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26

[2030콘서트] 군대 이야기

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나는 군복을 입은 채 전해들었다. 입대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던, 논산훈련소를 거쳐 의정부에 있는 KTA(Katusa Training Academy)에서 훈련받고 있던 때의 일이었다. 몇십 미터 앞에 축소 표적지를 깔아두고 M16A를 쏘아대고 있을 무렵, 훈련소의 교관이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DMB가 장착된 스마트폰을 꺼냈고, TV를 틀었으며, 그 속에 등장하는 속보를 나와 다른 훈련병들에게 전달해주었다. 북한이 연평도에 포격을 했다고. 우리도 당장 역습을 해야지, ‘의도 파악’은 대체 왜 하고 있느냐고. 그는 중사 계급의 직업 군인이었다.

당시 교육받은 바에 따르면, 만약 그대로 전면전이 발발할 경우, 훈련소의 병력은 일단 전부 어딘가로 옮기고,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는 긴긴 기간을 무조건 현역병으로 군에 복무를 하게 되어 있었다.

우리 모두는 그런 끔찍한 결과를 바라지 않았기에, 하염없이 북한의 ‘의도 파악’을 하며 즉각 보복성 공격을 가하지 않은 정부의 안일한 태도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아무튼 그런 일이 있었다.

한·미동맹의 규약에 따라 미군들의 군복을 입고 있던 나는, 전쟁이 나면 이것보다 안전한 옷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편하게 군생활 하러 들어와서, 남들이 전방에서 포탄 맞고 죽고 다치는 모습을 보며, 기껏 한다는 게 나의 보직 걱정이었다는 부끄러움이 찾아온 것은 그보다 한참 후의 일이었다.

신문 칼럼에 대고 무슨 개인적인 군대 추억을 늘어놓느냐는 불만이 서서히 독자 여러분으로부터 들려오는 듯하다. 그렇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군대 추억담이다.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대한민국 남성 대부분이 공유하는, 말하자면 ‘기억의 경로’를 따라가는 것이기도 하다. 설령 북한의 김정은 체제가 무너지고 통일이 된다 하더라도 당분간 대한민국의 군대는 징병제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휴전선 이북 지역의 치안을 유지하고, 중국과의 국경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지금보다 더 많은 병력이 필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군대’는 여전히 존속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조금만 더 추억의 페이지를 넘겨보자. 전방에 위치한 미군 2사단에서 통신병으로 근무했다. 다른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고 늘 서먹서먹한 나와 달리 내 후임으로 들어온 어린 친구들은 미군들과 금세 잘 지냈고, 심지어 동두천 시내에 있는 목욕탕에도 같이 다녀왔다고 했다.

그 미군 중 하나가 내게 물었다. 왜 한국인들은 군복을 입은 사람을 보면 손가락질하고 놀리는 거지? 미국에서는 군인을 보면 모두 고맙다고 하고, 도넛과 커피 등을 공짜로 주기도 하고 그러는데. 나는 대답했다. 한국은 1987년 이전까지 군인들이 통치하던 나라였거든. 그리고 모든 한국 남자들은 군대에 가. 그래서 한국인들은 일단 군인들을 조롱하고 낮춰보지. 하지만 실은 군인들을 두려워하는 거야.

그는 내가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나 또한, 그냥 떠오르는 대로 최대한 쉽게 설명했을 뿐이기에, 대충 그 정도 대화를 마친 후 툭툭 털고 일어나 잔업을 하러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다. 군사독재를 이겨내고 민주화를 이루어냈다는 자신감, 모든 남자들이 다 각자의 군대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그 일상성과 하찮음 뒤에는, 아직도 극복되지 않은 군대에 대한 공포심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군인들을 믿지 않는다. 시민사회는 적극적으로 군대를 통제하고 끌어안으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내 눈에 안 띄는 곳에서 사고치지 않고 북한의 ‘거지떼’가 넘어오는 것을 막아주기만을 바라고 있을 뿐이다.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은 땅에 떨어진 지 오래고, 대선개입 의혹은 국정원을 넘어 군 전체로 번져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어딘가에서 추위에 떨며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고, 군 수뇌부 중 일부는 대선개입 의혹을 덮기 위해 골머리를 썩이고 있을 것이다.

1987년 이후 25년이 흘렀다. 이제는 더 이상 눈 돌리지 말고, 우리 모두가 민주주의와, 군대와, 올바름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야 한다. 군대를 통제하는 것을 넘어, 군을 사회의 일부로 기꺼이 받아들이고 소화해낼 수 있을 때, 한국의 민주주의는 오늘의 위기를 넘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입력 : 2013.11.26 20: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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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5

[2030콘서트] ‘박근혜 탄핵’은 없지만

문재인의 대선 패배는 선거 부정 때문이 아니다. 그의 열렬한 지지자라 할지라도, 국정원과 기타 조직의 선거 개입이 없었다면 문재인이 이겼을 것이라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17대 대선에 비해 무려 12%나 솟구친 75%의 투표율을 보며 야권 지지자들은 환호성을 내질렀지만, 그들 중 거의 대부분은 개표방송이 시작되기 전까지, 그것이 ‘잠자던 대학생들의 야권 표’가 아닌 ‘정치에 소외되어 있던 50대 이상의 여당 표’임을 눈치채지도 못하고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는 기업이라는 단 하나의 조직만을 남겨둔 채 그 나머지를 급속히 파괴했다. 우리는 기업 속에서 사장님과 직원이 되고, 기업 밖에서 소비자와 유권자가 될 뿐이다. 이렇게 불안에 빠진 파편화된 개인이 늘어난다는 것은 곧 사회가 우경화된다는 말과 같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그리고 실용정부까지 한국의 집권 세력은 새로운 경제적 질서에 부합할 만한 새로운 사회적 구성 원리를 제시하지 않은 채, 그저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유지하는 일에만 골몰해왔던 것이다. 18대 대선의 결과는 바로 그 일관된 정책 방향이 낳은 당연한 업보에 가깝다.

그럼에도 날이 갈수록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는 권력기관들의 선거개입은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을 심각하게 망가뜨리고 있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자 국정원 직원들은 수백여개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아이디와 게시물을 삭제하는 식으로 증거를 은폐했다. 그들이 조직적으로 온라인상에서 여론을 ‘형성’하려 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지만, 당사자들은 최대한 꼬리를 자르고 말을 바꾸고 증거를 없애가며, 국민들의 관심이 멀어지기만을 기다리는 듯하다. 게다가 이 모든 난국이 진행되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은 끝없는 해외 순방길에서 돌아올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현재 야권은, 2004년의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그랬듯이, 현직 대통령인 박근혜를 탄핵소추할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대답은 부정적이다. 민주당은 박근혜를 탄핵해 그 권한을 정지시키고, 현재의 대선개입 문제를 검찰과 법원이 아니라 헌법재판소가 판단하도록 사태를 이끌어갈 수 없다. 이것은 비단 그들이 무능해서뿐만이 아니라, 대통령을 탄핵소추할 수 있는 요건이 충족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2004년의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당시 대통령 노무현은 그해 있을 총선을 앞두고 “개헌저지선까지 무너지면 그 뒤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나도 정말 말씀드릴 수가 없다”거나,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는 등, 선거법 위반의 혐의가 있는 발언들을 본인의 입으로 직접 내놓았다. 바로 그 발언들을 두고 선거관리위원회는 노무현이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판정을 내놓았고, 그로 인해 대통령 탄핵소추가 가능해졌다.

반면 지금은 그와 많이 다르다. 마치 전두환이 광주 시민들을 향한 발포 명령을 직접 내렸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박근혜가 국정원 및 기타 조직을 이용해 선거에 개입하라는 명령을 직접 내렸는지 여부를 알 수는 없다. 국가기관의 조직적 개입이 있었기 때문에, 가장 높은 자리에서 혜택을 받을 사람이 직접 그 과정에 참여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일은 묘연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누군가 박근혜 캠프를 불법적으로 도청하고 있었다면 모를까, 박근혜 본인이 그런 식으로 선거법을 어겼다고 증명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박근혜를 탄핵할 수 없다. 그가 직접적으로 선거에 불법 개입했음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사회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아직도 진행 중인 국정원 여론 개입 사건에 대한 확실한 입장 표명을 요구하고, 또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 문제는 앞서 말했듯이 바로 그 ‘시민사회’ 자체가 거의 형해화되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마땅한 정치적 책임을 묻고자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공권력을 행사하는 조직과 ‘실세’들이 알아서 충성하고 있는 가운데, 해외 순방이나 다니는 대통령을 어떻게 다시 정치의 현장으로 불러낼 것인가. 당장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형해화되어 가는 ‘시민사회’를 재구성해, 정치가 단지 이권 다툼이 아닌 민주적 절차와 사회적 당위의 문제로 돌아오게 하지 못한다면, 장기적으로도 그 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입력 : 2013.11.05 22:2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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