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06

[북리뷰]우리는 인권을 왜 지켜야 하는가

인권을 찾아서
조효제 지음·한울아카데미·1만8500원

인권 변호사 출신 박원순 시장이 이럴 줄은 몰랐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지난 12월 3일에 벌어진 일이다. 서울 시민들로 구성된 시민위원들이 6개월에 걸쳐 토론하여 만들어낸 서울시민인권헌장 초안 중 다섯 개 조항에 대해 표결에 들어갔다. 처음부터 동성애자들의 인권 보호에 반대하기 위해 작정하고 있었던 10여명의 시민위원들이 원만한 합의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60대 17. 단순히 계산해봐도 찬성이 반대의 세 배가 넘는다. 하지만 서울시는 시민위원회가 의결한 인권헌장을 선포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모든 시민위원들이 ‘합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시민위원회는 서울시의 돌변한 입장에 당혹감을 표했고, 논란이 커지자 박원순은 엉뚱하게도 한국기독교총연합을 방문해 “나는 서울시장으로서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상식 이하의 발언을 했다.

동성애는 이성애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성적 정체성 중 하나다. 지지하거나 반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더욱 중요한 것은, 박 시장이 인권헌장에 대해 ‘만장일치’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세상에 그 어떤 인권 선언도 만장일치로 이루어진 적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소외당하는 자들의 인권을 보호하면서, 필연적으로 더 가진 자들의 몫을 빼앗아오기 때문이다.

인권 연구자 조효제 교수의 역작 <인권을 찾아서>를 펼쳐 보자. 세계인권선언의 내용을 토대로, ‘인권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그것을 왜 지켜야 하는가’라는 중요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조심스레 제시하는 책이다.

세계인권선언은 1948년 제3차 유엔 총회에서 선포되었다. 저자는 그것을 “세계인의 이상주의적 열망에다 종전 직후부터 냉전 개시 직전까지 잠시 열렸던 정치적 기회의 창이 합쳐져 1948년에 채택된 역사적 합의”(20쪽)로 본다. 하지만 이 지당한 원칙들의 선언조차 ‘만장일치’는 아니었다. 당시 유엔에 속해 있던 58개국 가운데 48개국이 찬성하고 8개국은 기권하였으며 두 나라는 회의장에도 오지 않았다. 소련권의 소련, 벨라루스, 체코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폴란드, 유고슬라비아는 세계인권선언이 ‘자유주의적’이라는 이유로 불만을 표했다. 나머지 두 나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사우디아라비아다. 남아공은 공공연히 인종차별정책을 펴던 나라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인권선언이 여성의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너무도 ‘서구적’이라며 인정할 수 없다는 식이었다. 이 두 나라의 기권표는 오늘날 역사적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인간을 인간 취급하지 않겠다는 공공연한 선언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벌어진 일도 결국 그런 것이다. 한때의 인권 변호사 박원순은 서울시민인권헌장에 만장일치를 요구함으로써, 너무도 많은 것을 내팽개쳤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서울시장의 ‘역주행’을 시민들이 수수방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성애자들 및 그들과 연대한 단체들로 이루어진 ‘무지개 행동’이 서울시청 로비를 점거했고, 시민위원회는 12월 10일 인권의 날을 맞이하여 서울시민인권헌장을 선포했다. 같은 날, 박원순 시장도 무지개 행동과의 면담을 통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인권은 보편적이지만 합의의 대상은 아니라는 당연한 진리를 우리는 이렇게 다시 배운다. 세계인권선언, 그 정신으로 돌아가자.

<노정태 ‘논객시대’ 저자/번역가>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412161049341&code=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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