 기다리며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적군파 1세대들은 부당한 처우에 저항하기 위해 단식투쟁을 벌이는데, 그 과정에서 한 명이 목숨을 잃는다. 그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쏟던 변호사는 바로 다음 장면에서 적군파 2세대에게 기관단총으로 가득 찬 가방을 건넨다.

이 영화는 그 누구의 입장도 대변하지 않고, 동시에 그 누구의 행동도 미화하지 않는다. '일관성'을 지키고자 마인호프는 자신의 두 딸을 팔레스타인의 고아원으로 보내버리려고 하고, 바더와 그의 여자친구는 그러한 비인간적인 선택을 부추기면서 즐거워한다. 독일의 조선일보사라 할 수 있는 슈프링어 그룹에 폭탄을 설치한 바더 마인호프 일당은 민간인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직장에서 직원들을 대피시키라고 경고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전혀 설득력 있는 화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하지만 그 작전의 책임은 내부 정치 투쟁 끝에 결국 마인호프가 전부 걸머지게 되며,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는 서서히 미쳐가다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

나는 마인호프에게 더 감정이입을 한 채로 이 영화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적군파에 가담하게 된 것은 결국 '무언가 해야 하는데...'라는 불안과 초조였기 때문이다. 베트남에서 어린이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그 잘난 칼럼을 쓰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쌍용자동차 현장에서 고립된 노동자들이 생명의 위협을 당하고 있고, 정부와 사측은 여론몰이를 통해 그들을 해고하거나 진압할 궁리에 골몰하고 있다. 철학과 대학원생 연구실에 앉아 『순수이성비판』을 읽는 것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무언가 해야 한다는 죄책감이 나를 조여오지만, <바더 마인호프>는 바로 그런 죄책감에서 비롯한 '참여'가 낳는 비극적 파국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참여와 실천과 투쟁을 권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다. 다만 그들이 처해야 했던 상황 속으로 우리를 끌고 들어갈 따름이다.

이 영화의 원제가 '바더 마인호프 컴플렉스'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나는 바더와 같은 유형의 사람들, 즉 되는대로 저지르고 자신이 낳은 결과에 대해 그리 큰 죄책감을 느끼거나 하지 않으며, 다만 느끼는대로 저항할 뿐인 그런 사람들의 내면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도 그들을 저항의 길로 이끄는 무언가가 분명 있을 것이고, 그것은 결코 단순하지 않을 터이다. 그 모든 동기와 불만과 폭발을 수렴할 수 있는 어휘는 오직 '컴플렉스' 뿐이다. 우리는 그 컴플렉스에 대해 지금으로서는 그 어떤 유효한 말도 할 수 없다.

오늘 밤까지 재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경찰은 평택 공장에 대한 진압작전에 돌입할 가능성이 크다.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들을 위해 조선일보에 처들어가는 일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지금의 '컴플렉스'가 그때의 '컴플렉스'보다 더욱 거대하고 끔찍해진 것은 바로 이렇게 확인된다. 이제 우리는 '연대를 위한 폭력'이라는 개념을 상상하지도 않고, 상상할 수도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적군파는 제3세계를 위해 테러를 벌였다. 용산에서 경찰은 그저 자신들의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시민들을 향해 대테러부대를 투입하였다. 이 사실을 돌이키는 것만으로도 참을 수 없는 치욕과 분노와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 용솟음치지만, 그것은 어떤 유의미한 지점으로 향하지 못한 채 스러지고 만다. 컴플렉스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독일어 단어 komplex는 '단체'라는 의미를 지닌다. 즉 'Baader-Meinhof Komplex'는 '바더 마인호프 조직'이라는 뜻에 더욱 가깝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그 단어가 갖는 다른 의미에 주목하였음을 밝힌다.

Standing on the shoulders of giants

'철학'이라는 단어는 크게 세 가지 층위에서 사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아무나 내키는대로 만들어서 인생사의 이런 저런 문제에 대입하는 세계관 철학. 말하자면 개똥철학. 둘째, 이미 철학사적으로 유의미하다고 인정받고 있는 텍스트와 그에 대한 연구. 이럴 경우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어떤 주제를 연구하거나 특정 철학자의 텍스트에 몰입하는 것을 뜻하게 된다. 셋째, 그 누구도 다다른 적 없는 진정한 '철학'.

유독 철학에 대해서만큼은 두 번째 층위, 즉 전문적인 연구의 성과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은 이유는, 첫 번째와 세 번째 층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과학에도 엉터리 과학이 있으며 과학적 연구를 통해 나아가야 할 진정한 지식이 궁극적 목표로 존재하지만, 그러한 엉터리 과학 그 자체를 자신의 신조나 인생관으로 삼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말하자면 '개똥과학'의 문제는 비교적 손쉽게 반박될 수 있는 편이다.

철학의 경우에는 문제가 훨씬 복잡해진다. 가령 누군가가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라는 말을 하고 있다고 해보자. 그것은 기원전 300년부터 제기되었고 반박되고 있는 회의주의일 뿐이다. 하지만 '플라톤에 따르면...' 이라고 반박하기 시작하면 '너는 훈고학, 나는 진정한 철학, 너는 상아탑의 노예, 나는 거리의 철학자~ I say 철, you say 학~'같은 병맛나는 대응의 퍼포먼스가 즉각적으로 펼쳐지게 된다.

이런 반응이 돌아오는 이유는 그가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같은 원시적인 명제를 들먹거리며 자신이 적당히 대충 쓰는 블로그 게시물 따위를 옹호하려 하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지적'으로 다져진 철학적 명제가 아니라, 일종의 인생관의 선언에 가깝다.

문제는 그러한 개똥철학이 가지는 이중적인 태도에 있다. 그들은 강단철학의 성과와 가치를 무시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그 권위에 기대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몇 권의 책을 체계 없이 읽고 대강 두들겨 만든 엉성한 사고의 구조물이 인류적 가치를 지니는 텍스트의 그것과 일치하거나 유사하다는 것을 자기 주변의 전공자들로부터 확인받고 싶어하는 심리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어떤 철학자, 가령 칸트의 이름을 들먹거리면서도 정작 그 칸트의 텍스트를 다른 사람보다 많이 본 누군가가 해석상 도출될 수밖에 없는 결론을 제시하면 '철학이라는 것에 정답이 있는 걸까' 같은 싸구려 회의주의로 도피하는 모습을 나는 최근에 모처에서 보았다. 그런데 만약 철학적 텍스트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존재할 수 없다면, '칸트는 ...하게 생각했다'는 식의 서술 자체가 성립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세계관 철학자들은 그런 초보적인 내적 모순 따위에 결코 아랑곳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들은 'crank'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철학에 대한 국내 학계의 연구 수준은 대단히 미비하다. 그러나 그 사실로부터 우리가 개똥철학에서 곧장 '철학'으로 나아갈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주장을 이끌어내는 것은 결코 타당하지 않다. 철학적 사유의 역사 또한, 과학처럼 엄격한 수준은 아니어도, 역사상 앞서 나간 누군가에 대한 연구와 반박을 통해 형성되어왔다. 'Standing on the shoulders of giants'라는 어구는 철학에도 마찬가지로 통용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직 국내의 연구 수준은 개별적인 학자의 종아리나 허벅지까지 기어오르는 정도에 머물러 있지만, 언젠가 우리도 거인의 어깨 위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칸트의 등장은 독일 강단철학의 유산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비트겐슈타인을 예로 들어 고전적인 철학 텍스트에 대한 독해가 필요 없다고 말하는 자들이 없지 않지만, 비트겐슈타인은 매일 아우구스티누스를 읽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대철학과 중세철학의 접점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아직 온전히 평가받지 못한 철학의 거장이다. 하이데거의 현란한 그리스어 분석과 해석은 독일어권에서 행해진 그리스 로마 고전 연구의 성과가 없다면 성립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철학'은 바로 그렇게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