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15

[별별시선] 출산율 대책, 여성이 먼저다

아닐 미(未), 죽을 사(死). 아직 죽지 않았다는 뜻을 담아 은퇴 후 고령층을 국가에서 '미사자(未死者)'라고 지칭하기 시작했다. 대중매체는 '미사자 과잉 사회, 잉여 인구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식의 여론몰이를 일삼고 있다. 그런 분위기를 부추기기라도 하는 듯 행정자치부에서는 '대한민국 미사자 지도'를 만들더니 지자체별로 순위를 붙여서 공개한다. 인터넷에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늙은이들 잡으러 가자', '우리 도시를 고려장 특화 도시로' 같은 '농담'이 횡횡한다.

물론 이 모든 상황은 가정법이다. 하지만 위 문단을 읽는 내내 아마도 독자인 당신에게는 강한 불쾌함과 거부감이 느껴졌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국가 경제'를 앞세워 멀쩡히 살아있고 앞으로도 쾌적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는 고령의 시민들을 '아직 안 죽은 짐짝' 취급하는 내용이 한가득 담겨있었으니 말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나는 지금 '대한민국 출산지도'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대한민국의 공론장에서 발언하는 그 누구도 '고령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고려장을 부활시키자' 따위의 발언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절대 선택 가능한 대안으로 취급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대신 은퇴 연령 조정이라던가, 연금 정책, 그 외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고령층을 보호하고 그들이 주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고령층은 '인구(人口)이기에 앞서서 '인간(人間)'이다. 인간의 주체성을 박탈하는 사회 정책은 용납될 수 없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 당연한 상식이 왜 출산율 문제 앞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것일까? '대한민국 출산지도'가 공개된 후 얼마 되지 않아 한 인터넷 매체에서는 '남자들이 국방의 의무를 지듯이 여성들도 출산의 의무를 지고 애를 낳도록 해야 한다'는 칼럼이 버젓이 개제되었다. 인간을 강제로 죽이는 사회 정책이 용납될 수 없듯, 인간을 강제로 낳게 하는 사회 정책 역시 용납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발언이나 정책에서 인권의 기준치가 확 낮아진다. 나치 독일에서나 시행했었던 '의무 출산' 정책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거론되는 그런 나라가 되어 있다는 말이다.

2017년 현재까지도 대한민국은 여자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인간이 아니라 인구로, 인구를 재생산하는 도구로만 바라보고 있다. '가임기 여성'들은 단지 자신들의 숫자를 세어서 공개했다는 사실 때문에 분노한 게 아니다. 그 숫자, '빅데이터'를 취급하는 방식부터가 모욕적이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다.

여성을 '주체'로, '주어'로 존중한다면, 대한민국은 여성들이 아이를 낳기 위해 '도와주는' 방향을 모색할 것이다. 가임기 여성들의 숫자를 지자체별로 공개한다면 동시에 육아 시설이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 성별 임금 격차가 어떠한지 등을 함께 제시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가임기 여성들이 어느 곳에서 아이를 낳고 기를지 결정할 때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그러나 정부에서 자료를 공개한 방식은 그와 정 반대였다. 지자체별로 '순위'를 매겼다. 여성을 '목적어'로만 취급하는 것이다.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여성들을 보조하는 게 아니라, 지자체를 향해 '출산율을 높이라'는 지시를 내리고, 그 순위 경쟁을 위해 여자들이 아기를 '낳게 만들라'는 압력을 넣고 있다. 단순히 통계를 제시했을 뿐이지만 그 숫자가 제시되는 맥락과 방향 속에 너무도 많은 여성혐오와 멸시가 드러나 있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에 절실한 것은 '출산율 대책'이 아니다. 여성을 온전히 주어의 자리에 놓는, 한낱 목적어의 대상으로 전락시키지 않는 여성 정책이 먼저다. 여자들이 볼 때 이 나라가 아이를 낳아도 되는 나라라면, 아이를 낳을 것이다.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는 대의명분을 내걸고 온갖 여성혐오적 발언을 내뱉는 것이 별 문제 아니라는 듯 받아들여지고 있는 한, 이 나라는 망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출산율이 아니라 여성 인권이 문제의 본질이다.

입력 : 2017.01.15 20:54:01 수정 : 2017.01.15 20:55:47

2017-01-10

[북리뷰] 마늘을 먹지 못하는 호랑이의 방랑

비수기의 전문가들
김한민·워크룸 프레스·1만5000원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터 잡으신 후, 단군 할아버지가 가장 먼저 하신 일은 부적격자를 솎아내는 것이었다. 『비수기의 전문가들』에서 관찰자적 역할을 맡은 화자인 "문학을 연구하는 김 아무개"(6쪽)에 따르면 그렇다. 그는 "신화가 가치관을 반영한다고 전제하면, 우리 민족은 대대로 곰이 대변하는 인간형을 추구해온 셈"(6쪽)이라며, 우리 민족이 지금까지 딱히 고려해본 적 없는 질문을 던진다. "못 참고 뛰쳐나간 '호랑이 유형'은 어떻게 됐을까요?"(6쪽)

그렇다. 호랑이는 인내심이 부족했고, 자신보다 우월한 존재인 단군이 제시한 시험을 끝까지 참아내지 못했으며, 결국 성급하고 무책임하게 뛰쳐나가버렸다. 단군은 그러므로 웅녀와 결혼하기 전에 일단 부적격자를 솎아낸 셈이다. 이런 유형의 인간, 우리 민족이 대대로 추구해온 곰의 인간형과 반대편에 서 있는 호랑이형의 인간을, 김 아무개는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에 빗대어) '호모 티게르'라고 농담삼아 부르기로 한다.

그렇게 김 아무개가 발굴하여 발표하는 '호모 티게르', 혹은 '퀭'은 "길에서 가래침 뱉는 소리 때문"(39쪽)에, "그 물질이 아니라 뱉는 행동에 스민 확신"(39쪽) 때문에 한국을 떠나, 마흔 두 개나 되는 조건을 충족시키는 유일한 나라인 포르투갈에 도착해, 리스본에서 짐을 푼다. 하지만 그는 그 어디에서도 편안히 머물 수 없다. 자발적으로 택한 가난 속에는 중산층의 삶과 같은 고요와 안락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공공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잘못된 바닥에 떨어져 / 썩지도 못하는 것들"(56쪽), 아스팔트 위에서 죽은 동물들을 동정하고 공감하며 그 시신을 풀밭으로 옮겨주는 등, 부적응을 계속해 나간다.

그 부적응의 과정 속에서 '퀭'이 남긴 시의 일부를 읽어보자. "이곳은 비수기 / 기회만 주어지면 누구나 떠나버릴 시공간 / 실은 무언가 잘 안 풀려서 온 곳 / 아니었다면 올 일 없는 곳"(93쪽) 즉 『비수기의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로 인한 특정 분야 종사자의 고통을 다룬 책이 아니다. 제목에서 말하는 '전문가'는 '비수기' 그 자체의 전문가이다. 인생이 안 풀리는 것, 겉도는 삶을 사는 것, 누구를 만나도 낯설기 때문에 홀로 있는 것 등의 전문가 말이다.

그런 존재에 대한 발표를 하던 김 아무개는 유일한 청중이 강연장을 나가버리자 발표물을 컴퓨터에 남겨둔 채 본인도 자리를 뜬다. 지워지지 않은 파일 속의 '퀭', 혹은 '호모 티게르'는 아무도 듣지도 읽지도 않는 자료 속에서 "나는 비공감주의의 창시자"(94쪽)라고 선언한다. "내게 있어서 비공감주의란 / 모두가 공감해야 할 만한 건 없다는 주의다."(95쪽)

요컨대 '퀭'은, 작년 발표된 어떤 소설의 제목처럼, '한국이 싫어서' 떠나고 방랑하는 존재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탈과 방랑에 그 어떤 낭만성도 부여하지 않으려 든다. 작가 김한민은 그 낭만성의 거부에도 낭만적 시선이 스며들어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마저도 거부하고자 '퀭'을 김 아무개의 눈을 통해 타자화한다. 모든 책은 독자의 공감을 원하므로, 결국 이 책은 '나는 당신의 공감을 원하지 않는다'는 공감만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비수기의 전문가들』은 그러므로 이국에의 동경과 낭만을 담은 책도 아니고, '한국이 싫어서' 떠나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는 책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단군 할아버지 이후 이 땅에서 사라져버린 '개인'의 모색을 담은 기록인 것이다.

2017.01.10ㅣ주간경향 1209호

2017-01-08

20170101 - 20170107: 러시아 해킹 청문회, 주한 일본대사 초치, 중국 위안화 절상

* 현지시각 1월 5일,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열린 '러시아 해킹 청문회'에서, 미국의 정보 당국 수장들은 미국 대선에 러시아가 개입했으며 그 과정에서 푸틴의 지시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미 러시아의 개입을 확인한 CIA, FBI에 뒤이어,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DNI) 국장과 마이클 로저스 국가안보국(NSA)국장 겸 사이버사령관, 마르셀 레트라 국방부 정보담당 차관 등도 같은 의견을 표명한 것이다.

이번 청문회는 상원 군사위원장인 공화당 존 매케인 의원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그는 러시아의 선거 개입을 조사하는 것이 트럼프의 대선 승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러시아의 해킹이 "우리의 민주주의에 대한 예측하지 못했던 공격"이며 "미국에 대한 공격"으로 인해 선거 결과가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부 클린턴 지지자들의 희망사항과 달리 선거인단의 투표에서 결과가 뒤집히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문제는 끝난 선거 결과를 어떻게 뒤집느냐가 아니라, 트럼프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의 법과 제도를 어떻게 악용하고 나쁜 선례를 만들지 여부다. 이미 그의 친인척들과 관련한 온갖 이해충돌사안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트럼프의 주변인들은 요지부동이다. 이 와중에 공화당의 매케인 의원이 앞장서 미국 대선의 러시아 개입을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오바마 미 대통령은 35명의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했다.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 역시 다음주에 청문회를 예고하고 있다.


* 부산 소재 일본총영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된 것에 반발해, 일본 정부는 주한일본대사와 부산총영사를 '일시 귀국'시켰다. 동시에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한일통화스와프 협상의 중단과 한일 고위급 경제협의의 연기도 발표했다. 1월 6일의 일이다.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들끼리 항의의 뜻을 표하기 위해 대사 등 주요 인물을 본국으로 불러들이는 것을 '초치(招致)'라고 한다. 이것은 외교적 표현 중 하나이며 대단히 높은 수준의 항의이지만 국교 단절이나 전쟁의 개시 등을 즉각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2012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기습적으로 독도를 방문했을 때에도, 일본 정부는 무토 마사토시 당시 주한 대사를 소환했다. 무토 당시 주한 대사는 12일 후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한국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라는 사안의 무게를 놓고 볼 때 나가미네 대사의 일시 귀국 기간은 그보다 짧을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2011년 3월 25일 종로구청 건설관리과에 평화비 건립을 위한 도로점용 허가를 요청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영종 구청장은 동의하는 차원에서 정대협과 면담을 나누면서, "건축사 출신답게 이 자리에서 “소녀의 모습을 담은 ‘소녀상’을 만들면 좋겠다” “소녀상 옆에 예전 초등학교에 놓여 있던 나무의자를 하나 더 놓았으면 좋겠다” “제목을 ‘기다림’으로 하는 게 좋겠다” 등 자신의 아이디어를 내놨다"고 한다. 구청장이 앞장서 처리한 덕분에 도로점용허가 비대상시설물로 구분될 뻔했던 평화비, 혹은 '평화의 소녀상'은 2011년 12월 14일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될 수 있었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평화비는 2016년 12월 31일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앞에 설치된 것이다.


* 1월 6일,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위안화 고시환율을 달러당 6.8668위안으로 조정했다. 1월 5일 1달러가 6.9526위안에 교환되고 있었으므로, 달러 대비 환율을 0.92%p 가량 한꺼번에 끌어내린 것이다. 위안화 가치를 이렇게 극적으로 절상한 것은 2005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중국의 위안화 절상은 트럼프 당선 이후 달러화 강세가 지속된 결과 벌어지는 불가피한 현상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자본들이 미국으로 향하기 위해 해당 지역의 통화를 매도하고 달러를 매입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에 따라 중국의 외환보유고가 급격하게 하락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외국 자본의 흐름을 가속화하여, 결국 1달러당 7위안의 벽을 허물어뜨릴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중국 정부는 그러한 시장의 흐름에 저항하고 있다. 달러 대비 환율이 낮으면 낮을수록 중국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기축통화의 길은 멀어진다. 수출기업에는 도움이 되지만 해외 자본의 이탈을 막기 어렵다. 그러나 중국 인민은행의 적극적 개입에도 불구하고 위안화는 "기록적 절상에도 오후 4시 30분 현재 전거래일보다 0.71% 떨어진 달러당 6.83위안에 거래되"었다. 이번 위안화 절상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는 트럼프의 협박에 대한 반박이 될 지 모르지만, 아무리 위안화 가치를 끌어올리려 해도 시장의 흐름이 그와 정 반대라는 것은, 기축통화국을 꿈꾸는 중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2017-01-01

블로그에 쓰는 블로그에 대한 생각

2017년에는 이전보다 더 활발하게 블로그에 글을 쓸 생각이다. 나는 이전까지는 읽고 있는 책, 다 읽었지만 내용을 온전히 갈무리하지 못한 책, 읽었지만 그 의미를 곱씹는 중일 뿐인 매체 기사 등에 대해 공개적인 장소에서 언급해오지 않았다. 완결되지 않은 생각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것이 온당치 못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결과 지난 몇 년 동안 블로그는 업데이트가 대단히 뜸하게 되었다. 이것은 어쩌면 트위터 시대가 시작된 후 많은 블로그 사용자들이 겪은 현상일 것이다. SNS로서의 페이스북과 달리 트위터는, 처음에는 그들 스스로도 SNS인줄 알았지만, '마이크로 블로깅' 서비스였고 결국 블로그 시대에 활발하게 글을 쓰던 이들의 시간과 에너지를 빨아들였다.

그게 뭐 나쁜 일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특히 한국어권이라는 작고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이전의 블로그 시대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일들이 트위터 덕분에 가능해졌다. 하지만 나처럼 읽고 쓰는 것이 직업인 이들에게 트위터는 일종의 '담배' 같은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나 싶다. 나는 흡연자가 아니므로 상상적 비유를 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많은 생각과, 독서와, 레퍼런스들이 허공으로 후우 하고 뿌려졌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여보자. 트위터는, 특히 페이스북에 비하면, 굉장히 축적에 유리한 매체다. 일단 본인의 타임라인을 시계열적으로 훑을 수 있고, 자신이 쓴 트윗 전부를 다운받을 수 있다. 계정 백업이 언제라도 가능하며 그것을 오프라인 상태에서 웹브라우저나 텍스트 에디터로 읽어서 검색하는 일 또한 가능하다. 굳이 지난 트윗들을 다운받지 않아도 검색어 조작을 잘 하면 이전에 떠올렸던 단상이나 읽었던 웹문서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그렇게 '저장되어' 있는 것과, 내 머릿속에 '갈무리되어' 있는 것이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기사를 읽은 후 적당한 구절을 인용하여 트위터에 올리면 기억을 할 수 있다(그게 내가 트위터를 이용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 것을 가공하여 원고에 활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1차 단계인 수집에서 2차 단계인 인용으로 넘어가기까지에 장벽이 없지 않다. 짧더라도 독립된 글을 써서 정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 이유로 '비밀글' 기능을 제공하는 다른 블로그 서비스를 사용할까, 혹은 설치형 블로그를 운영해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잠시'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고,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이것저것 만져보고 몰래 실험도 해봤다. 하지만 뭐랄까,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는데, 언제나 그러한 탐색은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 것 외에는 블로그 그 자체에 대해 그 무엇도 연구하거나 고민하거나 탐색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끝난다.

그러자면 뭐가 됐건 설치형이 아니라 가입형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일단 언제 서비스가 종료할지 모르는 국내 블로그 서비스는 모두 뺀다. 드롭박스에 텍스트 파일을 올려놓으면 블로그 형태로 뿌려주던 서비스도 있었고 뭐 그런 식의 다양한 실험은 늘 존재해왔는데, 그 또한 결국 지속성에 문제가 있다. 결국 남는 선택지는 200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블로그를 운영하는 하드코어 블로거들이 우글우글한 blogger.com과, 이제는 일종의 표준이 되어버린 워드프레스 뿐이다.

워드프레스는 무료 가입자들에게 형편없이 낮은 기능만을 제공한다고 불평하고 싶지만, 사실 기능이 부족한 것으로 따지면 구글이 옛날옛적에 인수한 blogger.com은 wordpress.com의 무료 계정보다도 더 뒤떨어진다. 가장 단적인 예로 '비밀글'이 없다. '비밀댓글'도 없다. 모든 원고는 완성되어서 공개되거나 완성되지 않았기에 초고의 형태로 비공개된다. 댓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특히 '비밀댓글'의 부재는, 유독 그 기능을 사랑하는 우리 한국인들이 blogger.com의 사용 뿐 아니라 구독마저 꺼리게 만드는 중요한 'dealbreaker'로 작동해왔다. 하지만 구글은 그런 기능을 제공할 생각이,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듯하다.

그래서 블로그를 옮길까 말까 오래도록 고민하고, 데이터를 익스포트해서 옮겨넣어보기도 하고, 여러 시도를 했었다. 하지만 다 집어치우기로 했다. '블로그를 한다'는 건, 어쨌건 꾸준히 한 계정에 게시물을 업데이트한다는 의미이며, 그 외의 것은 부차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구글 블로그가 제일 편하게 느껴진다. 이전에 잠시 한 개인이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블로그를 운영했던 적이 있는데, 그 홈페이지의 운영자는 내가 여러 차례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자료를 내게 돌려주지 않았다(새해가 밝았으니 조만간 다시 메일을 보내볼 생각이다). 설치형 웹서비스라는 게 이렇게 위험하다. 계속 본인의 자원을 투입할 생각이 없다면 어딘가 '큰 배'에 탑승하는 편이 낫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인터넷에서 가장 '큰 배'는 구글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나는 그냥 계속 이 계정에서 이 블로그를 사용했어야 했다.

결국 하던 블로그 계속 하겠다는 것인데 왜 이렇게 설명이 길까? 몇 가지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 게시물에 태그를 붙이기로 했다. 이것은 대단히 큰 변화다. 애초에 blogger.com으로 블로그를 옮겼던 이유 중 하나는 카테고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글을 분류하지 않았으며, 분류해야만 한다고 강요하는 서비스(예컨대 티스토리)를 가장 먼저 고려 대상에서 제외해왔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일단 카테고리식 분류는 '중첩되는 분류'를 다루지 못하는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그에 대해서는 이 게시물을 참고해도 좋겠다. 이 또한 blogger.com을 이용하는 사용자가 작성했다는 점에 주목할 것). 라벨 또한 붙일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검색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라고 나는 오래도록 생각해왔다. 그런데 라벨이라는 것은 세밀하게 붙이면 붙일수록, 그리고 그 라벨의 대상이 되는 게시물이나 사진 등이 쌓이면 쌓일수록, 도움이 안 된다. 따라서 아예 시작도 안 하는 게 낫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수년 동안 지켜왔던 것이다.

결국 나의 불친절한 블로그 운영은 '독자 입장'이 아니라 '내 입장'에서 도움이 되는 블로그를 하겠다는 의지의 반영이었다. 그런데 내가 간과하고 있던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나 또한 내 블로그의 독자라는 것 말이다. 물론 라벨은 결국 특정 검색어를 미리 지정해서 눈에 잘 띄도록 끄집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내가 '그 검색어'를 떠올리지 못할 가능성이 늘 상존한다. 혹은 생각하지 않고 있던 검색어가 미리 지정되어 있는 라벨을 클릭하여 정렬된 게시물들을 읽고 이전의 내가 쓴 글이나 스크랩해둔 자료를 새롭게 발견할 수도 있는 것이다.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 것은, 어느 정도 시간이 축적되고 나면, 바로 그런 기능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는 태그 기능을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주제별로, 혹은 소재별로 세분하여 라벨을 붙이지는 않고, 일종의 '대분류'에 해당하는 항목들만을 추려서 붙인다. 그것은 독자들 뿐 아니라 내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가령, 연말이기 때문에 쉬었지만 다음주부터 재개할 '뉴스 정리'에 대해 생각해보자. 나는 지금까지 총 7차례에 걸쳐서 주말마다 그 주의 가장 중요한 뉴스들을 몇 개 꼽아 글로 정리했다. 그런데 '미리 제시된 검색어'로서의 라벨이 없다면, 심지어 나 자신 또한 내가 그런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되고, 과거의 내가 남긴 기록으로부터 도움을 얻기도 어려워진다. 지금은 다르다. 바로 이렇게 '뉴스 정리' 라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간 경향신문의 '별별시선'에 기고했던 칼럼들 역시 마찬가지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간단한 것을 나는 지금까지 하지 않았고, 수많은 독자들이 내 블로그에 흥미를 잃었는데, 그 중 가장 흥미를 잃었던 독자가 바로 나 자신이었음을 이제는 인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둘째, 현 시점에서 중요하거나 독자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게시물을 따로 뽑아서 오른쪽 사이드바에 올려놓을 것이다. 이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선언까지 하나 모르겠지만 기왕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했으니 마저 이야기하자는 취지에서 말을 한다. 그 내용은 당연히 수시로 달라질 것이다. 셋째, 내가 작업한 책들의 링크 역시 사이드바에 접근성 있게 제공할 것이다. 이걸 오늘 다 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빨리 완성된 형태를 갖추어야 하겠다.

지속적으로 원고를 생산한다는 것은, 다른 이들과 정보를 주고받으며 교류하여 이루어지는 일이기도 하지만, 과거의 자신과 꾸준히 대화를 나누어야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올해부터는 블로그에 더 자주 글을 쓰기로 했다고, 블로그에 쓴다.

2016-12-31

독서 목록(2016)

  1. 20160103 - 후지타 야스노리 감수, 우메야시키 미타 그림, 무라카미 유이치 스토리 원안, 유주현 옮김,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만화로 완전 정복』(경기도 파주: 이콘, 2015)
  2. 20160103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손영미 옮김, 『여권의 옹호』(경기도 고양: 연암서가, 2014)
  3. 20160108 - 김영란,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경기도 파주: 창비, 2015)
  4. 20160112 - 조너선 패터봄, 이상국 옮김, 『트리니티』(경기도 파주: 서해문집, 2013)
  5. 20160117 - 유발 하라리,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사피엔스』(경기도 파주: 김영사, 2015)
  6. 20160119 - 조형근, 김종배, 『섬을 탈출하는 방법』(서울: 반비, 2015)
  7. 20160121 - 문흥호, 주리시, 『한국-타이완 관계사(1949~2012)』(서울: 폴리테이아, 2015)
  8. 20160123 - 페드로 리에라 글, 나초 카사노바 그림, 엄지영 옮김, 『인티사르의 자동차 - 현대 예멘 여성의 초상화』(경기도 파주: 미메시스, 2015)
  9. 20160127 - J. M. 바스콘셀로스, 박동원 옮김,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경기도 파주: 동녘, 2003), 초판 1982년.
  10. 20160128 -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최필원 옮김, 『액스』(서울: 그책, 2011)
  11. 20160131 - 윤일구, 『함무라비 법전: 고대법의 기원』(경기도 파주: 한국학술정보, 2015)
  12. 20160201 - 치마만다 응고지 아다치에, 김명남 옮김,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경기도 파주: 창비, 2015)
  13. 20160203 - 로브 레이블로, 박성실 옮김, 『동물 쇼의 웃음 쇼 동물의 눈물』(서울: 책공장더불어, 2013)
  14. 20160204 -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김수정 옮김, 『죽어가는 자의 고독』(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12). 개정판.
  15. 20160206 - 앨버트 허쉬먼, 김승현 옮김, 『열정과 이해관계: 고전적 자본주의 옹호론』(서울: 나남, 1994)
  16. 20160210 - 유광수, 『가족 기담: 고전이 감춰둔 은밀하고 오싹한 가족의 진실』(서울: 웅진지식하우스, 2012)
  17. 20160212 - 이시윤, 『민사소송법입문』(서울: 박영사, 2016)
  18. 20160215 - 에릭 브린올프슨, 앤드루 맥아피, 이한음 옮김, 『제2의 기계 시대』(서울: 청림출판, 2016)
  19. 20160217 - 월터 아이작슨, 이덕환 옮김, 『아인슈타인: 삶과 우주』(서울: 까치, 2007)
  20. 20160217 - 로버트 F. 케네디, 박수민 옮김, 『13일: 쿠바 미사일 위기 회고록』(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2)
  21. 20160223 - 이종훈, 『사법시험 국제법』(서울: fides, 2015)
  22. 20160223 - 홍중기, 『국제법을 알아야 논쟁할 수 있는 것들』(경기도 파주: 한울, 2013)
  23. 20160302 - 장 폴 사르트르, 박정태 옮김, 『지식인을 위한 변명』(서울: 이학사, 2007)
  24. 20160303 - 하퍼 리, 김욱동 옮김, 『앵무새 죽이기』(서울: 문예출판사, 2002)
  25. 20160313 - 조윤민, 『두 얼굴의 조선사』(경기도 파주: 글항아리, 2016)
  26. 20160316 - 게르트 기거렌처, 안의정 옮김, 『생각이 직관에 묻다』(서울: 추수밭, 2008)
  27. 20160322 - 마이클 돕스, 김시현 옮김, 『하우스 오브 카드』(경기도 파주: 푸른숲, 2015)
  28. 20160328 - 브뤼노 라튀르, 이세진 옮김, 김환석 감수, 『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 편지』(경기도 일산: 사월의책, 2012)
  29. 20160328 - 계승범,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경기도 일산: 역사의아침, 2011)
  30. 20160329 - 스르자 포포비치, 박찬원 옮김,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16)
  31. 20160403 - 아오야마 모토오, 김정환 옮김, 임옥택 감수, 『자동차 구조교과서』(서울: 보누스, 2015)
  32. 20160407 - 네이트 실버, 이경식 옮김, 『신호와 소음』(서울: 더퀘스트, 2014)
  33. 20160407 - 에리히 프롬, 황문수 옮김, 『사랑의 기술』(서울: 문예출판사, 2006), 제4판
  34. 20160408 - 스탕달, 이규식 옮김, 『적과 흑 1』(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09)
  35. 20160409 - 스탕달, 이규식 옮김, 『적과 흑 2』(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09)
  36. 20160416 - 토마 피케티·이매뉴얼 사에즈, 박나리 옮김, 이정우 감수, 『세금혁명』(경기도 파주: 글항아리, 2016)
  37. 20160422 - 기무라 히데아키, 정문주 옮김, 『관저의 100시간』(서울: 후마니타스, 2015)
  38. 20160424 - 조엘 바칸, 이창신 옮김, 『기업에 포위된 아이들』(서울: 알에이치케이코리아, 2013)
  39. 20160428 - 라종일, 『장성택의 길』(서울: 알마, 2016) 
  40. 20160501 - 게르트 기거렌처, 강수희 옮김, 『지금 생각이 답이다』(경기도 파주: 추수밭, 2014)
  41. 20160502 - 전인권, 『남자의 탄생』(서울: 휴머니스트, 2003)
  42. 20160508 - 엘프리데 옐리네크, 정민영 옮김, 『욕망』(서울: 문학사상사, 2006)
  43. 20160509 - 리베카 솔닛, 김명남 옮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경기도 파주: 창비, 2015)
  44. 20160514 - 피터 템플, 나선숙 옮김, 『브로큰 쇼어』(서울: 영림카디널, 2008)
  45. 20160526 - 손정목, 『손정목이 쓴 한국 근대사 100년』(경기도 파주: 한울, 2015)
  46. 20160530 - 바버라 에런라이크, 최희봉 옮김, 『노동의 배신』(서울: 부키, 2012)
  47. 20160603 - 권혁범, 『여성주의, 남자를 살리다』(서울: 또 하나의 문화, 2006)
  48. 20160605 - 에멀린 팽크허스트, 김진아·권승혁 옮김,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서울: 현실문화, 2016)
  49. 20160605 - 하인리히 뵐, 김연수 옮김,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서울: 민음사, 2008)
  50. 20160605 - 윤보라·임옥희·정희진·시우·루인·나라,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서울: 현실문화, 2015)
  51. 20160606 - 재레드 다이아몬드, 김진준 옮김, 『총, 균, 쇠』(서울: 문학사상사, 1998)
  52. 20160610 - 전희경, 『오빠는 필요없다』(서울: 이매진, 2008)
  53. 20160613 - 레이첼 카슨,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침묵의 봄』(서울: 에코리브르, 2011)
  54. 20160617 - 귀스타브 플로베르, 김화영 옮김, 『마담 보바리』(서울: 민음사, 2000)
  55. 20160619 - 막스 베버, 김덕영 옮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서울: 길, 2010)
  56. 20160621 - 리처드 도킨스, 홍영남·이상임 옮김, 『이기적 유전자』(서울: 을유문화사, 2010), 전면개정판
  57. 20160625 - 토마 마티외, 맹슬기 옮김, 『악어 프로젝트』(서울: 푸른지식, 2016)
  58. 20160626 - 피터 싱어, 김성한 옮김, 『동물 해방』(경기도 고양: 연암서가, 2012)
  59. 20160702 - 정민구·김상태 사진, 노정태·안인용·이진·정현·함영준·현시원 글, 『Cherry Blossom』(서울: 시청각·G&Press, 2016)
  60. 20160703 - Hayao Miyazaki, trans. Eugene H. Saburi, Laputa The Castle in the Sky(Bellevue, WA: Tokuma Shoten Publishing, 1992)
  61. 20160704 - 이범준,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서울: 궁리, 2009)
  62. 20160709 - 모신 하미드, 안종설 옮김,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경기도 파주: 문학수첩, 2016)
  63. 20160709 - 박성규·오승호, 『뻐근하게 아픈 몸, 참지 말고 셀프 마사지』(서울: 북돋움라이프 X 롤링다이스, 2016)
  64. 20160711 - 정유정, 『종의 기원』(서울: 은행나무, 2016)
  65. 20160711 - 리아드 사투프, 박언주 옮김, 『미래의 아랍인 2』(서울: 휴머니스트, 2016)
  66. 20160714 - 작자 미상, 정창권 옮김, 『박씨전』(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67. 20160801 - 리처드 도킨스, 이용철 옮김, 『눈먼 시계공』(서울: 사이언스북스, 2004)
  68. 20160801 - 강명관, 『신태영의 이혼 소송 1704~1713』(서울: 휴머니스트, 2016)
  69. 20160807 - 이민경,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서울: 봄알람, 2016). 2판.
  70. 20160807 - 박정희,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서울: 걷는책, 2011)
  71. 20160809 - 앨버트 O. 허시먼, 강명구 옮김,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서울: 나무연필, 2016)
  72. 20160810 - 헨리크 입센, 안미란 옮김, 『인형의 집』(서울: 민음사, 2010)
  73. 20160814 - 오미일, 『근대 한국의 자본가들』(서울: 푸른역사, 2015)
  74. 20160818 - 박경신, 『진실유포죄』(서울: 다산초당, 2012)
  75. 20160822 - 존 스튜어트 밀, 최명관 옮김,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서울: 도서출판 창, 2010). 개정판.
  76. 20160823 - 우에노 지즈코, 이선이 옮김, 『위안부를 둘러싼 기억의 정치학』(서울: 현실문화, 2014)
  77. 20160829 - 피에르 부르디외, 김용숙 옮김, 『남성 지배』(서울: 동문선, 2000)
  78. 20160903 - 다카바타케 마사유키, 김보화 옮김, 『궁극의 문구』(경기도 파주: 푸른숲, 2016)
  79. 20160907 -  노나카 이쿠지로 , 스기노오 요시오, 데라모토 요시야, 가마타 신이치, 도베 료이치, 무라이 도모히데, 박철현 옮김, 이승빈 감수, 『일본 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인천: 주영사, 2009)
  80. 20160907 - 문유석, 『판사유감』(경기도 파주: 21세기북스, 2014)
  81. 20160909 - 로버트 해리스, 조영학 옮김, 『어느 물리학자의 비행』(서울: 알에이치코리아, 2014)
  82. 20160912 - 스티븐 킹, 이은선 옮김, 『미스터 메르세데스』(서울: 황금가지, 2015)
  83. 20160913 - 토니 포터, 김영진 옮김, 『맨박스 - 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들』(서울: 한빛비즈, 2016)
  84. 20160913 - 오찬호,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서울: 동양북스, 2016)
  85. 20160917 - 프랑코 '비포' 베라르디, 송섬별 옮김, 『죽음의 스펙터클』(서울: 반비, 2016)
  86. 20160920 - 막스 베버, 최장집 엮음, 박상훈 옮김, 『소명으로서의 정치』(서울: 폴리테이아, 2011)
  87. 20160922 - 윤원화, 『1002번째 밤: 2010년대 서울의 미술들』(서울: 워크룸 프레스, 2016). 도미노 총서 2
  88. 20160923 - 박세진, 『패션 vs. 패션』(서울: 워크룸 프레스, 2016). 도미노 총서 3
  89. 20160923 - 노정태, 『탄탈로스의 신화』(서울: 워크룸 프레스, 2016). 도미노 총서 1
  90. 20160923 - 대릴 커닝엄, 권예리 옮김, 함병주 해설, 『정신병동 이야기(증보판)』(서울: 이숲, 2014)
  91. 20160925 - 플로르 바쉐르, 권명희 옮김, 『조직된 한패』(경기도 파주: 밝은세상, 2016)
  92. 20160926 - 에르네스트 만델, 이동연 옮김, 『즐거운 살인』(서울: 이후, 2001)
  93. 20160927 -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박미애 옮김, 『문명화과정 I』(경기도 파주: 한길사, 1996)
  94. 20160927 -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박미애 옮김, 『문명화과정 II』(경기도 파주: 한길사, 1999)
  95. 20160930 - 후루이치 노리토시, 한연 옮김, 『아이는 국가가 키워라』(서울: 민음사, 2016)
  96. 20161001 - 윤세상, 『땅 사서 지을까 집 사서 고칠까』(서울: 한겨레출판, 2016)
  97. 20161002 - 최낙언, 『식품에 대한 합리적인 생각법』(서울: 예문당, 2016)
  98. 20161005 - 앤드류 포터, 노시내 옮김, 『진정성이라는 거짓말』(서울: 마티, 2016)
  99. 20161009 - 이민경,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 외롭지 않은 페미니즘』(서울: 봄알람, 2016)
  100. 20161010 - 찬호께이, 강초아 옮김, 『13·67』(서울: 한스미디어, 2015)
  101. 20161010 - 린 헌트, 전진성 옮김, 『인권의 발명』(경기도 파주: 돌베게, 2009)
  102. 20161017 - 고바야시 히데오, 임성모 옮김, 『만철 - 일본제국의 싱크탱크』(서울: 산처럼, 2004)
  103. 20161022 - 윌리엄 그릴, 박중서 옮김, 『커럼포의 왕 로보』(서울: 찰리북, 2016)
  104. 20161026 - 김시덕, 『일본의 대외 전쟁』(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6)
  105. 20161028 - 댄 포인터, 여인혜 옮김, 『나이든 고양이와 살아가기』(경기도 파주: 포레, 2013)
  106. 20161102 - 김시덕,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서울: 메디치, 2015)
  107. 20161104 - 임상혁, 『나는 노비로소이다』(서울: 너머북스, 2010)
  108. 20161108 - 전인권, 정선태, 이승원, 『1898, 문명의 전환』(서울: 이학사, 2011)
  109. 20161116 - 박경신, 『진실유포죄』(서울: 다산북스, 2012)
  110. 20161120 - 아메노모리 호슈, 김시덕 옮김, 『한 경계인의 고독과 중얼거림』(경기도 파주: 태학사, 2012)
  111. 20161123 - 조엘 바칸, 윤태경 옮김, 『기업의 경제학』(서울: 황금사자, 2010)
  112. 20161129 - 조성주, 『알린스키, 변화의 정치학』(서울: 후마니타스, 2015)
  113. 20161130 - 마크 라이너스, 이한중 옮김, 『6도의 멸종』(서울: 세종서적, 2014), 개정판
  114. 20161204 - 베네딕트 캐리, 송정화 옮김, 『공부의 비밀』(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16)
  115. 20161206 - 에릭 브린올프슨, 앤드루 맥아피, 이한음 옮김, 『제2의 기계 시대』(서울: 청림출판, 2016)
  116. 20161214 - 스티븐 핑커, 김명남 옮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서울: 사이언스북스, 2014)
  117. 20161228 - 김한민, 『비수기의 전문가들』(서울: 워크룸 프레스, 2016) 
  118. 20161231 - 홍춘욱, 『환율의 미래』(서울: 에이지21, 2016)
  119. 20161231 - John Patrick Shanley, Doubt, A Parable(New York: Dramatists Play Service, Inc., 2007)

2016년 1월 1일부터 2016년 12월 31일 사이, 표1부터 표4까지 통독한 책들의 모음. 중간중간 뒤적거린 책들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총 119권. 2016년은 매우 다사다난했고, 큰 성취를 이루기도 하였으나, 때로 힘겨웠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일을 해내야 했는데, 그 중에는 아직 끝내지 못한 것도 있다. 새해를 맞이하여 새롭게 결의를 다져본다.